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도마

 

 

 

 

이곳은 죽음이 가득한 세계.

침식체가 도시를 휩쓸었고 보이는 모든 것을 짓밟으며 지나갔다. 

침식파에 당해서 자신을 잃고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과 침식체에게 산채로 먹히는것. 어느쪽이 더 나을까 하는 것은 오래된 논제였다.

 

하지만 도마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무너진 건물잔해 밑에 깔린채 어둠속에서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는 동생, 유마의 온기만이 그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괜찮아? 조금만 더 버텨. 침식파에 당한 게 아니니 금방 구조대가 올 거야."

“응.."

 

사실은 알고 있다. 누구도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런 작은 도시 따위는 일일이 구할 필요도, 그럴 여력도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유마에게 그런 진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총명한 그녀였기에 그녀 또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입밖으로 굳이 꺼내고 싶지는 않았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아니. 그건 아니다. 

나의 동생을 지켜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가 지나가지 않을까. 혹여 자신들을 발견하지 못하지는 않을까.

그때를 위해서라도 나는 살아있어야한다.

 

오감을 곤두세우고 주위상황에 집중했다. 어두운 것은 오히려 행운. 

차단된 시각은 그것 외에 다른 감각들을 예민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아직 괜찮아?"

“..응"

 

“괜찮아?"

“..응"

 

아주 짧은 대화만을 나누며 기력을 보존한다. 그 이외에 불필요한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이성이 그것을 거부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간감각마저 사라져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생물이 사라진 이곳에선 흔한 동물들 소리마저 사라졌다.

 

그럼에도 그는 기다린다.

구원의 손길을.

 

신에게 빌었다. 자신이라면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동생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신이시여.."

 

신은 대답하지 않는다.

신은 구원해주지 않는다.

 

그때,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 여자아이 같은 목소리. 환청일까.

 

“역시 지능이 없는 것들이란. 그저 부수고 먹는 것밖에 모르지.”

 

“여, 여기.."

 

“음?”

 

환청이 아니다. 가느다란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을 보였다.

 

“여기요! 건물 아래 깔려있어요! 구해주세요!"

 

더이상의 대답은 없었지만 곧 몸을 짓누르던 돌덩이들이 사라지는것을 느꼈다.

 

“하하, 이런 난장판 속에서 살아있는 녀석들을 볼 줄이야. 이 몸이 누구인지 아느냐?"

 

..카운터 능력자라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홀로 이런 곳에 있지 않을테니.

하지만 아니다.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인간과는 다른 그 무언가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떨려오며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고개를 돌리는 것도, 발을 내딛는 것도, 숨을 쉬는 것조차, 자신이 행할수 있는 행위의 하나하나 모든 것들을 감히 허락 맡아야 할 것 같은 대상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선 공포가 기화점을 넘어 폭발하기 직전이다. 

 

그럼에도 말을 할 수 있던 것은 오직 동생을 위해서.

 

“다, 당신이 악마라고 해도 좋습니다. 제 모든 것을 드릴 테니.. 동생을 도와주십시오. 위험한 상태입니다."

 

“..."

 

그녀는 말없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공중에 떠있는 의자에서 자신의 팔걸이를 손가락으로 탁탁 내리치며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위험한 상태이긴 하구나. 바로 네가. 네 동생은 이미 죽은지 한참이나 되어보이는데."

 

“어..어?"

 

그 말에, 마침내 자신이 잡고 있던 손에 온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반신이 돌에 짓눌려터져있고 입가에는 가는 피가 흐르고 있었는데 이미 한참 전에 말라붙은듯, 선명한 붉은색이 아닌 탁한 갈빛이다.

 

“이럴..리가.. 없는데.. 분명 대화도..”

 

나눈 대화라고는 그녀가 단답으로 대답하더라도 아무런 이상함도 느끼지 않을 말들이다. 그것을 깨달았다. 프레데릭 도마는 절규했다.

 

“아아아아아아아!”

 

동생의 주검 앞에서 무릎 꿇은 채, 절규하고 또 절규했다. 차라리 자신도 죽었으면. 외로이 떠나보내고 말았다. 지켜주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신이시여, 나는 당신을 증오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그 누구에게라고 말할 것 없는 외침을 쏟아내었다. 신에 대한 증오. 세상에 대한 증오.

그 모습에, 눈앞에 있는 소녀는 미소 짓는다.

 

“그대는 동생을 살리고 싶은 것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그녀의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녀라면 가능할 것 같다. 아직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믿었다. 믿고 싶었다.

 

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도 대가를 받아야겠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이런건 쉬운 일이니 큰 대가를 받을 필요도 없지. 이 아이에게는 이 몸이 살리는것 자체가 그 대가가 될 뿐."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나는 너의 섬김을 필요로 한다. 이 세계가 끝나더라도 다음세계에서도, 그 다음 세계에서도 나를 섬길 수 있겠느냐."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 앞에 오체투지를 보이며 말했다.

 

“이 몸, 프레데릭 도마는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그 어떤 상황이 올지라도 당신에 대한 충을 저버리지 않겠나이다."

 

“좋다. 네 소원을 이루어주지. 단, 완전히 멀쩡히 돌아오지는 못한다. 너무 오래 되었으니 말이다."

 

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그녀만을 믿을 뿐. 이미 그녀는 자신의 주군이다. 그녀의 행위에 더 이상의 의문은 불필요하다.

 

“자, 일어나라."

 

마법과도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끔찍하게 짓뭉개진 그녀의 하반신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보라색으로 물들었던 입술이 붉게 변한다.

핏기가 사라져 창백했던 얼굴에 혈색이 돈다.

 

“유마..!"

 

도마는 그녀를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몸은 신생 마왕, 로자리아 르 프리데. 아스모데우스다. 자, 가자. 나의 종복들아."

 

“예. 나의 여왕이시여."

 

아직 영문을 몰라하는 유마의 손을 잡고 도마는 거침없이 나아가는 로자리아의 뒤를 쫓았다.

 

그의 눈에는 기쁨의 눈물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