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약속을 잡은 장소는 광장이었다.


마침 광장에 있던 강소영은 다른 데 없냐며 투덜댔지만, 성인 남녀가 밖에서 만나서 즐길 수 있는 건 전부 광장에 있었다. 나는 얄미운 후배의 징그러운 앙탈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움직일 필요없이 제자리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람..."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리송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신입 시절에도 나보다 똑부러져 팀장님한테 얼마나 비교를 당했던지. 하도 시달린 탓에 떠올리는 것만으로 치가 떨려온다.


'그런 주제에 대하는 게 어렵지도 않았으니 참 신기한 여자야.'


처음엔 하도 살가워 '내게 반했나?' 같은 바보같은 망상을 하기도 했다.


참고로 녀석에게 그리 묻지 않은 게 보잘 것 없는 내 인생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일 중 하나로 꼽힌다. 속내를 들켰으면 아마 평생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상하진 않으려나...?"


오랜만의 외출이다. 신경 쓰면 지는 거 같지만서도, 나는 말끔히 면도와 세안을 끝내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차림으로 자신을 가꾸었다. 덮수룩했던 턱이 까글까글해 되게 어색하다.


"아빠 다녀온다."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현관문에서 슬쩍 집안을 돌아보니 리처드가 벽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헐레벌떡 다시 벽 안으로 숨어버렸다.


"지금 모습이 그렇게 낯선가...?"


리처드의 반응에 상처를 입은 나는 괜히 쭈삣거리며 작게 투덜댔다.


그동안 방구석 폐인으로 지내 변화가 좀 극적이긴 하지만. 그게 저렇게 낯선 이를 보는 것처럼 태도를 싹 바꿀 정도인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찝찝함을 곱씹으며 집을 나선다.


강소영이 기다리고 있을 광장은 집을 나와 도보로 약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다.


평소라면 땀도 나지 않을 짧은 거리였지만, 오랜 방구석 생활로 어색해진 의족과 다리의 무게 불균형이 발목을 잡았다.


어색한 걸음거리는 10분 거리를 30분 거리처럼 느끼게 만들었고, 저 멀리 광장이 시야에 들어올 땐 이미 땀이 한가득이었다.


"후우. 차분히. 재활했을 때 걸음으로..."


흐트러진 숨을 바로잡고, 어색한 걸음을 의식해서 고쳐나간다.


자연스럽게, 양손을 난방 주머니에 꽂아넣고 건들거리는 척 광장 중심의 시계탑으로 향했다.


마침 저 멀리 시계탑 아래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여자가 보인다. 강소영이다.


일에 방해되지 않게 짧게 친 숏컷에 활동성을 중시한 자켓과 청바지, 그리고 운동화라는 지극히 캐주얼한 복장은 몇 년 전 보았던 모습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월에 찌들어 주름살이 뻗힌 나와 다르게 천하태펑 슈퍼 동안인 강소영의 모습에 나는 약간 기가막힌 표정이 되었다.


"어째 세월이 지나도 하나도 안 늙었냐, 너는."

"아직 파릇파릇한 20대라서 그래요, 선배."


강소영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자연스럽게 내 말을 받아친다.


언뜻 보인 메시지 내용은 상대가 단답을 빠른 속도로 여러 차례 보낸 걸로 보아, 꽤 화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녀석에게 화를 낼 사람이야 뻔하다.


"너 정말 업무차 요 근처로 온 거 맞냐?"

"그러는 선배야말로 너무 늦은 거 아녜요?"


강소영은 태연하게 말을 돌렸다.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미소를 보며, 나는 그녀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4기동의 철판은 세월이 지나도 녹슬지 않았군. 오히려 더 단단해졌어."

"후후, 철판이라뇨. 제가 얼마나 자주 고개를 숙이면서 다니는데요."

"하늘에 계신 팀장님이 들으면 기겁하시겠군."

"... 아, 네. 뭐 그러시겠죠. 아마도."

"?"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시종일관 느긋하던 강소영의 가면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착각인가?'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서너 번 깜빡였더니 강소영은 다시 평소 능글맞은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그래서, 늦으신 것에 대한 벌칙으로 오늘은 선배가 쏘시는 걸로?"

"처음부터 그러려고 하던 거 아녔냐? 그리고 이것도 최대한 빠르게 달려온 거야."

"하하. 스피드가 생명이라던 선배답지 못한 모습이네요."

"닥쳐. 그리고 넌 내가 본부에 연락 안 한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 해. 알아?"


내 으름장에 강소영이 양손을 절레절레 흔들더니 어휴 소리를 내었다.


"선배는 경찰일 때도 아싸였잖아요? 분명 연락해도 다들 '얜 누구지?' 라고 할걸요."

"그건 네가 비정상적으로 얼굴에 철판 깔고 여기저기 기웃거려서 그런 거다. 4기동 멤버 대부분이 아싸에 워커홀릭이었어. 뺀질나도록 구르다 뒤질 정도로."


힘차게 내뱉어진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푹 내려갔다.


마지막엔 강소영의 눈도 마주치지 못해 말없이 내 신발 끝만을 응시했다.


"... 미안하다. 아직도 정리가 다 안 된 모양이다."

"뭘요. 새삼스레. 저희 오랜만에 술이나 먹으러 가요."


강소영이 싱긋 웃으며 팔짱을 끼었다.


다행히 녀석이 낚아챈 건 멀쩡한 오른팔이었다.


간신히 기겁하지 않은 나는 평정심을 가장한 채 녀석에게 투덜댔다.


"대낮부터 뭔 술이냐..."

"방금 발언으로 선배가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건지 대충 감이 잡히네요. 점심이 한참 전에 지난 건 아세요?"

"네 연락이 왔을 때 이미 한창 요리하고 있었어."


대충 너 때문에 요리하다 말고 허겁지겁 나왔다고 하자 녀석이 드물게 미안한 기색을 띠었다. 현역 시절에도 보지 못한 얼굴이다.


"전화 건 타이밍이 조금 나빴나보네요. 하지만 거부하지 않고 나와준 걸 보면 역시 선배도 절 보고 싶었던 거죠?"


아니, 정정하겠다.


이 빌어먹을 후배는 미안한 표정을 5초도 못 채웠다.


"그래. 직접 만나서 이렇게 때려주고 싶었지."

"아얏! 이거 데이트 폭력이에요?"


나는 왼팔로 녀석의 정수리를 꽁 내리쳤다. 장갑을 덧댔어도 무게가 꽤 나가는 의수다. 분명 꽤 아팠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찔끔 눈물을 흘리더니 입술을 댓발 내민다.


"제가 특별히 선배에게 갱생의 기회를 한 번 드리죠. 유치장에서 먹는 국밥 대신 술 한 턱 쏘시는 게 어떤가요? 지금이라면 특가로 예쁜 여경이 시중도 들어준다네요."

"공무원이 시민 삥뜯는다고 민원 넣는 수가 있다. 강소영 경위."

"... 하아. 역시 선배는 경정님과 다르게 놀리는 맛이 없어요."


최근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생겼는지 내 반응이 재미없다며 강소영이 한숨을 내쉬곤 팔짱을 풀었다.


"경정이라면 뉴스에 자주 나오는 그 꼬맹이 말하는 거냐?"

"뭐야. 선배 뉴스도 봐요?"

"집구석에 쳐박혀서 지내다보면 시간 죽이는데 홈쇼핑과 뉴스만큼 훌륭한 매체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지. 덕분에 소식통은 빠삭한 편이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예능과 달리 뉴스와 홈쇼핑은 쉬지 않고 24시간을 달린다. 특히 요즘처럼 대형 사건이 터진 후에는 언론도 시끌시끌해서 꽤 재밌다.


"와. 그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꺼내도 되겠네요? 일부러 관련 주제는 피하고 있었는데. 선배 무안할까봐."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그렇게 배려심이 넘쳤다고."


한참 옛날, 계급장에 경위를 달기 전부터 사사건건 나를 골탕먹이던 녀석의 배려에 내가 불신의 기색을 비추자 강소영이 능글맞게 웃어넘겼다.


"그만큼 삶이 고달파서 그렇죠. 선배는 모르겠지만, 제가 이렇게 시간을 내는 것 자체가 굉장히 드문 일이랍니다?"

"아니. 너 파견왔다가 땡땡이 치는 거라며."

"무슨 소리세요? 땡땡이가 아니라 순찰인데요?"


반론은 인정하지 않겠다며 강소영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는 뻔뻔하게 웃는 얼굴로 다시 팔짱을 걸어오더니 나를 질질 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힘없이 끌려가는 와중에 한숨을 내쉬었다. 호기롭게 앞장선 것과 달리 그녀가 향하는 방향은 술집과는 거리가 먼 주택가였다.


"너, 여기 술집이 어딘진 아냐?"


강소영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다봤다.


"글쎄요? 대충 길 난대로 가다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아니면 특별히 선배가 추천하는 맛집이라도?"

"됐으니까 따라와."


거북했던 강소영의 팔짱을 풀고, 나는 몸을 돌려 터덜터덜 앞장섰다.


마침 옛날에 팀장님과 자주 들르던 술집이 이 근처에 하나 있다. 사장이 내 얼굴이나 기억해주면 좋으련만. 큰 기대감 없이 추억의 술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강소영이 넌지시 중얼거렸다.


"역시 선배는 틱틱대면서도 마지못해 결국 끌려다니는 모습이 어울려요."

"줏대없이 휘둘리기 쉬운 성격이라고 놀리는 거냐?"

"어떨까요?"


그녀는 말을 아꼈다. 대신 다른 걸 물어왔다.


"어떤 술집으로 가는 건가요?"

"일찍도 묻는다."


나는 뒤에서 쫄랑쫄랑 걸어오는 강소영을 곁눈질로 흘겼다.


"팀장님이 살아계실 적에 자주 신세를 졌던 곳이야. 안주가 기가막히지."

"설마 아직도 술자리에서 안주만 축내시나요? 상사한테 미움받는 타입이시네요."

"시끄러."


혹시나 싶어 팀장님을 언급했는데 어째 조금 전과 달리 별다른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았다. 태연하게 안주는 매운 게 좋다며 흥얼거리는 모습이 세상 여유롭다.


'역시 잘못 본 건가?'


전부 내 기우일지도 모른다. 나랑 다르게 녀석은 씩씩하니까. 어쩌면 전부 떨쳐냈을 수도 있다. 그러지 않고서야 2년이 넘도록 홀로 4기동을 지켜왔을 리가 없다.


당장이라도 묻고 싶었다. 하지만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의문을, 나는 애써 되삼켰다. 아직 목에 기름칠도 안 했는데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긴 서로가 불편할 테니까.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각종 술집과 비인가 성매매가 성행하는 거리. 아직 장사할 시간이 아니라 한적한 거리를 지나 모퉁이에서 꺾어지자 나와 팀장님이 자주 신세를 진 술집이 나와야... 했는데.


"뭐냐?"


나는 드물게 당황스런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를 반겨준 건 사장의 따뜻한 '어서옵셔' 가 아닌 반파된 폐건물이었다.


오직 불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무너진 간판만이 이곳에 술집이 있었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었다.


"우와. 이게 선배가 극찬한 술집이구낭. 조명 한 번 끝내주네요. 이게 그 자연풍 중시 건축인가 그런 거죠?"

"..."


강소영이 감탄하며 손에 핸드폰 카메라를 꺼내들고 찰칵 소리를 내었다. 자기 입으로. 나는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을 애써 손바닥으로 가렸다. 불찰이다.


'하필 실수해도 이 녀석 앞에서 할 줄이야...!'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무너진 건축물을 둘러보던 강소영이 먼지 가득 쌓인 회전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래서 저희 술은 언제 시키나요? 혹시 셀프?"

"그만 놀려. 가뜩이나 쪽팔려 죽겠는데 너 때문에 자살 마려워질 거 같으니까."

"엇차! 그러면 안 되죠.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할게요."


강소영은 별 거 아니란 듯이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예나 지금이나 참 터프한 녀석이다.


"아무래도 침식 재난으로 무너진 모양이야. 전혀 예상치 못했어."

"건물까지 무너지는 일은 그리 흔치 않으니까요. 2종 침식체라도 나오면 모를까."

"끔찍한 소리 하지 마라."


도시에 2종 침식체가 나타나면 아주 난리가 난다. 초기 진압을 실패할 경우, 3종이 출현할 가능성도 있어 경찰도 용병도 카운터와 함께 저지선을 지키며 시민 대피를 돕는 게 최우선이 된다.


어차피 시민을 돕지 못하면, 침식파에 노출되어 그들 역시 적이 되어버릴 테니까. 좀비가 사람을 물어 좀비로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침식 현상이 나타날 때 가장 우선시되는 인명구조는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몸부림과 같다.


"그나저나 이 주변에 2종 이상의 침식체가 나타났단 소리는 못 들어봤는데..."

"그러게요. 저도 관할 지구대한테서 침식 재난이 있었단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어디 지나가던 카운터가 대신 해결이라도 해준 걸까요?"

"그랬으면 술집 사장님이 불쌍해지는데."


정식으로 등록되지 않은 침식 재난으로부터 입은 피해는 보험 처리를 받기도 힘들다. 나는 먼지가 쌓인 간판의 네온사인을 툭 건드렸다.


"그렇게 조사하고 싶으시면 복직 어떠세요?"

"됐어. 나 같은 겁쟁이가 카운터니 침식체니 하는 걸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명난지 오래니까."


멀쩡하지 못한 의수로 총구를 침식체나 카운터에게 겨누면, 손이 떨려 빗맞출 게 뻔하다. 강소영도 빈말에 가까웠는지 더 보채거나 놀리진 않았다.


"뭐, 됐다. 그냥 요 근처 호프집으로 가자. 더 멀리 가긴 귀찮잖아?"

"하하. 선배가 사주신다니 후배는 그저 따를 뿐입니다요."


강소영이 넉살좋게 웃으며 뒤따라왔다.


둘이서 음침한 골목길을 나오자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결국 이러니 저러니 해도 술 먹기 딱 좋은 시간이 되긴 했네요."

"하아. 그러게나 말이다. 리처드 저녁도 줘야 하는데."

"선배가 키우는 고양이요?"

"어머니가 키우던 거야. 먼저 돌아가셔서 내가 맡게 된 거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텅 빈 집에서 리처드의 존재는 무척이나 큰 위안이 되었다.


"반려동물이란 거, 생각보다 괜찮더라."

"다행이네요. 사실 되게 걱정했거든요. 선배 성격 엄청 음침하잖아요? 극단적으로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강소영이 걸음을 멈췄다. 그녀를 돌아보니 눈을 감고 있었다.


"스읍 하아."


크게 숨을 들이켜고, 다시 내뱉는다.


다시 눈을 뜬 강소영은 예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땐 저도 어렸잖아요? 솔직히 좀 겁났어요. 그동안 연락 안 드린 것도 그래서 그래요. 좀 꼴불견인가요?"

"어. 그냥 그렇게 평생 연락 안 하지 그랬냐."


멈췄던 걸음을 재개했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리처드가 죽으면 나도 미련없이 죽을 운명이었다. 줄곧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오늘 강소영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여기다. 나 어렸을 때 있던 호프집인데. 아직 장사하네."

"얼마만에 오는 건데요?"

"몰라. 대충 한 4년쯤 됐나? 술도 안 마신지 꽤 오래돼서 주량이 멀쩡할지 모르겠다."


한창 현장에서 뛸 땐 힘든 일이 너무 많아 술로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 그러지 않으면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뜨거운 울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


뭐, 그때도 술보단 안주를 탐했던 거 같지만 말이다. 대부분 팀장님이 사주셨지.


"어서옵셔!"


주인장은 바뀌어 있었다.


나는 아는 체하는 법 없이 적당히 구석 자리에 앉았다.


주문은 맥주 300cc 두 잔과 치킨, 그리고 골뱅이무침으로. 손님이 아직 없는 한가한 시간대라 마카로니 과자 한 접시를 비울 즈음 주문한 음식이 나란히 나왔다. 근데 시키지 않은 음식이 하나 섞여 있었다.


"저기, 부침전은 시킨 적 없는데요?"

"서비습니다."


사장이 강소영을 곁눈질하며 윙크를 날렸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셔!"


나는 어이가 없어서 얼굴에 꽃받침을 한 강소영을 바라보았다.


"흐흥. 보세요. 예쁜 여경이랑 밥 먹으러 나오면 이런 혜택도 받을 수 있다구요?"

"아무래도 사장님에게 안경 하나 새로 맞춰드려야겠어."


대체 저 능구렁이의 어디가 예쁘다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맥주잔을 쥐었다. 맥주잔 특유의 미끌거림과 손에 스며드는 물기도 모두 참 오랜만이었다.


"그럼 저희 슬슬 짠하죠?"

"근무 시간에 술 쳐먹자고 하는 경찰이나 그것에 응하는 전직 경찰이나. 아주 유유상종이다 유유상종. 건배."

"뭐야, 선배 설마 방금 그게 건배사에요?"


반사적으로 맥주잔을 부딪친 강소영이 뒤늦게 토를 달았으나 나는 무시하고 맥주잔을 쭉 비웠다.


"크으! 오랜만에 마셔서 걱정했는데 아주 술술 넘어가네."

"그렇게 말해서 안심시켜놓고 안주만 싹 해치우는 거 제가 모를 줄 알고요?"


강소영이 자신 몫의 안주를 미리 접시에 덜어냈다.


"아니 뭐 그 내가 얼마나 먹는다고..."

"그렇게 입맛 다시는 것만 봐도 신뢰 안 가는 거 아시죠?"


쩝. 강소영의 쏘아댐에 반박할 수 없던 나는 조용히 젓가락을 입에 물고 깨작깨작 씹어댔다. 내 나름의 소심한 반항이었다.


"하여간 선배는..."


쿵!


갑자기 땅이 울리고 건물이 흔들렸다. 얼빵하게 맥주잔을 손에서 떨어뜨릴 뻔한 나와 달리 강소영은 하던 말도 끊고 재빠르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무, 뭐야? 지진인가?"

"지진이나 침식 현상이었으면 재난 문자가 울렸겠죠."


강소영이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선배, 제가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줄 아시나요?"

"아니 네 입으로 파견 온 거라고 했잖... 아."


멍청했다. 생각해보니 인력난에 허덕이는 4기동이 파견 따위를 갈 리가 없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보니 감이 무뎌졌다.


당장 새로운 카운터가 영입되고 본격적으로 언론에 알려지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녀석이다. 강소영이 신입, 그러니까 아직 학생인 꼬맹이를 혼자 두고 파견을 올 정도라면, 그만큼 심각한 사안이라는 뜻이었다.


"... 카운터 범죄냐?"

"하하. 어디까지나 심증만 있어서 기우였으면 했는데. 아, 거기 사장님. 경찰입니다. 입구쪽은 위험하니까 잠시 뒤로 빠져주세요."

"어, 으 네."


강소영이 웃는 얼굴로 경찰 수첩을 꺼내 당황하는 사장을 진정시켰다. 그녀는 조심스런 걸음으로 입구로 살금살금 접근했다.


"폭발이 일어났네요. 그것도 제법 큰."

"폭발?"


그녀의 뒤를 따라 창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저 멀리 건물들 사이로 성대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방향은 광장 쪽에 가까워 보였다.


"저게 단순 화재일 가능성은...?"

"그야 직접 가봐야 알죠."


강소영이 권총을 다시 홀스터에 넣고 가게를 뛰쳐나왔다.


"혹시 모르니까 소방차랑 블랙타이드에 지원 요청 좀 부탁드릴게요!"

"야, 야! 강소영 경위! 강소영!"


내 외침이 무색하게 녀석은 제 할 말만 남기고 냅다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야이...! 사장님, 계산은 여기 지갑으로 해주세요!"

"저, 저기 손님...!"


나도 서둘러 사장님께 지갑을 던져놓고 강소영을 추격했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저 멀리 사람 틈 속을 재주 좋게 파고들며 뛰어가는 강소영이 보였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야 저 녀석은...!"


저 녀석이 빠른 건 차 탈 때만 그런 거 아니었냐고! 속으로 욕짓거리를 내뱉으며 나도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신체 탓에 금방 숨이 차올랐고, 끝내 강소영의 뒷모습 마저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아. 하아. 젠장!"


분하다.


질척한 감정이 쇳내와 함께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간 쉬어도 너무 오래 쉬었다.


한창 현역일 땐 본부에서도 내 다리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는데. 이젠 후배 한 명도 못 따라잡는 실정이다.


결국, 무릎을 짚고 멈춰 선 나는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냈다. 능력이 안 되면 하다 못해 후배의 부탁이라도 들어줘야 체면치레를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 하!"


통화 버튼을 향하는 엄지가 부들부들 떨린다.


나는 애써 토해내고 싶을 침을 꿀꺽 삼킨 뒤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일단 화재니까 소방차 소방차... 아! 네, 여기 G1 섹터 G 만남의광장 쪽인데요... 아! 네, 그런가요. 예, 수고하십니다. 보통 화재가 아닌 거 같아서, 진짜 꼭 빨리 좀 와주세요. 네에."


뚝.


"하아아."


이미 여러 차례 119에 연락이 간 모양이다. 화재 현장의 주소를 말하기 무섭게 이미 대원들이 출동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전화를 끊은 뒤 강소영이 말한 블랙타이드를 떠올렸다. 거긴 경찰특공대 출신이 꽤 있어서, 어쩌면 내가 아는 얼굴이 있을지도 모른다. 강소영도 자주 도움을 받으니 그들을 언급한 것이리라.


만약 진짜로 저 화재가 카운터 범죄자의 개입으로 일어난 거라면, 일개 지구대 경찰 지원보다 강화외골격이니 택티컬 수트니 하는 관리국 선진 기술을 적극 도입한 그들의 도움이 필수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 블랙타이드는, 어디로 연락해야 하지?"


나는 멍청한 표정으로 핸드폰 액정을 바라봤다.





격전, 챌3-15 안 깨지는 거 개빡치네.

소드 라이노 개새끼야! 


숙제 다 끝냈고 이제 데가 레이드 뛰어야 해서 다음편은 빨라야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