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흰색 베이스 벽지에 상아와 원목가구로 장식된 

프리드웬기관 응접실. 

기관의 상징인 사자가 포효하는 자세가 금실로 수놓인 태피스트리 아래서

부분부분 파랗게 꾸며진 검정색 새틴 드레스를 입은 미소녀가

고운 다리를 꼬고 찻잔의 향기를 음미하는 풍경은 우아함이라는

개념을 그림으로 그려낸 것만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꼬았던 다리의 방향을 반대로 바꾸며 시계를 흘끗 쳐다 본다.

올 시간이 되었는데.


우당탕 쿵.

신사는 못 되는 군요.


"어이, 홍차폭탄! 나 왔다."

"어서 오세요. 여전히 노크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으시네요."


로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문이 훤히 열려 있는데도 노크를 해야 해?"

"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두드릴 문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로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고 문을 대충 두어 번 두들겼다.


"이제 됐냐?"

"앞으로는 잊지 말도록 해요. 앉으시길."


로이는 푹신한 의자가 부서져라 세게 엉덩이를 처박아

엘리자베스의 눈총 1스택을 적립하는 데 성공했다.


"정말이지.. 하나를 고치면 다른 하나가 말썽인게 꼭 어디

게임 코딩같네요."


엘리자베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비아냥거렸다.


"아~ 협력전 뛰고 왔더니 피곤하네! 브리트라 잡는데도 

뻔질나게 불려다니고 말야. 우리 아가씨는 한가하셔서 그런가

불만이 끊이질 않아 아주."


눈총 2스택.


"저도 한 땐 건틀렛을 지배했거든요?"

"아 맞아 맞아. 한 땐 그랬지. 한 땐."

"류드밀라 씨와 이수연 씨, 로자리아 씨를 컷하는 데 저만한

사람이 없었다구요!"

"근데 요즘은 왜 안 쓰이실까?"

"그.. 그건, 다른 누렁이가 상향을 받으면서 유효타격수니 뭐니

하는 쓸데없는 보정이 생겨서.. 하여튼 누렁이들이 쌍으로.."

"그리고 너는 너무 무겁다고."

"무겁..! 숙녀에게 어떻게 그런 무례한 말을..."


엘리자베스는 기어이 로이에게 얼음 같이 차가운 눈빛을 보냈지만

눈빛과는 다르게 얼굴은 왠지 모를 분노로 달아올라 있었다.


"저도 재무장해서 샤오린 양 처럼 화려하게 부활할거거든요?"

"어, 너 그거... 조심해야 될 텐데..."

"왜요! 협력전, 레이드, 업받으면 건틀렛까지 나가시는 분이

고작 제가 재무장받는다고 질투하는 건가요?"


로이는 전에 없게 격분하는 엘리자베스의 가녀린 손목을 쥐었다.

내색은 안했지만 그동안 쌓인 게 제법 많았던 모양이었다.


"이거 놔요! 저도 건틀렛이든 격전지원이든 어느 곳에서나 필수로

쓰이는 적폐가 될 거에요! 로비만 지키는 건 이제 지긋지긋해요!"

"안 돼!"


로이의 다그침에 놀란 엘리자베스는 낙담한 표정을 짓더니 침울해졌다.


"그러면 저는.. 영원히 사장님들한테 잊혀진 채로 있으라는 건가요? 

저도, 다시 하늘에서 우아하게 땅에 칼을 내리꽂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데.."

"나는, 네가 재무장으로 적폐가 돼서 사람들에게 온갖 욕을 다 

듣는 걸 원하지 않아."

"네?"


엘리자베스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눈 앞의 의외로 성실한

청년은 진심어린 얼굴로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저정도로 잘난 사람이 이렇게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된다는 게..."

"나한테 필요해!"


두근.

로이의 난데 없는 고백 비슷한 일갈에 어째선지 두근거린 엘리자베스.


"이 세상에 단 한명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일테니까,

사실 오직 나만의 너였으면 좋겠으니까.. 그리고 이렇게 협력전이랑

레이드 갔다온 다음에 항상 날 맞아주는 너를 보면 그 뭐랄까,

돈 벌고 돌아온 남편을 반겨주는 아내같아서 귀엽다고.."


제 딴에도 부끄러운 말을 횡설수설 쏟아내는 로이를,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와락 껴안았다.


"로이, 당신이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주는 줄 몰랐어요. 기뻐요."

"하,하하.. 지금 생각하니까 엄청 쪽팔린데..."


엘리자베스는 로이를 더 세게 껴안은 뒤 귓가에 속삭였다.


"그래도 재무장 떡상은 포기 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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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출품할 팬드 야설은 곧 써오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