소녀는 그 날 이후 해가 지는 시간이 되어서야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내게 와서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떠나간다. 오늘 이면세계에 의뢰 때문에 갔던 이야기, 회사에서 사내 업무를 본 이야기, 선배에게 교육받은 이야기, 소녀의 입에서 나올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즐거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나는 그 미소에 같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소녀가 없는 시간동안 주위 간호사들은 나를 도와줄 때 소녀의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소중한 무언가가 사라질까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 수술시간동안 한참을 문 앞에서 울다가 자고 있었다는 이야기,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동안 매일 아침 면회가 가능한 시간이면 찾아왔다는 이야기,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의 끝에는 언제나 한 가지 질문이 따라와서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는 했다.

 

“그래서 그 간호인 분하고는 무슨 관계에요? 연인이에요?”

 

“...... 동업자...... 라고 하기는 그렇고 친구에요. 아이스크림 친구.”

 

내 뜨뜻미지근한 대답에 언제나 간호사들은 실망 반 답답함 반이 섞인 한숨과 함께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짓고 떠나고는 했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정말 아이스크림 친구가 맞는데.

 

용병이라면 다들 자신이 죽은 후에 어떤 취급을 받게 될까 생각해봤을 것이다. 물론 대다수는 누군가 꽃을 가져다 줄 비석이라도 세워주면 좋겠다는 자조 섞인 웃음으로 끝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고 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꿈은 물에 빠진 솜사탕마냥 흐드러져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박살났고 남는 것이라고는 두 손과 들개 같은 생존본능 뿐이었다. 돌아갈 곳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삶이다. 이런 삶 속에 누군가 나를 위해 비석을 세워줄 일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누군가 나를 원망하며 침 뱉을 비석 하나, 작은 나무 십자 하나 없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나는 내가 받는 관심, 사랑조차 호화고 과하다는 생각에 귀를 막기도 했다. 하지만 소녀는 끊임없이 마음의 성문을 두드려왔다.

 

...... 그렇게 나는 소녀가 오는 저녁 7시를 기다리게 되었다.

 

=

 

언제나처럼 찾아온 소녀는 작은 쇼핑백 안에서 찬합을 꺼냈다. 찬합 안에는 포도와 방울토마토가 들어있었다.

 

“포도 좋아해?”

 

“좋아하죠. 씨 없는 청포도가 얼마나 맛있는데요. 그리고 이 청포도 진짜진짜 달아요. 빨리 먹어봐요!”

 

그렇게 말한 소녀는 스스럼없이 청포도를 집어 내 입가로 가져갔다. 이런 모습 보일 때마다 간호사들의 눈총이 따가워, 아이스크림 친구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하면 뒤에서 또 새로운 가십거리가 생긴다고...

 

이런저런 생각은 많이 들었지만 결국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청포도를 씹자 새큼한 향과 함께 달콤한 과즙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초콜릿이 첫사랑의 맛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틀렸다. 이렇게 달고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식이 있는데 어떻게 초콜릿이 첫사랑이 되는가.

 

입가에 잠시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이윽고 느껴지는 소녀의 따스한 시선에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워냈다. 얼굴이 풀린 바보 같은 미소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웃으니까 좋은데 왜 그래요. 또 표정관리 한다~”

 

“표정관리 아냐. 청포도 맛있네. 늘 고마워. 지금까지 얻어먹은 과일 값 아이스크림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사줘야하지?”

 

“지금까지 먹은 양을 다 아이스크림으로 사주려고요? 그러면 저 2배로 불어나요.”

 

팔을 한아름 옆으로 가득 펼친 소녀는 내 이야기에 과장된 표정을 지으면서 휘적휘적 움직였다. 그리고는 설명이 조금 부족했는지 볼에 바람까지 집어넣으면서 나름대로의 표현을 보였다. 물론 그런 과한 표정도 귀여웠다.

 

“그러면 아이스크림 말고 뭐로 사줄까?”

 

“일단 낫고 나서 이야기해요. 나을 때까지 뭘 선물하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어려운 이야기였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 기억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선물, 애초에 삶에 없던 단어와 마찬가지였는데. 그녀 때문에 내 단어장에 선물이라는 지웠던 단어를 다시금 쓰게 생겼다.

 

“나는 요즘 여학생들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데?”

 

“괜찮아요! 카운터 아카데미는 졸업했으니까 여학생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해주고 싶은 거, 좋아하겠다 싶은 거 고민해서 선물해주세요.”

 

그렇게 이야기한 소녀는 자신이 말하고서 부끄러워진 듯 멋쩍은 웃음을 조금 흘리다 이내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오늘도 회사에서 있었던 이야기였다. 자신을 도와주는 직속 선배랑 같이 점심을 먹은 이야기, 사무업무를 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 이야기, 컴퓨터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어려보이는 소대장에게 컴퓨터를 가르쳐준 이야기, 그녀는 굉장히 즐겁다는 듯 이야기를 늘어놨다.

 

“아, 그리고 내일은 이면세계에 갈 거 에요. 의뢰가 들어왔대요.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하고.”

 

그 말에 몸을 움직이려다 부러진 오른 팔이 아파서 신음을 흘렸다. 내 반응에 소녀도 깜짝 놀라 내 몸을 양 손으로 가볍게 누르며 침대에 바르게 눕게 도와줬다.

 

“움직이지 말아요. 그리고 이번 일은 진짜 안전하대요. 막 아저씨가 갔던 곳처럼 위험천만한 곳이 아니라니까 걱정말아요.”

 

“내가 간 곳도 그렇게 위험한 곳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어서 온 몸이 박살나서 돌아와요? 다음에도 그러면 진짜 병문안도 안올거에요.”

 

소녀의 이야기에 작게 웃었다. 그녀는 왜 웃냐면서 손을 붕붕 흔들었지만 그럼에도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나날이 계속 되면 좋을텐데. 또다시 혼자가 된 나를 달래주기 위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소녀가 떠날 시간이 되고 다시금 병실에는 정적이 찾아온다.

 

소녀가 떠난 후 간호사가 내 상태를 확인하며 몇 마디 던지기는 하지만 그 이야기들 또한 그녀들의 가십거리 중 일부가 될 것을 알기에 나는 별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그저 소녀가 떠나가는 길목, 창밖을 내다볼 뿐이다.

 

=

 

7시가 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병실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오늘은 이면세계를 다녀오니까 조금 일찍 도착했나, 고개를 돌렸지만 소녀가 있어야 할 곳에는 무슨 팔 달린 로봇이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자율형 로봇...... 이라고 불러야 할까. 뽈뽈뽈뽈 바퀴를 급히 돌리며 내게 다가오는 로봇에 두려움보다는 신기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 자네가 바로 김세한, 맞나? 이면세계에서 미아가 되었다가 살아난.”

 

“내 이름도 모르는 걸 보면 스틸레인 쪽 로봇은 아닌 거 같은데. 그 선배 조문이라면 안받습니다. 장례 상 정도는 차려줘야 하는데 제 몸도 이렇거든요.”

 

“그 일은 안타깝게 되었네. 누군가 챙겨줄 이 없는 죽음은 더욱 쓸쓸한 법이지.”

 

잊으려고 했던 일들을 무덤덤히 입으로 풀어내보려 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다시금 내 폐부를 찔렀다.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슬퍼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모든 것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짧은 침묵이 흐르고 나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린 로봇은 이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머신 갑이라고 하네. 코핀컴퍼니의 사장이지.”

 

“아, 그 호라이즌 파이넨스 뺨치는 악덕 기업이라는...... 반갑습니다. 김세한입니다. 병원비 이야기 때문에 오셨나요? 총무 분을 보내셔도 됬을텐데요.”

 

요즘에는 사장이 돈을 받으러 다니나. 한 편으로는 사장이 올 정도로 병원비가 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로봇은 전혀 주제를 짚지 못했다는 듯 팔을 으쓱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그건 아닐세. 그냥 인사 차 온거지. 우리 사원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네. 그리고 원래 이런 일은 부사장이 하는데 신입 사원이 부사장을 무서워한다 해서 말이지. 병문안을 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깜짝 놀라서 떨지 않겠나.”

 

부사장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는데, 소녀가 무서워하는 선배라니, 싹싹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맞지 않는 사람도 있나 보군. 한 편으로는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사원들 일거수일투족도 관리하는 회사일 줄이야. 생각보다 더 악질이었다. 아니면...... 설마 회사에서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 생각해보면 매일 퇴근길에 병원에 들르는데 누구라도 이야기했겠지.

 

로봇은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정확히는 눈동자가 위 아래로 움직였다.

 

“사원들의 퇴근 후 까지 체크하는 회사는 아닐세. 몸 상태는 좀 어떤가?”

 

“덕에 목숨은 건졌습니다. 몸이 좀 여기저기 망가졌지만 금방 다시 뛸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네요. 돈도 금방 갚겠습니다.”

 

“이거 참, 돈 이야기가 아니래도. 뭐, 돈하고 관계가 아주 없지는 않겠군. 같이 일할 생각이 있으면 연락주게. 병원비도 쉽게 갚게 될거야.”

 

그렇게 말한 로봇은 팔을 쭉 뻗어 내 앞에 명함을 놓고 뒤돌아섰다.

 

“제가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까? 기업 사장이 직접 병문안을 와서 스카웃 제의를 할 정도로, 그것도 이렇게 망가진 상태인 것을 보고나서 이야기 할 만큼.”

 

레일이 도르륵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로봇은 말없이 문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문을 조심스레 열고 잠깐 멈췄다.

 

“글쎄,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지.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끼리 서로 힘내야하지 않겠나?”

 

로봇은 떠나갔다. 짧은 대화 속에 남은 것은 입안의 텁텁함 뿐이었다. 세상 속 소중한 것을 지키는 사람들끼리...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는데 이제는 더 잃지 않을 수 있을까......

 

=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병실도 일반 병실로 옮겼고 이제 곧 퇴원해도 괜찮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지만 일상이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었다. 명함을 보다가 잠시 한숨을 쉬고, 7시가 되어갈 때면 언제나 창밖을 내다보고, 소녀가 오면 같이 오늘의 일에 대해, 즐거웠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가끔 시간이 날 때 그나마 멀쩡한 왼 팔로 글을 쓰고.....

 

오늘도 소녀는 당연하게 찾아왔다. 병동의 인기인이 된 그녀는 어느 덧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지 왔다 갈 때면 언제나 그녀의 이야기로 병동이 가득 차고는 했다.

 

싫지는 않았다. 그녀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좋게 봐주는 사람이 많아서 나도 미소가 저절로 지어지고는 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의 후폭풍으로 소녀와 나의 관계에 대해 캐묻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귀찮아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저씨, 오늘도 글 쓰고 있어요? 어떤 글이에요?”

 

“소설, 창 너머에 뻗은 나뭇가지를 보고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나도 죽겠지 하고 자조적인 소리나 하는 소설이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은데..... 짝퉁 아니에요?”

 

소녀는 내 시덥지 않은 말장난에도 웃음을 지으면서 여느 때처럼 찬합을 꺼냈다. 오늘은 삐뚤빼뚤 껍질보다 살을 더 많이 파먹은 것으로 보이는 사과였다. 역시 내려치는 칼과 섬세히 깎는 칼은 다른 칼인 모양이었다.

 

“사과 깎아왔어? 진짜 나중에 내가 깎는 방법 알려줘야겠네.”

 

“아저씨, 저 칼 잘 쓰거든요? 슉슉! 막 침식체로 확! 베어버리고.”

 

그녀의 허공을 가르는 손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소녀는 침식체를 벨 때도 그렇게 깔끔하게 칼을 쓰는 편이 아니었다. 방패를 고른 것이 신의 한 수라고 이야기하던데...... 처음 만났을 때의 칼솜씨를 생각해보면 방패가 정말 필요했을 것이다.

 

“칼 쓰는 건 내가 더 잘할걸. 예전에 스틸레인서 근접전투술 할 때 다들 나보고 카운터냐고 물을 정도였어.”

 

“또 허세에요? 진짜 다음에 그 잘한다는 장검술좀 봐야겠네요.”

 

이야기 하는 사이에 소녀는 사과를 콕 작은 포크로 집어서 내 입 앞으로 가져다댔다. 왼 팔이 낫고 나서 괜찮다고 극구 사양해도 소녀는 물러섬이 없었고 결국 아직까지도 입에 가져다대면 받아먹고 있었다. 이런 행동들이 뒷이야기가 나오는 큰 이유였겠지.

 

“아저씨, 곧 퇴원해도 된다는데 퇴원하면 또 바로 용병일 시작할거에요? 몸 상태도 멀쩡하지 않을 텐데.”

 

“...... 어디 업체랑 계약했어. 당분간 일할 자리를 만들어준다고 하더라고. 위험한 일은 아닌데 많이 바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

 

내 입에 사과를 넣어준 그녀의 손이 다시 사과로 가다가 멈췄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조금 놀란 모양이었다.

 

“어...... 진짜 위험한 일 아니죠? 나는 아예 일하지 말고 쉬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일을 안 하고 살아...... 갚아야 할 병원비가 얼마일지도 가늠이 안 가는데.”

 

“그......렇겠죠? 내가 조금 내줄까요?”

 

고개를 저었다. 매번 이렇게 간병을 극진히 받는데 소녀한테 병원비까지 대신 내달라하면 그 날로 끝이다. 진짜 인간쓰레기 기둥서방이 되는 거다...... 하지만 소녀는 내 대답이 아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무리 그렇게 행동해도 그건 용납할 수 없다.

 

“그러면...... 이제 이렇게 자주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까요? 어디 멀리 가는 건 아니죠?”

 

“핸드폰 있잖아. 그리고 멀리 안가. 사무실 냅두고 어딜 가.”

 

그 말에 소녀는 다시금 미소를 지었고 다시금 내게 사과를 내밀었다. 병원을 나서면 우리의 관계도 진전을 내야겠지. 어떤 방향으로든 말이야.

 

이제 퇴원까지 일주일 남았다.


------------------------------------------------------------------


다음 화가 마지막 화입니다.


어제 새벽에 비몽사몽하면서 막 썼던 기억이 난다.


10화 쓰고 후기나 쓰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다들 읽어줘서 고맙고 10화도 잘 써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