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루스는 급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저 멀리 살아있는 인간들이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다 죽어가던 놈이 스스로의 운명을 뒤흔들었다. 침식파를 억제하기 위해 힘을 봉인한 상태론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대였다.

 

어차피 목표는 달성했다. 대적자가 인과를 소모하며 건네준 설계도도 파괴되었으니 늑대들의 주인도 타격이 클 것이다. 이대로 귀환하기만 하면 왕께 돌아갈 수 있다. 멈춰 선 아바루스가 급하게 차원문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벼락이 내리쳐 아바루스를 꿰뚫었다, 사막에 거대한 늪이 생겼다. 물 대신 용암이 흐르며 주위를 깊게 빨아당겼다.

 

“꺄아아아아악! 끄아, 아아아아....! 네놈이 어찌 벌써..!”

“내가 말했을 텐데? 아까부터 싸우다 말고 어딜 보는 거지?”

“네놈, 미물이 감히...! 왕의 사도를 공격하느냐!”

 

번개에 직격당한 아바루스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뇌전이 온몸을 지지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던 아바루스가 검은 안개로 몸을 뒤덮은 뒤에도 이따금씩 스파크가 몸을 태웠다.

 

아바루스가 핏발 선 눈으로 제이크를 노려봤다. 아까와는 달라진 옷이 눈에 띄었다. 잠시 그걸 살피던 아바루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지금 입고 있는 저 장비가 진짜 5T 장비였다. 강대한 힘을 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자신이 방금 부순 건 가짜였던 것이다.

 

“하찮은 것들이 나를 속였구나! 허나 그게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늘어선 검들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날아오는 검을 제이크가 주먹으로 후려쳤다. 주먹과 검이 충돌하는 순간, 승자는 주먹이었다. 날아오던 속도 이상으로 검이 튕겨져 날아갔다. 뒤이어 쏘아진 검들도 마찬가지였다.

 

초조한 표정의 아바루스가 두 손을 모았다. 허공에 검은 구체들이 생겨나더니 빠르게 쏘아졌다. 제이크가 요격하려는 순간 구체가 터지며 주변을 휩쓸었다.

 

쾅!

 

어림잡아 십 수개의 구체들이 폭발한 듯 보였다. 검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아바루스는 그 틈을 타 하늘로 날아올랐다.

 

퍼억!

 

“어딜 가려는 거냐!”

 

밑에서 나타난 제이크의 주먹이 턱에 작렬했다. 아바루스는 하늘로 붕 뜨더니 그대로 추락했다. 찢어지는 비명이 하늘에 울려 퍼졌다.

 

“버러지 따위가 감히! 용서 못 한다!!”

 

떨어지던 아바루스 주변이 일렁이더니 강대한 침식파가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땅에 떨어진 아바루스가 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주변의 땅이 검게 물들었다.

 

“미물이 명을 재촉하는구나! 내 너를 만 갈래로 찢어 놓기 전엔 멈추지 않으리라!”

 

하늘이 어두워졌다. 검은 안개가 주변을 침식하는 중이었다. 제이크가 가지고 다니던 침식파 검출기에서 요란한 경고음이 울렸다. CSE 레벨 4를 아득히 상회하는 침식 농도였다. 이터니움 실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기전으로 끝내야만 했다.

 

제이크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에 아바루스가 양팔을 뻗었다. 붉은 안개에 휩싸인 검이 제이크를 노렸다. 제이크는 그걸 주먹으로 맞받아치며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주먹과 검이 맞부딪힐 때마다 주먹에 담긴 번개가 더욱 짙어졌다. 반면 검을 감싼 안개는 서서히 흩어지기만 했다. 그걸 본 제이크가 기습적으로 번개를 폭발시켰다. 

 

번개에 직격당한 검들은 안개가 모두 벗겨졌다. 이를 악문 아바루스가 검을 물리고 에너지를 응집시켰다. 등 뒤 허공에서 거대한 주먹이 생겨나 뻗어왔다. 그에 맞서 제이크도 주먹을 뻗었다.

 

쾅! 콰광, 쾅!

 

몇 번의 공방이 지난 후 승자가 갈렸다. 제이크의 주먹은 멀쩡했지만 거대한 손은 박살 난 채 덜렁거렸다. 달려오는 제이크를 보곤 아바루스가 다시 한번 검을 날렸다.

 

콰직!

 

안개가 사라진 검은 더 이상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단번에 검이 박살나 흩어지는 걸 본 아바루스가 급히 손을 저었다.

 

다른 검도 박살내려던 주먹이 검에 닿으려는 순간 검이 유연하게 휘어지더니 그물처럼 제이크를 붙잡았다. 뒤이어 날아온 나머지 검들도 몸에 달라붙더니 갈라지며 제이크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 아바루스가 다시 한번 날아올랐다. 그 위에 차원문이 열렸다. 제이크를 묶어 놓은 채 도주하려는 듯 보였다.

 

콰득.

 

제이크가 강하게 힘을 주자 구속에 균열이 생겼다. 약간의 틈이 생긴 구속 사이로 전격을 흘려보내자 버티지 못한 구속이 부서져 떨어졌다. 완전히 해방된 제이크도 아바루스를 따라 뛰어올랐다.

 

아바루스는 날아오르는 상태로 생각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자신이 힘을 아직 회복하지 못한 탓이라고. 자신의 왕께서 힘을 되찾으면- 완전해진 자신이 찾아와, 감히 자신을 공격한 버러지들을 재조립해 새로운 검을 만들겠노라고. 

 

차원문까진 불과 몇 미터를 남겨두고 있었다. 아바루스가 긴장을 늦춘 순간이었다.

 

번개처럼 날아오른 제이크가 다시 한번 턱을 후려쳤다. 주먹에 맞은 아바루스가 차원문을 훌쩍 지나 떠오르더니 허공에 잠시 정지했다. 그리곤 그대로 추락했다.

 

“크하아악...! 미물... 따위가... 끝까지....!”

 

추락하던 아바루스의 눈에 제이크가 보였다. 자신의 위에서 떨어지는 제이크의 주먹에 번개가 집중되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출력이었다. 저걸 맞았다간 절대 무사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저 괴물은 저기서 번개를 더 응축시키고 있었다. 

 

아바루스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정말로 위험했다. 

 

저 정도로 압축된 에너지를 맞았다간 본신까지 타격을 입을지도 몰랐다. 놈이 착용한 장비가 마구 점멸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맥동하며 주변을 장악하고 있었다. 구 관리국에도 저런 장비는 없었다. 대적자가 설계도에 무슨 수를 쓴 것이 분명했다.

 

“늑대도 아닌 주제에-! 왕께서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아바루스는 절규하며 공간을 열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강렬한 섬광에 시야가 가려서 공간을 제대로 특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눈을 돌려도 세상이 온통 백색이었다. 

 

“... 앞으론 늑대뿐만 아니라 독수리 문장을 봐도 벌벌 떨게 만들어주지.”

 

갑자기 세상이 색을 되찾았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던 아바루스가 경악했다. 제이크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던 번개가 억세게 쥔 주먹에 한껏 집중된 상태였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공간을 찢고 이동하더라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본신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운명이 자신의 죽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네가 죽인 사람들의 복수다, 침식체. 

라이트닝-”

 

“미물 따위가! 감히-!!”

 

“-익스큐션!”

 

제이크가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세상이 하얗게 백열했다.

 

태양이 아직 산등성이 훌쩍 위에 떠있었음은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한낮이었음에도 하늘이 땅보다 어두웠다. 뇌명이 한번 울릴 때마다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했다.

 

정확히 10초가 지난 뒤 천둥은 자취를 감췄다. 영원할 듯 터져 나오던 섬광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용암이 되어 버린 모래를 제외한다면.

 

폭심지 주변은 파도 대신 용암이 꿀렁이는 바다가 되어 있었다. 상처 입은 지면은 속에서 마그마를 게워내고 있었다. 제이크는 그 중심에서 홀로 서 있었다. 오만하게 웃던 침식체는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제이크의 몸을 감싼 장비들에서 서서히 빛이 꺼졌다. 온몸에 탈력감이 가득했다. 현기증에 머리가 아팠다. 잠시 비틀거린 제이크가 하늘을 올려봤다.

 

구름 한 점 남지 않은 하늘 사이 검은 점이 보였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점들은 곧 헬기의 형상으로 변했다. 좀 전에 내리친 번개를 보고 바로 출발한 것 같았다. 헬기에 달린 확성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실비아였다. 

 

-버터남! 방금 설마 니가 한 거야? 침식체는 어떻게 됐고?-

“침식체가 살아 있었으면 어떡하려고 왔나?”

-너 하나 챙겨서 잽싸게 튈 순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제이크는 작게 웃으며 지금을 만끽했다.

하늘은 맑았다. 바람도 불었고. 단점은 좀 심하게 덥다는 것. 용암 위에 있으니 더더욱.

 

슬슬 헬기가 가까워 왔다. 내려온 사다리 끝엔 카일이 매달려 손을 뻗고 있었다. 제이크는 카일의 손을 맞잡고 헬기에 올랐다.

 

“괜찮으십니까, 대령님! 온몸이 피투성이입니다!”

“군의관! 군의관 당장 이리로 와! 응급상자도 몽땅 가져오고! 근처 병원에 연락해서 수술대 잡아!”

“좀 조용히 하세요 쿠퍼 씨! 정신 사납습니다!”

 

녀석들이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서야 살아있단 실감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없었다. 제이크는 그만 웃어버렸다.

 

 

뜨겁게 끓어오르는 사막을 뒤로 한 채, 

 

요란하게 떠드는 헬기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


원래 다른 캐릭터로 써보고 싶었는데 기틀도 안잡고 막 쓰다보니 어느순간 망했다 싶더라


그래서 그건 걍 접고 각성 제이크를 주제로 써봤음


글 처음 써봐서 많이 부족함 


고치고 싶은건 많이 있는데 내 필력이 모자라서 안되겠더라


재밌게 봐줘서 고마움


피드백 "해줘" 나데나데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