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하고 매울수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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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해라. 

존 메이슨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괴로워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습하고 퀴퀴한 지하실 같은 냄새가 나는 방.

스마트가이의 이름에 맹세코 본 적 없는 구조였다.

두 팔과 다리는 묶인 채 의자에 구속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의도로 앉혀진 것 같진 않군.

'내가 어젯 밤 뭘했지..?'

전혀 기억은 나질 않고 머리만 지끈지끈 아파왔다.


"하아, 스마트가이의 이름이 울겠군. 스튜핏 가이가 더 어울리겠어."


존은 힘을 주어 구속을 풀어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그는 스마트가이도, 스트롱가이도 아니었던 것이다.

하, 제길. 근력운동좀 열심히 할 걸 그랬나.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던 존은 이리로 접근해오는 발소리를

듣고 숨을 죽였다. 적군이냐, 아군이냐..!


"안녕, 메이슨?"

"제인!"


평소엔 탐탁지 않은 여자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행운의 여신처럼 보였다.

단지 좀 당황한 것 같아 보였지만.


"어떤 빌어먹을 놈이 날 납치했어, 내게서 뭘 원하는진 모르겠지만

네가 온걸 보니 하늘이 날 버리진 않은 것 같군. 좀 도와줘!"

"어머, 그거 큰일인데?"


하지만 분주한 존과는 달리 제인은 차분했다. 아니 거의 움직임이

없다고 보는게 맞을까? 존은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뭐해! 그 놈이 돌아오면 나도 너도 끝이야! 빨리 푸는걸 도와줘!"

"자꾸 놈, 놈 하는데, 년일거라곤 생각안해봤어? 꽉막힌 아저씨네."

"뭐라고..?"

"그리고 이미 그 년은 돌아왔어."


존은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상황이지? 이 미친 

여자가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거야? 

그제서야 존의 마지막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났다. 

존은 제인과 함께 술을 마시다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떠올리고 나니 피가 거꾸로 솟으며 두통이 재발되었다.

존의 분노한 표정을 본 제인이 섬뜩하게 웃었다.


"저런, 기억났어?"

"너!!!!!!! 대체 무슨 꿍꿍이야!!!!!!"

"아하하하하.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나를 신이 보낸

구원자라도 되는 얼굴로 바라봐서, 이 누나 놀랐잖아요."


존은 분노로 이를 갈았다. 저 정신나간 여자를 믿는 게 아니었어. 

화를 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이럴땐 적당히 타협해서 원하는 걸

제공하고 빠져나갈 수 밖에. 복수는 그 다음이다.

존은 여전히 화가 가라앉지 않았지만 심호흡을 했다. 


"후, 그래. 내게서 뭘 원하지? 굳이 이런 방법까지 썼어야 했나?

우리는 이러니저러니해도 형의 복수를 같이 끝낸 동료잖아?"

"맞아. 우린 이안의 복수를 같이 끝냈지."


제인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가시며 존을 오싹하게 했다.


"그런데, 복수를 했다해서 이안이 돌아오는 건 아니더라고? 

오히려 살아가야 할 의미가 없어져 버려서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고 할까.."


제인은 말을 하다말고 존의 눈에 보일정도로 덜덜 떨더니 주머니를

뒤져 주사기를 꺼내 자신의 팔에 놓았다. 그제서야 존은 그녀의 

팔에 수많은 주사자국이 남아있는 걸 알아차렸다. 

엘릭서의 부작용인가?


"후우, 한결 낫네. 그래서 널 데리고 온거야. 메이슨."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데려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댁이 정신이

나간 건 똑똑히 알겠군."

"잘 알고 있네. 정신 나간 여자가 할 행동의 이유따위, 굳이

입 아프게 설명안해도 되겠지? 그야 - 나는 정신이 나갔으니까, 로

모두 퉁칠 수 있잖아. 안 그래?"


제인의 소름끼치는 미소. 여자의 미소는 흉기라고 했는데, 이건

다른 의미의 흉기 같았다. 보는 사람의 심장을 도려낼 듯한 미소..


"나는 복수를 마치고 하염없이 떠돌아다녔어. 그를 닮은 남자를

찾으러 다니기도 했고, 그가 즐겨하던 취미생활을 하기도 했지.

하지만 모두 부질 없음을 깨닫던 와중.. 너를 떠올린거야!"


제인이 눈을 크게 뜨고 존의 얼굴에 그녀의 얼굴을 들이댔다.

극심한 공포감. 침식체를 만났을 때 보다도 무서웠다. 


"너는.. 오늘부터 이안 메이슨이야."

"뭐? 아니, 이봐.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


순간 엄청난 전류가 존에게 가해졌고, 존은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이를 딱딱 부딪히며 경련했다. 그의 바지가 축축이 젖었다.


"이제 생각이 좀 바뀌었나, 이안?"

".... 네.."

"뭐라고?"

"지랄하고 있네. 이안 주니어! 이 여자를 공격해!"


존은 제인이 감성팔이를 시전하던 중 방 구석에 자신의 드론,

이안 주니어가 램프를 깜박이던 것을 확인했었다. 

손이 묶인 와중에 컨트롤러인 손목시계를 가까스로 조작해 전원을

켜는 데 까지 성공했고, 구동준비가 완료 될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이안 주니어는 위잉 하는 프로펠러음을 내며 날아올라 제인의

머리를 향해 탄환을 발사했다. 

하지만 제인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속도로 그것을 회피하고 

눈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빠르게 이안 주니어의 코어에 단검을

박아넣었다. 이안 주니어는 존에게 인사하듯 램프를 깜빡이더니

구동을 멈췄다. 


"이안 주니어!!! 이 씨발년이!!!"

"얌전히 있었으면 이 장난감 정도는 갖고 놀게 두었을텐데."


제인은 파지직 거리며 검은 연기를 내뿜는 드론을 머리 뒤로 던졌다.

존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렸다.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년!


"어디까지 했더라? 아, 이제 이안이라고 불러도 되는거니?"

"닥쳐! 나는 디트로이트 최고의 용병, 존 메이슨이다!"


존의 얼굴에 제인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상처받을 일도 참 많았지만, 이번 주먹은 지금껏 겪어온 고통과는

궤를 달리했다. 잠시 정신을 잃을 뻔 할 정도의 파괴력.

엘릭서로 신체능력을 강화시킨 주먹의 힘은 살벌했다.

순식간에 입안 가득 피가 고였다.


"아, 힘 조절 못했으면 이빨을 부러뜨릴 뻔 했네, 이안은 건치가

매력적이었는데, 큰일날뻔 했다. 헤헤."


생각하자, 존. 너는 스마트가이야. 운전하다 돌무더기를 만나도

침착하게 운전하면 빠져나갈 수 있어. 생각하자...


"으음, 아무래도 오늘은 협조적이지 않을 것 같으니까."


제인은 날뛰는 존의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존은 발버둥쳤지만

그것을 막을 방도는 없었고 순식간에 시야가 나가며 정신을 잃었다.


***


존은 몽롱한 정신상태로 눈을 떴다. 온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아, 나는 구속당해 있었지.


"안녕, 이안?"

"존이다."

"저런, 아직도 자기가 존인줄 아네. 가엾어라."


제인은 존에게 거울을 보여주었다. 거울 속 존의 얼굴은.. 

이안과 닮아있었다. 마지막 영상에서 봤던 포마드로 고정한 단정한

머리, 말끔하게 면도한 수염과 안경이 씌워진 얼굴이 존으로

하여금 더 형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형이 더 미남이구나.


"내가 자는 동안 벌인 일이냐?"

"응, 칭찬해 줄래?"

"크큭, 너도 느꼈지? 아무리 손대봐야 나는 형의 열화판이라고.

형의 잘생긴 얼굴과는 몇광년쯤 떨어져 있어서 실망스럽지 않았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보여."


제인은 두 손을 존의 얼굴에 가져다 대고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


"넌 이안과 많이 닮아있어. 그러니 이제 내게 너는 이안이야."

"또 헛소리."

"아니, 헛소리가 아니야. 너는 너 자신을 너무 형과 비교하며 

움츠려살아왔지. 이안도 너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오직 

너만이 형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화판임을 자처했어."


존의 마음에 구원이 될 만한 말, 평생 듣고 싶었던 말.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해주는 말을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사람에게 듣는 기분이란. 


"눈물나게 고맙군. 그럼 장난은 이쯤 하고 나를 존 메이슨으로

살아가게 해주면 안될까?"

"흐흥, 그건 안되지, 이제 여기서 이안으로 사는거야. 너의 바람대로."

"미치겠구만, 우리 모자란 형이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거지?

항상 페도 야동만 보고, 여자 팬티나 수집하고, 투시안경을

개발하고 싶었던 매드사이언티스트를 말이야."


값싼 도발이었다. 그저 이 상황이, 그녀 맘대로 돌아가는 상황이

맘에 안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효과는 굉장했다.


"이안을-! 모독하지마!!! 이 빌어먹을 새끼가-!!!!"

"하, 우리 형이 네 아이돌이라도 되나?"

"그는 페도 야동이 아니라 거유 밀프물만 봤어!!"


씨발, 이미 취향 조사까지 끝낸 다음이었나.

그렇지만 도발은 먹혀들었다. 여기서 이 미친 여자랑 사느니 죽는게 낫지. 


"아직, 아직이야. 아직 너는 이안이 되지 못했어. 온전히 이안이

될때까지... 너를 '교정'해줄게."


제인은 존의 이마에 키스한 뒤 의자에 미약한 전류를 흘려보냈다.

죽을 것 같진 않지만 고통은 멈추지 않았고 거슬려서 미쳐버릴것만

같은, 딱 오랜시간 고문하기 좋은 정도의 전류를.


"으그그그그극, 그아아아아악!"

"그럼 잘자. 내일은 이안이랑 인사할 수 있게 해줘."


그리고 문이 닫혔다. 



****


망할 전류덕에 잠도 못잤다. 존의 눈은 시뻘겋게 충혈됐고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갈증과 허기가 그를 괴롭혔다.


"안녕, 이안. 좋은 아침."

"...존이다."


짜악!

엘릭서로 강화된 따귀가 날아들어 존의 볼에 불을 붙였다.

메마른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고 그는 순간 혼절했다.

제인은 존을 깨우기 위해 얼굴에 물을 부었다. 

그는 정신을 차리고 입술에 흐르는 물줄기를 허겁지겁 들이마셨다.


"그래도 일단 밥은 먹어야겠지? 내가 만든 샌드위치야! 자, 아~"

"그걸 먹느니 굶어 죽고 말지."

"어머? 죽고 싶다는 말과는 달리 아깐 물을 열심히 마시던걸?"

"물은 네 년이 만든 게 아니니까."

"후후, 내가 만든 거라면 어쩔래?"

"씨발, 그게 진짜냐?"

"주의해. 이안은 그런 못된 말 안써. 그리고 아쉽지만 그냥 물이야.

다음엔 내가 만든 걸로 갖고 올테니 아쉬워하지 말구."


존은 친한척 구는 이 여자가 소름끼쳤다. 슬슬 그 날일텐데.

그는 제인에게 오늘이 몇일인지 물었다.


"음, 오늘? 17일, 목요일인데?"

"고맙군."


디트로이트 용병사무소의 경리이자 유일한 사무원, 장웨이의

월급날이 16일이다. 월급을 지급하지 않은 채 종적을 감췄으니

경찰에 신고할 것이다. 여태 겪었던 5번의 경험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땐 그 여자가 미웠는데, 그 여자가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니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제인은 존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근육은.. 시간이 지나면 빠질테고, 몸무게도 같이 줄어들거야...

문제는 .. 길이인데..."

"이봐, 뭘 그렇게 중얼거리는 거지?"


제인은 정체불명의 약을 한움큼 입에 털어넣고는 물을 들이켰다.


"있잖아.. 자는 동안 재봤는데, 오리지날 이안과는 2cm정도 

차이가 나더라고?"


오싹.

바지를 보니 벨트가 풀려있는 채였다. 자신이 만진 기억은 없는데.


"무,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고민중이야, 잘라내서 같게 만들 것인지, 아니면 더 크다는 것을

그대로 즐길 것인지에 대해 말이야.."

"잘라내면 죽어 이 미친여자야."

"나는 .. 약뿐만 아니라 의학에도 능해. 걱정마렴."


장웨이, 제발 서둘러서 나를 신고해줘. 이 싸이코에게서 나를 구해줘.


"큰 수술이 될 것 같으니까.. 일단 오늘은 푹쉬어. 참 다행이지?

내가 팔 다리 1cm정도 오차는 눈 감아주기로 했으니까."


그리고는 문이 닫혔다.


*****


제인은 헐떡거리며, 온 몸에 피가 묻은 채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헉, 허억.. 짭새새끼들이 왜 내 연구소에 들이닥쳤는지 모르겠지만, 자기를 보려고 열놈 전부 해치우고 돌아왔어, 안녕. 이안?"

"존이다, 이 미친 년아!"

"허억, 허억.. 아직도.. 쿨럭!"


장웨이가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인가. 

존은 그녀를 쓱 훑었다. 여기저기 총상의 흔적이 엿보였다.

출혈량이 많다. 이거 위험하겠군.


"하아, 하아.. 이래선.. 수술을 못하는데.."

"꼴 좋다. 그러니까 맘을 곱게 썼어야지."


이제 병력을 잃은 경찰이 수사망을 확대하겠지. 그리고 여기까지

찾아내 줄 것이다. 존에게 희망의 빛이 비쳤다.

제인은 이제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피가 묻은 손으로

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스톡홀름 신드롬일까, 어쩐지 그녀가

측은하게 보였다. 


"이안. 허억, 한번만이라도 이안을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그녀는 덜덜 떨리는 차가운 손으로 콧잔등에 흘러내린 존의

안경을 고쳐 씌워주고 미소지었다. 미친 년의 미소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미소를.


"희망을 품은 얼굴이네.. 초치는 소리 하나 해줄까? 하아..

경찰이 여기에 들이닥쳐도, 내 홍채인식 없이는 여길 못들어와.

폭파시키려고 하면 이 허술한 지하실은 그냥 붕괴될걸. 너는..

여기서 나와 함께 죽는거야. 한번만이라도 이안인 척 해줬더라면,

쿨럭! 살려줬을텐데."


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 닥쳐! 당장 이거 풀어! 날 여기서 내보내줘!"

"방금 내가 한 말중에 하나는 거짓말이야. 이제 진짜 졸리네.. 안녕, 이안."


제인이 앞으로 픽 고꾸라졌다. 존이 할 수 있는거라곤 제인의

함께 죽는다는 말이 거짓말이기를 바라며 언제올지 모르는

경찰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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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신 매운거 안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