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푸흐으으으으으읍!


"켁, 켈록, 케헥 켁"


미래전략실. 늘상 바쁜 코핀 컴퍼니의 사장도 이곳에서만큼은 편하게 본 모습인 채로 휴식을 취하곤 한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는 언제나 철두철미하고 냉철하게 수익을 계산할 줄 아는 유능한 부사장, 이수연의 모습이 있다.


"윽, 아줌마 뭐하는 거야 더럽게....내가 아빠한테 청혼하는 중요한 대목이란 말이야."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유능한 부사장은 목구멍을 넘어가던 주스를 역류시킨 채 열심히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콧구멍 두쪽에서 오렌지 주스가 흐르는 장면은 실로 진귀한 장면이었지만, 사장은 애써 모른 척 부사장의 등을 두드려주며 폭탄 발언과 함께 날아든 그의 딸에게 묻는다.


"우리 딸, 아빠랑 결혼하고 싶어요?"


"응 응! 나 아빠랑 결혼할거야! 그러니까 아빠는 드레스로 갈아입어!"


드레스? 사장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 싶어 멀뚱히 딸을 바라보지만, 만면에 가득한 미소로 자기 아버지에게 입힐 드레스를 홀로그램으로 구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결코 잘못 들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아니 그....드레스는 시그마가 입는 게 좋지 않을까? 아빠는 남잔데?"


시그마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말한다.


"아니! 아빠는 드레스로 갈아입고 여기서 기다리는거야! 내가 잔뜩 모험하고 돌아와서 다시 청혼할 때까지! 그치 산초?"


삐비비빅.


사장은 그제서야 시그마의 테라브레인 모듈 위에 얹어진 자그마한 새 모양을 한 메카닉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인공지능 코어를 제외하면 간단한 자재 몇 개를 얼기설기 그러모아 만든 듯한 허접한 모습에 사장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요즘 격납고에도 안 들르고 무얼 하나 했더니, 새 친구를 만드느라 그랬나보다.


"그 친구 이름이 산초니?"


"응! 그리고 이 몸은! 빠밤! 위대한 기사 돈 키호테 님이시다!"


홀로그램으로 만든 창을 슉슉 내지르는 모습은 영락없는 꼬마아이나 다름없다. 어디서 찾아 읽었는지는 몰라도, 이번엔 돈키호테 이야기에 푹 빠진 모양이다. 맞다, 기사의 모험에는 귀부인이 필수적인 법이지. 사장은 장난스럽게 킬킬 웃으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오, 나의 시그마 기사님. 당연히 기나긴 여행 끝네 제게 모험담 이야기를 해 주시겠지요?"


"히히, 당연하지 아빠! 내가 깜짝 놀랄만한 재밌는 이야기 잔뜩 만들고 올거니까 여기서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알았지?"


쀼빅삐비빅.


산초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장에게 대답을 강요한다.


"당연하지. 아빠는 절대 우리 딸 버리고 어디 안 가."


썩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는지, 시그마의 홀로그램이 미래 전략실을 방방 뛰면서 양껏 즐거움을 표출했다.


"역시 우리 아빠가 최고야! 가자, 산초!"


그렇게 폭풍이 지나갔다. 정말 말릴 수가 없다니까. 사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제야 겨우 몸을 추스른 부사장에게 물잔을 내밀었다.


"살다보니 부사장이 사레가 들리는 걸 또 다 보는군."


"그런 소리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네요. 소꿉장난도 좋지만 이제 그만 교육에 신경을 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빠랑 결혼이라니 어이가 없군요."


"뭐 어린 딸이 아빠랑 결혼한다는 거야 흔한 소리 아닌가?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나 부사장. 나이만 따지고 보면 시그마만한 딸 하나쯤" "뒤지고 싶어요?"


"아니, 오늘도 부사장 얼굴은 파릇파릇하니 생기가 넘쳐나는군 그래..."


결코 목에 칼이 들어온 상태에서 뱉는 아부성 대사가 아니었다는 사실만큼은 전해둔다.


2.


"가자 로시난테! 이랴 이랴!"


자기 본체를 말이라도 되는 것마냥 찰싹찰싹 치면서, 시그마는 회사를 질주한다. 오늘이 회사 휴일이기에 복도가 한산한 것만이 위안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어머, 사장님 따님 아니세요?"


물론, 한산하다는 것이 비어있다는 뜻은 아니다. 알트 소대원 4명은 반가운 표정으로 시그마를 맞이해주었다. 초연의 그을음을 미처 지우지 못한 정복에 장비 일체를 소지한 것으로 보아, 이제 막 임무를 마치고 복귀한 참이리라.


"서윤 언니 안...아니지. 이런 외딴 마을까지 침략하는 악당들이 있다니! 나 명예높은 기사 돈 키호테가 혼쭐을 내 주마!"


쀼빅! 쀼빅뷰비비빅!


"어머, 기사 놀이 하는 중이구나? 좋-아, 우리 극악무도한 변절자 서윤 일당이 상대해주마! 우리 쪽에는 무려 정령님도 있다 이 말씀!"


서윤은 생글생글 눈웃음을 지으며 넉살 좋게 시그마의 세계관에 뛰어들었다. 이렇게 그때 그때 점수를 따 놓아야 나중이 편하다는 사실을, 언더그라운드 생활에 잔뼈가 굵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무려 그 사장님이 딸처럼 생각하는 존재 아닌가? 이렇게 놀아주면 나중에 사장님한테 좋은 소리 한두마디 정돈 해 주겠지.


"뭐야, 대장. 피곤하니까 보고만 빨리 올리고 쉬자더니 왜 그래?"


"눈치 좀 챙겨 돼지야. 모르겠으면 가만히나 있던지."


"너 말 다했냐 나무 빨래판 자식아!" "지금 누가 아스팔트 껌딱지라는거야!""얘들아, 싸우지 마아..."


탁! 탁!


개머리판이 바닥을 치는 소리. 세 사람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다. 만면에 미소를 띤 알트 소대장 서윤 쪽을 향해서. 두려울 정도로 산뜻한 미소였다.


"우리 극악무도한 일당들은 싸움을 자기 편이랑 하나 보지?"


식은 땀이 삐질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그마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와, 와 하 하 하! 더, 덤벼라! 서윤 일단의 행동대장 유진 님이 다 때려부숴주마!"

"가라 돼지. 짖어서 네 순수를 증명해라!"

"어, 그, 그러니까....처, 철갑탄 맛 한번 매콤하게 보여줄까?"


차마 봐주기 힘든 연기에 서윤은 고개를 내저었지만, 어린 시그마에게는 무척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녀는 다시금 공중을 방방 뛰면서 소리쳤다.


"이 돈 키호테는 4:1이어도 도망치지 않는다! 산초, 내 창을 가져와! 전부 무찔러줄거니까! 아하하하하!"


삑! 삐비비빅!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산초는 그저 고철 날개를 펄럭이며 시그마에게 맞장구를 쳤다. 애초에 산초에게 배정된 역할은 맞장구 밖에 없었다. 무기 같은 건 시그마가 홀로그램으로 멋대로 만들어 꺼내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네 명과 한 대와 한 마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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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길어서 한번 잘랐습니다. 어린아이 캐릭터가 생각보다 정말 다루기 힘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