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끄적인 거 치고 좀 길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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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관리국의 유물, 테라브레인

 

지금에 이르러 구 관리국의 물건들은 용병들 사이에서 떠도는 하나의 전설 남짓으로 취급되고 있지만, 이 물건은 그중에서도 조금 특별한 편이다.

 

압도적인 연산 능력과 자체 전투 능력 등을 지닌, 지금의 기술력을 모두 동원해도 만들 수 없는 구 관리국 기술의 집합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유물의 존재 자체를 아는 사람도,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도 극소수에 달한다.

 

그리고 그 유물은 지금...

 

[... 시스템 가동 완료. 절전 모드 해제.]

 

“으아~~~~~~잘 잤다~~!!!!!!”

 

여기, 기업이라 하기도 애매한 코핀 컴퍼니의 구석에 있는 방 하나에 짱 박혀 있는 중이다. 그것도 ‘미래 전략실’이라는 이름뿐인 부서의 대표로서.

 

“오늘은 뭘 하고 놀까? 계속 혼자 있는 것도 심심한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기계가 사람, 그것도 소녀의 형태를 띠고 있다는 것이다. 보통 메카닉이라 함은 선더볼트와 같은 기계 장치 그 자체를 의미하지만, 이 기계... 아니 이 시그마라는 이름을 붙인 소녀는 그런 정상 범주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듣기로는 홀로그램이라나 뭐라나.

 

그녀가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동화책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혹자가 들으면 농담이라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그녀는 아주 오래전 한 로봇을 만났고, 그 로봇과 그가 건네준 동화책을 보며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엊그제는 할아버지랑 놀았고, 어제는 아줌마한테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들었고...음...오늘은 뭘 하지?”

 

민트색 머리의 소녀는 손가락을 하나하나 구부리며 요 며칠간 자신이 해온 일을 복기해냈다. 그리고 이내, 그녀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 머리를 번뜩였다.

 

“아! 오늘은 아빠랑 놀아야겠다!”

 

생각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곧장 문을 박차고 복도로 뛰어나갔다.

 

“아빠!!!!!!”

 

“오, 우리 딸! 오늘은 무슨 일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사장실의 문이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열렸지만, 사장실의 주인은 흔한 일이라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맞이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또 우스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사장실의 주인 또한 로봇이라는 사실이다. 뭐 그 뒤에 사람이 있기도 하고, 그 사람이 시그마를 만든 구 관리국의 관리자라는 복잡한 사실이 얽혀있긴 하나, 너무 얽히고설킨 게 많은 이야기니 이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아빠, 오늘 나랑 놀자! 내가 같이 놀려고 격납고에서 장난감도 몇 개 가져왔어!”

 

“어... 그게 ... 오늘은 아빠가 좀 바빠서... 잠깐 어디서 뭘 가져왔다고?!”

 

“장난감! 여기 고탄성 장갑이랑... 초전도 핵심이랑...”

 

“그건 장난감이 아니란다! 빨리 돌려놓고 오렴!”

 

시그마가 몇몇 함선 부품들을 내놓자 사장 머신갑은 질겁하며 손을 내저었다. 시그마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바라봤다.

 

“어...이거 갖고 오면 안 되는 거야...?”

 

“이건 함선을 지을 때 쓰는 아주 비싼 물건이에요~. 막 갖고 오면 안 되는 거란다, 알겠지?”

 

그 말에 시그마는 울상을 지으며 말을 했다.

 

“미...미안해, 아빠... 나 사실 지금까지 계속 몇 개 훔쳤었는데...”

 

“...?”

 

일순간 관리자가 받은 충격이 기계로 전해진 듯 머신갑의 동작이 잠시 멈췄지만, 잠시일 뿐이었다. 이내 그는 “어쩐지 비품이 계속 몇 개씩 비더라니...”라며 중얼거리고는 그녀를 달래줬다.

 

“괜찮아요~, 이 아빠는 그런 거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다음부터 안 하면 되는 거란다, 알겠지?”

 

“응 알았어! 고마워 아빠!!”

 

그에게 미움을 살까 울먹거리던 그녀는 그의 위로를 듣고 안심하며 환하게 웃었다. 정말, 이런 것만 보면 기계가 아니라 철부지 애를 하나 키우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 관리자였다.

 

“그래서 왜 왔다고 했지, 우리 딸?”

 

혹여나 그녀가 더 신경 쓸 것을 우려한 머신갑은 빠르게 말을 돌렸다.

 

“응! 오늘 같이 놀러 가자고 하러 왔어!”

 

“...미안하구나, 오늘은 시간이 안 날 것 같은데...”

 

그녀의 말에 당황스러운 듯 미안한 감정을 표출하는 머신갑이었지만, 철부지 어린아이와 같은 그녀의 마음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역시...아까 그거 때문에 화난 거야...?”

 

“아니 아니 아니, 절대 아니란다! 그냥 오늘은 아빠가 할 일이 좀 있어서 그래요!”

 

그는 또다시 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그녀의 말을 부정했지만, 이미 자괴감에 빠진 그녀의 마음은 종잡을 데 없이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보던 머신갑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사장실 구석 한 켠에 있는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길게 접혀진 종이 한 장을 들고 나와 그녀에게 펼쳐 보였다.

 

“짜잔~~우리 딸, 이게 뭔지 아니?”

 

“으...그게 뭔데...?”

 

“이건 바로바로~~ 인기투표라는 거란다!!”

 

‘<제1회 사내 인기투표>, 당신의 사원에게 투표하세요!’ 그가 들고 온 종이에는 대문짝만 하게 그런 글씨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시그마는 이를 보고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 그에게 재차 질문을 했다.

 

“아빠...이게 뭐야...?”

 

“내일 우리 회사에서 인기투표를 할 거예요~. 우리 회사 직원들이 뽑는 ‘가장 착하고 우수한 직원’을 뽑는 거란다!’

 

“헤에....”

 

“너도 여기 나가보는 건 어떻겠니?”

 

“내가?!”

 

시그마가 놀란 듯 어깨를 움츠린다. 사내 인기투표라니. 지금까지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고, 해온 것도 없는 그녀가 나가봤자 5표나 얻을 수 있을까.

 

“내가... 이런데 나가도 괜찮을까...?”

 

“그럼~우리 시그마를 좋아하는 사원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가면 반드시 1등할 수 있을 거란다. 아! 그리고 1등을 하고 오면 이 아빠가 우리 귀여운 딸을 위해 특별한 선물을 하나 주도록 하마!”

 

“특별한 선물...?”

 

선물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녀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리고 사장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 선물! 아빠가 시그마를 위해 준비한 특제 선물이란다!”

 

“와아! 선물! 할래! 받을래!”

 

“그래그래, 그러면...”

 

“아빠, 1등 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사람들한테 세뇌 장치를 심어 넣을까? 아니면 투표 결과를 조작할까?”

 

아까보다 더욱 눈에 총기를 띠며 시그마는 머신갑에게 질문했다. 

애가 어디서 이런 것만 배워왔을까. 요새 동화책들은 다 이런 내용들뿐인가? 

그런 그녀를 보며 관리자는 쯧 하고 혀를 찼다.

 

“그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닌 거 같구나.”

 

“그러면 뭐가 좋은 방법이야?”

 

“음...오늘 하루 동안 우리 회사 직원들을 도와주는 건 어떻겠니? 그러면 직원들도 시그마를 좋게 봐줄 거란다.”

 

“와아, 좋아! 그러면 선물 꼭 준비해 둬야 해, 아빠!”

 

처음의 의기소침해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금세 기운을 차리고는, 그녀는 다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사장실을 뛰쳐나갔다. 그런 그녀를 모니터로 지켜보며, 사장실 구석진 방에서 홀로 씁쓸하게 웃음을 짓는 관리자였다.

 

“그런 기계에게 왜 그렇게 열정을 다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어둠 속에서 어느샌가 나타난 이수연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네.”

 

“요 며칠째 그 기계 때문에 다른 일을 못하시니 드리는 말씀입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네.”

 

“과거에 대한 속죄인가요?”

 

이수연이 그를 노려보며 질문했다. 

 

속죄라, 참으로 우스운 말이다. 수십, 수백 개의 세계를 버리고 도망쳐 온 그에게 속죄할 대상이 남아있었단 말인가. 그럼에도 지금 그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충분히 그녀에게 그렇게 보일만도 한 일이었기에, 그는 또다시 씁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글쎄.....”

 

잠시 중얼거린 그는 곧장 다시 하던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 작은 소리는 어두컴컴하고 조그만 방에 있는 두 사람에게 조그맣게 울리다 슬그머니 흩어질 뿐이었다.

 

 

 

 

 

 

 

 

“우음...그런데 뭐부터 해야 하지...?”

 

사장실을 뛰쳐나올 때만 하더라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시그마였지만, 그녀는 이내 현실에 봉착했다. 나름대로의 체계적 시스템 하에 지금까지 잘만 돌아갔던 회사의 톱니바퀴 안에 그녀가 낄 만한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정처 없이 복도를 배회할 뿐인 불쌍한 홀로그램 소녀가 되었다.

 

“어라? 미래 전략실 실장님 아니세요?”

 

때마침 복도를 지나가고 있던 서윤이 그녀를 발견하고는 생긋 웃으며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으음...”

 

“무슨 일 있으세요?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그게 말이야...”

 

침울한 얼굴로 그녀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서윤에게 모두 설명했다. 서윤은 그녀의 이야기를 고개만 끄덕이며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손뼉을 치며 말을 이었다.

 

“아~, 그거라면 저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요.”

 

“뭔데 뭔데?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는 거야?”

 

자기가 언제 침울해있었냐는 듯, 시그마는 눈을 반짝반짝하고 빛내며 그녀를 쳐다봤다.

 

“제가 필요한 일은 아니고... 요즘 사원분들이 일이 많아 보이시던데 그분들을 도와드리고 오는 건 어때요?”

 

“그 사람들도 좋아할까?”

 

“그럼요, 실장님이 도와주시는데 왜 싫어하겠어요~.”

 

그녀의 말은 실제로도 괜찮은 생각이었다. 시그마 본인의 능력을 활용할 수도 있고, 많은 직원들의 환심을 사기도 좋을 테니까. 조금 고민하던 시그마는 흥분된 듯, 보이지 않는 콧김을 내뿜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사원들이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요?”

 

그리고 약 30분 뒤, 어째선지 침울한 표정으로 돌아온 시그마를 서윤이 달래주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게...그러니까...처음엔 일도 잘 도와줬고 다들 좋아했었거든? 그런데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들 들어가서 쉬어!’라고 하자마자 다들 울상이 되더니.. 자기들이 알아서 할 수 있다면서 나를 쫓아낸 거 있지...?”

 

그 말을 듣고 서윤은 작게 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분들은 실장님의 쉬라는 말을 해고처럼 받아들였나 봐요.”

 

“해고...?”

 

“그 왜, 사장님도 직원들을 해고하실 때, ‘이제 들어가서 쉬게’ 같은 말을 곧잘 하시곤 하거든요. 아마 그분들이 그런 의미라고 착각하셨나 봐요.”

 

제아무리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만들어진 부녀 관계라 할지라도, 부녀가 이렇게 비슷한 모습을 보이다니,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드는 그녀였다. 그나저나 어떤 이유에서든 사장의 딸을 그렇게 매몰차게 내쫓을 수 있는 직원들이 사뭇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불과 30분 만에 그 어여쁘던 민트색 머리가 푹 주저앉을 정도로 의기소침해진 시그마가 그녀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면 격납고는 어떨까요?”

 

“격납고...?‘

 

“그 왜, 실장님은 메카닉들이랑 잘 지내시는 편이니까 가면 뭔가 도와드릴 게 있지 않을까요?”

 

“응, 좋은 생각이야... 알았어...”

 

아까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상만사를 다 잃은 듯한 침울한 표정으로, 시그마는 격납고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악! 사장님 따님분! 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

 

격납고를 정비하고 있던 나희린은 갑작스러운 높으신 분의 행차 때문인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맞이했다. 으악이라니, 사람... 아니 홀로그램 소녀를 앞에 두고 그것이 할 말인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의 시그마에게 그런 말을 유심히 들을 정신조차 없는 듯했다.

 

“저기... 혹시 내가 뭔가 도와줄 일 없을까...?

 

“도와주실 일이요? 딱히 없기는 한데... 아, 그러면 점검 전에 메카닉들 상태나 잠깐 봐주실 수 있으세요?”

 

확실히 코핀 컴퍼니의 함선 건조를 도맡아 담당하는 그녀답게 이는 매우 영리한 조치였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메카닉들과 이야기하며 우울해 보이던 시그마의 기분도 풀 수 있을 테니까.

 

실제로 시그마도 이 정도는 자기도 할 수 있겠다 싶었는지, 다시 밝은 표정이 되어 양손으로 나희린의 손을 꽉 잡고는 그녀에게 외쳤다.

 

“응, 나한테 맡겨!!”

 

그리고 그렇게 그녀는 메카닉들의 점검을 시작했다.

 

 

 

“어디 보자... 다음은 야누스인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약 절반가량의 점검을 끝낸 시그마는 다음 대상인 야누스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 커다란 기체를 이리저리 흔들며 그녀를 반겼다.

 

“안녕~야누스. 잘 지냈어?”

 

“오랜만입니다, 시그마. 저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다른 메카닉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잠시 평범한 대화를 나눈 뒤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 이제 곧 점검을 할 건데, 혹시 불편한 점은 없어?”

 

“다들 잘해주시는데 불편한 게 있을 리가요.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응?”

 

지금까지의 메카닉들과는 다르게 말끝을 흐리는 야누스를 보며 그녀는 의문을 표했다.

 

“요 며칠째 점검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계속 묶여있으니 기체가 낡다 못해 고물덩어리가 되는 기분입니다. 이대로면 점검이 끝나도 제대로 정의 집행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그에게서 들려온 것은 의외의 대답이었다. 기체가 묶여있으니 답답하다? 지금까지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메카닉들도 엄연히 자기만의 자아가 있는 존재들인데, 그들을 며칠째 묶어놨으니 그런 불평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처사였다.

 

“어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해줄까...?”

 

“굳이 무언가를 해주시려고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냥 얘기해본 것뿐이니까요.”

 

그러나 그의 이런 만류에도 그녀는 잠시 동안 손에 턱을 괴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건 어때? 메카닉들을 잠깐 동안 전부 풀어주는 거야! 그러면 다들 더 쌩쌩한 상태로 점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오오! 그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군요!”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그녀의 아이디어였지만, 안타깝게도 코핀 컴퍼니의 메카닉들에게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여과할만한 기능은 아직 장착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허공에서 검지를 몇 번 휘적거리고는, 다른 기계들에게 힘차게 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지금까지 묶여 있느라 힘들었지? 점검 전까지만 마음껏 돌아다니는 거야!!”

 

이후 한 작은 소녀에 의해 일제히 자유를 얻은 코핀 컴퍼니의 메카닉들은 격납고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되었다.

 

 

“실장님~이제 일은 끝나셨나...어...어라...?”

 

시그마에게 자리를 맡기고 잠시 휴식을 즐기다 온 나희린의 눈앞에 놓인 광경은 그녀가 이전까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니 하지 않았던 광경이었다.

 

“자기, 오늘따라 엔진이 섹시하게 잘 빠졌는데?”

 

“어머~자기도 참~”

 

“이야~광란의 파티다!!!”

 

점검을 목적으로 묶어놨던 메카닉들이 일제히 격납고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몇몇은 땅을 쿵쿵 울리며 걸어 다니고 있고, 몇몇은 천장 부근을 날아다니며 자기들끼리 누가 더 빠른지를 경쟁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희린의 눈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약간의 현실 부정 상태에 빠져있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온전히 현실을 파악하고는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소리를 질렀다.

 

“꺄악!!!!!!!!!”


 그녀의 마지막 단말마가 격납고 안에 울려 퍼졌다.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여차저차 사태는 진정되었고 모든 기체들이 자기 자리를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간만의 자유에 흥분감을 느낀 듯, 그들은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댔지만, 격납고의 구석에 웅크린 채 앉아있는 시그마에게 이 소리는 그다지 잘 전달되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실수한 걸까...?”

 

기계는 감정이 없다고 한다. 기계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왜 그녀의 눈은 눈물이 한껏 고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그녀는 누군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는 홀로 중얼거릴 뿐이었다.

 

“슬퍼 보이는구만, 시그마. 무슨 일이라도 있나?”

 

들려오는 크고 우렁찬 익숙한 목소리. 시그마는 이에 고개를 돌려 어느샌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타이탄을 쳐다보았다.

 

“할아버지....?”

 

“하하하! 이틀만이구만! 그동안 잘 지냈나?”

 

“할아버지!!!!!”

 

시그마는 울먹거리며 타이탄에게 달려들어 그를 꽉 껴안았다. 실제로는 둘의 크기 차이 때문에 시그마가 타이탄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형태이긴 했지만, 타이탄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는 듯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머리를 살포시 쓰다듬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그게 말이지...”

 

시그마는 그에게 그간의 사정을 모두 털어놓았다. 관리자가 사내 인기투표에서 우승하면 상을 준다고 한 것부터 시작해서, 그녀가 직원들을 도와준 일, 그리고 그 일들을 망친 모습까지 전부. 이는 타이탄에 대한 시그마의 신뢰 표시였고, 타이탄은 “음음”하고 중얼거리며 그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타이탄은 시그마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흠, 하루 종일 고생이 많았겠구만, 시그마.”

 

“할아버지... 내가 잘못 한 걸까...? 하는 일마다 전부 실패하고... 그냥 내가 가만히 있었어야 했을까?”

 

그런 그녀를 보며 잠시 마음이 약해지는 타이탄이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 잡고 그는 말을 이었다.

 

“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구만!”

 

“정말.....?”

 

믿고 있던 타이탄마저 그렇게 말을 하니 더더욱 자존감이 떨어지는 그녀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말은 끝까지 듣게나! 시그마, 자네는 오늘 왜 사람들을 도와준 건가?”

 

“아빠가 1등 하면 상 준다고 해서...”

 

“바로 그게 잘못된 걸세! 사람을 도와줄 때는 ‘무엇을 했는지’보다 ‘왜 그것을 하려 했는지’가 중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왜 그것을 하려 했는지...?”

 

시그마가 의아해하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쳐다봤다.

 

“자네는 오늘 자네의 감정에만 휘둘려 다른 사람들의 감정은 배려하지 않았네! 그렇기에 그 욕심들이 과한 행동을 불러온 것이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상이 목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람들을 도와주게! 그래야만 비로소 자네의 마음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을 테니까! 사장도 그런 자네의 모습을 원하고 그런 약속을 건 것이 아니겠는가!”

 

“아빠가...?”

 

“그렇다네! 그도 아마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겠지. 상만 바라고 있어서는 절대 1등을 할 수 없다는 걸 말이야!”

 

시그마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는 오늘 그녀 자신이 한 행동들을 되돌아봤다. 

그녀는 상을 타겠다는 욕심 때문에 너무나 급했던 나머지 사원들을 배려하지 않는 듯한 말을 했고, 우울해 보이는 자신을 배려해 준 나희린을 배신하기도 했다. 타이탄의 말대로 그녀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이를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하는 그녀였다.

 

“남을 돕고자 할 때는 자기보단 남부터...”

 

이내 그녀는 이런 말을 중얼거리더니, 깨달음을 얻은 듯 타이탄에게 소리를 지르며 말을 했다.

 

“나 이제 알았어, 할아버지! 남을 도와줄 때는 돕고자 하는 마음! 돕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알려줘서 고마워, 할아버지!”

 

말을 마치자마자 타이탄의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그녀는 격납고 입구로 뛰쳐나갔다. 타이탄은 그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이후 그녀는 나희린과 사원들을 찾아가 미안함을 전하고 일을 더 본격적으로 도와주었다나 뭐라나.

 

 

 

 

그리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대망의 인기투표 날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부터 코핀 컴퍼니의 일반 사원부터 시작해 솔저, 메카닉, 카운터들이 각자 차례차례 줄을 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그 광경은 지나가는 사람이 보기에 참으로 어이없는 광경이었겠지만, 그들은 이례 없이 진지했다. 

 

모든 투표와 개표 과정이 끝나고 이제는 결과 발표만이 남은 상황, 결과는 회사 광장에 있는 벽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게시하기로 했고, 지금 막 개표 결과가 벽에 걸렸다.

 

“50위... 49위...48위...”

 

많은 직원들이 그곳에 몰려 자신의 이름을 찾으려 하였고, 시그마도 그중 하나였다. 아직 남아있는 약간의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그녀는 위에서부터 자기 이름을 찾기보단 아래에서부터 자기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25위...24위...”

 

그녀가 순위에 절반 즈음에 도달했을 때부터, 주위에선 탄성과 곡소리가 섞여 흘러나왔다.

 

“내가...10위라고...?”

 

“대장, 대장. 나는 8위야. 후훗.”

 

그러나 그녀에게 그 소리들은 들리지 않았다.

 

“3위...2위...”

 

그녀는 차근차근 올라가며 자신의 이름을 찾았고

 

“1위...시그마??”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자마자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를 질렀다.

 

“잘 됐구만, 시그마.”

 

옆에 서있던 타이탄이 그녀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다 할아버지 덕분이야!”

 

“하하! 내가 뭘 했다고. 그나저나 선물 받으러 가지 않아도 괜찮겠나?”

 

“맞다! 선물! 고마워, 할아버지. 나중에 봐!”

 

이렇게 말하며 시그마는 곧장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감님은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죠?”

 

그녀를 지켜보는 타이탄에게 야누스가 말을 걸었다.

 

“하하! 당연한 거 아니겠나! 자, 우린 우리끼리 축배나 들러가세!”

 

사실 그 결과는 어찌 보면 뻔한 결과였다. 평소 그녀와 가깝게 지냈던 메카닉들부터 시작해, 어제 그녀에게 도움을 입은 직원들과, 그리고 몇몇 그녀의 광팬들의 표가 그녀에게 몰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어제 굳이 그런 일들을 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상위권을 차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어제 동분서주 뛰어다녔던 그녀를 생각하며 타이탄은 홀로 웃음을 지었다.

 

 

 

“아빠!!!! 나 1등 했으니까 빨리 선물 줘!!!!!”

 

벌써 이틀간 세 번째, 그녀가 문을 커다란 굉음과 함께 열고 들어왔다. 이를 보며 언젠간 그녀에게 노크를 가르쳐야겠다 다짐하는 머신갑이었지만, 지금은 우선 그녀를 축하해 줄 때였다.

 

“아이구, 우리 딸, 장하다 장해! 사원들로부터 아주 칭찬이 가득해요!”

 

“정말? 헤헤, 뭐라 할까? 막 마음을 다 해서 도와주니까 다른 사람들한테도 내 마음이 전해진 거 같더라고!!”

 

시그마는 매우 신난 듯, 팔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사장실을 들쑤시고 다녔다.

 

“아빠, 그런데 선물은?“

 

“책상 위에 올려놨으니 확인해보렴.”

 

그 말을 듣고 사장실의 책상 위로 눈을 돌려보니, 조그마한 상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이것은 무엇일까. 시그마는 궁금증을 품은 채 책상으로 다가가 살포시 상자를 들어보았다. 시그마의 두 손에 딱 담길 듯한, 아주 작은, 그럼에도 무언가 따스함이 느껴지는 상자였다.

 

“열어보렴.”

 

머신갑의 말을 듣고 상자를 열자 그녀의 눈 안에 들어왔던 것은 전원이 꺼진 작은 로봇 한 기였다.

 

“아빠, 이게 뭐야?”

 

“전원을 켜보렴.”

 

아직까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시그마는 곧이곧대로 로봇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잠시 화면이 몇 번 깜빡이더니, 로봇에 불이 들어왔고, 얼마 안 있어 그 로봇이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야? 여긴 어디야? 어두침침한 게 내 취향은 아니네. 내가 옛날에 청소하던 곳이 생각날 정도야.”

 

익숙한 목소리, 정확히는 ‘익숙했던 목소리’가 그 작은 기계에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를 못 들은 지 도대체 몇 년이 지났을까. 몇 백 년? 혹은 몇 천 년? 그녀는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은 있었을까. 그 기계의 음성은 시그마의 아주 오래전에 멈춰버린, 시그마의 자그마한 기억 회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R4...?”

 

구 관리국이 멸망하고 그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던 유일한 로봇. 그녀에게 가족을 알려주고, 꿈을 가르쳐준 목소리가 그 작은 몸체에서 들리자 시그마는 그녀의 귀를 의심했다.

 

“뭐야, 너 혹시 시그마니? 야~ 너 정말 많이 변했다. 그때는 말도 없었고... 또 뭐냐, 그... 좀 네모났던 거 같은데? 그나저나... 웁웁...!”

 

“아빠...이게 어떻게 된 거야...?”

 

손에 든 그 기계를 가슴팍에 꽉 품은 채, 울먹거리며 그녀는 머신갑을 향해 질문을 했다.

 

“음,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아빠가 이면 세계에서 그 물건의 코어를 발견했고, 그것이 네가 옛날에 보여준 기억회로 속의 로봇인 걸 알아챈 아빠가 손을 좀 썼지! 그 왜 이 아빠가 옛날부터 기계 조립은 좀 했거든! 하하하...?”

 

그러나 그의 말은 그녀에게 제대로 닿지는 않은 것 같다. 그녀는 그저 주저앉아 그 로봇을 꽉 끌어안고, 그리고 울 뿐이었다.

기계는 감정이 없다고 한다. 기계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금 눈물을 흘린다. 그렇다면 그녀를 기계라 할 수 있을까. 사람의 마음을 지닌,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지닌 그녀야말로, 인간보다도 더욱 인간다운 진정한 인간이 아닐까.

 

“고마워...고마워...아빠... 고마워... R4...”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는 그녀를 머신갑은 가만히 바라보다, 등을 몇 번 두드려주고는 조용히 사장실 밖으로 나갔다. 아마 그도 그들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바란 것이리라. 그렇게 한동안 사장실에서는 눈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조금 장난이 짓궂으셨군요.”

 

코핀 컴퍼니의 옥상, 밤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이수연이 일갈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군.

 

“굳이 이 시기에 그런 대회를 개최한 것, 그녀가 1등을 한 것, 그리고 1등 상품으로 저 선물을 준비한 것까지. 모두 계산대로 아니었습니까?”

 

“설마,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네.”

 

그녀의 넋두리에 관리자는 입가에 조그맣게 웃음을 띠고는 대답했다. 

그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였고, 이수연은 그런 그를 그저 무표정으로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저...”

 

그러나 웬일인지, 그는 말꼬리를 흐리며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이수연은 이에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봤다.

 

“딸이 잘 자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해두지.”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 이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어째서였을까, 평소 그가 피우던 매캐한 담배 연기가 오늘만큼은 그녀의 눈에 조금 달콤하게 비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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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두 번째로 쓸 글은 가으니 카케로 생각 중이었는데, 어릴 적부터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을 배웠기 때문에 인기투표 1위한 시그마로 갈아타서 써봤음

분량 조절 실패해서 연재로 돌릴까도 생각해봤는데 그러면 중간에 찍 쌀 거 같애서 그냥 장문으로 때움

장문충 ㅈㅅ ㅎㅎ;

부족한 글 읽어줘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