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까지 딸이 연락이 안되서 전전긍긍하고있던 하루였다.

아침이되자 경찰에게 연락이 왔다.

딸이 발견됐댄다. 그리고 죽었단다.

지금은 영안실에 있다더라.


딸의 얼굴을 보고 이것저것 절차를 거친 뒤

경찰과 이야기를 할 시간이 되었다.

젊은 여경이 나와서 커피를 건네주길래 단숨에 들이켰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냐고, 왜 내 애가 죽어야했냐고

여경은 조용히 CCTV 사진을 보여줬다. 내 딸아이가 도로변에 누워있다.

사진을 빼앗아 끌어안아도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구석을 가리키자 아까는 찾아볼 수 없었던 아이가 보였다.

손에는 날이 붉게물든 가위, 발 밑에는 피웅덩이 그리고 내 딸.

현장에는 많은 흔적을 남기지만 정작 자기가 누군지는 남기지 않아서

누군지 찾을 수 조차 없는 끔찍한 연쇄살인마라고 한다.


도대체 그런게 어딨냐고 21세기에 못찾는게 어딨냐고 호소했지만 묵묵부답.

조금 침착해지자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줬다.

경찰이 찾을 수 없다해도 나라도 찾아야한다. 우리 딸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살던 집도 정리하고 모든 돈과 시간을 추적에 투자했다.

비슷한 사건 비슷한 생김새 이름이라도 나타나는 곳이라도 모든 정보를 수집했다.

다른 피해자의 가족들도 처음엔 나와 같은 반응이었지만

이름과 생김새를 제외하곤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찾는걸 계속하다 실종되거나 정신병원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런걸론 포기할 수 없다. 울고있을 내 딸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솔직히 말해서 잘 될거같진 않았다. 그래도 곧 실마리가 잡힐것이다.

온기 없는 옥탑방엔 종이와 사진 그리고 USB가 박스째로 쌓여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름은 스카이 레이필드

처음엔 계속해서 잊어버렸다. 이름이 뭔지 그리고 사진에 있는 생김새도

다른 곳에 신경을 쓰면 사진에 어디 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않는다.

잊지않기위해 쓰지않는 손가락을 잘랐다.

이 손가락을 볼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떠올렸다.

손바닥에는 살을 태워 새겨진 흉터가 남아있다.

「001번 사진 우측 하단」 제일 처음 새긴 흉터다.

그 외 팔에도 허벅지에도 인두로 글자를 새겼다.

바람이 통할때마다 내 목표를 다시금 상기하게 되니까.

외출할때는 사람들 눈때문에 긴팔에 긴바지밖에 입을 수 없지만 상관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증세가 심해져서

혀까지 잘라가며 기억했고 또 증거를 모았다.


어느날 한 피해자의 가족을 만나고 집에 들어오자

아무도 없어야할 집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집주인은 이렇게 말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데......

도둑이라도 들었나? 이런 돈도 없어보이는 옥탑방에?

조심스레 문고리를 잡자 잘린 손가락이 보였다.

혹시 방에 들어갔나? 그럼 내가 모아둔 자료들은 어떻게됐지?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방을 확인한다.

문을 열자 처음보는 얼굴의 아이가 있었다. 누구지?


"이렇게까지 나를 조사한거야......?

흔적조차 안남기는 살인귀를? 참 지독하다......"



나? 살인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눈앞의 이 아이는 누구지? 왜 내 집에 들어와 있는거지?

이 어린아이가 내가 조사하던 살인귀라고?

그녀가 들고있던 사진에 눈길이 간다.

내 딸이 죽었던 그 현장 CCTV

조르고 졸라서 얻었던 사진 한장

내 딸 옆에 있는 살인귀와 똑같은 옷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며 몸을 내던졌다

그대로 벽에 처박혀서 쓰러진 아이...... 아니, 살인귀



"그래도...... 여기까지 날 기억해주는건 네가 처음이야......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주제에 입은 살아서 나불댄다.

내 눈앞에서 무력화된 살인귀를 보자 죽은 딸이 생각났다.

이새끼를 죽이더라도 내 딸은 이미 죽었어...... 돌아오지 않아

막상 눈앞에 그놈을 마주했지만 분노에 차서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날 죽이려는게 네 소원이지? 마지막으로 네 소원을 들어줄게!

칼같은건 있어? 가위 빌려줄까?"



그래. 내가 가장 하고싶었던거...... 복수

여기까지 들어온건 천재일우의 기회다.

똑같이 목구멍을 칼로 쑤셔주마

네가 그랬던것 처럼 무자비하게, 수도없이


"음..... 결국 가지러 가는구나"



이새끼가 회복하게 둬선 안된다.

방을 나가자마자 바로 부엌으로 달려갔다.

칼을 걸어뒀던 식기건조대에 칼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다 뒀지? 어디있지? 생각해내야해...... 빨리!


저녁을 먹고 개수대에 담궈둔걸 떠올렸다.

음식물 찌꺼기가 지저분하게 떠있는 대야

주저않고 손을 집어넣어 칼을 꺼냈다.


방으로 가야해! 빨리! 제발!


닫힌 방문을 열자 책상에 올려둔 종이가 나풀거린다.


없다.

무엇이 없지?

내 손에는 과도가 들려있다. 과일?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키자 잘린 혀가 느껴졌다.

그래, 여긴 내가 딸을 죽인 살인귀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료를 모으던 방이다.


그런데...... 내가 왜 칼을 들고 왔더라?



"마지막까지 날 기억해줬으면 좋았을텐데......"


어렴풋이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순간

눈이 번쩍이고 목에는 쇠꼬챙이를 지지는듯한 화끈거림이 파고들었다.

눈을 내려 보이는건 내 딸을 죽이는데 사용되었던 가증스러운 가위

소리는 나오지 않고 피가 섞인 거품만이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다.


왜......


어째서......


가위가 목을 후벼파고 빠져나오자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뜨뜻한 피가 내 온몸을 적신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그제서야 악마의 얼굴을 마주했다.


모든게 기억났다.

스카이, 스카이 레이필드


떨어트린 칼을 들어 악마의 심장에 내려꽂는다.

수십명을 죽인 살인귀라곤 생각되지 않을 반응

피 한방울 조차 흘러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순수한 얼굴을 지닌 그 악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기억해냈구나...... 고마워, 정말 고마워. 정말이야......

네 딸을 죽였던건 미안해...... 난 그냥......"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다.

악마의 속삭임도 희미해져간다.


악마를 죽이는데 성공했을까?

눈물이 핑 돌고 흐릿해진 눈앞에는 죽은 딸의 얼굴이 보였다.

사랑스러운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