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척 보면 알 수 있는 모습이군요."

 

 

 

요인 구출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직후, 작전부에서 그토록 강조하던 '중요 요인'을 마주한 두 펜릴 소대원의 심정이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 있었다.

 

 

 

[후우...... 엘레강스한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참 과격하고 야만적인 구출 작전이군.]

 

"......"

 

"......"

 

[하마터면 나의 델리케-잇한 부품들이 망가질 뻔했지 않나? 여기, 여기 회로 트러블 난 것 좀 보게. 이러면 AS도 못 받아!]

 

"......"

 

"......부술까?"

 

"진정하세요 미나 양. 일단은 구출대상인데요."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미나는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얹고 '구출대상'을 내려봤다. 요리보고 저리봐도 스O지밥이 해파리 먹물 끼얹은 거랑 비슷하게 생긴 네모네모 로봇이었다. 껄렁껄렁한 말투도 짜증나는데 그 목소리가 변조되어 흘러나오는 기계음마저 거슬려 죽을 것 같았다.

 

 

 

"아니...... 그니까 잠깐만. 이 고철 로봇 때문에 내가 지금 첫날부터 야근 뛰고 있는 거라고?"

 

[로봇이라니 뭘 모르는 군! 이건 최첨단 사이언-스와 테크놀라-쥐를 조합해서 만들어낸 대인기피용ㅡ]

 

"닥쳐."

 

[네.]

 

 

 

발로 차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며 미나는 이를 갈았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첫 날부터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아니, 침착. 침착하자. 어쨌든 임무는 해냈으니까 된거잖아. 난 돈만 제대로 받으면 돼.'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애써 진정한 미나는 껄렁하게 자신의 무기를 어깨에 메며 뒤를 돌아봤다.

 

 

 

"소대장?"

 

"......응?"

 

 

 

한 박자 늦게, 이 팀의 소대장이라는 꼬맹이 백발 여자가 반응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달리 어쩐지 다른 반응이 한 순간이었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같은 위화감을 느낀 것인지 시윤이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봤다.

 

 

 

"스승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아니... 아니다. 작전부와 통신해서 보고나 하도록. 신입, 넌 사주경계하고."

 

 

 

손을 저으며 등을 돌리는 그녀의 지시에 시윤도, 미나도 곧 그런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각자 할 일로 돌아갔다. 시윤은 은근슬쩍 미나에게 통신을 넘기려 하고, 미나는 어림 없다는 바람을 쌩 일으키며 그 자리에서 멀어지고.

 

때문에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했다. 다시금 그저 웃기게만 생긴 로봇으로 향하는 그녀의 서늘한 시선을.

 

 

 

[......]

 

"......"

 

[으, 으음, 크흐흠! 거 이런 곳에 오래 있어봐야 좋을 거 없지 않나...?]

 

 

 

로봇이 슬그머니 그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운다.

 

시선만으로 웬만한 침식체를 꿰뚫어버릴 기세의 펜릴 소대의 소대장, 힐데의 눈은 그런 로봇으로부터 떨어질 줄을 모른다.

 

이윽고, 그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어이."

 

[무, 무슨 일인가?]

 

"이건 또 무슨 장난질이냐."

 

[장난질이라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것보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초면부터 험한 말으악!?]

 

 

 

뻐억, 소리가 울러퍼지고 순간 업무를 떠넘기려는 시윤으로부터 도망가고 있던 미나가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바... 발로 차지 말게! 고장난다고!]

 

"스승님, 그거 팔이 덜렁거리는데요?"

 

"그래? 그럼 다른 쪽 팔도 덜렁거리게 해서 균형을 맞춰 줘야겠네."

 

[히이익?!]

 

 

 

[스승님?]

 

 

 

힐데의 발길질이 날아간 순간 그녀의 인터컴에서 이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거죠?]

 

"우리 요인께서ㅡ"

 

 

 

퍼억ㅡ

 

 

 

"운동 부족이신 것 같아서!"

 

 

 

뻐억ㅡ

 

 

 

"내가 체중 감량을 좀!"

 

 

 

까앙ㅡ

 

 

 

"시켜드리고 있지!"

 

[히이익! 내 소장품 컨테이너가?!]

 

"헛소리 집어치고 빨리 말하시지... (OO) 이건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거지?"

 

 

 

로봇의 머리를 움켜쥐고 무언가를 속삭이는 힐데의 목소리 일부는 그녀가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더 낮추는 탓에 들리지 않았다. 무슨 이름을 부른건가, 하고 미나가 생각하던 때 다시 공용 통신으로 들려오는 이수연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즐거운 폭력 활동 시간을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지금 그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해당 지역의 침식체 활동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어요. 다수의 침식 쐐기가 스승님을 향해 이동 중이군요. 이대로면 곧 포위될겁니다.]

 

"뭐? 그게 무슨ㅡ 아니. 이럴 때가 아닌가."

 

 

 

한숨을 쉬며 그녀는 찌그러져가는 로봇으로부터 발을 떼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가서 하자고."

 

[네, 그러도록 하죠.]

 

"......특히 당신."

 

[하하.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

 

[저, 저기 더 맞으면 진짜 부숴저요... 때리지 마세요......]

 

 

 

이젠 서늘하다 못해 살벌한 기세에 태연하게 대응하려던 로봇이 금세 쭈그러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저 멍청하게 생긴 로봇 뒤에 암약해 있는 '그'는.

 

찌질하게 오들오들 떨고 있는 '시늉'을 하며 자신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카메라 렌즈 뒤에 있는 '그'는.

 

지금 분명 웃고 있으리라.

 

 

 

 

 

*****

 

 

 

 

 

그 후 침식체 무리를 뚫고 복귀하며 겸사겸사 앞을 가로막은 3종 침식체를 썰어버리면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본인의 월급이 힐데가 부숴뜨린 로봇의 부품값으로 깎여 나갔다는 소식을 들은 신입의 절규를 그럭저럭 넘기며,

 

그리고 그 고생을 하며 구출해온 (자칭) 대인기피용 반쟈율 원격조작 머시노이드 인터페이스 머신-갑-로보 Mk.2가 코핀 컴퍼니의 신임 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그 과정에서 회사를 말아먹은 주범으로서 이수연에게 수 년 묵은 원한이 담긴 온갖 바가지를 긁히며,

 

그 모든 과정을 참고 넘긴 그녀는 씩씩거리며 회사 복도를 걸어가고 있었다.

 

김하나 부장을 포함해 그녀를 알아보고 인사하려던 남은 직원들이 살벌한 기세에 움찔하며 도로 멀어졌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식......!'

 

 

 

웃기지도 않은 철덩어리를 뒤집어 썼지만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오랫동안 잠적해 있던 그가 돌아왔다.

 

그녀는 이수연의 바가지가 끝나기 무섭게 은근슬쩍 그 자리에서 튀려던 머신 갑을 잡고 탈탈 털어댔고,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수연이 뒤늦게 그녀를 보고자 하는 '귀빈'이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불안정하게 덜렁이다가 끝끝내 떨어지고 만 로봇 팔 수리비가 펜릴 소대 활동비에서 추가로 청구될 것이란 말을 들은 신입이 아예 입에 거품을 물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건물 안, 복잡하게 꼬인 미로의 중심처럼 사람의 발길이 드문 구석까지 그녀는 한 걸음에 달려가다시피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요란한 꽝, 소리를 내며 어느 방의 문이 부숴질 기세로 열렸다.

 

넓은 빈 방 한 가운데, 열린 출입문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위치의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그녀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 면상을 마주하는 순간 반사적으로 짜증이 치솟았다.

 

멍청한 로봇 따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무슨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저 차분하고 짜증나서 때려주고 싶은 얼굴이란!

 

 

 

"오랜만이군, 전대장. 아니... 이젠 소대장이라고 불러야 하나?"

 

"오랜만은 개뿔이!"

 

 

 

저절로 날아간 주먹이 쓸 데 없이 잘생기기만 한 얼굴 바로 앞에서 가까스로 멈췄다.

 

농담이 아니라, 때리면 이 남자 죽는다.

 

멀쩡하고 능글맞게 생긴 주제에 더럽게 허약해서 자기 정도 되는 카운터가 툭 치면 진짜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지금 바로 창문을 열고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멍석에 말아서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그녀는 이를 갈았다.

 

 

 

"머신 갑이라고? 하, 네이밍 센스 구린 건 여전하군. 매 세계마다 그놈의 갑에 집착하는 이유가 진짜 뭔데? 그리고 테라브레인 정도 되는 거 가지고 저렇게 장난을 쳐도 되는거야?!"

 

"어차피 내 거니까 이 정도는 뭐......"

 

"이...! 후우, 후우...!"

 

"그래, 침착하게. 침착하게 따라하게. 스읍-하, 스읍-하ㅡ"

 

"네놈 때문에 침착하지 못하는거다!!"

 

"하하, 짜증내면 피부에 좋지 않네 힐데 전대장. 자네 나이도 꽤 되지 않나? 어디 보자, 올해로 자네 연세가ㅡ"

 

"그냥 죽어!!!"

 

 

 

꽈직ㅡ

 

소리와 함께 그녀의 주먹이 꽂힌 곳은 다행히 '관리자'의 얼굴이 아닌 소파 위에 있던 쿠션이었다.

 

쿠션이 덜렁덜렁 꽂힌 손을 들고 씩씩거리는 그녀를 보면서도, 그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웃음지을 뿐이었다. 그에겐 익숙한 광경이었으니까 말이다.

 

 

 

"후우... 후우......!"

 

 

 

거친 심호흡과 함께 부들부들 떨리는 그녀의 몸의 진동이 잦아들었다.

 

오랜만이었다.

 

평안한 속에 손을 집어넣어 휘젓다가 뒤틀고 뒤집어버리는 이 짜증나는 감각.

 

하, 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팔에 꽂힌 쿠션을 빼 던지며 관리자를 흘겨보는 그 눈엔 평소의 그녀다운 서늘한 위엄이 회복되어 있었다.

 

 

 

"......그래서, 뭐 하다 이제 튀어나온거지? 난 하도 소식이 없길래 다른 곳으로 튀었나 했다."

 

"그랬으면 이 세계는 진즉에 망했고 이렇게 얼굴 볼 일도 없었겠지. 나야말로 자네가 뭐 하고 지냈길래 회사까지 말아먹고 잠적한건지 궁금하네만."

 

"안 말아먹었어."

 

"솔직히 내가 인수 안 했으면 이미 망했네."

 

"......"

 

"이수연 부사장이 그래뵈도 꽤나 많이 참아준거네. 나중에 생일 선물이라도 제대로 챙겨주게나."

 

"역시, 수연이에게도 접근한건가?"

 

"자네가 없는데 내가 뭘 어떡하겠나. 그 친구도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졌더군."

 

"흥, 세월이 약이지."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전혀 바뀌지 않는 게 있기도 하고 말일세."

 

 

 

어깨를 으쓱하며 힐데를 바라보는 그 그윽한 눈빛이ㅡ 깊었다.

 

깊은 심연을 바라볼 때의 빠져들 것 같은 감각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

 

"......"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반응한 쪽은 힐데였다.

 

정확히는, 질 수 밖에 없던 쪽은 그녀였다.

 

관리자의 시선으로부터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나에게 할 말이 있을텐데."

 

"딱히? 자네가 그 순간에 그렇게 판단했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딱히 자네를 원망하거나 그러진 않네. 진심이니 믿어도 좋네. 자네의 가장 오래된 친구로서 지낸 세월을 걸고 말하는 거니 말야."

 

"......"

 

"그리고, 자네의 선택으로 인해 새로운 기회를 잡은 것도 사실이니."

 

 

 

관리자의 말에 그녀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그 녀석을 데려온 거. 역시 너도ㅡ"

 

"어떤가? 난 이번을 내 마지막 기회로 삼고 있네. 방주의 에너지를 모두 봉인에 써 버려서 말야."

 

"...!!"

 

"실패한다면 다음은 없을 것 같군. 자네와 상의하지 못 한 점은 유감이네만, 이걸로 쌤쌤으로 치는 게 어떻겠나."

 

"......가능한건가?"

 

 

 

지금껏 흔들린 적 없던 그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오직, 이 남자의 앞이기에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다.

 

 

 

"글쎄."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대답은,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해 볼 수 밖에 없겠지. 그러기 위해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네."

 

 

 

관리자는, 그녀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힐데 소대장."

 

"......할 수 없군."

 

 

 

한숨을 내쉬며, 힐데는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 얼굴엔 어느덧 잔잔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놀랄 법한, 편안하고 따뜻한 미소였다.

 

 

 

"정 그렇다면 한동안은 어울려주지. 대신 나중에 후회하진 말도록...... [관리자님]."

 

 

 

마지막 게임을 위한 무대가 마련된 바로 그 시점에서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ㅡ

 

[최후의 발키리]가 마침내 관리자와 재회했다.




-----




제목 그대로 만약 힐데가 초장부터 관리자의 정체를 꿰뚫어봤고 그 때문에 둘이 직접 대면하게 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if 형식으로 써봤음.


관리자랑 힐데 관계가 분명 가볍진 않을텐데 인게임에서 언급되는 게 하나도 없길래 답답해서 써봤는데


다음 메인 스토리 챕터에서는 과연 이게 풀릴지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