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집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요."



심소미 대리가 언젠가 털어놓았던 아주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였다.


그녀가 들고 있던 지팡이는 이미 부러진 채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다. 그녀의 시체는... 찾을 수 없다. 자신들의 몸을 지키기에도 급급해 그녀의 시체를 침식체 한복판에 버려둔 채 유품이라 할 수 있는 지팡이만을 들고 도망쳐왔다.



"이봐요, 팀장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인 최강산이 보기 드물게 인상을 쓰고 있다. 

팀장, 박현수는 묵묵부답.



"얼른 처리하고 빠르게 퇴근하자고."



다소 멍한 표정으로 그의 입버릇이었던 말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릴 뿐.



"팀장님!!"


"아, 그래. 강산 군. 오늘도 고생이 많네. 역시 용병들이랑 같이 일하기는 조금 껄끄럽지? 그래도 너무 성내지는 마. 상부에서 귀찮게..."


"이봐요!!"



그의 말을 끊고 최강산은 박현수의 어깨를 잡고 거칠게 벽으로 밀어붙였다.



"정신 차리라고!!"



두툼한 주먹이 박현수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퍽, 하는 소리. 하지만 그의 손만이 아플 뿐이다. 박현수는 자신보다 등급이 높은 카운터. 무기를 쓰는 것이 아닌 이상 단순한 육체적의 부딪힘으로는 생채기조차 낼 수 없다.



"음. 그래봐야 나는 D급밖에 안 되는 수준이니까."


"그러니까 정신 차리라고.... 개새끼야!!"



이곳엔 단 둘밖에 없다. 폐허를 도망치다 발견한 작고 허름한 밀실. 


새로운 좌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데이마인 사업부는 채굴팀에게 무리한 요구를 시작했다. 분명 무리라며 박현수 팀장이 필사적으로 저지했던 것을, 최강산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그는 끝끝내 굴했고 결국 그들은 이곳에 있다.


다이브 심도 9, 통칭 46층.



"그저 좋은 비즈니스일 뿐이네."



그 비즈니스에서 갈려 나가는 사원들은 그저 소모품일 뿐이다. 카운터가 귀한 시기라느니 어쩌느니, 그런 건 아무 의미 없는 말. 돈만 쥐어주면 얼마든지 고심도로 다이브할 머저리들은 넘치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머저리들이었고.


분명 고순도 이터니움인 것은 일천한 경력의 최강산조차도 알아볼 수 있었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그것은, 평소에 봐왔던 칙칙한 검정으로 물든 보랏빛이 아니었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을 간과했다. 고순도 이터니움은 고등급 침식체를 불러온다는 것을.


이것이 그 결과다.



"아, 소미 양. 자네도 퇴근해야지?"



병신 새끼.

그가 바라보는 곳에는 아무도 없다. 여느 때처럼 청량한 목소리로 팀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목소리의 주인은 이미 없다. 



"이미 구조신호는 보내놓았습니다."

"심도 8의 45층에는 평소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많으니 금방 올 겁니다."



정신을 놓은 채 허공을 향해 대화하는 박현수에게 최강산이 말했다. 과연 그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최강산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외엔 믿을 사람이 없다.


딱히 영웅심에 불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으니. 영웅이 될 만한, 자신보다 한참 뛰어난 카운터들은 숱하게 보아왔다.


동료심도 아니다.

자신이 책임지지 못할 일에 발을 들여놓고 아껴 왔던 막내가 죽자마자 정신을 놓아버리는 저딴 녀석은 동료로 인정해주기 싫었다.


인류애도 아니다.

지금 침식체의 시선을 끄는 것에 인류의 존망이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박현수 팀장을 살려보내고 싶을 뿐.


우리들은 소모품이 아니니까. 우리들은 이곳에 있었으니까.

모두가 죽어버리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 나는 이 방의 바깥에서 뛰어다니는 침식체를 유인해 다른 곳으로 향할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살아남으십시오, 박현수 팀장님."



사람이 진정 죽는 것은 잊혀졌을 때.

잊혀지지 않기 위해,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 모순을 깨닫고 그는 웃었다.

웃을 수밖에 없지 않는가.

남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기 위해 죽음을 향해 나아가다니.

그래서 웃었다. 웃고 또 웃었다.


철문을 열고 최강산은 달려간다. 구조신호기를 방안에 놓아둔 채, 허공을 향해 대화하는 박현수 팀장을 뒤로 하고.

한껏 목을 높여 외치며 침식체들을 이끌고 저 멀리 달려간다.



"오늘은 죽기 좋은 날이다."








죽음을 향하여 - 일반인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