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나는 코핀 컴퍼니 내부를 걷고 있었다. 간만에 한가한 하루를 맞아 정비 시간을 만끽하려던 생각도 잠시, 요 며칠 쉬지 않고 뛰어다녔더니 그에 익숙해져 버린 몸은 지루한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딱히 계획은 없다. 그렇지만 일단 어디로든 가 보기로 했다. 발 닿는 대로 걸어가던 유미나의 눈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게 보였다. 항상 한산하던 휴게실이 웬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유미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휴게실 내부로 향했다. 

 

본래 낡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야 할 자리엔 대형 커피 머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각각 커피 한 잔씩을 손에 든 채 홀짝이는 중이었다. 커피 머신 앞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선 채 주문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주문을 받으며 커피를 직접 내리는 사람은 바로..

 

“...사장님?”

 

사각형의 기계가 입-이 있을 자리에 난 구멍-으로 커피를 마시며 동시에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걸 본 미나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마침 자신의 근처엔 자신의 선배 주시윤이 서 있었다. 유미나는 주시윤에게 가서 물었다.

 

“선배. 지금 저기서 커피 내리고 있는 거.. 사장님 맞지?”

“네. 그렇네요. 하하, 살다 보니 사장님이 직접 내려주신 커피도 마셔보네요.”

“사장님이 왜 여기서 커피를 타고 있는 거야? 그보다 기계가 커피를 마셔도 돼?”

“글쎄요. 사장님 생각을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 보시죠.”

 

잠시 고민하던 유미나는 마음을 굳히곤 커피 머신 앞으로 향했다. 

 

“어서 오게, 미나양! 인텔-리하고 엘레강-스한, 머신갑 특제 카페에 온 걸 환영하네.”

“어.. 안녕, 사장님. 사실 주문보단 궁금한 게 있어서 왔는데 말이야, 그렇게 커피 마셔도 고장 안 나?”

“이 몸은 하등한 일반 로봇과는 다르네. 최신 기술의 집합체인 이 몸체엔 유사 미각 센서도 장착되어 있어서 비슷하게나마 미각을 구현하는 게 가능하지. 물론 이런 건 세상에서 오직 이 머신-갑께서만 가능하단 말씀!”

“...아하하. 역시 사장님은 굉장하네...”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궁금증이 풀렸으면 음료도 한잔 마셔보게나. 특별히 정성 들여 만들어주겠네.”

“글쎄, 뭘 주문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카페에 가본 적이 없어서 말야. 혹시 추천하는 거라도 있어?”

“그렇다면...”

 

말을 흐리곤 잠시 주변을 휙휙 둘러보던 머신갑이 스피커를 길게 뽑아내서 유미나의 귀 근처에 갖다 댔다. 유미나는 이 기괴한 장면에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머신갑이 작게 속삭였다.

 

“...이 머신갑 특제 메뉴가 하나 있지. 아무한테나 만들어주진 않지만, 회사를 위해 헌신하는 미나양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주겠네.”

“..그거 정말 기대되는걸. 혹시 휘발유나 윤활유가 들어가는 건 아니지?”

“무슨 그런 걱정을! 조금만 기다리게. 금방 만들어주지!”

 

머신 밑에서 몇 가지 재료를 꺼낸 머신갑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음료 하나를 완성했다. 차가운 이슬이 흐르는 잔을 받아든 유미나가 말했다.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는데?”

“그야 당연하지. 전 세계 바리스타 그 누구를 데려와도 꿀리지 않을 자신작이라네.”

“하하. 사장님도 참. 그런데 이 메뉴 이름이 뭐야?”

“그렇지, 이름을 알려주는 걸 깜빡했군. 이 음료 이름은.. [필살! 아이수-연유 라떼]라네. 자네 취향에 정확하게 스트라이크일 거라고 장담하지.”

“....필살 아이스 연유 라떼? 무슨 이름이 그래?”

“어허, [필살 아이스 연유 라떼]가 아니라 [필살! 아이수-연유 라떼]라니까. 발음에 주의하게. 한 번 더 말해주지. [필살! 아이수-연...”

 

콰앙!

 

휴게실 옆에 조그맣게 붙어있던 탕비실 문이 박살나며 날아갔다. 급작스런 사태에 놀란 사원들이 도망치는 사이 그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재미있는 농담이군요. 사장님.”

“......부사장? 자네가 왜 탕비실에서 나오나?”

 

천천히 이리로 다가오는 이수연의 얼굴은 서늘하다 못해 창백했다. 유미나는 구원기사단의 성녀를 상대할 때조차 느껴보지 못한 오한에 몸을 떨었다. 박살 나 조각난 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요새 탕비실에서 비품이 좀 비더군요. 모처럼 한가한 날을 잡아 수량 확인 중이었는데.. 갑자기 급한 결재서류가 있던 게 생각났습니다. 사장님께서도 같이 가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만.”

“그, 저기, 부사장. 내가 지금은 급한 일이 있어 안되겠고. 나중에 내가 처리하겠...”

“급.한. 서류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군요. 어서 가시죠.”

 

부사장이 얼어붙어 있는 머신갑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빠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매끈하던 머신갑의 몸체가 우그러지고 있었다.

 

-경고. 경고. 프레임 파손률 28%. 지금 당장 수리가 필요합니다.

“부사장! 부사장! 내가 잘못했네, 일단 이 손만 좀.. -콰직- 부..부부부부사장.. 잘못.. 용서..”

“조용히 하시죠, 사장님. 다른 사원들한테 민폐잖습니까.”

 

부사장과 머신갑이 떠나고 조용해진 휴게실에서 멍하니 서 있던 유미나에게 주시윤이 다가와 말했다.

 

“다행히 아직까진 들키지 않은 거 같네요.”

“..탕비실 턴 게 나라는 거 사장님이 알면 화내시려나?”

“에이. 사장님이 설마 그런 걸로 화내시겠어요? 기껏해야 반성문 몇 장 정도..”

 

콰앙-! 쾅!

 

“...라고 생각했는데 아닐 수도 있겠네요. 확실히 해두지만 미나양. 전 모르는 일입니다.”

“선배도 그때 컵라면 하나 먹었잖아...! 이제와서 발뺌하기야?”

“죄송하지만 제가 그때 먹은 컵라면은 스승님 겁니다. 스승님은 아직 모르시는 거 같지만요.”

“그거 먹은 놈이 너였냐, 주시윤?”

 

어느샌가 뒤에 힐데 소대장이 서 있었다. 

 

“스승님..? 언제 오신 건가요? 오셨으면 오셨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시죠.”

“일부러 엿들은 건 아니다. 여기서 사장놈이 카페를 열었다길래 한잔 얻어 마시러 왔더니 깡통은 온데간데없고 너희 둘만 있더군. 그래서 주시윤. 해볼 변명이라도 있나?”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그런 거 먹다간 탈나실 텐데요. 하나뿐인 제자가 스승님의 건강을 위협하는 인스턴트 푸드를 먹어치운 겁니다. 오히려 저한테 고마워하셔야 하는 게 아닐까요?”

“..말하는 꼬라지를 보니 전혀 반성하지 않는 거 같군. 설날이 다가오니 네 부모님이 그리워지기라도 한 거냐?”

“하하. 이 불초제자, 아직 스승님 손에 죽어드릴 만큼 막장은 아닙니다. 잡을 수 있다면.. 잡아보시죠!”

“서라, 주시윤! 네 부모님 곁에 묻어버리기 전에!”

 

주시윤과 힐데 소대장도 뛰쳐나가고 넓은 휴게실엔 유미나 혼자 남았다. 우당탕탕거리는 소음과 가끔 들려오는 고함소리, 바닥에 떨어진 머신갑의 파편을 보던 유미나는 옆에 덩그러니 서 있던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리곤 아직까지 손에 잡혀있던 음료를 내려놓은 채 한숨 쉬었다.

 

“...하아. 언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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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때는 재미있을 거 같았는데 다 쓰고 보니 노잼이네

읽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