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연락수단에 대한 미련을 고이 남겨두고 함선에서 멀어져간다. 

폭발음이 쉼없이 울려온다. 가끔 뒤돌아보면 불꽃이 철판의 틈새를 뚫고 치솟는 것이 보인다. 구조물일지, 침식체일지 모르는 파편 중 하나가 자신의 발치를 구를 때도 있었다.

무선으로 기폭시킬 수 있도록 설치해둔 것들이 내는 소음과 전파가 잘 유인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자신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고 생각된 지점에서 남자는 발파장치를 작동시킨다. 전함은 수초 뒤, 큰 폭발을 일으키며 폭삭 주저앉았다.

이 주변의 침식체는 이걸로 정리됐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의 힘이 빠져나갔다.

자신의 옆구리에 등을 기대고 앉은 꼴이 된 낡아빠진 인형, 고래를 내려다보며 남자는 딸아이를 생각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미소를 지은게 얼마만이었더라. 생각해보면 기억이 끊기기 직전에 한 차례 지은 적 있던 것 같으니 오랜만은 아닌 것 같다며 실소했다.

 

그리고. 인기척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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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딸로서 죽고 싶었다.’ 그게 내 마지막 소원이었다.

눈 앞이 하수구에 버려진 물처럼 휘저어지는 와중에도 아빠의 모습 만큼은 똑바로 보고 싶었다.

몸이 무겁다. 오히려 가볍다. 힘이 쑥쑥 솟았다.

팔은 언제부턴가 보라색 빛이 나는 검은 돌맹이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목소리도 텔레비전에서 본 과학 방송에서 해준 헬륨? 아르곤? 아무튼 그런 공기를 마신 박사님이 내는 목소리처럼 이상하게 귀에 울렸다.

아빠는 나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바보. 울고있는 거 다 알아.

난 아빠의 착한 딸이니까 따라서 울 생각은 없었다. 이제 아빠와 작별할 시간인게 느껴졌다.

이제 난 내가 아니게 될 거라는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배웅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은 날 보고 “저리 가”, “괴물” 이라며 도망쳤다.

사실 난 지금까지 아빠의 딸을 연기한 괴물인게 틀림없다. 

병원의 문을 걷어차고 군인 아저씨들이 들이닥쳤다.

아빠의 험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런 말 하면 엄마한테 혼나요.

몸이 따끔거리고 이내 눈 앞이 깜깜해진다.

아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원이 이뤄졌다고 생각했다.

 

...‘나’라고 불리는 괴물이 병원에 쓰러져 있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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쫌만 쉬고 쓴다


이런거 보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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