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썩 쓰러지는 인영을 받아든 주시윤이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서 또 이렇게 잔뜩 취해서 오신건가요, 스승님?"

"...주시윤이냐."


대답이 나오는 속도가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이 시간에 회사에서 뭐하는거냐."

"그러는 스승님이야 말로 이렇게 취하셨으면 댁으로 가시지 그러셨어요."

"내 맘이다, 되바라진녀서억."


평상시처럼 까칠한 대답이였지만 그 끝이 저리 늘어져서야 주정뱅이의 그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불행중 다행으로, 특이한 사장이 새로 취임한 코핀 컴퍼니의 직원 휴게실에는 푹신한 소파가 있었고, 자꾸만 바닥에 주저앉으려는 자신의 스승을 소파에 뉘이는데 성공한 주시윤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그래선 제대로 걷지도 못하실테고, 그냥 여기서 주무시는게 낫겠네요. 어차피 내일은 휴일이고."

"건방진놈, 나를 어떻게 보고오..."

"예,예. 언제나처럼 멋있고 강하고 자존심 센 힐데님이시죠."


그렇게 말하던 주시윤의 시야에 힐데의 작은 발이 들어왔다. 검은 가죽부츠를 신은채 소파에 올라가있느


"스승님, 신발은 벗으셔야죠. 부츠라서 제때 안벗어주면..."

"시끄럽다, 혼나볼테냐"

"네네, 어차피 기대도 안했습니다."


부츠의 버클을 풀어내어 자그마한 두 발을 세상과 만나게 해준 주시윤은 그제서야 한숨돌리며 말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취하신건가요?"

"...알 거 없다."

"이런, 부사장님이 많이 화나셨었나보네요."

"...어떻게 아는거냐?"

"우연이죠."


넉살 좋게 웃는 주시윤에게 기분나쁜녀석, 그렇게 쏘아붙인 힐데는 소파의 등받이 쪽으로 돌아누우며 말했다.


"적당히 하고 집에 가라, 새파랗게 어린놈한테 잔소리듣기 싫으니까."

"그렇게 매정하게 말씀하셔도 말이죠..."


주시윤은 곤란하다는듯 뺨을 긁적이며,


"제가 오늘 숙직이여서 집에 갈수가 없네요."

"...잘도 회사에 붙어있구나?"

"숙직이래봤자 회사에서 외박하는것 밖에 더 있나요. 집에 혼자있는거랑 별반 다르지 않아서요."

"일개 전투원에게 숙직을 시키다니, 이 회사도 다 망했군."

"중소기업이 다 그렇죠."


그렇게 말하다가 문득, 가녀린 목을 옥죄고 있는 흰 셔츠와 붉은 넥타이에 시선을 빼앗긴 주시윤이 손을 뻗는다.

꽉 죄여져 있는 넥타이를 느슨히하고, 맨 위의 단추를 하나 가볍게 풀고나니, 꽁꽁 동여맨 외투의 매듭에 눈이간다.


자연스러웠다.

언제나처럼, 술기운을 빌려 제 자신을 잊으려는 스승의 시중을 드는 것 뿐이였다.


가녀린 손가락이 그의 손목을 잡기 전까지는, 그것 뿐이였다.


"스승님?"

"주시윤."


다른쪽 손등으로 이마를 가려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가.

작은 소녀정도의 가녀린 몸의 그녀가 힘껏 팔을 당겼다.


이윽고 두 사람의 거리가 0이 되었을때, 그 이후로 영원같은 찰나가 지나갔을때.

입술에 맞닿은 부드러움에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서려는 제자를 잡아세운 그의 스승이 말했다.


"내일은 휴일이지. 그리고 이 작은 회사에 휴일 숙직을 성실히 나오는 녀석은 없다."

"스승님...?"

"자, 어릴 적의 연장수업이다."


힐데는 얼핏 풀어해쳐진 셔츠의 단추 하나를 끌러내며 말했다.


"가르쳐 준 것, 잊지 않았겠지."


코핀 컴퍼니의 휴게실.

그날밤 불은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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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써봄
(+ 수정 마지막힐데 대사. 수정전게 올라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