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 내부에 다다른 제이크가 콘크리트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놀란 눈의 카일, 박살 난 전장, 삐뚜름하게 웃으며 제이크를 올려다보는 침식체가 보였다. 전력을 끌어올린 제이크가 침식체와 격돌했다.

 

충격이 일대를 뒤집었다. 제이크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주변에 있던 잔해들이 터져나갔다. 

 

침식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놈을 대신해 검 5자루가 스스로 움직이며 제이크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어림잡아 2미터는 돼 보이는 크기였음에도 번개를 따라잡을 만큼 빨랐다. 제이크가 전력을 담은 주먹과 맞부딪혀도 전혀 충격이 없어 보였다.

 

돌연 침식체가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10미터 뒤의 후방에서 나타났다. 제이크는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응급조치로 지혈해 놓은 상처가 터져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가만히 서서 숨을 몰아쉬던 제이크가 주변을 살폈다, 카일과 알파팀은 보이지 않았다. 명령대로 실비아와 퇴각한 듯 보였다. 한숨을 내쉰 제이크가 침식체에게 물었다,

 

“허억, 후.. 침식체가 여기엔 왜 나타난 거냐? 그리고...”

“왜 침식파가 검출되지 않는 건지, 묻고 싶겠지. 아니 그런가?”

“......”

“특별히 선택받은 자들은 몸에서 발생하는 침식파를 억제시킬 수 있다. 대신 그러려면 동포들을 잡아먹거나, 본래 가진 힘에 제약을 둬야 하지. 네가 아직 살아있는 것도 그 덕인 줄 알거라.”

“‘특별히 선택받은 자‘라, 네 정체는 뭐지?”

“내 정체 말이더냐?”

 

침식체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하늘 어딘가를 바라보는 눈은 광기에 젖어 번들거렸다. 뒤에 늘어선 검들은 붉은색으로 점멸했다. 침식체는 자신을 소개하며 두 팔을 가득 벌려 하늘로 들었다.

 

“내 이름은 아바루스, 옥좌를 보필하는 첫 번째 검이며 왕의 명령을 받드는 군단장이다. 영광스러운 왕의 사도로서 이 자리에 섰도다.”

“웃기는군. 계급 놀이는 네가 있던 곳에서나 하지그래?”

 

그 말을 들은 아바루스가 비웃었다.

 

“허세 부리지 마라, 미물아. 서 있기에 힘들어하는 주제에 혀를 놀릴 기력은 남아 있더냐?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한 뒤 친히 그 몸을 찢어줄 테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되노라.”

“... 목적이 뭐지?”

“이곳에서 연구 중인 장비들, 너희들의 말로는 T5급 무장이겠군.”

 

티어레벨 5의 장비들. 저명한 학자들이 머리를 모아도 구상 단계에서 떨어져 나가던- 다시 말해, 설계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진 장비다. 그러나 몇 개월 전 마리아 중장님이 ‘불유쾌한 정보원’으로부터 설계도를 받아온 뒤 연구가 급격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 16 실험기지엔 본격적인 생산에 앞서 테스트를 위해 시험제작된 장비가 존재했다. 다름 아닌 제이크 자신을 위해 제작된 전용 장비. 그러나 그건 극비사항이다. 연구원들을 제외하면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과 중장님을 포함해 두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걸 고작 침식체 따위가 알고 있었다.

 

“운명을 이해하려 들지 마라. 너희가 죽는 것도, 내가 여기 강림한 것도 모두 운명이니.. 순리에 맞게 죽어 사라지거라.”

 

말이 끝나자마자 아바루스가 손을 내저었다. 날카롭게 선 검들이 제이크를 찢어발기기 위해 쇄도했다. 

 

제이크는 발로 땅을 내리쳤다. 수면에 물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콘크리트 지반이 솟아올랐다. 잔해가 주변을 가렸다. 날아온 검이 빈 공간을 꿰뚫었다. 제이크는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제이크의 주먹에 번개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한계에 도달한 주먹에서 번개 줄기가 줄기줄기 솟아올랐다. 새어나간 번개는 바닥에 닿을 때마다 붉은 자국을 남겼다. 침식체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양손에 가득 번개를 모은 제이크는 아바루스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콰르릉!

 

전격이 주변을 휩쓸었다. 콘크리트 바닥이 녹아 용암처럼 물컹거렸다. 제대로 맞았다면 3종 침식체 정도는 단번에 죽일 수 있을 공격이었다, 

 

그러나 제이크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아바루스가 보이지 않았다. 타격감이 느껴지지 않은 걸 봐선 피한 거 같았다.

 

뒤에서 검이 날아왔다. 칼날 세 개가 빛나고 있었다. 나머지는 허공에 뜬 채 타이밍을 노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 뒤편에 아바루스가 서 있는 게 보였다. 공간이동 능력이 놈의 특기인 듯 했다.

 

제이크가 주먹으로 가장 먼저 날아온 검을 쳐냈다. 누적된 충격에 손목이 시큰거렸다. 계속 쳐내다간 손목이 부러질지도 몰랐다. 너클은 이미 부서져 너덜거렸다.

 

양쪽에서 검이 날아왔다. 찔렸다간 몸이 절반으로 찢겨나갈 듯싶었다. 달려나가던 제이크와 칼날이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순간 이를 악문 제이크가 몸을 비틀었다. 검과 검 사이를 통과한 제이크가 잠시 균형을 잃는 듯하다가 곧장 회복했다. 오른쪽 옆구리가 길게 찢어져 피를 흩뿌렸다.

 

허공엔 아직 2자루의 검이 떠 있었다. 아바루스는 흥미롭단 듯 구경하고 있었다. 제이크가 벌이는 사투가 놈에겐 그저 유흥거리인 듯 보였다.

 

허공의 검이 파르르 떨리더니 공중을 유영하듯 미끄러졌다. 제이크는 다시 한번 뇌전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이대로 가면 서서히 말라죽게 될 뿐이다. 놈은 공간이동 능력조차 가지고 있었다. 놈이 방심하고 있을 때 최대한 강한 타격을 주어야 했다. 

 

제이크는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땅을 박차며 도약했다. 아바루스가 바로 앞에 있었다. 그러나 검이 공중에 뜬 제이크를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 허공에 뜬 이상 피할 방법은 없다. 아바루스의 눈에서 흥미가 사라질 때였다.

 

우르르릉!

 

제이크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 미터가 밝게 물들었다. 번개가 공간에 응집되어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걸 불태웠다. 주변의 멀쩡한 전자기기들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귀가 멀 것 같은 천둥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

 

잠시 후 섬광이 사라진 곳에선 콘크리트가 부글부글 끓으며 흘러내렸다. 검 한 자루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제이크는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검 한 자루가 그의 어깨에 박혀있었다.

 

“이게 네 전력이냐?”

 

아바루스가 제이크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린 채 비웃었다. 놈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반면 제이크의 몸은 처참했다. 마지막에 시야를 가리며 검을 쳐냈음에도 결국 검이 오른쪽 어깨에 박히고 말았다.

 

“... 쿨럭쿨럭, 커헉!”

“시시하군. 미물들 중에선 그나마 나아 보이길래 기대했건만, 결국 버러지는 버러지일 뿐인가?”

 

아바루스가 제이크를 집어던졌다. 근처 건물을 박살 내며 날아가던 제이크는 마지막으로 한 건물 외벽을 무너뜨리며 멈췄다. 

 

제이크가 간신히 뜬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박살 난 실험기기들이 널려 있었다. 아무래도 실험동 깊숙한 곳까지 날아온 듯했다. 

 

그때 바깥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다. 중간중간 포성 소리도 들렸다. 벌써 지원 병력이 왔을 리는 없었다. 근방에서 이 정도의 화력을 가진 집단은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젠장, 실비아, 카일.. 도망치라고 했잖아.”

 

폭격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아마 아바루스는 바깥의 기갑사단보다 자신을 더 우선시하는 듯 보였다. 제이크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살아있느냐? 참으로 질긴 명줄이야.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하는구나.”

 

부서진 벽 사이에서 아바루스가 나타났다. 동시에 포격이 끊겼다. 자신이 휘말릴까 우려되어 폭격을 중지한 것 같았다. 

 

“바깥에 있는 미물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너를 죽이고 곧 그 곁으로 보내줄 테니. 그나저나.... 느껴지는구나. 근처에 5T 장비가 있는 거 같군. 드디어 왕께 돌아갈 수 있겠어.”

“너희에게도 5T 장비가 위협적인가 보지? 그래서 귀한 몸께서 직접 부수러 온 거냐?”

“위협적이냐고? 웃기는군. 그깟 장비는 그저 거슬릴 뿐이다. 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운명은 바꿀 수 없다. ,,,.증오스러운 늑대의 문장만 아니라면.”

“늑대의 문장...? 그건 뭐지?”

 

아바루스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왕의 강림을 막는 버러지들! 그들만 아니었다면 왕께서 이미 내려와 이 땅을 정화하셨을 거다! 사사건건 우리들의 기도를 방해하는 불신자, 늑대를 몸에 새기고 수호자를 자처하는 버러지들! 그중에서도 저주받을 흰머리 그년은 왕께서 직접 찢어 죽이실 거다!”

 

한 단어 한 단어를 말할 때마다 아바루스는 누군가를 씹어 먹을 듯이 격노했다. 문득 제이크의 머릿속에 이야기와 부합하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적으로 다시 만난 델타세븐의 옛 기함 뉴 오하이오를 엔터프라이즈가 격침시키던 날, 자신들과 함께 싸운 코핀 컴퍼니. 그들의 부대 마크가 늑대의 형상이었다.

 

생각해 보면 코핀 컴퍼니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로봇이 사장인 점도 그렇고, 소규모 태스크포스임에도 불구하고 정식 라이센스를 취득한 점도 그랬다. 재무 흐름으로 봤을 때 은닉한 돈도 일개 회사가 벌었을 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용한 카운터의 수준이 아득하게 평균 이상이었다.

 

특히 소대장이라는 여자는 말도 안 되게 강했다. 자신이 고전하던 퀸을 몇 합 되지 않아 제압하던 모습. 분명 그 여자가 흰머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돌아가면 제대로 된 조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제이크가 픽 웃었다. 돌아가기는커녕 시체조차 남기지 못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감히 나를 비웃는 거냐, 미물 따위가! 그 몸을 천 번 태우고 만 번 죽여주마!”

 

자신을 비웃는다고 생각한 아바루스가 대노했다. 곧게 뻗은 손끝에서 불길한 에너지가 맴돌더니 허공에서 검붉은 번개가 내리쳤다.

 

“크아아아악-!”

 

번개를 끌어올려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붉은 번개에 닿은 푸른 번개는 뭉치지 못하고 흩어져 버렸다. 버티지 못한 지반이 꺼지며 그 위에 서있던 제이크가 지하로 떨어졌다. 아바루스도 뒤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추락한 제이크는 바닥에 쓰러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벌써 죽은 거냐? 실수로 힘을 강하게 줘버린 모양이군. 끝없는 고통을 맛보기 전에 죽은 것이 네 마지막 행운임을 알거라.”

 

아바루스가 손을 휘둘러 한쪽 벽면을 부쉈다. 숨겨진 방에선 검은색 장비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담겨있는 힘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러나 아바루스는 그걸 보곤 실망한 듯 말했다.

 

“조잡한 데다 미완성이기까지 하군. 내가 겨우 이런 걸 부수려고 와야 했다니... 짜증나는군.”

 

아바루스가 손을 들었다. 허공의 검들이 눈앞의 장비를 부수기 위해 늘어섰다. 곧 아바루스가 주먹을 쥐려는 순간,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이봐, 싸우다 말고 어딜 보는 거지? 나는, 아직 싸울 수 있다고.”

 

제이크가 떨리는 몸으로 일어섰다. 한번 뚫렸던 오른쪽 어깨는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오른팔은 움직일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바루스는 질린 듯이 말했다.

 

“질리는군. 바퀴벌레 같아. 가만히 있었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몰랐는데, 그렇게 고통받고 싶었나?”

 

제이크에게 그딴 취미 따윈 없었다.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금방이라도 다리가 풀려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눈은 흐려 바로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나. 단지 나는 침식체라면 학을 떼는 사람이거든. 너를 바싹 구워버리기 전엔 멈추지 않을 거다.”

 

실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몇 번의 충돌만에 자신이 이렇게 만신창이가 될 동안 눈앞의 괴물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이길 수 없는 적이라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다 포기하고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지금이라도 빠르게 도망치면 살아남을 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럴 순 없었다. 기지에 널린 시체들이 절규하고 있었다. 부디 우리들의 복수를 해달라고. 수백 명을 학살한 괴물을 두고 도망치는 건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애초에 만약 자신이 도망쳐 살아남더라도 밖의 카일과 실비아, 군인들은 전부 학살당할 것이다. 자신이 후퇴하라고 했음에도 도망치지 않은 놈들이다. 군법으로 징계해 주기 전엔 절대 죽게 할 수 없었다.

 

“... 늑대 새끼들이 떠오르는군. 좋다, 왕께 돌아가는 시간이 조금 늦춰지더라도... 네놈과 밖의 미물들은 이 몸이 친히 고문해 주마.”

 

거대한 힘이 응축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컨디션이라도 눈앞의 에너지에 닿으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죽음보다 끔찍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노라고.

 

제이크는 무의식적으로 전투 자세를 잡았다. 반쯤 초탈해버린 제이크의 머릿속에 갑자기 옛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어릴 적 살던 마을에 고용된 용병들이 주방위선이 뚫렸단 말을 듣고 도망쳐버린 일이었다. 전선이 근처까지 밀려 마을에서 생활하는 게 불가능해질 때까지 이곳을 보호하는 계약이었다. 용병들은 주변이 침식체 소굴이 되더라도 돈값은 할 테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그랬던 용병들은 소식 하나에 태도를 바꾸고 급히 떠나버렸다. 침식체가 나타나기도 전에, 수백 킬로미터는 떨어진 방위선이 뚫렸다는 한마디에.

 

그래서 용병을 혐오했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를 싫어했다. 일을 열 때마다 거짓말만 하는 족속들. 계약조건을 어기는 게 쏴대는 탄환보다 많은 쓰레기들. 

 

‘용병을 믿을 바에야 침식체를 믿어라. 그것들은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용병 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었다. 그리고 제이크가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이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는 풀렸지만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나름대로 신뢰를 지키는 용병도 여럿 보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용병들은 마을을 버리고 도망치던 쓰레기들이었다. 

 

그러나 이젠 알 것 같았다. 그놈들은 그저 무서웠을 뿐이었다. 아픈 건 싫고, 죽는 건 더 싫은 겁쟁이들. 그놈들은 악의가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괴물들이 두려웠을 뿐이다. 

자신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놈들은 도망쳤지만, 자신은 도망치지 않았다. 딱 그 정도 차이였다.

 

용병은 여전히 싫다. 앞으로도 크게 바뀌는 건 없을 거다. 그들은 여전히 거짓말쟁이에 겁쟁이고 사기꾼들이다. 마을을 버리고 도망친 그놈들을 용서한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은... 조금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늑대가 두렵나?”

“뭐라고?”

“늑대가 두렵냐고 물었다. 말끝마다 늑대, 늑대. 그들이 무서운 모양이지? 그들이 무서워서 침식파마저 숨기고 여기에 숨어 들어왔나?”

“... 네가 정녕 미쳤구나. 공포에 이성을 상실한 모양이지?”

 

아바루스가 모은 에너지는 끔찍하도록 막대했다. 피할 방법조차 없었다. 충격파만으로 피륙이 분리될 것이다. 허나 제이크는 두렵지 않았다. 이유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온몸에서 느껴지던 격통도 사라졌다. 새로운 활력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깟 문장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델타세븐이다. 합중국 전략특수전사령부 델타세븐 소속 제이크 워커. 그게 내 이름이다. 늑대를 새긴 자만이 너를 막을 수 있을 거 같나? 틀렸어, 그들이 아니라도 네 발목을 잡을 놈들은 충분히 있다.” 

 

주변의 전자기기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기계들은 건드리는 사람 없이 제멋대로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했다. 적막하던 지하는 기묘한 소음으로 가득 찼다. 모터가 회전하는 소리, 부품이 움직이는 소리, 회로가 불타는 소리, 전자음, 구동음,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 키리릭, 키리릭.

 

망가진 기계들이 연주하는 합주곡의 중심, 그곳에 제이크가 있었다. 온몸에서 빛을 내뿜는 제이크는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중 홀로 조명을 받는 지휘자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운명이 어그러진다, 하찮은 미물이 운명을 바꾸고 있다고...?”

 

아바루스는 당황한 상태로 굳어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혼잣말을 내뱉던 아바루스가 곧 시선을 제이크에게 고정했다.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어! 운명은 뒤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네가 감히 왕의 계획을 어지럽히려 드느냐!”

 

아바루스가 절규하며 손안의 에너지를 해방시켰다. 붉은 섬광이 날뛰며 주변을 탐욕스럽게 살라 먹었다. 그에 휘말린 5T 레벨의 장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만족하지 못한 섬광이 기어코 제이크마저 삼키려는 순간, 

 

푸른 섬광이 피어올랐다.

 

“뭣..!”

 

제이크의 몸에서 일어난 푸른 번개가 붉은 섬광을 밀어내고 있었다. 섬광은 번개를 이겨내지 못했다. 삽시간에 닥쳐온 번개를 보곤 아바루스가 급히 공간을 뛰어넘었다.

 

아바루스가 사라진 뒤에도 푸른 번개는 사라지지 않고 제이크의 몸에서 작게 스파크를 튀기며 존재를 알리고 있었다. 제이크는 목을 잡고 가볍게 움직였다. 뚝, 뚜뚝. 그 어느 때보다 몸에 활력이 넘쳤다.

 

콰앙!

 

벽을 부수며 날아든 검은 물체가 제이크의 양쪽 어깨에 달라붙었다. 검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인 그것은 형태를 길게 늘리며 온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몇 초 사이에 슈트 차림이 된 제이크는 양 팔을 들어 올렸다. 기묘한 형태의 방패가 날아들어와 팔을 가리는 형태로 부착되었다.

 

“저만한 괴물도 숨겨둔 장비를 알아차리지 못했나.. 괴물보다 괴물 같은 기술력이군. 이걸 건네준 녀석이 정말 구 관리국의 생존자라도 되는 건가?”

 

중얼거리던 제이크는 천장을 바라봤다. 아바루스의 위치가 느껴졌다. 놈은 이곳을 빠져나간 뒤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놈을 보내줄 순 없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이크는 힘껏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