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44년. 20년도 전에 터진 빌어먹을 침식재해의 여파는 그 염병할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었다. 건너편의 제임스, 슈퍼가게의 리카르도, 나한테 돈 빌리고 갚지도 않는 개같은 안토니오 조차 천당을 갔지만 침식재해가 터진 곳에서 우연하게 멀리 떨어져있던 불쌍한 토레오는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은 채 하루하루를 빌어먹으며 빌어 처먹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인생에도 마침내 개쩌는 기회가 찾아왔으니, 바로 ‘이면 세계 다이브’ 되시겠다. 일은 간단했다. 1. 좀 위험한 곳에 가서 2. 광물 좀 가져오고 3. 존나게 튄다. 물건 훔치다 대가리에 총을 맞은 새끼도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인데 보수까지 짭짤하니 거절하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러니 우리의 불쌍한 토레오는 뭐라뭐라 적혀 있는 설명을 무시하고 종이에 바로 이름을 휘갈겼다. 솔직히 3줄 이상 적힌 글을 누가 읽겠는가? 

 

왜 설명문에 광물을 캐는(Mine)게 아니라 가져오는(Take)거라 쓰여 있었는지 알게 되었을 땐 이미 토레오는 그 일을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어이구, 불쌍해라!......생각해보니까 솔직히 이거 사기 아니야? 어떻게 생각해 자기?”

“입 닥쳐, 토레오.”

“하이고, 매정해라.”

 

토레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어린애처럼 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그나저나, 구조대가 늦네........이러다가 침식체가 되어버릴지도?”

“그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도 구조대가 오길 바라나?”

“어허, 멍청한 짓이라니?”

 

토레오는 방금 전까지 앉아 있던 거대한 침식체의 시체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말했다.

 

“매번 죽도록 고생하는 나를 위해서 몰래 라면 하나 끓여먹은 그리 큰 잘못이냐? 안 그래 로웰?”

“네가 어디서 뭘 처먹든 네 자유긴 하지.”

“그치?”

“탄약고만 아니었다면.”

“......”

 

로웰이 쓰고 있던 기계식 투구의 안광이 붉게 명멸하자 토레오는 슬그머니 깍지를 낀 손을 뒤통수에 대고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네 녀석이 탄약고를 터트리는 바람에 함선 좌현이 손상. 그 여파로 뚫린 구멍에 빨려나가 지금 이 꼴 아니냐.” “......아니 뭐, 굳이 잘잘못을 따진다면 그렇지만......” 

“어디서 농땡이나 치고 있는 네 녀석을 찾으러 온 나도 졸지에 같이 빨려나가 이 모양 이 꼴이고.”

“아니 그.”

“할 말은?” 

“......죄송합니다.”

토레오는 자로 잰 듯 몸을 직각으로 구부린 채 로웰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옳지.”

“하이고, 누가 전(前)선생님 아니랄까봐. 야! 누굴 유치원생으로 보냐?”

“유치원생이 너보다 낫다.”

“너 싸움 잘하냐?”

 

복싱을 하듯 로웰의 가슴팍을 사정없이 두들기는 토레오였지만 총탄도 막아내는 돌격조 갑옷이었기에 곧 토레오는 저려오는 손을 어루만지며 침을 뱉었다.

 

“좀 치네.”

“헛소리 그만하고, 이제 어떡할 거냐.”

“엉? 당연히 구조대 기다려야지?”

“말이 안 통하는군.”

 

로웰은 땅에 내려놓은 거대한 망치를 들고는 한쪽 어깨에 걸쳤다. 그 모습을 본 토레오는 로웰에 눈앞에 손을 까딱거리며 혀를 찼다. 

 

“자기야, 내가 설마 아~무런 답도 없이 여기 떨어졌을까봐?”

“여기 떨어진 것부터 답이 없다만.”

“이 토레오가 장담하지! 곧 우리를 구하러 마타도~르를 이끌고 여기 나타날 거야.” 

“......왔군.”

“거봐! 내 말이 맞았........응? 벌써?”

“침식체다.”

 

로웰의 말에 토레오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그들 밑에 깔려 시체가 된 침식체보다 2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괴물과 그것을 호위하듯 따라오는 침식체 무리가 즐비했다.

 

“오우.......못생긴 놈들이 잔뜩 있네?”

“방금 때려죽인 녀석보단 강해 보이는군.”

“수도 많고 말이지.”

“......내가 막을 테니 넌 도망쳐라.”

“.......뭐?”

“이걸로 빚은 없는 거다.”

 

로웰의 덤덤한 말투에 토레오는 몇 초간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로웰......”

 

토레오는 로웰의 붉게 명멸하는 투구를 향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이윽고,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그의 손이 로웰의 투구에 닿았고 토레오는 다른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그 나이에 벌써 치매라니......”

“........”

 

침식체를 노려보던 로웰이 시선을 돌리자 토레오는 기다렸다는 듯 그의 투구를 잽싸게 후려갈겼다.

 

“어디 삼류 영화에나 나올 법 한 대사 치지 말라고, 자기. 것보다, 내가 분명 말 했잖아.”

 

토레오는 하늘 높이 엄지를 들어 올리고는

 

“구하로 올 거라고.”

 

그대로 내리 꽂았다.

 

- 콰아아아아아앙! 

 

마치 천둥이 내려치듯 엄청난 소리를 내며 지면이 가라 앉았다. 갑자기 솟아오른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기에 갈라진 지면을 보지 못해 넘어질 뻔 했지만 토레오는 겨우 중심을 잡았다. 자욱한 연기가 서서히 거치자 시야에 들어 온 것은 지면에 꽂혀있는 수십 개의 거대한 쇠사슬 뭉치였다. 단 한 번에 몸을 관통당한 침식체는 그 자리에서 즉사한 듯 보였고 그 주변에 있던 수많은 침식체들 또한 상당 수가 그 여파에 갈려 나간 듯 했다. 로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자 그곳엔 너무나도 익숙한 거대한 함선 하나가 유유히 떠 있었다.

 

“마타도르.”

“콜록! 콜록! 콜록!”

 

연기를 들이마셨는지 연신 쿨럭이던 토레오는 로웰의 어깨에 손을 걸치며 마치 자동차를 소개하는 딜러마냥 여유로운 몸짓으로 눈앞에 모선을 가리켰다.

 

“할 말은?”

“......염병.”

“에헤이, 이거 아주 불량학생이구먼!"

“덕분에 살았다, 아미고.”

“천만의 말씀을.”

 

로웰은 어깨에 멘 망치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런데 어째서 직접 온 거지? 솔직히 약탈조 몇 명 사라진다고 신경 쓸 녀석들이 아닐 텐데.”

“그거야 뭐, 사라진 게 ‘사람 몇 명’뿐이 아니니까.”

“.......”

“......뭐야?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말 해. 뭘 가져왔는지.”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로웰의 시선을 무시한 채 토레오는 왠지 모를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함선에서 내리는 자신들의 전(前)두목이자 현 부두목인 기계 수집가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부두목 속옷.” 


로웰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