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곧 드리겠습니다. 사실 저희도 사정이 조금 있었던지라....."
"주시기만 한다면야 저희도 뭐라 할 말이 없죠. 성실납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님."
"저.....괜찮으시다면 번호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혹여나 빚을 상환하는데 문제라도 생기면 연락할 곳이 필요한데요."
"어이쿠,그럼요. 여기 있습니다. 호라이즌 사무소 대표님께 바로 가는 전화니 안심하고 사용해주세요.
"아니,그래도 기왕이면 저와 만났던 분과 이야기하는 게 더 낫지 않을-"
"시간이 벌써 이렇게 지났군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뵙는 거로 하죠. 앞으로도 성실납부 부탁드립니다.
저희 호라이즌 사무소를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객은 무언가 더 말하려는듯 했지만 나는 끝까지 듣지 않고 재빨리 집에서 빠져나왔다. 그대로 그 얘기를 다 들어줬으면 내 전화기에 스토커 하나가 더 생겼을테니. 조금 여유로운 삶을 살다보니 이제야 이 몸이 이성한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 야구배트를 들고 온 여성을 만났을 때는 솔직히 좀 쫄았다.
이렇게라도 널 가지겠어라니 으......
딸랑~
"저 왔습니다."
책상에 앉아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던 리타가 내게 살짝 고개를 까닥였다. 손에 들려있는 담배에서 자그마하게 연기가 올라왔다.
재떨이를 버렸는데도 종이컵으로 간이 재떨이를 만든 걸 보면 어지간한 골초다.
"수고했어. 오늘은 어땠어?"
"음....60퍼센트 정도네요. 도망쳐서 흔적도 못 찾겠는 게 두 팀, 자살한 게 한 팀, 먼저 저 쪽에서 선수친 게 3팀이네요."
"칫. 골치아프게 됐네. 그럼 회수 상황은 어떤데?"
"어.....이번 채무자분들은 전부 여성이었어요."
"진작 남자 사원을 한 명 고용할 걸 그랬군. 이렇게 빨리빨리 모일 줄이야. 내가 일할 때는 기본이 3일이었는데."
"착각하지 말아주시겠어요? '저'라서 그런 겁니다. 게다가 이 얼굴로 수금하고 돌아다니면 어떤 사람들이 엉겨붙는지는 대표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 때 대표님 아니었으면 전 진작 어디 외딴 곳에 묶여있었을걸요?"
"왜? 외모도 괜찮던데. 모델에 도전하다가 실패해서 빚이 생긴 케이스였나? 그 정도 재능이라면 자기 실력때문에 망한 것 같지는 않던데."
"농담 마십쇼. 진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게다가 대표님이 알아서 잘 처리하셨잖습니까. 지원금도 줬으니 염치를 안다면 갚으러 오겠죠. 전 그냥 이렇게 돈만 수금하고 신경 끄렵니다. 아,그리고 한 가지."
나는 리타의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잡아채 재떨이에 비벼 껐다.
"실내흡연은 몸에 안 좋습니다,대표님."
"......"
아무 말 없이 나를 살짝 쏘아보는 리타에게 한 마디 더 했다.
"미성년자한테 간접흡연이 얼마나 나쁜지 잘 아실텐데요? 우리 귀여운 대시가 콜록거리는 거 보고 싶어요?"
리타는 내 말을 듣고 조용히 재떨이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 지을 필요까진 없잖아.
그러고보니 대시랑 호라이즌은 어디 간 거지?
내 표정을 보고 리타가 먼저 선수를 쳤다.
"둘은 따로 저녁 찬거리좀 봐오라고 시켰어. 꼬맹이도 슬슬 세상 물정을 좀 알아야지."
"호라이즌님이 같이 갔다고요? 그 몸으로?"
"인공소체끼고 나갔으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 이래보여도 꼬맹이 혼자 돌아다니게 냅둘정도로 못된 사람은 아니니까."
"진짜 못된 사람이 아니면 대시한테 진실을 알려주는 것도-"
"그 이야기 한 번만 더하면 그냥 쫓아내 버릴 줄 알아. 그 애는 아직 그런 것까지 알 필요 없어. 이미 상처를 많이 입은 아이야. 아무리 너라도 그걸 멋대로 후벼파는 건 용서 못해."
대시의 부모님에 관한 사실은 리타의 역린이었다. 이 사무소에 오고 며칠 안 된 나는 그냥 이 둘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리타에게 의견을 말했다 그대로 목이 달아날 뻔 했다.
이후로도 살짝씩 대시에게 진실을 알려주자는 언질을 주고 있었지만 이 주제에 관해서만큼은 리타는 요지부동이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대시가 자신을 미워할까봐 그러는 거겠지. 둘의 마음을 다 알고 있는 나로서는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상사인데다 나보다 힘도 센 사람이 까라면 까야지.
오늘도 일단 나는 꼬리를 내렸다.
".......예예. 그럼 전 이만 들어가 쉽죠. 진짜 대표님 오시면 불러주십쇼."
"가기 전에 한 가지만 미리 말해놓지."
"뭡니까?"
"이틀 후에 성냥팔이와 모임이 있다. 그 자리에 네가 동행해줘야 할 것 같다.."
"네? 그 쪽에서 저희를 찾을 이유는 없을 텐데요. 아르셰니코 패밀리는 이미 맥이 끊겼는데 지금 와서 리타 씨를 부른다니."
"그런 허례허식에 집착하는 놈들이었으면 진작 망했겠지. 우리가 자기들 구역에서 너무 많이 뺏어먹는다 생각하고 내린 경고다. 네가 오고 나서 우리 측 수입이 미친듯이 뛰어버렸으니 배가 아픈 거야."
"......"
"그 쪽에선 당연히 그 원인을 찾을 거고. 그것 때문에 내가 너를 데려가는 거다."
"아하. 뺏기기 전에 미리 잡아놓겠다는 거군요."
"마피아들 앞에서 안 쫄을 준비나 하라고."
"대표님, 아니, 리타 씨. 맹세컨대 그 방망이보다 무서운 게 아닌 이상 제가 겁먹을 일은 전혀 없을 겁니다."
"훗.....그렇다면 안심이군."
내가 농담을 하는 줄 안 리타가 살짝 웃었다.
난 진짜 그 때가 제일 무서웠는데.
내가 이 호라이즌 사무소에서 일한지도 벌써 몇 달이 되어간다.
생판 모르는 외국에서 길을 잃고 탈진했다 깨어나 무릎꿇고 빌기를 몇 시간,다행히 나는 이 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일한 덕분에 돈은 남부럽지 않게 번 데다가 내가 수금률을 끌어올린 덕에 사무소의 규모도 몇 배는 더 커졌다.
그래봤자 드라마틱할 정도로 생활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서 시간을 보내며 리타와 대시를 비롯한 사원들의 사정도 흘러가는 듯한 이야기로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이 사무소의 사정을 아는 나로써는 그저 스토리 다시보기를 보는 기분이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게임에만 존재하던 이들이 내 눈앞에서 직접 숨쉬고 말하는 것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차이가 있었다.
대시가 깡총거린다던가. 호라이즌이 충전한다던가 그런거.
그 모습들은 대한민국에 살던 김카붕이라는 사람 대신에 현재 이 호라이즌 사무소에 살고 있는 관리자로서의 나를 더욱 각인시켰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이 훨씬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눈만 뜨면 귀여운 여자아이가 싱글거리면서 나를 깨워주고 삼시세끼 화려한 이탈리아식 식사에 꼬박꼬박 들어오는 이전 세계의 몇 배는 되는 월급까지.
하지만 그런 내 희망찬 생각은 수금 리스트를 보자마자 빠르게 식었다.
"씨발. 여기 수금차례 벌써 오네."
내가 들어온 후 대시와 리타가 나눠하던 수금 임무는 나와 리타가 양분하는 것으로 바뀌고 대시는 집에서 느긋하게 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나로서도 대시가 괜히 밖에 돌아다니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흔쾌히 받아들였고.
때문에 대시가 맡던 사람들의 목록을 방 침대에 누워 뒤적뒤적 살펴보던 중 제일 피해야 하는 사람의 이름을 찾고 만 것이다.
'윌버'
희대의 쓰레기. 자기는 한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자기가 모든 일을 다 한것마냥 생색내는 새끼.
그리고 원래의 스토리대로라면 내 아늑하고 편안한 안식처를 개박살 낼 장본인이기도 하다. 정작 본인은 그런 잘못을 했다는 자각도 없을뿐더러 그런 짓을 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 씹새끼를 어떻게 조지지?
윌버가 사무소를 완전히 비틀어버리는 건 다이브에 리타와 대시가 동행한 이후이다. 지금 시점에서 윌버는 그저 빚을 좀 많이 진 일반인에 불과하다. 물론 재수 없는 건 지금도 똑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먼저 죽여버릴 수는 없다.
리타가 이유를 물었을 때 이 새끼가 나중에 당신을 이면세계에 버리고 도망쳐서 당신이 대시를 침식체로 만들거에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성냥팔이 측에 은근슬쩍 먼저 처리해달라고 언질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성냥팔이는 윌버를 쉽게 죽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나라도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도 뻔뻔하게 고개들고 다닐 정도의 사람을 그냥 죽이는 건 아까울 것 같다.
평생 부려먹거나 하겠지.
멍하니 고민하던 중 밑에서 대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붕 씨~! 언니가 밥 먹게 내려오래요!"
에이, 몰라. 일단 지금 급한 일부터 생각하자. 리타가 말했듯 성냥팔이 측에서 안 그래도 요즘 급성장하기 시작한 우리 사무소를 고깝게 보기 시작한 눈치다. 대시한테도 주의를 줘야지.
과거 커뮤니티에서는 대시를 개와 닮았다는 이유로 댕시라고 불렀었는데 지금 대시를 매일 보고 있는 입장에서 말하자니....음......
개? 그런 더러운 동물이랑 우리 대시를 어딜 비교해?

스피라는 윌버가 싫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