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 아이는 어떻게 됐게...?”

 

“...어떻게 됐는가...?”

 

꿀꺽하고, 침샘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요란스레 퍼졌다. 조심스레 소리의 발원지를 따라가보니 그곳에는 타오르는 양초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네 사람이 있었다.

긴장한 듯 굳은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류드밀라와 오싹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알렉스, 그리고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 두터운 갑옷을 입은 예고르와 발레리가 바로 그들이었다. 

모든 불빛이 차단된, 촛불의 아지랑이만이 일렁이는 장소에서 그들은 무슨 담소를 나누고 있는 것일까. 그 의문은 삽시간 내에 풀리게 되었다.

 

“그림자가 되어서...자신을 구해주지 않은 용병들 앞에 피투성이로 나타났대...!”

 

“꺄아아아악!!”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카랑카랑한 하이톤의 비명 소리가 다른 이들의 고막을 울렸다. 비명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다른 이들은 알렉스의 이야기 자체보다도 그 소리에 놀라 몸을 화들짝 떨 정도였다. 

그러나 소리를 지른 이는 류드밀라가 아니었다. 소리를 지른 이는 방패를 내버려 둔 채 갑옷을 입고 있던 거한의 남성이었다. 그 커다란 몸집과 상반되는 비명 소리에, 원인 제공자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푸흡! 발레리, 내 이야기가 그렇게 무서웠어?”

 

“크흠! 아닙니다, 부전대장님. 잠깐 헛게 보여서 그렇습니다.”

 

“헛게 보이긴 뭐가 보였다는 거야? 그냥 솔직하기 얘기 못해?”

 

“시끄러워!”

 

그렇다. 그들은 지금 한창 담력 시험 겸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자리를 갖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요 며칠간 연속된 임무로 신체의 피로가 극에 달했던 예고르와 발레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오늘, 하룻밤 동안 자신들만의 조촐한 휴식을 치르기로 계획을 짰었다. 그들은 임무에서 돌아오자마자 구 관리국의 빈 방에 자리를 잡았고, 그 안에서 둘만의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진 참이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그들을 찾아다니던 알렉스와 류드밀라에 의해 그 광경이 목격됐지만, 평소 그들의 노고를 알기 때문인지 그녀들은 그들을 나무라기보단 ‘자신들도 껴도 되겠냐’며 허락을 구하고 같이 휴식을 취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지게 됐고, 때마침 분위기를 탄 알렉스의 제안으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의 광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발레리의 과장된 행동을 비웃는 이들 사이에서도 한구석에서 제대로 웃음을 짓지 못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류드밀라였다.

그녀는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하.하”와 같은 기계적인 웃음만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눈치가 빠른 알렉스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어머, 류드밀라. 표정이 왜 이렇게 굳어있어?”

 

“응?”

 

“설마... 무서운 건 아니지?”

 

“그, 그럴 리가 없지 않나! 내, 내가 고작 이런 걸로 겁을 먹을 리가!”

 

알렉스의 도발에 류드밀라는 평소보다도 강하게 항변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자신의 정당함을 주장했지만, 부하들의 눈에는 그녀 또한 발레리와 똑같이 겁을 먹은 것처럼 보인다는 걸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알았어, 알았어. 우리 전대장은 겁쟁이인 걸로~.”

 

“누가 겁쟁...!”

 

“자, 그럼 다음은 예고르가 얘기해볼까?”

 

성내는 류드밀라의 말을 끊고, 알렉스는 대화의 주도권을 예고르에게 넘겨주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류드밀라가 씩씩거렸지만, 눈치가 없는 것인지 예고르는 신이 나 입을 주절거렸다.

 

“하하! 긴장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제 이야기는 조금 어마어마하니까요.”

 

“후훗. 기대되는걸? 빨리 시작해봐.”

 

“어마어마...?”

 

방금 전의 그 얘기보다도 더욱 무시무시하다는 얘긴가?

류드밀라의 뺨에는 순간 흘러내리는 땀방울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 감촉은 뺨을 지나 그녀의 온몸의 구석구석을 훑고 지나갔다. 그 촉촉한 감촉은 오늘따라 살얼음장 마냥 차가웠다.

무서운 건 둘째 치더라도, 이대로라면 자신은 부하들에게 겁쟁이 대장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전대장의 권위 상실을 상징한다. 권위를 잃은 전대장이 전대를 제대로 다스릴 수 있기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그녀는 어떻게든 그 이야기를 중단시키려 하였다.

 

“자, 잠깐만! 멈ㅊ...!”

 

그때였다. 어디선가 바람이라도 불었던 것인지, 어둠 속에서도 유일하게 그 색채를 유지하던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류드밀라는 순간 당황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그녀가 마음속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던 것은 그 자그마한 불씨 덕분이었다. 그 불이 사라진 지금, 그들이 있던 방안은 완전한 암전 상태에 놓이게 됐다. 

 

“어머? 불이 꺼졌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당장 다시 붙이겠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그녀가 혼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들려오는 알렉스와 예고르의 목소리에 그녀는 긴장했던 마음을 한시름을 놓았다.

긴장이 풀리고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는 조금 창피한 기분이 들었다. 전대장이 어두운 곳을 무서워한다니?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두운 곳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만큼은 경우가 조금 특별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차분함을 유지하라니. 그건 누구에게나 조금 과분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냥개비가 마찰면에 긁히는 소리가 방에 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불이 다시 비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앞에는 방금 전 들었던 소리의 주인들이 그대로 서있었다. 

휴 하고 안심하는 것도 잠시,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본래 있어야 할 인물이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발레리는 어디 갔지...?”

 

언제나 전장의 선두에서 방패를 들고 그들을 지켜주던 병사의 모습이, 시선에서 사라져 있었다.

 

 

 

 

 

그녀의 말을 끝으로 방에서 뛰쳐나온 그들은 곧장 사라진 발레리를 찾아 관리국의 온 복도를 휘젓고 다녔다. 그러나 이미 그의 형체는커녕 그의 흔적조차도 완전히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 류드밀라의 속은 타들어갔다.

관리국의 본부, 그것도 자신의 눈앞에서 대원이 실종됐는데도 눈치채지를 못하다니.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자괴감이 들었다. 그저 그가 잠깐 어딘가로 외출했던 것이기를 바라며 복도의 허공을 날아다니던 도중,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전대장님...”

 

“발레리!!!”

 

한쪽에 벽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져있는 발레리가,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녀는 서둘러 그에게 날아가 그를 안아들었다.

 

“괜찮은가? 정신을 차려라!”

 

“ㅈ..전대장님, 조심하십쇼...”

 

“류드밀라! 찾았어? 발레리는 어디에...!”

 

그녀의 비명을 들은 것인지, 이곳으로 다가오던 알렉스는 축 늘어져 류드밀라에게 안겨있는 발레리를 보고 그 입을 막았다.

아마 그녀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발레리는 그런 그녀와 류드밀라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전대장님, 부전대장님... ‘성야의 살인마’를 조심하십쇼...”

 

그 말을 끝으로 그나마 힘을 유지하고 있던 그의 손에서마저 힘이 빠져나갔다. 온 힘이 풀린 그의 몸은 류드밀라가 지기엔 덧없이 무거웠다.

그녀는 무릎을 굽혀 손을 바닥으로 내리고 그를 살포시 바닥에 눕힌 뒤, 조심스레 그의 맥을 짚어보았다.

희미하지만 ‘둥둥’하고 울리는 감촉이 그녀의 손에 느껴졌다. 그는 아직 살아있었다. 

 

“다행이야. 숨은 붙어있군.”

 

걱정스런 표정으로 뛰어온 알렉스에게 그녀가 말했다.

 

“...성야의 살인마라...”

 

그녀는  쓰러지기 전 그가 유언처럼 남긴 말을 떠올렸다. 성야의 살인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지금 성야의 살인마라고 했어?”

 

“알고 있는가?!”

 

알렉스는 무언가를 아는 눈치였다. 류드밀라는 그 소리에 그녀를 황급히 쳐다봤다.

 

“예전부터 관리국에 내려오는 전설이야... 성야의 밤에 나타나 직원들을 쓰러뜨리고 다닌다는 그림자형 침식체...”

 

처음 들어보는 전설이었지만, 자신이 이런 쪽에 조예가 깊지 않기에 몰랐으리라 생각하고 그녀는 조용히 알렉스의 말을 경청했다.

 

“녀석은 혼자 있는 대원들만을 노려. 그리고 그 녀석에게 당하면, 마치 인형이라도 된 듯, 혼이 나가버리게 되지.”

 

“그럼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되돌린 방법은 있는 건가?”

 

발레리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류드밀라는 평소보다도 서두르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알렉스는 조곤조곤, 차분히 말하는 것을 이어나갔다. 류드밀라는 내심 그런 그녀가 답답했다.

 

“방법은 딱 하나 있어...”

 

“그...그게 뭐지?”

 

“녀석을 쓰러뜨리는 거야. 그렇게만 하면, 잠들었던 모두가 깨어날 수 있다고 전설에 나와있어.”

 

너무나도 황당무계한 그녀는 잠시 얼이 빠진 상태로 가만히 서있었다.

그냥 해치우면 된다니, 너무 간단한 게 아닌가? 

곧바로 마음을 결심한 그녀는, 땅을 박차고 그 괴물을 잡기 위해 출발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이를 지켜보던 알렉스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뭐 하는 건가, 부전대장!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침착해, 류드밀라. 그렇게 손쉽게 해치울 수 있다면 전설이 아니었겠지. 혼자인 상태라면, 그 녀석을 이기지 못해. 제아무리 너라도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건가!”

 

흥분한 상태로 류드밀라는 언성을 드높였다. 

 

“일단은 같이 다니자. 녀석은 혼자 다니는 사람들만을 노리니까.”

 

그런 그녀를 진정시키려 알렉스는 그녀를 어루만져 주었고, 그 탓인지 그녀는 흥분을 조금 가라앉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 류드밀라는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처음 발레리가 없어졌을 때와 같은 위화감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장소에는 또다시 있어야 할 한 명이 부재중이었다.

 

예고르. 그의 이름이었다.

한밤중의 이 한산한 복도 내부에서라면 그녀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지금의 이 말다툼도,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소리가 들렸다면, 궁금해서라도 와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을 제외하면, 복도는 너무나도 한적했다. 처음부터 그들 말고는 그 누구도 없었던 것처럼.

 

“알렉스, 발레리를 업고 따라오도록.”

 

“...어디로 가려고?”

 

“예고르를 찾으러 간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까와 똑같은 광경이었다.

어둡고 조용한 복도, 널브러진 병사, 그리고 일절 존재하지 않는 싸움의 흔적.

 

류드밀라의 얼굴엔 아까보다도 더욱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침울한 표정. 지금 그녀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단 두 가지 생각이었다.

두 명씩이나 되는 대원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자괴감과, 미지의 적에 대한 의구심이었다. 발레리 때도 그렇고, 그리고 예고르의 때도 그렇고, 그 일대에는 조금의 전투의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자부하는 메이즈 전대의 일원들이다. 그들이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생각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상상으로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혹시 적이 그만큼 강했던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니 그 미지의 존재에 대해 조금 두려움이 품어지기도 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어느덧 그녀의 곁으로 다가온 알렉스가 그녀에게 질문했다. “글쎼.”라고 류드밀라가 중얼거리자, 알렉스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생각에 빠졌다. 평상시의 능글거리던 그녀라곤 생각되지 않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그녀가 류드밀라의 손을 덥석 움켜쥐었다. 류드밀라는 화들짝 놀라 손을 빼려고 하였지만, 그녀는 손을 꽉 쥔 채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뭐, 뭐하는 건가, 부전대장!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이니까 더욱 이럴 수밖에 없는 거야.”

 

그녀는 여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그녀의 뚫어져라 쳐다보는 눈동자에 기가 눌린 류드밀라는 더 말하려던 것을 멈추고 그녀를 응시했다. 

 

“녀석은 혼자 있는 놈들만 노리는 거잖아? 이렇게 손을 잡고 있으면 녀석도 어떻게 하지 못할 거야.”

 

실로 혼을 쏙 빼놓는 답변이었다. 사실 그녀가 성야의 살인마였던 게 아니었을까. 그녀가 진심을 담아 자신을 쳐다보는 만큼, 자신도 눈동자에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흘려보냈다. 그러나 그녀의 진심은 어이가 없다는 뜻에서 나오는 진심이었다.

 

“뭐야, 왜 그렇게 봐?”

 

그녀의 눈초리를 눈치 챘는 지, 그녀가 뾰루퉁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진심이라고, 아니면 이것보다 더 나은 전략을 생각해 보던가.”

 

그러나 그녀의 말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혼자 있는 적에 한해선 무적인 상대가 혼자 있는 적들만을 노린다면, 처음부터 혼자가 아니면 될 뿐이다. 그렇기에 류드밀라는 그녀의 전술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아...좋아. 그렇게 하지.”

 

 

발레리와 예고르를 적당한 장소에 눕혀놓고, 그들은 다시 ‘성야의 살인마’를 쫓기 시작했다. 

어두침침한 비상 조명등이 깜빡거리는 고요한 복도에는, 그 둘의 발소리만이 메아리처럼 반복됐다. 

류드밀라는 앞에서 알렉스의 손을 끌고 가고 있었고, 알렉스는 뒤에서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류드밀라는 문득 짜증이 샘솟았다.

그녀는 왜 이런 상황에서조차 진지하지 못한 것일까.

화가 뻗친 그녀는 조금 더 거세게 앞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탓에 그들이 이었던 손의 매듭은 조금 느슨해졌고, 그렇게 느슨해진 매듭은 끊어져 나가기에 충분히 얇아져 있었다.

 

“어라...?”

 

계속 잡고 있던 손이 놓아지자, 알렉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에 류드밀라는 신경질을 내며 그녀의 손을 다시 거머쥐려 하였지만

 

그 순간,

복도의 모든 등이 정전되었다.

 

 

 

약 30초간의 암전이 그치고 깜빡이는 조명과 함께 복도에 다시 불이 들어왔지만, 류드밀라의 눈앞에 알렉스는 존재하지 않았다.

 

 

 

 

한참을 알렉스를 찾아 돌아다니던 그녀가 도달한 곳은, 방금 전 발레리와 예고르를 놓았던 장소였다. 자신을 기만하려는 침식체의 의도였을까? 이미 눕혀져 있던 이들의 옆에 알렉스는 고이 눕혀져 있었다.

 

그런 그들의 앞에서 그녀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다시 서기에는, 다리를 지탱할 힘마저 들지 않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처음부터 그들이 노는 것에 주의를 줬으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신이 전대장으로서 어둠에 겁을 먹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신이 병사들은 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면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리고...자신이 알렉스의 손을 놓지 않았다면, 과연 그녀가 지금의 상태에 놓였을까.

 

어쩌면 저 자리에 누워있었어야 했던 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건 대원보다도 개인적인 감정을 위시했던 자신의 책임이기에.

관리자님은 이를 보면 어떤 말을 하실까.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실까. 그녀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혹자는 이런 말을 했다. 본래 있던 것을 잃고 나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던 것인지를 깨닫는다고, 지금의 그녀가 그러했다. 그들의 부재 앞에서, 그녀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똑똑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처음엔 몇 방울에 지나지 않았던 눈물은 점점 바닥을 가득 채웠고, 결국 바닥은 기존의 형체를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흠뻑 젖어버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그저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주저앉은 소녀만이 그 자리에 홀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가 한창 울고 있는 동안, 그녀의 앞에 누워있던 시체들이 좀비 마냥 일어서 그녀의 앞에 와있었다는 것을.

 

“하하. 류드밀라~, 우리가 당한 게 그렇게 슬펐어?”

 

이젠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눈물바다를 이뤄냈다.

 

“...전대장님이 너무 우시는데요?”

 

“류드밀라~ 우리 좀 봐봐.”

 

알렉스가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자, 그녀는 이제야 고개를 들고 그들을 쳐다보았다.

 

“?”

 

그녀는 상황 판단이 되지 않는 듯했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일어서 있는 세 명은 두리번두리번 둘러보기만 했다.

 

“짠~사실 성야의 살인마는 몰래카메라였습니다!”

 

그녀는 아직까지 이 상황 변화가 와닿지 않았다. 이들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녀는 그저 조용히 그들을 바라봤다.

 

“전대장님이 저희를 위해 그렇게 울어주실 거라곤 생각 못 했습니다...크흑!”

 

“후후후. 담력 시험인데 그렇게까지 울 건 없잖아, 류드밀라~”

 

“하하, 저희의 연기 끝내줬죠?”

 

담력 시험? 몰래카메라? 연기? 각자 한 마디씩 거드는 그들을 보며 류드밀라는 이제야 상황 판단을 끝마쳤다. 

 

“...너희들...”

 

꿇고 있던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류드밀라가 그들을 쳐다봤다. 분노와 살의를 담은 눈동자. 

그들은 직감했다. 당장 그녀로부터 도망쳐야 한다고.

 

“잡히면 죽을 줄 알도록!”

 

그렇게 한밤중 추격전이 재개되었다.

 

 

 

 

다음날 아침, 붙잡힌 그들은 류드밀라의 감시 하에 최고 난이도의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전대장님이 화가 많이 나신 것 같은데요.”

 

“후후...류드밀라도 참, 귀여워라.”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저마다의 불평을 쏟으며 그들은 트레이닝에 임했고, 류드밀라는 멀찍이 서서 그들을 지켜봤다.

 

“하아...”

 

머리가 아팠다. 동시에 어제의 자신이 창피했다. 부하들의 앞에서 그렇게까지 우는 모습을 보이다니. 전대장 실격이었다.

어제의 일을 생각하며 그녀는 몰래 트레이닝 강도를 한 단계 더 높였다. 고생 좀 더 해보라지.

 

그렇게 그들의 옛날이야기는 끝을 맺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장난삼아 시작했던 어제 일을 계기로 그녀가 전대원들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그들을 위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서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그때는 그곳에 있던 그 누구조차 알지 못했다.



----------------------------------------------------------------

밤에 유튜브 에디션으로 성야의 살인마 보다가 이거다 싶어서 바로 써봤슴니다

카문대 낼려고 헐레벌떡 썼는데 역시나 시간은 늦어서 걍 창작에 올림

신학기 유입이라 메이즈 전대 스토리 제대로 몰라서 오류 있을 수도 있는 점 양해 바람

잘 읽어주시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