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소녀가 아침을 여는 이야기


*이 소설은 소총병과 평범한 카운터가 직장에서 떠드는 사랑이야기의 세계관과 연관됩니다. 만약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대충 펜릴소대에 평범한 소녀 카운터와 사업부에 소총병이 일하면서 오후 3시마다 탕비실에서 떠드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이 소설은 위의 소설을 읽지 않으셔도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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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색이 감도는 은발을 가진 메이드 소녀는 오늘도 아침 일찍 회사의 불을 킨다. 소녀는 텅 빈 복도를 걸으며 오늘도 복도에 주워야하는 쓰레기가 있는지 둘러본다. 소녀는 텅 빈 관리부에 들어가 각 비품실을 열 카드키를 가져간다. 소녀는 수많은 비품실을 열다가 탕비실 앞에서 멈춰 선다.

 

“여기서 막...... 알콩달콩 그런 걸 하는 겁니까......?”

 

그녀는 손에 쥔 카드키를 몇 번 쥐었다 피면서 탕비실 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매일 오후 3시, 새로 입사한 펜릴소대의 신참 카운터와 사업부와 펜릴소대에서 역할을 겸임하는 직원분이 소설에서만 보던 콩닥콩닥 알콩달콩 러브러브를 한다는 이야기를.

 

플로라 메이드 서비스는 비서 업무에 관련해서는 일류였다. 주인을 서포트하고 정적을 제거하고, 회사 내외부의 쓰레기들을 처리하는데 특화된 메이드들, 그녀는 뛰어난 메이드 아래에서 교육을 받았고 훌륭한 메이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것은 업무에 관련된 부분일 뿐이었다. 소녀는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넘어가는 수준의 나이다. 업무가 세상의 전부일 수가 없는 때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녀에게도 궁금증이 생겼다. 사랑, 가끔 나오는 드라마에서 보이는 가슴 뛰는 감정, 너무나도 진부하게 흘러가는 카운터 아카데미 속 사랑이야기에서 소녀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동경을 품었다.

 

하루는 주방담당을 찾아갔다. 붉은 단발이 유달리 잘 어울리는 화끈한 그녀는 요리를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지만 그 점만 제외하면 당장 누군가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어여쁜 여성이었다. 그렇기에 모네는 사랑에 대해서 붉은 단발의 메이드에게 물어봤다. 덤으로 카운터 아카데미에 대한 로맨스드라마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 드라마? 멋지긴 한데 너무 흔해 빠졌잖아. 마치...... 아, 드라마 이야기가 아니라고? 사랑? 흐, 흐흥! 당연히 해봤지? 좋아한다고 줄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곤란할 정도였어.”

 

은발의 메이드는 그녀의 사랑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 평소 무엇이든 거침없이 전진하면 해결된다는 듯이 행동하던 모습과는 상반된 실로 사랑이 궁금한 소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된 대답을 듣지 못했다. 사랑은 비밀이다,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너도 사랑을 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드라마 속의 사랑이 전부는 아니다. 어촌 마을의 어른들이 해주던 뜬구름 잡는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아! 맞아. 아주 새로운 맛있는 요리를 개발했는데 먹어볼래?”

 

소녀는 붉은 단발의 메이드를 뒤로한 채 재빨리 식당을 떠났다. 그녀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랑이라는 녀석의 꼬리를 잡지 못했다. 녀석은 고양이같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주제에 도시의 쥐새끼처럼 잡으려고 하는 순간 재빨리 몸을 숨겨버리는 영악한 녀석이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유능하고 뛰어나지만, 한편으로는 마주하기 무서운 사람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차분한 보라색 단발과 달리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 무표정한 얼굴로 어떤 일이든 해내는 부 메이드장은 오늘도 침구를 개고 있었다. 회사의 모든 휴게실과 탕비실을 담당하는 보라색 머리의 메이드는 자신의 구역인 휴게실에 소녀가 들어오자마자 날카로운 눈동자로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표정이 딱딱하다고 메이드장에게 혼났구나. 누구나 알 수 있는 티가 나는 행동이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사랑이 무엇일까’가 궁금해서 찾아온 건가요? 모네, 아무리 휴식시간이라지만 그런 질문 때문에 찾아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같이 이야기해볼 필요도 있겠네요. 음, 그래, 저도 어쨌든 모네의 선생님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부 메이드장은 어디선가 갑자기 많은 책들을 꺼내왔다. 표지부터 분홍색으로 가득한, 말 그대로 사랑이 넘칠 것 같은 표지를 가진 책들 위에는 모두 일관되게 로맨스소설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 메이드장은 보기 드문,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소설을 펼쳐 놨다. 그리고는 딱 봐도 하트가 가득한 표지를 가진 소설을 하나 짚은 후 소녀에게 책을 펼쳐 넘겨줬다.

 

“이 소설을 먼저 꼭 읽어보세요. 카운터 아카데미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 최근에 드라마로도 나왔죠? 그 이야기의 원작이 바로 이 소설입니다. 모네도 굉장히 재밌게 드라마를 보는 것 같던데 그렇다면 이 소설도 꼭 읽어보도록 하세요. 이 소설에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풋풋한 사랑이 모두 담겨있어요. 침식체들과 싸워야만 하는 비정한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사랑의 꽃을 피워나가는 학생들의 이야기, 때로는 의견을 대립하면서 싸우고, 때로는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총을 겨누면서 원치 않는 결투를 해야 할 때도 찾아오지만 끝내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진정한 이야기, 모네가 찾는 학생들의 사랑은 여기에 담겨있을 겁니다.”

 

은발의 메이드는 소녀의 책에 대한 거침없는 극찬과 더불어 그녀의 기세에 움츠려들었다. 애초에 부 메이드장이 이런 사람이었나? 소녀의 머릿속에서 부 메이드장이라는 인물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리고 드라마 속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분명 주방담당이 이야기했는데 어째서 부 메이드장은 그에 반대가 되는 이야기를 하는거지? 하는 생각도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하는 소녀의 앞에서 은발의 메이드는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기세에 짓눌려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부 메이드장은 반응이 만족스러웠던 듯 소설을 4권 더 집어서 소녀의 품에 안겨줬다.

 

“그 소설은 15권까지 있으니까 5권까지 일단 읽어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소설에 대해 간단히 평가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어요. 다음 주에 16권이 나온다는데 정말 기대가 되네요.”

 

소녀는 부 메이드장에게 책을 든 양손을 쓰지 않으면서 최대한 격식을 차려 인사하고 도망치듯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그녀가 뒤돌아설 때 쯤 부 메이드장은 평소에 하지 않는 손인사까지 해주며 모네를 배웅해줬다.

 

그 후 소녀는 소설을 16권까지 모두 읽었다. 교과 수업 사이 새로 개설된 소설에 대한 평가와 사랑에 대한 토론 교과는 꽤나 난해했지만 소설 속 내용을 기반으로 어떻게든 부 메이드장이 만족할 만큼의 답변을 내고는 했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 소설만으로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영악한 고양이를 잡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모네, 무슨 고민이 있나요?”

 

“아, 메이드장님. 오셨슴까?”

 

어느 순간 소녀의 뒤에 메이드장이 서있었다. 그녀는 일류였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고요한 회사의 복도에서도 기척을 내지 않고 소녀의 뒤로 붙었고 그녀가 말을 걸기 전까지만 해도 소녀는 작은 생물의 숨소리조차 느끼지 못했다. ‘만약 적이었다면 자신의 머리에는 바람구멍이 나있을지도 모른다.’ 와 같은 생각을 들게 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분홍색 웨이브가 담긴 긴 머리를 가진 메이드장은 모든 남성에게 사랑받아 마땅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여성이었고, 그 순종적인 성격과 배려심 깊은 행동은 모든 메이드의 귀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소녀의 표정을 잠시 읽은 메이드장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부터 모네가 훌륭히 정리해줘서 시간이 좀 남겠네요. 잠깐 우리 탕비실에서 이야기라도 나눌까요?”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라면 알지도 모른다.’ 소녀의 마음속에서 정체모를 믿음이 솟아났다. 물론 메이드장은 그녀가 본 인물들 중 가장 완벽한 인물이었다. 한 번도 흐트러진 적이 없었고 언제나 주인님을 승리로 이끌었다. 모든 메이드를 가르칠 만큼 훌륭한 지식과 성품을 가졌고 때로는 내로라하는 회사의 직원들조차 그녀에게 한 수 배우고는 했다.

 

탕비실에 들어온 소녀는 숨을 가볍게 내뱉고는 주위를 둘러봤다. 그녀에게 어떤 차를 준비하면 좋을까, 하지만 메이드장은 여전히 작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소녀에게 말했다.

 

“모네, 차는 괜찮아요. 또 지금은 메이드로서 얼마나 갖춰졌는지 시험하는 게 아니니까 편하게 앉아서 이야기해요.”

 

그녀의 말에 소녀는 긴장을 풀고 메이드장이 앉은 테이블 앞 의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소녀가 앉은 후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그 정적을 깬 것은 메이드장이었다.

 

“그러면 무슨 고민이 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소녀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메이드장이 화를 내면 어떻게 할까,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그 영악한 고양이를 잡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그렇기에 소녀는 기세를 담아 목소리를 냈다.

 

“그...... 사랑이라는 게 뭘까...... 요즘 생각을 많이 했슴다. 막 드라마로도 보고, 다른 선배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답이 안 나와서 요즘 고민이 좀 많았슴다......”

 

메이드장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을 본 소녀는 마음속으로 더 크게 놀랐다. 메이드장은 평소에 저런 표정을 짓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이제 어떤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움츠려들었다. 하지만 메이드장은 이내 굉장히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탄입대에 손을 넣었다.

 

휘리릭, 메이드장은 예쁜 머리빗을 집어 들고는 손에서 몇 바퀴 돌려 바르게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무릎을 두 번 톡톡 두드렸다. 그 것은 모종의 신호였다.

 

소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총총, 메이드장에게 다가가 그녀의 무릎에 살포시 앉았다. 이 신호는 소녀가 굉장히 착한 일을 했을 때, 혹은 좋은 생각을 했을 때 메이드장이 머리정리를 해주겠다는 신호였다.

 

“그러고 보면 모네도 벌써 사랑을 할 나이가 되었네요. 카운터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한편으로는 메이드장과 부 메이드장에게 수업을 듣고 있으니까 조금 답답하죠?”

 

“아님다! 부 메이드장님도 제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굉장히 열과 성을 다해서 이야기 해주셨고, 막 책도 빌려주셨고, 그랬슴다. 그리고...... 저도 메이드장님처럼 되고 싶슴다! 그래서 아카데미보다 여기서 배우는 게 좋슴다!”

 

소녀는 후훗 하는 작은 웃음소리를 들었다. 메이드장의 웃음소리였다.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메이드장은 소녀의 부드러운 은발을 가볍게 빗으로 쓸어내려주고 있었고, 소녀는 기분 좋은 빗질에 몸을 맡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이드장의 빗질에는 사랑이 담겨있었다. 소녀는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늘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정말로 기쁘네요. 하지만 언젠가는 모네도 아카데미에 보내주고 싶어요. 그래, 메이드로서 훌륭해진다면 그 때는 고등부에 보내보자고 말하는 것도 좋겠네요.”

 

메이드장의 목소리에는 애정이 담겨있었다. 햇살이 탕비실을 향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출근할 때 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남았다.

 

“분명 모두들 기뻐하겠지. 모네도 그 때가 되면 분명 좋은 사랑을 하게 될 거에요. 아니, 그 전에 좋은 인연이 찾아올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런 인연이 찾아왔을 때 모네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어야겠죠? 그러니까 오늘부터는 예쁘게 꾸미는 법도 알려줄게요. 그것도 메이드로서의 기본 소양이에요. 그리고...... 예쁜 이야기들을 가득히 해줄게요. 나중에 좋은 인연에게 말해줄 수 있을 만큼 사랑과 애정이 가득 담긴 이야기들을요. 오늘 아침은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머리 빗질부터 끝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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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모네상스 소설 지원자를 많이 못 본 거 같아서 오늘 내용을 생각하고 가볍게 적어봤는데 생각보다 모네라는 캐릭터의 매력이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음.


무엇보다 내가 대화를 많이 안쓰는 타입이다 보니까 어찌보면 플로라 메이드 서비스 이야기같은 느낌일지도 모름.


그래도 읽어주셔서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