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닌은 13년 입대해서 19년 중순까지 좆뺑이를 치던 부사관 출신으로, 과도한 피로로 인해 폐주머니가 찢어지고 습관성 기흉으로 전역했슴...

이거만 딱 전제로 적어놓고 썰 풂...

시험치러 나왔는데 대기시간이 길어져서 기다리면서 폰 잡은거라 길어질지 짧아질지 모르겠다

세줄요약같은거 안할거임...


코로나 시대에 이전에 직업군인을 하려는 놈은 보통 무슨생각으로 지원을 할까?

ROTC야 당시기준으로는 썩 그럴듯해서(비슷한 복무일수 대비 많은 수입+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일과이후) 있을법 하다지만 도대체 민간부사관은 왜 하는거임?


꽤 많은 초임하사들을 각 부대에 뿌려본 경험상 크게 세가지로 갈림


하나는 존나 별 생각 없었는데 가족들이 직업군인이나하라고 강권해서 자연스럽게 하게 된 케이스(내가 이 케이스임)

다른 하나는 장교하자니 책임질 일이 많을 것 같고 부사관하면서 기술 숙달하며 4년 채우고 돈 모아서 사회에서 기술직 하려는 개쩌는 빌드를 세우고 온놈(진짜 희귀함)

마지막 하나는 사회에서 뭔가 할 자신이 없는 새끼(흔히 말 하는 개폐급 간부의 7할은 이 새끼들)


이걸 이야기 한 이유가 뭐냐면 그 가족들에 의해 일어난 일 이기 때문임...

우리집은 내가 말 하기도 우습지만 썩 가난한 편이 아니었는데, 외가는 시골이라고는 하지만 그 마을에서는 가장 잘나가는 부잣집으로 처음으로 그 동네에 전화를 들인 개쩌는 집이라고 함..

이게 왜 개쩌는거냐하면

전화를 들이려면 전선도 깔아야하고 통신을 위한 선도 깔아야하니까

그러니까 한 집을 위해 그 지랄을 했다는건 당시 외가의 위상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는거지 ㅇ...

근데 그 개쩌는 외가가 몰락함

원인은 친가쪽과 아버지의 문제인데 이건 담 기회에 썰 풀 기회가 있으면 풀도록 하겠음


내가 풀기에도 씹 존나 얼탱이 없는 일 이거든

내 현실 지인들은 같이 캠핑을 가든 보드게임을 하든 어울리다가 썰 한두개씩 풀어서 알고 있으니 여기에도 썰 풀다보면 언제고 풀기는 할거야



암튼 외가가 몰락하면서 아버지는 야반도주하고(진짜로) 어머니는 막대한 빚을 짊어지고 말았음

그런데 친가(어머니 기준)가 몰락했는데 수가 있나

이제와서는 다 갚았다고는 하지만(2019년 기준) 남성(아버지 때문이지 ㅇㅇ)에 대한 불신과 증오는 버리지를 못했다나봄


결국 집안에 하나뿐인 아들인 내가 어머니의 증오를 짊어지고 살았는데, 이게 정말 씹 우스운게 난 그게 보통인줄 알고 자람


중학교시험에서 만점을 받던 놈이 어느날 실수로 하나 틀리면 그대로 뒤지게 처맞고 집 밖으로 쫓겨나는건 예사였고(옷 한벌 주지 않고 쫓아내서 헌옷수거함에서 몰래 옷가지나 이불 훔쳐다 옥상에서 잠)

고등학교 대학교의 등록금이나 급식비 따위도 알아서 해결하는건 당연한 일 이었음

그 와중에 바락바락 뛰어다니며 새벽에는 신문돌리고 점심시간에는 급식도우미, 방과후에는 근로장학생으로 도서실에서 근무하면서 돈을 모음

400만원쯤 모으니 작은 누나가 어떻게 알았는지 훔쳐서 가출함

일주일만에 그 돈 다 태우고 돌아왔는데 어머니는 고등학생이면 한번쯤 그럴수도 있다면서 감싸주는걸 보며 인생의 현탐을 느꼈다


이 정도면 가족의 분위기는 짐작이 되리라고 생각한


사건의 시작이야 위의 사건 이전에도 알게모르게 진행되어 왔겠지만 정작 내 억장이 무너진건 2019년 6월 중순이었다


당시 작은 누나는 캐나다 유학(유학비는 내가 내줌)을 다녀와서 직장을 구하겠다고 깝쳤으나 멀쩡한 직장은 하나도 구하지 못하던 신세였는데, 그걸 알게 되신 어머니께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끌어 카페를 열어주셨다고 함

사장이 되어서 버스출퇴근이 말이 되냐며 출퇴근용으로 신차까지 뽑아줬는 그게 신형 렉서스였음

머 그럴수도 있지

아들이라는 새기는 대학교부터 군생활까지 노예새기처럼 일 공부 일 공부 무한 반복하느라 집에도 잘 안들어갔지만 집에 붙어있던 백조년이 어머니께 얼마나 아양을 떨었겠어

그런데 캐나다로 출국 할 돈 부터 생활비까지 동생 봉급에서 받아 쓰던년이 다쳐서 전역할 예정인 동생한테 그러더라고


너 전역하면 얼마나 받아?
너 돈 많잖아. 그거 그냥 다 누나 카페에 쓰고 주고 편의점 알바나 해
어차피 군생활하면서 휴가도 거의 못쓰고 맨날 일만 하는데 친구도 없을거 아냐
집에서 잘 수 있고 밥도 나오고 너한테 돈이 무슨 소용이니?


이제 전역대기중인 동생한테 할 말 치곤 기가 차는 수준이라 헛웃음이 나오더라고

적당히 '평생 일 하며 모은 돈 나 혼자 다 쓰겠냐. 어머니께도 좀 드리고 나도 일 하려면 공부하고 준비해야지 ㅇㅇ'식으로 말 해도 들어먹지를 않음...

계속 때쓰고 억지부려서 '나 다쳐서 전역하는 놈이고 지금 말년휴가나와서 첫날 아침부터 누나 카페일 도와주고 있는거다. 이러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겠냐. 차라리 집에가서 쉬겠다.'라고 하니 한숨 푹 쉬면서 그냥 집으로 가라고 함

휴가 첫날부터 이게 무슨 지랄이냐

속이 답답한데 어쩌겠어

그때 난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하던(지금도 안함) 놈이라 막막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는데


돌아가자마자 귀싸대기 처맞음


구라아님

현관 바로 앞에 있는 거실 의자에 앉아 티비를 보시던 어머니가 그대로 리모콘 던지고 달려와서 귀싸대기 갈김


내가 평생 널 어떻게 키워왔는데
어떻게 누나 가게에서 아침부터
무슨 말을 했길래 누나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울면서 하소연을 해


라는 식으로 울고불고 하면서 매달리고 팸

얌전히 맞으면서 진정시키려고 하는데 30분이 지나도 한시간이 지나도 들으시지를 않으시더라

결국 계속 날뛰다가 탈진하신 어머니 앉히고(그 상태에서도 계속 노려보고 햘퀴려고 하셨음) 조용히 말 함


어머니. 지금 도저히 대화 하실 상황이 아니시고 의지도 없으신거 같으니 일단 전 부대로 돌아갈게요.

좀 진정하시고 대화 할 준비 되시면 연락해주세요.


근데 전역 날 까지 전화는 커녕 문자한통도 안옴ㅋ

결국 간부숙소 정리를 하는데 나오는게 시발 일 하면서 선물받았던 만년필 두개에 군복하고 수첩(메모 많이 씀) 뿐이더라

뭔가 더 있었던거 같은데 사과박스 하나도 못채웠음ㅋ


전역 이후에는 상황 알고계신 선배 원룸에서 지내게 됨


혹시 알고 있냐?

사람이 슬퍼서 울면 눈물이 나는데
계속 계속 울고 있으면 누렇고 끈적한 뭔가가 흘러나온다

아마 눈물도 마른다는게 그쯤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울고 있으면 그 때 부턴 눈물 색이 짙어지다가 어느순간 피눈물이 남

그건 잘 닦이지도 않음

씼어도 잘 안빠지고


그 때 선배가 진짜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면서 나 살펴주셨는데


쩝...

정말 고마운 선배야

평생가도 못 갚을 은혜를 입어버림



생각 해 보면 가족은 몰라도 진짜 고마운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고 은혜입어오며 살아온 삶임

2019년 7월 이후론 난 이미 죽은 인간인데 숨만 붙어서 그냥 덤으로 살고 있다는 마음인데 아마 평생 받아온 소중한 은혜를 평생에 걸쳐 갚지 못하면 죽지도 못하지 않을까 싶다


솔직히 3년 동안 자살생각 수도 없이 많이 했는데 결국 저 생각 때문에 질긴 목숨 보전하고 있다ㅋ


너희들도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 많이 만나렴


난 그런사람들 많이 만났고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



위 내용에서 생략한 내용들은 또 생각나면 풀러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