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이른 시간이고, 또 누군가에겐 늦은 시간인 오전 11시,


느지막이 출근한 힐데가 심히 불쾌한 표정으로 휴게실에 턱을 괴고 

앉아있었다. 외모만으로는 도내 톱클래스라고 해도 손색이 없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녀의 진짜 나이, 그리고 그 진짜 나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하는 꼰대스러움과 어마어마한 실력은 누구의 접근도 감히 허락하지 않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격의없이 접근 할 수 있는 건 

힐데가 편애해 마지 않는 펜릴소대의 겁 없는 신입정도일까.


"소대장님, 오전 댓바람부터 얼굴을 왜 그렇게 구기고 있어?"

"쯧, 그럴 일이 있다."


힐데는 혀를 차며 인스턴트 커피 한봉을 뜯었다. 유미나도 질세라

세봉을 집어 하나는 타고 두봉은 주머니로 가져갔다. 


"소대장이 늦게 출근해서 내가 소대장 몫까지 업무 했어, 헤헤.

점심사주는 걸로 넘어갈게."

"원래 소대장이 없으면 그 책임은 당연히 소대원에게 향하는 거다. 생색낼 거리가 아니라는 뜻이지."

"그 반대 아냐..? 어쨌든, 오늘 늦은거랑 심기불편한거랑 관계가 있어?"


힐데는 호록, 커피를 비운 뒤 종이컵을 쥔 손에 힘을 줘 구겼다.

마치 그녀의 얼굴처럼 인정사정 없이 구겨진 종이컵이 힐데가 

얼마나 화났는지 증명했다.


"암, 있고말고.. 잡히면 아주 아작을 내줄테다.."


힐데가 중얼거리자, 유미나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아! 아작이라고 해서 생각났는데, 부사장님이 소대장 오면 아주 아작을..."


쾅.

휴게실 문이 소닉임팩트를 낼 정도로 세게 열렸다.


"하하, 스승님. 이제야 겨우 낯짝을 들이미셨군요, 전 '또' 도망이라도 

치신 줄 알았습니다."

"수,수연아. 이제 안 그런다고 했잖냐. 그리고 늦은 건 그럴만한 사정이..."

"지금 시간이 몇 신지 아십니까? 11시에요 11시! 스승님은 은근슬쩍 11시 30분이면 점심드신다고 나가셔서 4시쯤 들어오시니까,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도 적은데 이제 아예 11시에 출근을 하십니까?"


분기탱천한 이수연은 설사 화가 난 상대가 스승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었고, 힐데는 스승바라기였던 제자가 언제 이렇게 건방지게

커버렸는지 한탄하며 고개를 땅으로 떨구고 있었다. 유미나는 극대노한 

부사장 몰래 주머니에 챙겨둔 커피 한봉을 원위치 시켜놓는데 성공했다. 


"수연아, 늦은 건 미안한데, 진짜 억울하다. 그럴만한 일이 있었다고."

"후, 좋아요. 들어나 보죠."


힐데는 그녀에게 주어진 마지막 자비에 침을 꼴깍 삼키고 말을 이었다.


"내 팬티가 .. 세 벌이나 사라졌다."


이수연의 눈썹이 꿈틀했다. 힐데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게 답니까?"

"아니, 오늘 늦은 건 그 팬티를 찾다 찾다 못찾아서 브래지어랑

짝이 안맞는 걸 입고와버려서! 진짜 얼마 전에 산 맘에 드는 팬티였는데.."


뒤로 갈수록 점점 말소리가 작아지는 힐데. 


"소대장, 브라도 차? 와, 내가 소대장 사이즈였으면 안 차고 다녔을텐데, 브래지어 너무 불편하단 말이야."


겁도 없고 눈치도 없는 유미나가 힐데의 속을 긁었지만, 힐데는 

자신이 화낼 수 있는 위치가 아니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일단

속으로만 담아두기로 했다. 

그때, 휴게실 문이 열리고 주시윤이 들어왔다.


"범인 왔다아!"


유미나가 크게 소리질렀고 격전지원을 마친 후 커피나 한 잔 하러왔던 

주시윤은 소스라치게 놀라 검을 뽑아들었다. 


"범인이 어딨습니까?"

"소대장, 주 선배가 범인이야! 딱 봐도 흑막, 범인 상이잖아? 내가

요즘 인터넷에서 관상론을 봤는데, 아주 딱이야!"

"아니, 미나 양.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어이없어하는 주시윤을 바라보는 힐데는 뭔가 공감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너 이녀석.. 내가 그렇게 키우지 않았거늘.."

"아니, 스승님, 전 억울해요! 제가 뭐가 좋다고 나잇값도 못하고

하늘거리는 프릴달린 스승님 팬티를 훔칩니까!"

"시윤 군. 스승님의 팬티분실을 둘러싼 소동인걸 어떻게 알았죠?"

"어이쿠."


힐데는 분노의 레긴 파프닐로 주시윤을 때려눕히고 경찰에 인도할 

요량으로 속박했다. 씩씩거리는 분을 푸는 힐데.


"음, 뭔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는데요? 조용하게-"

"나유빈?"

"아차, 여기 온건 수연이한텐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호기롭게 등장한 나유빈은 번쩍거리는 날개를 접고 뒷걸음질 쳤다. 


"소대장, 이 사람한테서도 범죄의 기운이 느껴져!"

"저는 다크 히어로..! 범죄따위와는 거리가 멉니다!"

"꿍꿍이를 숨기고 뒤에서 흑막처럼 범죄를 저지를 관상이야!"

"동의한다, 신입... 너 내 팬티 훔쳐갔냐, 나유빈?"


나유빈은 당황스러웠다. 스승의 팬티라니, 일절 관심없는 내용이었을 

뿐더러 현재 당당한 상황도 아니었기에..


"오늘은 영 타이밍이 좋지 않군요. 다음에 뵙도록 하죠.."

"어딜 도망가!"


탐정놀이에 심취한 유미나가 도망치려는 나유빈의 옷깃을 붙잡으려 

했지만 나유빈은 날렵하게 회피했다. 


"그따위 실력으로?"

"젠장, 명중이 너무 낮아!"


하지만 화려한 스텝을 밟은 나유빈의 코트 주머니에서 하늘하늘한 프릴 

장식의 하얀색 천이 떨어진 것을, 유미나는 놓치지 않았다. 


"아앗, 안돼!"

"소대장! 이거봐!"

"나유빈, 너마저..!"


힐데는 배신감에 떨었고 나유빈은 유미나의 손에 들린 그것을

황급히 낚아챘다.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이건 스승님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 네 것이라도 되냐?"

"후,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것은 수연이 것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 

취향이 좀더 성숙해졌다고나 할까..."

"아니, 뭐가됐든 그냥 범죄아냐..?"


유미나의 어이없다는 중얼거림을 뚫고 이수연이 한마디 했다.


"그거 내거 아닌데."

"뭣이?!"


나유빈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이즈 봐봐. 내꺼 아냐."

"..! 확실히, 수연이의 펑퍼짐하고 풍만한 엉덩이 사이즈가 아냐..!

그렇다면 이것은 정말로 스승님의..?"

"그래, 내거다."

"제길, 지수 씨가 분명히 이 회사의 짱 팬티라고 했는데...! 

나이먹고도 소녀틱한 팬티를 즐겨입는 수연이의 갭모에가 귀엽게

느껴졌었는데...!"


이수연은 자신을 불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옛 전우에게 

스트라이크코드 : LSY를 먹이고자 했지만, 그녀 역시 명중이 낮아

도망치는 나유빈을 붙잡을 수 없었다. 


유미나는 펜릴이 정말 정신나간 소대라는 것을 느끼며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힐데는 나유빈이 들고 간 자신의 팬티를 

뒤쫓아 드래곤 버스터를 점화시켰다. 


잠깐, 두 벌이 각각 주 선배, 나유빈이라면 한 벌은 ...?

유미나는 이수연을 올려다 봤고, 이수연의 정장 상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것이 행커칩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후 공포에 떨었다.


싱긋.

그리고 언제 웃었냐는 듯 정색하며 이수연이 말했다.


"너처럼 눈치 빠른 꼬맹이는 정말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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