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버 없음.








 

별 같은 건 먹을 수 없습니다.

 : 어쩌면 일어날 법한 이야기. (2)

 

1편

 

 








 

식사는 어땠나?”

뭐든 알파트릭스제 윤활유보단 낫습니다.”

하하하자네보는 것과 다르게 취향이 확실하군.”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마크이쯤에서 해산하죠.”

 

 

 

살짝 앞서나가던 호라이즌이 뒤에 있는 마크를 돌아보았다밤하늘이 내려앉은 시간에도 끼고있는 선글라스호라이즌은 그것을 주시했다마크 역시 호라이즌의 시각을 담당하는 눈을 주시했다.

 

아까보다도 더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희미한 대균열의 불빛과 네온사인이 늦은 밤을 부정하듯 길거리를 환하게 밝혔다.

 

 

 

이렇게 늦은 시간인데 말이야가는 곳에 별일 없었으면 좋겠군요즘 같은 시대에 비밀결사대 요원 같은 짓해봐야 손해가 더 많으니까 말이야.”

마크본인의 신분을 생각해서라도 언동을 주의했으면 좋겠군요.”

나는 솔직한 내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당신이 저에 대해 알려고 하는 만큼저도 당신을 알고 있습니다그렇지 않습니까합중국의 정보부 요원아니면 다른 신분직함으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호라이즌의 뒷말을 들은 마크가 한 방 먹었다는 듯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이것 또한 자신의 예상 범위 안에 있었는지 마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럼 이젠 비밀 친구로군.”

통상적인 비밀 친구의 뜻과는 조금 다르겠습니다만그렇다고 해두죠.”

자네가 좋다고 하면 나도 상관없지그럼 조심해서 가게레이첼 양에게도 안부 전해주고.”

잠시 기다리시죠.”

 

 

 

뒤를 돌아가려던 마크가 갑작스러운 호라이즌의 부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늘 무표정인 안드로이드의 생각을 겉모습으로 판단할 순 없으니마크는 호라이즌의 뒷말을 기다렸다.

 

 

 

?”

이 알파트릭스 제품도 다 알고 준비한 겁니까?”

 

 

 

마크는 대답 대신 그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그가 묘한 긍정의 사인을 보내오니호라이즌은 상상은 자유란 의미로 결론을 지었다.

 

 

 

됐습니다기대도 안 했으니까요.”

다음에 또 보지호라이즌그땐 다시 시무르그 실루엣을 볼 수 있으면 좋겠군.”

엘부르즈가 머리 위에 꽂히는 경험을 하기 싫다면접어두는 게 좋을 겁니다그럼 저도 이만.”

 

 

 

평온한 건지살벌한 건지 모를 대화가 끝나고호라이즌은 마크가 도심의 불빛들 사이로 완전히 사라지는 걸 보고 나서야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길거리 간판들의 네온사인과 자신보다 한참 큰 휴먼들의 숲을 지나서머리 위 밤하늘을 가르는 대균열의 빛기둥 쪽으로 한참을 걸었다.

 

 

 

“......”

 

 

 

마크와의 저녁 약속은 만족스러웠지만다음 행선지는 내키지 않았다.

호라이즌의 입장에서 거절이라는 선택지는 어렵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흔쾌히 받아들이냐찝찝한 마음으로 하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호라이즌은 이미 예전에 코핀컴퍼니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비록 마크처럼 소름 돋을 정도의 넓고 정확한 정보망을 가진 건 아니었지만정식 태스크포스 딱지가 붙은 이상대외적인 내용을 조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그들의 가진 전력은 매우 적은 소수정예이나호라이즌이 불쾌하다고 느끼는 요소는 소수정예가 아닌코핀컴퍼니가 예전에 사들인 어떤 기체 때문이었다.

 

FAW 재단이 엄중한 검증을 거쳐서 헐값에 내놓은 기체...

 

그저 기계 프레임에 심어진 AI가 불쾌감을 느낀다는 건 어쩌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메모리 일부분에서 파티션이 생긴 것처럼 어딘가 꽉 막혀버린 듯한 답답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생체정보 확인 중태스크포스 13, 이수연 부사장 확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불이 거의 다 꺼진 건물 한 채정문으로 보이는 문 앞에서 정장을 입은 여자가 웃으며 호라이즌을 맞이했다.

늦은 시간에 회사의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사실상 야근이나 다름없다호라이즌은 이수연의 비즈니스적인 미소에서 피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게 됐군요.”

괜찮습니다당신이 아닌 제 고용주가 일방적으로 정한 시간이란 걸 들었습니다.”

 

 

 

넷플릭스를 끊어버려야지.

 

조용히 중얼거리는 이수연의 말을 분명히 들었지만호라이즌은 눈치껏 그녀의 뒤를 따라 걸었다.

회사 건물의 정문이 아닌후문아니... 후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위치의 샛길.

 

두 사람 사이에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어색하다고 할 것도 없었다이수연은 지시에 따라 손님을 맞이 할 뿐이었고호라이즌은 필요한 이야기 외에 잡담은 굳이 꺼낼 필요가 없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걷고걷다 보니 호라이즌이 지나가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강력한 보안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 통로그리고 간간히 두꺼운 중장갑판으로 굳게 닫힌 문들이 보였다복도의 끝에는 똑같은 중장갑판이지만 좀 더 특별해 보이는 굳게 닫힌 문이 호라이즌을 반겼다.

 

이수연이 입구의 중앙에 손바닥을 살짝 가져다 대자굳게 닫혀있던 문이 양옆으로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보안이 엄중한 회의실 같은 곳이라기엔 밝은 분위기호라이즌은 지금 자신이 들어간 이곳을 사장실이라고 인식했다사장실 한쪽에 놓인 몇 개의 황금 동상그리고 그 동상과 똑같이 생긴 박스 형태의 기계가 호라이즌의 정면에서 집게 팔을 퍼덕이며 손님을 반겼다.

 

 

 

귀빈께서 드디어 오셨군!”

요즘 귀빈 맞이는 귀뚜라미 울어 재끼는 늦밤에 하나 보군요아니면제가 모르는 사이에 기계들의 암묵적인 룰이라도 생긴 겁니까?”

하하비밀이야기는 어두운 밤과 어두운 지하에서 은밀히 나누는 게 또 낭만이 있지!”

 

 

 

호라이즌의 청각 센서에 이수연의 한숨 소리가 잡혔다.

인간들 사이에서 알아 오며 계속 느꼈던 감상이었지만역시 몇몇 휴먼들은 아랫사람을 아낄 줄을 모른다며 검정깡통로봇을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크흠어찌 됐든 흔쾌히 와주어서 고맙네호라이즌 양.”

일단 이거 받으시죠.”

 

 

 

호라이즌이 꺼낸 건마크가 선물이라며 주었던 알파트릭스제 윤활유와 알칼라인이었다.

로봇 사장의 얼굴 화면에 화색이 돌았다정확히는 그저 기뻐하는 듯한 이모티콘을 출력하는 것뿐이었지만.

 

 

이건내가 제일 좋아하는 알파트릭스제품이 아닌가내 취향을 이미 알고 있던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하지만 일단 저에게서 신용을 얻고 싶으시다면이런 고철에 숨지 마시죠. 1급 관리자손님을 대하는 비즈니스의 기본자세는 대면임을 당신이라면 충분히 알 텐데요.”

 

 

 

멍청해 보이는 이모티콘을 출력하던 로봇의 화면이 꺼지며 왼쪽상단의 빨간 LED가 들어왔다로봇의 뒤로 보이던 사장실의 책상그리고 의자.

그 의자가 서서히 뒷면이 아닌 정면을 향해 돌았다의자에는 정장 차림의 멀끔한 남자가 앉아서 시야의 들어온 호라이즌의 눈을 응시했다.

 

시각센서가 싱긋 웃고 있는 남자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시각정보로 생체정보 확인 불가능.”

호라이즌 양?”

일치하는 음성자료 확인. 1급 관리자아니면... 더 직설적인 직함으로 불러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시무르그 실루엣에 꽤 적응했나 보군.”

휴먼 덕분입니다하지만 완전히 적응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남자가 가볍게 손뼉을 한번 쳤다호라이즌은 그 제스처를 멀뚱히 보고 있는 듯했지만그녀의 알고리즘은 제스처의 의미에 대해 추측했다.

 

아마 빠른 본론이겠지.

 

 

 

그래그 시무르그 실루엣은 상당한 전투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시간에 제약받는다는 것과 더불어서 아쉬운 점이 있지아쉽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못할 수도 있네만.”

말씀해주시죠.”

좀 더 파격적으로 가동시간을 늘리는 것도 좋지만... 가동시간 초과로 발생하는 인공지능의 융해를 효과적으로 차단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떠한가?”

휴먼의 신용을 걸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지금 자네는 짧은 시간에 자네의 연산회로와 아베스타 드라이브 출력에 의지해 고강도 전투를 수행해야 하지확신은 못 하네만 친해진다면’ 고강도 장기 전투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네.”

 

 

 

호라이즌의 냉각기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불확실한 안건을 제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무슨 근거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친해진다라는 말은 동력효율 향상과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으니

 

 

 

의문단순한 업그레이드나 보수가 아닌 친목이 대체 무엇인지 설명해주시죠.”

대단한 건 아니야목적이 같은 이들과의 협력이지.”

휴먼보다 더 유능한 강인공지능 연구원이라도 찾은겁니까?”

 

 

 

관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사장 이수연에게 무언가 손짓을 해 보였다.

사인을 확인한 이수연이 자리를 뜨고관리자는 천천히 호라이즌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직접 만나보는 게 더 좋을 것 같군.”

잠깐 다른 휴먼을 만나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비워두라고 한 겁니까낭비군요휴먼들답습니다.”

그 말을 또 하게 될지가 궁금해지는군호라이즌 양.”

 

 

 

관리자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호라이즌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관리자 휴먼의 눈을 응시했다.

 

고작 휴먼 하나 만나서 친목질하는데 며칠씩이나 시간을 투자하라고 하다니레이첼도 어이없어할 거라며 속으로만 곱씹었다.

 

 

 

왔나 보군.”

 

 

 

관리자가 사장실의 입구로 시선을 돌리자호라이즌도 따라서 자신의 뒤에 있는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천천히 두꺼운 문이 열리고두 명의 사람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이 완전히 열렸을 때줄곧 무표정이었던 호라이즌답지 않게 황당한 표정으로 문 너머의 형체를 바라보았다.

 

사장실 밖이수연과 나란히 서 있는 한 소녀가 외쳤다.

 

 

 

아빠!”










+)

시그마가 초기 테라브레인이니까 나이 더 많겠지?

쓰고 있는 글들 감당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