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임님. 혹시 요즘 많이 피곤하세요?”

   

여느 때처럼 업무를 보던 나유빈에게 별안간 옆에 앉은 여직원이 건넨 질문이었다.

   

“네?”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질문에 나유빈은 곧바로 대답을 돌려주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에 나주임님을 보면 얼굴빛도 많이 안 좋아 보이고 업무에도 전처럼 집중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 혹시 피로가 쌓인 건가 싶었죠.”

   

피로라니. 

   

비록 지금은 사정이 있어 주변인들에게 감추고 있지만 나유빈은 카운터였다. 그것도 한때는 최전선에서 수많은 침식체들과 싸워왔을 정도로 제법 강한 카운터.

   

이런 경력이 없더라도 일반인들보다 뛰어난 체력을 가진 카운터가 고작 동네 동사무소 업무로 피곤해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장님! 또 중요한 서류를 세절함에 잘못 버리시면 어떻게 해요! 이번 주에만 벌써 다섯 번째에요!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한결 같을 수 있지?”

“미, 미안해요…….”

   

…뭐, 세상일이 다 그렇듯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이었다. 물론 나유빈은 구석에서 구박을 듣고 있는 계장처럼 소수의 예외에 해당하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하하. 딱히 피곤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요? 그럼 다행이지만… 그래도 정말 힘드시면 푹 쉬셔야 해요. 나주임님 여태까지 병가도 한 번 안 쓰셨잖아요.”

“네. 정말 힘들면 그렇게 할게요.”

   

미소로 여직원을 돌려보낸 후, 나유빈은 조심스레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감정을 숨기는 건 제법 자신 있었는데…….’

   

나유빈은 최근 자신이 겪은 일련의 사건을 떠올려 보았다. 

   

루크레시아, 이수연, 주시윤, 유미나. 다양한 면면이 머리를 스쳐지나갔지만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단 한사람. 마치 신화 속 여신 같은 외모를 지닌 은발금안의 소녀였다.

   

‘…스승님.’

   

힐데.

   

과거 자신이 누구보다 믿고 의지했던 인물. 지금 자신의 행동방침은 과거의 그녀에게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나유빈. 실수로라도 용인을 죽이지 않게 조심하도록.’ 

   

뿌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에 나유빈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고작 떠올리는 것만으로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 정도라니.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지난 번 사건이 자신의 가슴에 남긴 파장은 생각보다 더 커다란 모양이었다.

   

‘이건 좋지 않은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 봤을 때 이런 감정을 품고 있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자신을 노리는 상대 앞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약점을 하나 더 노출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감정을 추스를 혼자만의 시간이 조금 필요할 듯싶었다.

   

‘병가라…….’

   

문득 방금 전 여직원과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녀 말대로 자신은 수년간 이 동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병가한번 쓴 적 없었으니 주변인들도 크게 이상하게 보진 않을 터였다.

   

물론 사유에 ‘마음의 병’이라고 적어 넣을 순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 정도야 적당히 꾸며서 적어 넣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

   

마음을 정한 나유빈은 병가계 양식을 출력한 후 차분히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작성을 마친 병가계를 들고 ‘계장 이지수’라는 명패가 있는 상사의 자리로 향했다.

   

“병가결재를 해달라고?”

   

나유빈이 가져온 병가계를 본 이지수는 안대로 가리지 않은 한쪽 눈에서 숨길 수 없는 당혹스러움을 내비쳤다.

   

“네. 계장님. 아무래도 몸이 영 안 좋은 것 같아서요.”

“대, 아니, 나주임이 병가라니… 어디 많이 아파? 크게 다친 건 아니지?”

“하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하루정도 쉬고 싶어서 그래요.”

“그럼 다행이긴 한데…….”

   

말과는 반대로 이지수는 마치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정말로 자신을 이곳에 혼자 버려두고 갈 거냐고 묻는 것 같은 눈빛.

   

‘혼자서 4종 침식체를 처리해달라는 명령을 했을 때도 이런 표정은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러나 이미 마음을 굳힌 나유빈은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녀의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결국 언제나 그랬듯 먼저 마음을 꺾은 건 이지수 쪽이었다.

   

“하아… 알았어. 나주임이 그렇게 까지 한다는 건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거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장님.”

“나주임 잠깐만!”

   

가볍게 고개를 숙인 나유빈이 등을 돌려 동사무소를 벗어나려는 순간, 그 어느 때보다 다급한 목소리로 이지수가 나유빈을 붙잡았다.

   

“네? 왜 그러세요. 계장님?”

“그게…….”

   

이지수는 머뭇머뭇 나유빈이 책상위에 올려둔 병가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거… 결재는 어떻게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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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줘서 고맙다.


7지보고 공익이 너무 불쌍해서 써 봤음.

3편정도로 생각하는 짧은 단폄이야. 

해피엔딩으로 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