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들판 위 세워진 아주 작고 한적한 시골마을.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은 서로 일을 도우며, 사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평온한 일상을 만끽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찾아온 침식 재앙. 

푸르른 청록빛을 띠던 들판은 물밀듯 몰려오는 우중충한 검은 재앙에 그 빛깔을 잃어갔다. 그 넓디넓은 들판을 말 그대로 침식시킬 정도의 엄청난 물량.

놈들은 들판을 덮으며 그 조그마한 마을을 향해 달려왔고, 마을 사람들은 혼이라도 나간 마냥 주저앉아 하늘에 기대어 자신의 운명을 점치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10가닥의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렸던 나에게 그들에게 저항할 능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의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다른 사람들처럼 넋을 놓은 채 다가올 운명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압도적인 무력감과 절망적인 공포감. 몸을 짓누르는 그 압력에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을 때, 무거운 몸을 일으킨 사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나의 할아버지였다.

 

“정신 차리거라, 제이크! 지금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건 우리뿐이다!”

 

“할아버지...”

 

그가 나의 양 어깨를 꽉 지고 나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미와 부녀자들을 데리고 마을의 끝자락으로 피난해있거라! 정부에 지원을 요청했으니, 금방 도착할 거야! 그동안 우리가 시간을 끌고 있으마!”

 

확실히 몇 십 년간의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군인답게 그는 냉철한 상황 판단을 내렸다.

자신들이 최대한 시간을 끌고 지원군을 기다린다. 정말이지 지금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전략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미 뜻을 굽힌 것인지, 그의 뒤에는 지금까지 그와 같이 전장에 섰던 노병들이 무기를 들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퇴역해도 군인은 군인, 그들은 아마 끝까지 그들의 의무를 다 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그들의 작전에는 한 가지 커다란 맹점이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가면 죽어...!!”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봇물 터지듯 떠밀려 나오는 눈물 탓에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자리를 떠나려는 할아버지의 옷소매를 와락 끌어당겼다.

5살짜리 꼬마 아이를 데려다 놓아도 그들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할아버지를 사지로 내몰 수 없었다.

 

“제이크.”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이며 그는 나를 바라봤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사람들을 지키는 게 군인이란다.”

 

그리고 그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커서 이 할아비처럼 멋진 군인이 되려무나.”

 

그 말을 전하는 그의 눈망울에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마 그도 알고 있었겠지. 

자신이 가면 죽는다는걸.

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다시는 못 본다는걸.

그럼에도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떠나기 전 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에 이르러선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찌 됐든, 그것이 살아생전의 그를 봤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후 나는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어머니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마을 회관으로 도망쳤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내 생각의 화살표는 단 두 방향으로만 움직였다. 할아버지에 대한 걱정과,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 다른 누군가는 저 괴물들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저 이런 위급 사태에도 그 잘난 모습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단 한 사람에 대한 원망이었다.

 

“아버지...”

 

나는 나지막히 그 이름을 읊조렸다.

 

 

 

 

 

 

 

우당탕-!

 

물건들이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가 좁디좁은 방에 소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그 탓에 바닥에 대자로 뻗어있던 제이크는 붙어있던 눈곱을 떼며 잠에서 깨어났다.

 

“여긴 어디지...?”

 

그는 곧바로 일어나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벌레라도 나올 법한 허름한 탕비실. 본인이 자다가 굴러떨어진 듯한 소파. 여기저기 엎질러진 물건들.

이런저런 물건들을 보니 흩어졌던 기억의 퍼즐들이 차례차례 맞혀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 여기는 이전에 같이 임무를 수행했던 코핀 컴퍼니의 탕비실이었다. 

 

“젠장할... 개꿈이었구만...”

 

지금까지 그가 보던 광경이 꿈임을 눈치채고 그는 좀스럽게 머리를 긁적였다.

 

 

 

 

**

 

지난번 리플레이서 사태가 마무리된 직후, 코핀 컴퍼니는 단번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래가 창창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여러 국가 인사나 단체들이 그들에게 주목했고, 제이크가 속해있는 델타 세븐도 그들에게 눈총을 쏟는 집단 중 하나였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그들과 약간의 연결 다리라도 짓고 싶은 심정으로 손을 내밀었지만, 그들은 단호했다. 그들은 모든 제안을 거절했고,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며 위태로운 길 위를 홀로 걸어갔다.

그러나 단 한 곳, 델타 세븐에게만큼은 조금 다른 태도를 취했다.

 

“솔직히 말해, 저희의 제안을 받아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거친 잠버릇에 뻗친 머리를 가다듬으며, 사장실에 도착한 제이크가 눈앞의 기계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들에겐 빚진 게 있으니 말이야.”

 

언제나 그러했듯 능청스러운 말투. 제이크는 그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본인들의 이익과 생존만을 생각하는 위선적인 용병들의 모습이, 그에게 투영되어 비쳤기 때문이다.

그도 결국은 용병들을 관리하는 태스크 포스 회사의 사장, 기계 뒤에 숨어 진실을 감추려 해도 그 본질적인 향취는 숨길 수 없겠지.

 

“그럼 오늘은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사장님?”

 

그럼에도 그는 굳은 표정을 풀고 말을 이었다.

 

코핀 컴퍼니가 그들에게 내건 조건은 아래와 같았다.

‘정기적으로 델타 세븐의 요원 한 명을 코핀 컴퍼니의 일일 사원으로 고용하도록 해줄 것’

무슨 허울 좋은 헛소린가 싶기도 했지만, 중장님은 왠지 모르게 고민도 하지 않고 이를 승낙하셨다.

그리고 그렇게 그 선발 주자로서, 그가 오늘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정확히는 어젯밤에 도착해서 회사 탕비실에서 눈을 붙이긴 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보고, 모두 기억해 오게.”

그는 눈을 감고, 떠날 때 마리아 중장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상기해냈다.

그녀가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그저 그녀의 말에 따르면 될 뿐이었다.

 

“흐음... 원래는 펜릴 소대와 같이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 했었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전에 했던 그의 질문에 머신갑은 모니터를 뒤적이며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그게 말이지, 오늘 소대원 3명이 전부 땡땡이를 쳐버렸지 뭔가?”

 

“네?!”

 

생각지도 못한 헛소리에 제이크는 그의 귀를 의심했다. 

회사의 사장도 무시하고 멋대로 땡땡이를 치다니, 이 회사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

 

“그래도 걱정 말게, 괜찮은 친구들을 준비해놨으니.”

 

이후 모니터를 몇 번 더 휘적거리고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다이브를 해서 이터니움을 채굴하려고 하네. 자네는 그곳에 따라가 그 친구들을 지켜주게나.”

 

하, 그는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고결한 척, 특별한 척을 하며 별별 유난을 다 떨었지만, 그들도 다른 용병 회사들과 그다지 다를 게 없었다. 비열하고 더러운, 자신들의 이익이 전부인 인간들.

자신을 불러놓고 기껏 한다는 것이 이터니움 채굴이라니?

그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던 코핀 컴퍼니에 대한 그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 내렸다.

그저 몇몇 소대원들의 능력이 특출날 뿐인, 그게 다인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장님, 죄송하지만 기대하시는 정보는 여기에 없을 것 같네요.

그렇게 생각하며 그가 격납고로 출발하려 했을 때였다.

 

“잠깐만”

 

“네?”

 

“임무만 제대로 수행해 준다면, 자네가 무엇을 하든 우린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네. 잘해보게나.”

 

말을 마치고 그 기계가 자애로운 미소를 내비쳤지만, 제이크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그 말을 들은 순간 온몸에 닭살이 올라왔다.

이 기계는, 아니 이 기계 뒤에 숨어있는 인간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일까.

아무리 쳐다봐도 그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능구렁이 한 마리가 주리를 틀어 자리를 잡고 있는 것만큼은 명확한 사실이었다.


“명심하죠.”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말하고 그는 사장실을 떠나갔다.

 

 

 

 

 

 

잠시 뒤, 그는 목적지였던 격납고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를 반겼던 건, 도무지 일개 중소기업의 시설이라고는 볼 수 없을 법한 장치들의 향연이었다.

각종 메카닉들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고, 그 옆으론 거대한 함선들이 여럿 줄지어 서있었다. 엔터프라이즈 급의 함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구시대의 낡아빠진 유물도 아니었다.

일개 소규모 회사가 이 정도의 시설을 즐비할 수가 있던가? 그는 멍하니 그 장치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곳곳에서 울리는 기계들의 정비 소리와 기형적인 쇳소리들 탓이었다. 

그 요란한 괴음들의 향연에, 머리가 지끈거렸던 그는 서둘러 오늘 자신이 타고 갈 함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함선 ‘코핀’

 

그가 오늘 타고 갈 함선의 이름이었다.

함선을 발견하고 함선의 입구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 그는 그를 기다리던 세 인물을 발견했다.

 

“이봐, 형씨. 형씨가 오늘 같이 갈 사람인가 봐? 잘 부탁한다고, 흐하핫!”

 

“바보같이 웃지 마, 멍청아.”

 

“...”

 

그곳에 서있던 건 노란 머리의 글래머한 여성과, 격투기라도 할 법한 온몸이 우락부락한 대머리 흑인 남성, 그리고 꼬마 하나였다.

 

꼬마? 그녀를 보고 제이크는 그의 눈을 의심했다. 이런 곳에 꼬마가 있을 리가.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눈은 잘못되지 않았다.

 

퀴퀴한 주변과는 선명히 대비되는 새하얀 백색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한없이 붉지만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로 자신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는 그녀는 10살 남짓한 작은 여자아이였다.

 

그녀를 보며 제이크는 작게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용병 놈들...”

 

그렇게 그와 제3 정찰 소대, 에디 소대의 다이브가 시작되었다.


---------------------------------------------------------

분량이 너무 길어질 거 같길래 그냥 연재로 돌리고 처음으로 연재글 써보기로 했슴

너무 일상물만 써서 다른쪽에도 발 좀 담가보려고 써본건데 재미없을 수도 있으니까 양해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