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윤서


지금껏 많은 뒤통수를 치며 살긴 했다지만, 사실 뒤통수 전적과는 별개로 서윤 본래의 인간성은 오히려 정이 많은 성격이었다. 


리플레이서에게 납치당하고, 언더그라운드에서 하루하루 생존하려고 몸을 비틀던 것이 그녀의 인간성을 마모시키고 숨기게 만들었을 뿐.


다행스럽게도, 감춰져 있던 본연의 성격은 알트 소대와 함께 지내면서, 코핀 컴퍼니의 동료들과 생사고락을 겪으면서,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에 골인하면서, 점점 회복되어갔다.


마침내 서윤은 리플레이서에게 납치당하기 전인 어릴 때처럼 진심을 다해 웃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목놓아 울기까지 했다. 너무 기뻐서, 자신에게 다가온 이 행복이 너무나 기적처럼 느껴져서, 고마워서.


그 날부터 서윤은 단단히 다짐했다. 아이에게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아낌없이 부어주리라고. 자신처럼 부모와 떨어지는 불행은 내 아이에게 절대로 겪게 하지 않으리라고.


서윤의 딸아이는 서윤을 똑 닮은 외모로 성장해 나갔다. 딸은 서윤의 자랑이었으며, 또 다른 목숨이었고, 보물이었다. 서윤은 딸을 끔찍하게 아꼈다.


딸아이는 서윤이 그랬듯,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도 빼닮았다. 


어릴 때는 서윤이 집에 돌아오면 아무도 없는 척 몸을 숨기고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와서 서윤에게 안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기초적인 장난을 쳤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그 장난의 퀄리티와 정밀성이 더욱 올라갔다. 서윤을 몇 번 속여넘긴 적도 있을 정도였다.


하루는 중간평가 성적표가 나온 날, 성적표를 위조해서 서윤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다.



"엄마! 여기 성적표."



이번 평가 때는 워낙 친구들과 놀러다니느라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낙제 투성이었다. 그걸 합격점으로 전부 뜯어고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잔머리 회전이 빠르다 한들 아이는 아이. 딸은 점수만 고쳤을 뿐, 그 옆에 적혀 있는 평균이나 등급 석차는 고치지 않았다.


그리고 서윤은 그 모든 것들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딸이 요 근래 자주 놀러다녔다는 것도, 시험을 망칠거라는 것도, 성적표가 조작됐다는 것도.



"올~~ 우리 딸, 굉장히 열심히 했구나?"


"헤헤. 나 잘했지?"


"그럼그럼~ 아 맞다 서현아. 내일 학교에서 소풍 간다고 했지? 그럼 엄마가 엄마 표 특제 3단 도시락 만들어줄게. 딸이 좋아하는 메뉴 잔뜩 넣어서. 어때?"


"진짜?!!! 신난다!! 엄마 최고!"



딸아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방긋 웃으며 서윤에게 안겨들었다. 서윤은 그런 딸아이를 향해 마음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일상에서 하는 거짓말과 성적표의 조작은 그 경중이 다르다. 해선 안될 짓을 한 것에 대해서 서윤은 딸아이를 확실하게 혼내주기로 결정했다.


'감히 엄마를 속여 넘기려고 하다니, 50년은 이르단다.'


그리고 소풍 당일날이 되었다.


선생님의 안내에 맞춰, 아이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각자가 가져온 도시락을 꺼내 친구들과 나눠먹었다.



"난 엄마가 소세지볶음 해주셨다?"


"나는 유부초밥 해주셨어!"


"서현이 너는?? 너네 엄마 요리 잘하시잖아." 


"뭐 만들어 주셨을까? 궁금해."


"후후후. 기대해 얘들아! 우리 엄마가 이번에 만들어낸 야심작!"



기세등등하게 외치며 딸은 도시락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았다.


딸을 포함한 친구들 모두가 일그러진 얼굴로 도시락을 정처없이 바라보았다.


도시락에는 기대했던 소세지볶음이나 치킨, 갈비찜, 타코야끼 같은 맛있는 반찬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여기를 봐도 야채, 저기를 봐도 야채. 봄나물, 시금치, 당근, 콩자반, 옥수수, 샐러드, 사방이 아주 풀때기 투성이였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 상상도 못한 정체에 서윤의 딸, 서현이는 잔뜩 울상이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앙!! 엄마 미워!!!!!!"



딸아이가 서럽게 울을 그 시각, 서윤은 집에서 딸아이가 좋아할 맛있는 반찬들을 만들며 혼자 쿡쿡 웃고 있었다.



"후훗. 거짓말의 대가가 뭔지, 엄마를 속이려 했던 대가가 뭔지, 똑똑히 깨달았겠지?"



예나 지금이나, 뒤통수를 얼얼하게 강타하는 그녀의 전략은 녹슬지 않은 채였다.





5. 샤오린


백발백중 저격수였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심리상담사로 일하고 있다. 세심하고 여린 성격과, 저격수로서 갈고 닦았던 냉철함과 관찰력은 그녀를 유명한 상담사로 만들어줬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많은 것을 물어봤다. 남자친구가 이상하다, 여자친구가 이상하다,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 것인가 등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들을 말이다.


대체로 상담이라는 것은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 공감적인 이해, 진실한 상담자의 태도를 요구한다. 샤오린 또한 그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부드럽게 상담에 임한다.


하지만 가끔은 지금, 여기의 원칙에 입각하여 내담자를 현실에 강하게 붙들어 매달을 필요가 있다. 그럴 때마다 샤오린은 저격수 시절 실력이 어디 안 간다고, 묵직하고 강력한 팩트 한 방을 꽂아넣어줬다.


그리고 그러한 촌철살인 식의 화법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라도 되는건지, 샤오린의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총명했던 그녀의 아들은 날카롭게 사실을 집어내거나, 예상치 못한 폭탄선언을 하여 주위를 자주 놀라게 한 전적이 많이 있었다.


하루는 그녀의 아들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난 왜 이렇게 키가 작아?"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 친구들 중에서 키가 제일 작잖아... 그래서 친구들이 맨날 땅꼬마라고 놀려."


"어머. 그랬어? 누가 놀렸는데?"


"그... 유진이 아줌마네 애가 자꾸 놀린단말야. 멸치랑은 안놀아준다 뭐다. 자꾸 그래."



또 그 맷돼지. 하여간 인생에서 티격태격하지 않는 날이 없다니까.


샤오린은 달아오르는 머리를 애써 진정시키며 자신의 아들을 지긋이 바라봤다.


유진한테 전화를 걸어서 막 따질까도 생각해봤지만, 아이의 교육 상 엄마들끼리 언쟁을 벌이는 건 좋아보이지 않았다.


우선은 아이의 마음부터 어루만져주는 것이 순서다.



"그랬었구나. 우리 아들이 많이 슬펐겠네."


"조금." 


"조금?"


"응. 그래서 걔한테 나도 돼지랑은 안논다고 말하고 혼자 왔어. 멸치도 급이 있어서 돼지랑은 못놀아준다고 했어."



샤오린은 아들의 말을 가만히 듣다 말고 웃음을 터뜨렸다.


유진이의 아들이랑 다투는 것부터,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는 점까지. 어릴 적에 유진과 자신이 다투던 걸 연상시키게 했다.


어쩜 이런 면을 또 자신과 닮았을까.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라는 걸 오늘도 샤오린은 실감했다.



"후훗. 역시 우리 아들답네. 엄마 같았어도 그렇게 말했을거야. 울지 않고 그런 말 하고 온거야?"


"응. 나 안 울었어."


"장하다. 이렇게 씩씩하기도 하고. 우리 아들. 다 컸네."



샤오린은 아들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아들은 괜히 따스해지는 느낌에 샤오린에게 안겨왔다.



"잘 말했지만, 그래도 친구들끼리 다툰 뒤에는 사과하는거야."


"걔가 먼저 했는데도?"


"그걸 다시 네가 갚아줬으니까 1 대 1. 이제 동점이지?"


"응. 그런데 걔가 사과 안받아주면 어떡해?"


"그건 걱정마. 엄마가 유진이 아줌마랑 다 알아서 해놓을게. 그 애한테 내일 가서 사과하고 오기. 약속?"


"...응. 약속."



샤오린은 아들과 함께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로 도장을 꾹 찍었다.



"그럼 친구들이랑 못 놀고 온 거, 엄마랑 놀까?"


"좋아! 헤헤."



비록 발육이 더딘 점까지 그대로 유전되고 말은 나머지 키가 작은 것이 안타까웠지만, 샤오린은 그런 점까지 합해서 자신을 똑 닮은 아들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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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하나도 안써져서 이거부터 먼저 올림


유진이랑 김소빈은 다음에 써서 올릴게 ㅠㅠ 원래 알트소대만 묶어서 2편 할라고 했는데 글이 워낙 안써지기도 하고 그냥 먼저 날려쓰고 싶어서 홍어랑 린이부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