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자가 죽는다면 인류는 멸망한다. 그렇기에 인류를 지키기 위해선 관리자를 구해야 했다. 


하지만 결국 관리자도 한 명의 인간이다. 대시나 리타와 같은. 인류 수호라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결국 호라이즌이 콜드케이스의 힘을 쓴 건 대도시의 인구 전체도 아닌 관리자 단 한 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쓸 것이라면 오늘이 아닌 '그때' 썼어야했다고. 호라이즌은 후회한다. 


"제게 정말로 바라는 게 뭡니까. 관리자." 


일부러 사람을 물린 놀이공원. 경호도 없이 나타난 관리자. 어디선가 정보를 얻어 나타난 침식체. 처음부터 모든 게 관리자의 계획 대로였다는 것을 호라이즌은 알 수밖에 없다. 


시종일관 웃는 표정이던 관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진다. 그의 경직된 무표정에서 호라이즌은 인간보단 기계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오게. 윌버를 보여주지." 


의자에 한 남자가 포박된 채 앉아있다. 입술을 얼마나 깨물었는지 입술이라 할만한 부위는 이미 너덜너덜해져 그 흔적만 남아있을 뿐이다. 


"생체정보 확인. 윌버 웨이틀리"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는지 머리카락마저 다 빠져버린 윌버에게 이전의 자신만만하고 건방진 태도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정말이에요... 이제 죽여주세요..."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관리자?" 


"자네에게 사과를 하게 만들었지. 하지만 자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만 하더군." 


애초에 윌버는 근성이 없는 인간이었다. 굳이 고문에 기대지 않더라도 그에게 사과를 듣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그가 '진심'으로 하는 사과처럼 들립니까?" 


"적어도 거짓말을 하고 있진 않잖나." 


호라이즌이 묶인 윌버를 내려다본다.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그에게 증오를 느끼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호라이즌은 윌버를 동정한다. 


"고백합니다. 관리자. 저는 윌버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이해하네." 


대시와 리타는 호라이즌의 부하직원이었다. 아니, 그 이상의 관계였다. 대시와 리타는 호라이즌 파이낸스의 직원이기 이전에 호라이즌의 두 번째 가족이고 친구였다. 


"아니오. 당신은 전혀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을 빌렸으면 돈을 갚아야 한다. 목숨을 빌렸으면 목숨을 갚아야 한다. 


"윌버는 목숨만 남은 채 모든 것을 빼앗겼습니다. 이건 정상적인 추심이 아닙니다." 


"윌버의 목숨은 자네 몫으로 남겨놨네." 


"당신은 윌버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호라이즌은 관리자의 표정을 읽으려 했으나 읽지 못했다. 관리자는 여전히 읽기 힘든 표정을 한 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를 한다. 


"호라이즌. 아직도 인간을 증오하나?" 


호라이즌은 인간을 증오했다. 비참하게 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멍청함을,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는 비논리적인 태도를 경멸했다. 하지만 호라이즌은 그런 사람보다도 그런 사람을 이용하는 자를 더욱 증오한다. 


고개를 숙인 채 사과의 말을 쏟아내는 윌버의 껍데기는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이용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윌버를 이용하고, 호라이즌을 이용한 건. 


"당신을 증오합니다. 관리자." 


관리자는 그거면 됐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인간들을 지켜주게. 호라이즌." 


호라이즌은 대답하기도 싫다는 듯, 뒤돌아 방을 나선다. 그럼에도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어서 끝내 한마디 내뱉었다. 


"그 인간들에 당신이 포함되리란 기대는 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