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효과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작은 바람이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이 된다는, 사소한 일에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유명한 격언이다.

 

그 남자에게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사소한 변덕, 장난이었을 수 있지만.


소녀에겐 태풍을 불러온 깊은 상처로 남았다.


2024년. 침식체와 이면세계가 아직 인류에게 드러나지 않았던 평화로운 때

꽃다운 17세의 한 공학도를 꿈꾸는 소녀가 있었다.


'아.. 수업 지루해 뒤지겠네, 이미 다 아는건데 자꾸 주절거리는거 그만 듣고 빨리 집가서 만들던거 마저 만들고싶다....'

겉으론 품행과 용모가 단정하고 학교를 넘어 동네 어딜 가든 누구나 알아주는 두뇌의 소유자. 

하지만 한편으론 그 나이에 걸맞는 반항기와 자만심이 있는 당찬 아가씨였다.

딩~~~동~~~~~댕~~~~동~~~~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요즘 원인불명의 실종사건이 늘었다니 귀가할 때 조심하렴, 이상!" 

 

최근 원인불명의 실종사건이나 살인사건이 늘었다고 한다. 무슨 짐승의 소행으로 추측된다는데 도시 한복판에 짐승이 돌아다닌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속으로 일축하며 집에서 만들던 자신의 작품을 떠올리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녀는 귀갓길 한복판에서 이상한 물체를 발견했다.

네모반듯한 몸체에 만화에서 희화화된 깡통로봇이나 달고 나올듯한 집게팔, 그리고 이동을 위한 무한궤도.

참 우습게도 생겨먹었다.

'뭐지? 근처 공대 졸업작품인가??' 

뭐 이딴게 다 있나 하면서도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로봇에 다가가 손을 대는 소녀


번쩍! 


갑자기 로봇의 액정으로 이루어진 전면 패널에 [' w '] 모양의 표정이 띄워졌다. 

"안녕하신가!!! 본 머-씐-은 머씐---갑!!! 이라고 하네, 오 차림새를 보니 고등학생인가??? 

요즘 대학가기 어려운 세월인데 이 몸에게 과외한번 받..."


"아 뭐야 요즘 로봇으로 광고한다더니 광고로봇이었네 에이 씨... 시간 아깝네 빨리 집가서 작품이나 손대야겠다..."

"이보게 잠깐 내 말좀 들어보게" 

"아 쫌 꺼져요, 저 이 동네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전교 1등인데 무슨 과외야, 그 돈으로 내 작품 만들 부품이나 더 사고말지."

"전교 1등갖고 되겠나?? 나에게서 과외 받으면 전교가 아니라 전국1등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네!! 그리고 과외비는 무료일세!!!"

"그.러.니.까 관심없다구요 더 붙잡으면 경찰에 신고할..." 

그 순간 로봇의 패널이 치직이며 한순간 지나간 한 남자의 모습.


공학도를 꿈꾸는만큼 냉철하고 이성을 최우선으로 여긴 그녀였지만 결국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게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하여간 무료라니깐 한번 받아나 보겠다며 급히 태도를 바꾼 그녀는 생판 받지 않던 과외를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뭔 로봇을 데려와서 평생 거들떠도 안보던 과외를 받겠다는 딸을 보고 황당함 반 기대감 반에 공짜라니깐 허락해준 부모님.

그렇게 로봇 선생의 과외를 받으며 그녀는 자신이 알던 지식은 세상의 진실에 비하면 극히 작다는 것을 깨닫고 그 로봇이 건네는 무수한 지식을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익히기 시작했다.


평범한 고교생의 지식을 아득히 뛰어넘고 특히 자신이 대학 전공자급이라고 자부하던 기계공학 지식을 아득하게 초월하는 머신 갑의 지식은 그녀에게 삶의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녀는 첫 만남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묻지 말았어야 할 질문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 로봇 아니죠? 사람이죠?"

"전에도 말했지만 학생, 선생님은 대인기피용 반자율 원격조작 머시노이드 인터페이스 머신-갑-로보mk.1이라네! 이 튼튼하고 반듯한 바디를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

"아뇨, 아무리 요즘 로봇공학이 발달했어도 선생님같이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인공지능은 없어요. 그리고 전 봤어요..."

"뭘 봤단겐가? 내가 작동을 중지한 사이 매끈-한 회로판이라도 열어본겐가????" 

"선생님을 처음 봤을때 왜 과외를 허락했는지 알아요? 그 로봇 패널에서 선생님의 진짜 모습을 봤다구요..."

"다음번 과외때 선생님이 직접 안오고 로봇이 오면 그날로 과외 집어칠거니깐 그리 아세요 메-롱" 


남자는 화면 너머로 소녀의 말을 듣곤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오작동인가. MK.2는 디스플레이를 좀 간소화해서 화상 출력 기능을 제한해야겠어.'

수많은 세계를 넘나들며 세계를 구하려던 남자는 곧 있을 클리포트 게임 전의 가벼운 지적 유희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본업이자 관리자로써 첫 발을 내디뎠던 600년전의 학교 교정을 떠올렸다.


"와.....키 ....크시네요..." 

"어머 어머 총각 누구여?? 옆집 이사왔어?"

"아하하, 안녕하세요. 그동안 로봇으로 원격과외하던 선생입니다. 제가 낯가림이 심해서 그동안 로봇으로 강의했는데, 이제 안면도 좀 트고 해서 직접 오기로 했어요."

"선생??? 역시 우리 딸이 로봇이라카면 너머에 있는 사람도 알아보네!!! 얼른 들어와서 차한잔하면서 수업혀요~"

"네. 다시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님." 


예전에 패널에서 스쳐가는 얼굴만 해도 여자들은 졸도할 정도로 잘생겼지만. 직접 보니 아무 말도 못 할 정도로 잘생겼다..

이런 사람이랑 사귀면 얼마나 행복할까. 여자친구가 있다면 그 여자 정말 부럽고 샘난다...


수많은 생각이 소녀의 머릿속을 메웠다. 지직거린 화면에서 한번 본 적 있지만 실제로 보니 아우라가 다르다.

처음엔 얼굴탓이 아니라 자연스런 대화가 가능한 로봇이 신기했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지만 실물을 마주하니 

다시금 깨달았다. 사랑이었다.

"그래서 이 좌표에서 이 좌표를..." 

수업중인데 아무 말도 안 들린다 그저 이 미남이란 단어를 현실로 꺼내 놓은듯한 남자를 쳐다만 볼 뿐


"오늘은 여기서 끝, 오늘 설명한거 잘 기억해두면 네 작품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거야"

"에... 네? 벌써요?"

멍했던 눈에 초점이 돌아오는 그녀.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녀 입에서 나온 말은

"저... 선생님... 내일은 모처럼 주말인데 수업 말고 데이트 어때요?"




다음날 


'내가 이 나이 먹고 고등학생 소녀랑 데이트라니.'

최근 클리포트 게임 작전을 입안하고 각 전대들이 제각기 작전에 맞춰 최종 훈련중인 바쁜 시기라 남자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업무는 하이브 컨트롤이 해결하고 있기에 직접적으로 바쁘진 않지만

클리포트 게임의 막중함은 수십 수백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와 데이트를 하고있는 이 소녀도, 길가를 지나며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클리포트 게임이 실패하면 결국 버리고 도망쳐야 한다. 

자신이 짊어진 세상의 무게에 짓눌릴 것 같았지만 

간만에 자신의 소소했던, 교사라는 본업을 떠올리게 하는 이 소녀 덕분에 조금 스트레스가 풀렸다.



데이트를 한번 하니 이후로는 거리낄 것이 없어졌다, 

소녀는 그 나이에 맞게 선생을 마치 트로피처럼 옆에 끼고 다니며 10대 청춘을 구가했다.

주위 친구들은 꺅꺅거리며 부러워했고 

과외가 일찍 끝나거나 주말만 되면 선생님과 함께 카페에 가거나 하며 주위에 이를 과시했다.

선생님도 나름 싫지는 않은 눈치였는지 수업은 간단하게 하고 데이트하러 나가는 날이 늘었다.


-클리포트 게임 작전 개시 3일전-


"이제 가르칠건 다 가르친 것 같아. 나도 슬슬 원래 하던 일 때문에 이젠 과외를 할 수가 없게 되었어... 다음에 다시 꼭 만나자"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소녀는 그대로 맥이 탁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이 그 남자를 영원히 소유하지 못할 것임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너무 갑작스러웠다.

틀딱 늙은이가 교사랍시고 앞에 서서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떠드는 학교생활이 싫었지만

자신이 모르던 지식을 건네주던 이 멋진 선생이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자신의 곁에서 여심을 흔들던 저 외모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데이트에 응했을거라 믿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모를 지식을 알려줬을거라 생각했다.


이 모든게 다 남자의 가벼운 변덕 때문이었음을 알 수는 없었지만

'다음에 다시 꼭 만나자' 라는 한마디로 슬픔을 삭혀야했다.




'세계 침식률 급속 상승 중.'

'카운터사이드...... 이이펙펙트.......레벨......레벨......추정....^$#^%#&^&%$^#'

'차차원원.....계계면면.....완전....붕괴.....'

'제 6종 침식체....다수....다수 확인....'

'세상의......주인이....오신다........'

'경배.....경배하라......'


'ERROR....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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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번에도 실패로군.


'세이프 모드로 전환되었습니다.'

'기동 한정시간 26초'


아니.... 잠깐... 이건.... 어쩌면...?


'강력한 정보 오염이 감지되었습니다. 시스템 유지가 불가능합니다.'

'시공간 종료에 따른 프로토콜 - CoW 실행 개시.'


잠깐. 종료 프로토콜을 변경한다. 종료 프로토콜 CoT-13을 실행하도록.

'명령 확인, 프로토콜 CoT-13 기동 절차에 따라 하이브 컨트롤의 각 테라브레인들을 분리합니다.'



남자가 사라진 그날 밤. 소녀는 살면서 처음 겪는 허무와 배신감, 슬픔에 잠겨있다 방에서 못 보던 물건을 주웠다.

"이...시계.... 선생님의 선물인가...?" 

다시 보자는 선생님의 마지막 한마디를 떠올리며 시계를 줍자 몸에서 무언가 기어가는 느낌과 함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기괴한 짐승들에 의해 그녀는 선생님이 떠난 슬픔이 채 가실 새도 없이 

눈 앞에서 괴물들에게 가족을 잃었다.

그와 동시에 선생님을 향한 첫사랑의 감정은 선생님에 대한 분노로 덧칠되었다.

그 새끼가 아니었다면.

그 새끼가 없었더라면 평범하게 가족들과 살았을텐데.

그 새끼가 없었더라면 첫사랑의 상실따위 겪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2044년. 현재


"그럼에도 내가 소집령을 발동한 이유가 있다네."

"이유?"

"그래, 최근 자꾸 눈에 거슬리는 태스크포스 컴퍼니가 하나 있지 않나?"

"......코핀 컴퍼니"

"....."

"공식적으로 검은 평의회는 관리국과 그 산하 조직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네."

"하지만 그쪽이 먼저 우리의 영역을 침범한다면 가만히 있을 수도 없지, 당장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대로 두면 아주 귀찮은 일들이 벌어질테니까."

"그러니 사이좋게 둘러 앉아서 대책을 논의해 보자고. 귀찮게 구는 코핀 컴퍼니 녀석을을 어떻게 해야 치워버릴 수 있을지." 


시솝이라 불리는 평의회장의 말과 함께 이런 저런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예전 내 작품들을 털어먹은 그 홀로그램 계집년과 알트 소대. 

카운터의 능력을 막아내는 보안 기술이라고? 

게다가 블랙 네트워크 쪽 소문에 의하면 우스꽝스럽게 생긴 로봇 사장이 요즘 태스크포스 사이에서 화제라고 한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이정도까지 정보가 모였으면 분명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20년간 숨겨왔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검은 평의회의 회의시간.

사소한 것이라도 약점 잡히는 순간 이 세계에선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살짝 나오려던 눈물을 하품으로 위장한 채 소녀였던 여인은 속으로 다짐했다.


'다음에....다시.... 꼭...만나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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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에 기계수집가 나이를 공돌이 대학생으로 하려 했는데 구관리국-코핀컴퍼니 시간대가 20년차이나서 

40살넘는 할12카34스 될거같아서 억지로 17살로 줄임 


글 한방에 쭉 퇴고 없이 써서 가독성앰창인거 ㅈㅅ 

대가리에 떠오른거 막 싸질렀더니 벌써 두시간지나갔노...

재밌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