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더이상 남은것이 없다.

항상 그렇게 생각했다.
초라한 은신처 바닥에 실수로 엎은 시리얼마냥 실제로도 그랬고, 그것은 어떻게 보면 내 마음을 단단히 지켜주는 방어기제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나는 마음껏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나의 미래 역시 돌보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생각한 나의 미래는 초라하고 비참한 어딘가에서의 객사였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복수에서 시작된 길을 계속해서 걸을 수 있었던건 이 가볍게 느껴지는 어깨와 이런 방식이라도 세상에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란 확신이 있어서였다.

이런 일상과 나는 분명 일그러진것이지만.. 나름 괜찮았다. 일그러졌다는걸 자각하지 못했었으니.

그래. 이 기사를 읽기전의 내 이야기이다.

'민중의 수호자, 카운터 경찰 이유미 경정에게 묻다'
'한국 최초의 미성년 카운터 경찰.. 범상치 않은 실적'

아주 그냥 신문 한쪽을 뒤덮고 있는 이 기사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평소대로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심장이 멈춰버리는줄 알았다.

이유미. 그 이름 석자. 흑백이지만 이 사진속 당돌한 얼굴과 직접 달아줬던 저 머리핀은 분명..
그 날 잃어버린줄 알았던 삶의 보물.
나의 친동생이었다.

한글자, 한글자 기사를 읽어내려가며, 두 눈에 새기듯 집중한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으니까.
가슴이 뜨거워지지만, 머리는 답지 않게 조금 차갑다.

기사는 제법 많은게 담겨있었다. 소개, 활약상, 인터뷰등.. 적어도 내가 알고싶었던건 다 있었으니까. 다만 눈을 떼기 힘들어지는 문장들이 부분부분 적혀있었다. 주로.. 나를 괴롭게 하는 문장 말이다. 자랑스러운 동생의 기사이거늘, 가슴마저 차갑게 식어간다.

'유년시절 카운터 강력범죄에 영향.. 정의를 향한 열망'
'실종된 언니 행방이라도 찾는것이 소원'
'그때의 후회때문에 몸이 먼저나가는게 버릇.. 팀의 도움 많이 받아'
'최근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민병대' 수사중.. 어떠한 이유에도 살인은 인정할 수 없어'

너는..

"너는 그렇게 올곧게 살 수 있는거구나.."

너는 경찰이 되었고, 나는 살인범이 되었다.
너는 정의를 세우고자 하였고, 나는 복수를 행하고자 하였다.
너는 내게 자랑스러운 동생이지만, 나는 내게 자랑스러운 언니일까..?

너와 나는 같은 일을 겪었고, 같은 카운터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모습은.. 같지 않았다.

이러면 이건, 마치..

"내가 틀린것 같잖아.."

잘못되었더라도 옳은 일을 행하겠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다.
그런 합리화를 스스로에게 읊으며 걸어온 내게, 동생이 당당히 말하고 있는것같았다.

언니는, 당신은 틀렸다고.

목이 메이고, 앞이 흐리다.
그때도 울지 못했다.
울 때도 아니고, 울어선 안된다.
동생의 노력을 세상이 알아준 날인데, 언니가 울어서 쓸까.


아프다. 너를 만나고 싶다. 너를 보고싶다.
너와 이야기하고 싶다.
너와 함께.. 자매의 삶을 살고싶다.
하지만, 그럴수가 없다.

너에게 만큼은 거짓말 하고 싶지도 않고, 듬직하고 착한 언니이고 싶다.
네가 과거에 묶이지 말고, 앞으로 가주었으면 한다.

그날의 불꽃은.. 내가 모두 안고 갈테니.
그 불꽃을 터트린게 나라면, 마땅히 이 불꽃을 가져가 꺼트려야 하는건 나야하니까.

세상 사람 모두가 알아도, 너만큼은 몰라줬으면 한다. 만약 네가 내 불꽃의 진실을 알게된다면.. 그때처럼 망설임 없이 총구를 머리에 들이댈 자신이 있다.

그러니.. 이대로. 이대로가.. 우리에게 제일 좋다.
나는 여기서 네가 닿지 못한 쓰레기를 치울테니, 너는 그 위에서 이 바닥까지 닿을만큼 찬란히 빛나주었으면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텨야 한다. 오늘도.. 치울 쓰레기가 있으니.






"하아.. 언니는.. 살아있으려나.. 보고싶다.."

"경정님!!!"

"으악! 뭔, 야! 깜짝 놀랐잖아, 문열면서 소리지르지마!"

"하하. 중요한 일이라서.. 오, 뭐에요 그거? 서류? 경정님도 이제 공부하시는건가요?"

"개인적인거야. 알 필요 없잖아.. 중요한 일이라며, 무슨일인데?"

"드디어, 꼬리가 밟혔어요."

"누구건데?"

"민병대."

".. 지금?"

"당장은 아닌데.. 잠시 후."

"..가자. 드디어 끝장을 보겠네."

서류를 집어넣은 그녀는, 그대로 문 뒤로 사라져갔다.



'....사건 부검소견서'

1명은 가슴, 심장에 날카로운 것에 의해 즉사.
다른 1명은 후두부에 가해진 둔기로 인해 마찬가지로 즉사.

현장에 화재가 있었지만, 폐나 피부, 다른 정황을 미루어보아 화재는 피해자들의 사망 직후 일어난것으로 추정됨, 직접적인 사망원인과 관계없음.







--

얼마 전에 썼었던 유리유미 자매 이야기를 좀 짧고 막나가지 않게 다시 짜와서 쓰는중..

진짜 빨리 공식 스토리 나와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무리할 후편은 근무갔다와서 저녁에 올라갈 예정

나는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유리가 부모님까지 태워죽인 패륜은 안했을거라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