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한 코핀 컴퍼니의 사무실은 휑할 정도로 조용했다.


종이 서류가 넘겨지는 부시럭대는 소리와 PC가 켜진 채 내는 구동음이 적막한 사무실의 배경음악이 되어줬다.


초월지식학회의 법학부장, 람다 스파타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법조문과 서류들을 번갈아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코핀 컴퍼니 사장과 자신의 중간 연락책이 되어달라.' 새 학회장이 된 레지나의 부탁이었다.


연락책이라면 구태여 그 회사에 파견을 갈 이유가 없지 않냐고 되물었으나, 이러쿵 저러쿵 말로는 설명하기 복잡한 이유가 있다며 레지나에게 막무가내로 등을 떠밀린지 어언 3일이 되었다.


법학부장으로서의 일 외에 추가로 일을 떠안게 됐다지만 그녀의 스케줄에 부담은 없었다. 특별히 주어지는 일은 없고 사장의 비서처럼 지내는 정도라 나쁘진 않았다. 


사장과 함께 서류를 결재하거나, 일정을 보조하는 외에는 정말로 한적했다. 오히려 본인이 자처해 회사 내부의 규정이나 회사가 마주했던 법적인 문제를 전부 피드백하고도 시간이 남을 지경이었다.


다만 한 가지, 거슬리는 것이 있다면...



"아. 다람 양. 아직도 남아있었군."



남의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르는 이 사람이 문제랄까.


깡통로봇의 형태 대신 말쑥한 정장을 입고 손에는 검은 비닐봉투를 든 채 관리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람다는 질린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사람 이름을 멋대로 바꿔 부르시는건 그만둬주시죠. 제 이름은 다람 양이 아니라 람다입니다."


"하하. 뭐 어떤가? 다람쥐를 부르는 것 같아서 굉장히 어감이 좋은데."


"어감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무엇보다 부지런하고도 단아한 모습이 다람쥐를 닮기도 했고 말이야."


"그건 또 뭔.... 아니, 하아...."



이름을 바꿔 부르는 것 뿐만 아니라 괜히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언행까지. 좋게 말하면 솔직함이고, 나쁘게 말하면 경박함이다. 사장이라는 직급에 맞지 않는 해괴할 정도의 경박함.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체 왜 이런 사람의 연락책을 맡으라고 한건지. 오늘따라 레지나의 결정이 유난히 원망스러워졌다.


람다는 당혹감과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화난 척 하며 감정을 억눌러 담아 말했다.



"....제가 당신을 학회의 방식대로 '처분'할 수 없는 것에 감사해하시는게 좋을 겁니다. 코핀의 사장님."


"걱정 말게. 남남으로 마주했을 때 그렇게 부를 만큼 내가 경박한 사람은 아니니까. 예의도 아닐 뿐더러, 내 신조에 맞지도 않고."


"지금도 충분히 저희 관계는 남남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소중하고도 훌륭한 비즈니스 관계이지. 맥크레디 양과 내 사이를 이어주는."



관리자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사무실 한복판의 냉장고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다람다람 양은 비즈니스 관계를 딱딱한 계약으로 정의하는 것 같지만, 나와 연줄이 닿은 이상 딱딱한 계약이란건 내 사전엔 없네.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계약 같은걸 용납하는 성향은 또 아니라서."


"또 말장난....!!"



못 참겠다. 람다는 서류에서 눈을 떼고 관리자를 응시했다. 이따위 시시한 장난을 치는 이유가 뭐란 말일까?


궁금해서라도 직접 물어봐야 했다. 초월지식학회의 한 학회원답게 그 이유를 발굴해서 기어코 이 남자에게 다신 그러지 않겠다는 항복을 받아내고 말리라는 프라이드가 그녀를 자극했다.


애초에 이런 경박한 사람에게 파견을 보낸 것부터가 납득되지 않는 처사였다. 이유를 알아낸다면 레지나의 부탁 또한 실마리가 풀리겠지.



"진짜 일부러 그러시는 건가요? 사람 이름을 왜 자꾸-"


"별명 같은건 있었나?"



살짝 발끈해서 전한 말에 돌아온 대답은 전혀 생뚱맞은 것이었다.



"...네?"


"최연소 법학부장이라고 들었네. 관리국 공인 s급 카운터를 상대할 정도의 무력, 법조인으로서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법적 지식을 모두 갖춘."


"그런 나이에 이만큼의 경지에 올랐다면 다른건 전부 뒷전이었겠지. 친구들과의 추억, 지인들과의 관계, 가족도."


"......"



자신이 알려준 적 없는 내용을 알고 있다니. 이 남자, 정체가 뭐란 말인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람다는 관리자를 가만히 노려보았다.


관리자의 말이 맞았다. 가족을 위해, 살기 위해, 뼈가 갈리도록 노력했다. 다행히 람다에겐 능력이 있었고, 재능이 있었다.


마침내 법학부장이 된 람다는 드디어 꿈을 이뤘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이제 실키를 지켜줄 수 있다. 이 음습한 조직의 손아귀로부터 실키는 안전하다. 그걸 위해서 뭐든지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에게만 집중했다.


그랬었는데.


꿈을 이룬 순간, 그 영광을 바칠 대상은 어디에도 없었다.


들려온 것은 부학회장을 위한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었다는 소식 뿐.


지금은 많이 호전됐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람다는 목에 걸린 로켓을 꽉 쥐었다.



"....어디까지 아시는거죠?"


"맥크레디 양이 자네에 대해 아는 만큼."



레지나를 살리기 위해 제물이 된 여동생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학회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뒤가 구린 행적 역시 서서히 사라져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회 시점에서의 이야기. 람다 스피타리라는 개인의 시점에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람다에겐 아직도 실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와 꽃송이같은 웃음이 잊혀지질 않았다.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남겨진 자의 슬픔이란건 그런 거니까.



"걱정 말게. 이름을 멋대로 부른다고 해서 자네 이름을 정말 모르는 건 아니거든. 그저 자네가 황무지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협력자로서 가만히 내버려두고 싶진 않은 것 뿐이지."


"학회와 코핀간의 협력관계와 사장님의 그런 바보같은 대화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글쎄.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나? 맥크레디 양의 행적을 봐왔던 자네라면 답을 알고 있을걸세."


"......"



람다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로켓을 열었다. 아직 앳된 소녀였던 자신과 여동생 실키가 함께 웃고있는 사진이 보였다.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관리자의 말을 들었을 때 딱 잘라냈을 것이다. 필요 없다고, 주제넘는 짓 하지 말라고.


하지만 학회가 레지나의 주도 아래 있는 지금은 다르다. 자신의 마음도 바뀌었다.


레지나가 학회를 계승하고 바꿔나갔던 일련의 사건을 통해 람다는 그녀가 가진 상냥함과 존중을 충분히 마음에 새길 수 있었다.


그녀의 모든 행적이 그저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애송이의 치기가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왔던 것임을 느꼈다.



'부학회장님께서 학회장 자리에 오르시면, 동생과 같은 사례도 사라지겠죠.'



그래서 레지나가 학회장을 계승하기 위해 벌인 일련의 소동 가운데에도 레지나의 길을 막지 않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람다나 레지나나 같았다.



"맥크레디 양이 어떤 사람인지는 자네가 나보다도 잘 알겠지. 이건 맥크레디 양의 개인적인 배려야."


"....."



람다는 레지나가 자신을 왜 코핀으로 파견했는지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사장이란 사람은 언행이 짜증날진 몰라도, 본질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레지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


자신이 학회의 그늘을 벗어나 그라운드 원에서 학교를 다니며 많은 것을 경험했듯, 너 역시 스스럼없는 관계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길 기원하는 배려.


과거에 묻혀있지 말고, 시선을 돌리게 해서 람다 스파타리만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한 배려.


판단이 섰다. 람다는 한숨을 내뱉으며 쏘아붙이듯 말했다. 거기에 악의는 담겨있지 않았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시는군요."


"그런 말을 들을 만큼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 인간을 수단으로 취급하는 계약을 맺진 않는다고. 그럼 하다못해 자네가 우리 회사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마음 놓고 지낼 수 있길 바라는 거라네."



관리자는 냉장고를 열어 무언가를 꺼내더니 람다에게 건네주었다.


보라색 포장지로 덮혀있는 길쭉한 형태의 포도맛 아이스크림이었다.



"아이스크림 하나 어떤가? 다람 양 머리카락이 포도 색이어서 사왔는데, 좋아하는 맛일진 모르겠네만."



이름은 여전히 해괴하게 불러대지만, 그 행동은 레지나와 같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 묻어나왔다.


람다는 아이스크림을 집어들고 스스럼없이 싱긋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 좋아하는 맛이에요."



포도나무의 요정과도 같은 우아한 미소가 얼굴에 드리우자 관리자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게 됐다. 레지나가 이 미소를 직접 봤었다면 거무튀튀했던 이 학회에 드디어 한 줄기 볕이 들었다며 기뻐했을텐데.



"그리고 제 이름은 람다 스파타리라고 몇 번을 알려드려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하하, 잘 기억해두지. 다람 스파타리."


"하여간 뜻을 굽힐 생각이 없으시군요?"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벗기다 말고 람다는 미간을 좁힌 채 관리자를 째려보았다.



"귀엽지 않은가?"


"그런 잔망스러운 말은 사장님의 이미지에 마이너스 요소일 뿐이에요."


"본인 스스로가 귀엽다는 말은 부정하지 않는군. 잘 알겠네. 다람 양."


"....학회에 코핀과의 협력관계를 재고해달라고 적극 건의해야겠군요."


"크흠. 그건 좀 참아주겠나...?"


"농담입니다."



부디.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그런 자그마한 소원이 이뤄질 것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람다의 목에 걸린 로켓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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졷망.


3달만에 다시 써보려니 너무 어렵다. 이런 일상단편은 정말 못쓰는데 다람이가 죤나 이뻐서 뇌빼고 질러봄


람다쨩 너무너무 기엽고 이쁘고 사랑해 헤으윽오옥헤으윽오윽헤으윽오옥헤으옥에윽헤으윽오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