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움 필하모닉의 최고 나팔수를 자처하는 인물이 있다. ‘루나’ 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루나는 살아남겠다는 일념이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 평소 다른 단원들에게는 말단 취급이나 받고, 업신여김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줄곧 최고 단원 자리를 유지해오고 있다.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그 결의가 누구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들이 모두 궤멸당할 때에도 루나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지.



그 사건 이후로 루나는 뭐랄까? 모두를 살린 공로로 자기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자기 발언권. 말 그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권리를 의미하지. 지금까지 루나는 이교도 출신이었고, 어떻게 보면 운 좋게 발탁된 경우라 다른 단원들의 미움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에 루나가 보여준 능력으로 모두들 생존해서 빠져나갈 수가 있었지. 마에스트로 네퀴티아 등도 루나를 대놓고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여전히 루나를 시기하는 이들도 없진 않기에 자기 발언권을 주는 정도로 절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루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자기 의견을 말할 권리를 얻었으니 그거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 엘리시움 필하모닉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지금 분위기로 보면 학회와는 그냥 관계가 끊어진 걸로 추정이 되는데 말이지. 완전히 끊어진 게 아니라고 해도, 계약만료일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라면 학회장이 바뀐 등으로 인해 관계적 보류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다.



요즘 루나가 하는 일? 쉬는 시간에 몰래 햄버거 사오는 거다. 요즘 루나는 신났다.



“하아...... 루나 저 녀석.”


“어머~ 왜 그러니, 셰나? 너 혹시 질투하는 거?”


“질투라니? 캬루 너야말로 통수 짓은 그만 하는 게 어때?”


“뭐? 캬루? 야, 나는 카르멘이라고.”


“네~ 네~ 어련하시겠어?”



저기서 루나가 햄버거를 잔뜩 사온다. 다른 단원들에게도 햄버거 먹이려고 사왔다.



“나왔어~”


“......진짜로 사왔잖아.”


“......뭐냐? 햄버거에 감자튀김까지? 돈은 어디서 났어?”


“이... 이거? 그... 그러니까....”


[마침 주머니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에스트로 네퀴티아. 그녀가 주머니에서 돈을 쥐어주며 사오라고 시켰다는 내용이다.



말이 좋아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냈다고 한느데, 실질적으로는 셰나가 온갖 굴욕을 참고 인내하며 틈틈이 벌어왔던 돈을 저축해온 통장이지. 보통 이런 경우에는 셰나가 화를 낼 수도 있지만, 루나로 인해 모두들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 이제는 루나에게 함부로 말할 수도 없고. 아예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뻘쭘하다고 봐도 무방하니. 지금은 이렇게 은신처에서 햄버거라도 먹으며 만족하자.



루나가 자비를 들여 사왔다면서 뭔가 희한하게 생긴 기계를 하나 보여준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비다. 루나가 저 설비 어떻게 구한 거지? 이것도 전부 학회에서 넘겨준 건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지. 말이 좋아서 설비라고 부르는 건데, 햄버거를 비롯해 감자튀김에 별의 별 것들을 죄다 만들어낼 수가 있다. 더욱 기가 막히는 건, 전자동 커피포트 기능까지도 있다는 거. 모두들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티타임을 가질 수도 있고. 루나가 참 복도 많다.



“식재료만 구하면, 이젠 사오지 않더라도 만들어서 먹으면 그만이지만.”


“셰나. 너는 왜 또 불만이야?”


“루나? 너는 저거 돌리는 법 알아?”


“응! 당연히 알지!? 사용설명서도 가져왔는데?”


“......제기랄. 뭔 소린지 모르겠어.”


“아하하하!! 천하의 셰나가 머리 아프다는 소릴 하네?”


“야, 캬루. 그러면 니가 한 번 돌리지 그래?”


“셰나. 그럼 우리 내기라도 한 판 하지 않을래? 누가 더 고품질로 만들어내는지.”


“좋아. 덤벼. 야, 루나? 지휘자 님이랑 심판을 맡아라. 알았냐?”



셰나랑 카르멘이 도대체 왜 이런 거에 집착하게 된 걸까?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혹시나 해서 말인데, 셰나와 카르멘의 고품질 패스트푸드 만들기 대결을 주도한 게 결국은 루나잖아? 혹시라도 루나가 뭔가 꿍꿍이를 세운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봐야만 한다. 대가 없는 호의는 절대로 없다. 대가가 없는 호의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 때에야말로 진짜 진심으로 의심을 해야 할 때다. 허나 지금 저 둘은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으로 보이지. 루나는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걸까?



처음 만져보는 기기를 다루는 거라 두 명의 그림자 그녀들은 애를 먹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기기 조작만 할 줄 알게 된다면 나머지들은 기계가 알아서 다 조리하는 전자동 설비라는 거다. 식재료들은 기계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소위 CNC 선반과 밀링. 일명 터닝센터, 머시닝센터라 부르는 그것들도 컴퓨터에 수치 입력만 제대로 해준다면 나머지 모든 가공 과정은 알아서 다하잖아? 이것도 같다.



셰나랑 카르멘이 경쟁을 벌이는 동안, 나머지 일반 단원들은 어떤 반응일까?



역시나 무반응이다. 하긴 그림자들인데 뭘 바라야겠는가? 더군다나 최고 단원도 아니고, 그냥 일반 단원들이 무슨 권한이 있겠는가? 그냥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그래야지. 더군다나 그림자라서 인간성이고 뭐고 싹 다 상실했으니 괜한 거 바라지는 말자. 인간성을 변함없이 유지하는 루나가 희귀 케이스이고 특이 케이스이며 나아가 돌연변이 변종 케이스다. 마에스트로 네퀴티아. 그녀는 루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여러 생각들을 하고는 있겠지. 다만 가장 비중이 큰 게 어떤 것이냐의 문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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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흑흑....”


[왜 울고 있어?]


“오늘도... 오늘도 잘하지 못해서 혼났어....”


[......많이 힘들었겠네.]


“내가 이교도 출신이라서 다들 날 싫어하는 거 같아...... 으아아아아앙!!”


[울음 그쳐. 나라도 괜찮다면, 내가 너의 말상대라도 해줄까?]


“......?”



루나가 본래 이교도 출신이라는 것은 엘리시움 필하모닉 내에선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루나는 입단 직후부터 많은 이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 정통 신교도 출신도 아니고, 그냥 이교도 출신이니까. 모두들 루나를 시기할 수밖에 없었지. 그랬던 루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어느 단원이 하나 있었다. 그 단원은 루나가 힘들 때마다 몰래 다가와서 각별히 대해줬지. 마치 친동생이나 친구라도 되는 마냥. 루나는 그 상대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꼈고, 트럼펫 연습을 더욱 열심히 했다.



그 자가 루나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가 되어주면서, 그녀의 단원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단원들이 뭐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결의를 항상 유지했고, 나아가 모두에게 인정을 받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 그 시절이나 지금 현재로서의 루나 자신이나 그 자는 진심으로 고마운 존재. 루나가 기억하는 그 자의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은 슬픈 일이었다.



[잘 들어...... 내가 너에게 잘해주고 챙겨주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


[우리는 끝내 세상을 구하지 못했어. 머지않아서 끔찍한 몰골로 변해버리게 되겠지.]


“.......”


[만약 우리가 그런 모습이 되어서 다시 만난다고 해도...... 너는 나에게 그 어떤 미련도 갖지 마라.]


“.......”


[네가 기억하는 나는...... 지금 여기서 죽고 없어지게 될 테니까.......]


“......ㅅ.”


[그 이름 거론하지 마. 네가 나에게 미련을 보일 때마다, 이걸로 네 목구멍을 찌를 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너에 대한 미련을 갖지 않을 수 있게 해줘...... 그리고, 너도 나에 대한 미련을 모조리 다 지워버려. 알겠어?!]


“으... 응....”


[그래...... 그거면 됐어. 나는..... 지휘자 님과 함께...... 이루지...... 못한...... 사명... 이......]



핑크색 단발머리의 여성. 바이올린을 들고 다니던 그 여성은 그렇게 숨이 끊어졌고, 루나는 그 여성의 이름을 부르짖다가 결국 자신도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살아생전 마지막에 품고 있었던 한을 매개체로 삼아 움직이는 게 그림자라고 했던가? 그녀들은 그렇게 그림자가 되어서 만나게 되었지. 정확히는 엘리시움 필하모닉 모두가 그렇게 된 거고. 루나는 그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그 여성은 아니니까.



그 시절의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기에, 그렇게 혼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자신을 그렇게까지 챙겨줬던 친구가~ 저렇게 변했는데도, 너는 여전하네? 루나.」


“......!!”


「왜 그렇게 놀라? 걔가 진정으로 네가 좋아서 챙겨주고 그랬다고 생각하는 거야?」


“......ㅁ.”


「네가 감히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를 자격이라도 있어? 없잖아. 정통 신교도도 아니었던 네가 말이야.」


“.......”


「그러니까 너도 저 녀석에 대한 기억을, 미련을 그만 버려. 계속 놔두면 너만 더 괴로워지게 될 테니까?」


“......싫어. 그렇다고 해도 나는 이 기억을 버릴 수 없어!?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녀는... 내 인생의 첫 친구니까!?”


「아아, 그래? 그렇게 느낀다면야 할 수 없지. 잡을 수 없는 무지개를...... 어디 한 번 잡으려고 해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발악을 하며 절망하도록 해.」



어쩌면 눈에 나비 장식이 달린 파란 머리의 여성. 그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분홍 머리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그 여성에 대한 미련을 계속 갖는 건, 루나에게 있어서도 극히 치명적인 고통이다. 눈에 나비 장식이 달린 파란 머리의 여성은 그 미련을 빨리 없애버리고 너도 제대로 된 이성을 가지라고 했지. 아무런 보답도 의미도 없는 무지개를 손으로 잡기 위해 발악하고 또 발악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라고 하면서. 그러나 루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발악을 그만 둘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라고 말하는 거야? 역시 너는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메롱이네요?!”


「그렇게까지 발악을 하고 싶다면~ 이건 어때? 내가 너에게 하는 거래 제안인데.」


“거래?”


「어려운 건 아니야. 네가 정말로 그 바이올린 녀석의 마음을 돌리고 싶다면......?」


“......?!”


「네가 우리 악단을 끝까지 살려내도록 해. 우릴 없애려는 자들로부터 말이야?」



심벌즈를 들고 있는 여성은 루나에게 악의 세력들로부터 악단을 끝까지 살려내도록 한 번 해보라고 한다. 어쩌면 그 바이올린 녀석도 너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관계 회복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이라도 걸어올 지도 모르겠다고 하면서. 심벌즈를 든 여성의 말에 루나는 기꺼이 거래를 수락한다.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는 이들로부터 이 악단을 끝까지 지켜내라는 내용이 거래. 루나는 이걸 해낼 수 있을까?



악단의 멤버들이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루나는 앞으로도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