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기계병기와 군인은 카운터가 오기 전까지 시간을 끄는 역할이라고.


그러면 그 시간을 끌고 난 후엔?

카운터가 도착한 후엔?

모든 공적은 카운터에게 돌아간다.

그 잘나신 카운터가 도착하기 전 흩뿌린 핏방울이 몇 리터가 되건, 

터져나간 기갑병기가 몇대가 되건 

세간엔 '오늘도 시민의 평화를 수호한 카운터' 로 알려질 뿐이다.

좆까. 전쟁은 군인이 하는 거야.


좆같지만, 좆같을 틈도 없다. 우리 솔져는 그저 오늘도 살아남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살아남은 전우와 함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전우를 기리며 술잔을 기울일 뿐이다.


16살난 내 아들놈도 철부지시절엔 아빠같은 군인이 되고 싶다고 하더니, 

커 갈수록 맨날 너덜너덜해져서 돌아오는 아버지를 보며 군인보다는 카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 녀석도 티비만 틀면 흘러나오는 카운터 찬가에 빠진, 히어로가 되고 싶은 애송이일 뿐이다.

하긴, 이 아빠도 네가 카운터 능력만 각성할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겠다.

총알 한방에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는 솔져보다, 지원금 빵빵하고 몸 튼튼한 카운터가 백배 낫지.


카운터 자식들을 좋게 보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우리 소대 막내가 새파랗게 어린, 

기껏해야 여고생정도로밖에 안 보이던 카운터한테 닥쳐 등신아 소리를 들었다고 말 했을때,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막내 녀석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 했지만, 운 좋게 얻은 힘으로

뭐라도 되는 것 마냥 꺼드럭내는 게 보기 좋은 일은 아니지 않은가. 

이 쪽도 나름 항상 목숨을 걸고 침식체들과 싸우는 형편인데, 무능력자 운운하며 무시하지 말고

존중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녀석도 그런 부류였지. 첫 출전인 주제에 카운터 능력하나 믿고

일반인들은 뒤로 빠지라고 하는.


.....

........

"...씨!! 정신 차려요!!"

....

.......

건방진 녀석, 남 편한 꼴을 못보는 구만.


"침식체 처리했어요. 제발! 눈떠요 아저씨, 제가 제 때 능력만 쓸 수 있었다면...바보같이, 바보같이..!"


카운터를 싫어한다고는 했지만, 카운터를 하고 있는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능력이 안써져서 패닉상태인 카운터를 나도 모르게 밀어내고 침식체의 앞발을 대신 막았겠지.

덕분에 이 모양 이꼴이다.


거기서 아들이 생각날게 뭐람.


생각보다 아프진 않다. 그저 멍해질 뿐이다. 아니 아파야할 부위가 사라진 것에 가까운가.

하반신에 감각이 없다.

안타깝게도, 오늘 카운터를 기다리며 흩뿌려질 피는 나의 것인 모양이었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덩그러니 누워있는 마이크, 랄프-아 저녀석은 머리만 남아있네-,

제임스.. 아무래도 나를 기려줄 전우들 조차 몇 안남았을 것 같군. 그건 좀 외로운데.


눈이 감긴다.


엄마, 보고싶어. 금방 보러 가요. 너무 빨리 왔다고 혼내지는 말아줘.


"...저씨! 지금 의사가 온대요. 저 구해 주셨잖아요. 죽으면 안돼요!"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알아. 아니 누구든 지금의 날 보면 알거야.

내 하체가 저기 보이잖아. 하체운동 열심히 한게 보이는 우람한 다리가. 크큭..

유언이라는 걸 남길 때가 온 것 같다. 손자 손녀 다 모인 자리에서 편안하게 하고 싶었던 내 인생의

클라이맥스지만, 한낱 군인에게는 과분한 꿈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꼬맹아. 내 아들.. 내 아들에게.."

내 목소리라고 하기에 믿을 수 없을만큼 맥아리 없는 목소리였지만 힘겹게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아빠는 솔져였지만.. 카운터를 지킨 히어로였다고.. 전해주면.. 고맙..."

최소한 말은 끝 마치고 싶었는데 그럴 힘이 없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다.

시끄럽던 애송이 카운터의 울음소리도 멀어져 간다.

인생의 마지막이란 거, 생각보다 별             거                                  없   




"속보입니다. 금일 오후 5시경 프론트 베이 SC-21 지구의 2종침식체의 습격을 15살 카운터가

훌륭한 활약으로 막아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