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호라이즌 파이낸스 사무실. 


웅크린 소녀가 있다. 소녀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응시한다. 누군가 찾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그대로 있을 것처럼. 


실제로 소녀는 이따금 중얼거리는 것을 제외하곤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소녀의 어깨에 먼지가 하얗게 쌓일 때쯤 소녀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호라이즌 파이낸스입니다. 현재 대출상담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윌버를 찾았네." 


자신이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채 용건만 전하는 무례한 사람이었지만 소녀는 전혀 그에 대한 불쾌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이 전화야말로 소녀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던 까닭이다. 


"코핀컴퍼니... 귀사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고마워하긴 이르네. 윌버의 정보를 갖고 있긴 하지만 공짜로 주겠다는 건 아니니까." 


"무엇을 원합니까." 


소녀는 언제든 복종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협상과 협박에 능한 사채업자라고는 믿을 수 없는 태도였다. 


"호라이즌양, 나와 일 하나 하지." 


전화 너머의 남자가 천사든 악마든 호라이즌에겐 전혀 중요치 않았다. 


"하겠습니다."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난 호라이즌은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건폐율의 제한이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사이에서 빈민가 출신의 시궁쥐들이 술에 취해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여성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제도 어제도 똑같은 일을 해서 일까, 그들은 이제 능숙하게 여자의 옷을 벗겼다. 


방심했을 것이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죄, 부주의하게 빈민가를 어슬렁거리던 피해자 몇 명에게 할애하기엔 경찰의 인력이 너무도 부족하니까. 


골목길에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야?" 


"경찰은 아닙니다. 휴먼." 


호라이즌은 쇠 파이프를 질질 끌며 그들을 향해 직진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당신들에겐 불행한 일이죠." 


대시와 리타를 죽인 윌버가 살아있다. 


골목길을 빠져나온 호라이즌은 잠시 동안 자신이 나온 골목길을 뒤돌아봤다. 죽여야 하나? 호라이즌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채 무시해왔던 결정을 이제는 해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그래도, 아직은. 


호라이즌은 조용히 그곳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