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핀 컴퍼니의 하루 일과가 끝나고 날이 어스름할 무렵, 퇴근하고 있는 직원들을 굳이 귀찮게 배웅하며(머신갑) 아무도 없는 회사 내 소등되지 않은 실을 찾기 위해(본체) 복도를 돌아다니고 있는 도중, 마주편에서 베로롱을 만났다.
"주인님."
눈이 마주친 베로롱은 나에게 멋쩍은 호칭을 부르며 정중히 인사했다.
"...베로ㄹ, 아니 베로니카."
환하고 푸근한 인상을 주며, 자신의 본분을 완벽히 해내는 플로라 메이드 서비스의 메이드장.
반가운 마음에 애칭(당사자는 모르는)으로 부를 뻔 하였지만, 말을 더듬는 척 하며 다시 제대로 이름을 불렀다.
"반갑네.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는걸."
무언가 어색한 대답에 베로롱은 순간적으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미소를 띠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저도 주인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라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퇴근 시간인데 왜 아직 회사에 있는건가?"
상황을 넘기며 묻자, 베로롱은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한 채 나에게 대답했다.
"무의미한 지출은 낭비기에, 다른 직원실에 소등되지 않는 곳이 있을까 싶어 남아 둘러보고 있었습니다."
베로롱의 말에 "나도 같은 생각이였는데!" 라며 공감하자,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하며 미소를 지었다.
"주인님은 먼저 퇴근하셔도 괜찮습니다. 직원실을 소등하는건 저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베로롱의 배려에 나는 오랜만의 동행을 놓칠 수 없어서 그럴 수 없다며 같이 돌아다니자는 제안을 건네자, 베로롱은 잠시 고민하더니 수락하여 같이 동행하게 되었다.
"탈의실이 마지막이였군."
그동안 테라브레인으로 돌아다녔던 곳을 오랜만에 직접 걸어다니며 소등을 마무리 하였다.
처음엔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 하기 위해서라며 자기보다 몇 발자국 뒤에 있으라는 베로롱에게 괜찮다고 설득하다가 의도치 않게 시간을 허비하고, 복도를 걸어다다가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마시며 서로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또 시간을 허비하고, 그러다 아무 말 없이 서로 침묵하며 걷고,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인님."
마주 걷던 베로롱이 어느새 뒤로 물러서서 격식을 차려 말하였다.
"베로ㄹ...베로니카도 수고했네."
또 말이 헛나올 뻔했지만 다시 제대로 대답하였다. 조금 전과도 같은 어색한 행동에도 베로롱은 미소를 지었다.
"시간이 늦었군요 주인님. 어서 퇴근하셔야 합니다."
베로롱의 말에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였다. 확실히 늦었다. 회사 규모가 큰건 아니지만 너무 느긋하게 행동했었다.
"정말이군. 자네도 어서 퇴근하게."
시간을 뺏어 미안하다고 덧붙이자, 베로롱은 "괜찮습니다." 라고 대답해주었다.
육체는 아니지만 정신이 늙으면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못 느낄 때가 많다던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