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재업로드임


















어느 사막에 탈출 포트가 떨어지고, 충격으로 모래먼지가 휘날린다.


폴폴 날리는 모래먼지 뒤로 탈출 포트가 천천히 열리는 것이 보인다.




"어이쿠, 불시착인가요?"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밀고 앞을 한번 훑는다. 금빛의 모래만이 가득한 드넓은 사막.

포트 밖으로 완전히 나와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본다.


3시 방향. 사람의 형체가 보인다. 신기루인가 의문을 품었지만. 그 형체는 점점 가까워져 명확한 모습을 드러낸다.




"사막에 메이드라... 독특하네요."

"와선 안될 곳에 오셨군요. 불시착하신 건 가요?"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다가와 묻는다.

참 기이한 광경이 아닐 수가 없다. 드넓은 사막 위의 건장한 남자, 그리고 메이드.




"하하, 그런 것 같네요. 주시윤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플로라 메이드 서비스의 베로니카라고 합니다."




남자가 정중히 자신의 신분을 밝히니, 메이드도 자신이 누군지를 밝히며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베로니카 씨도 이곳에 불시착하신 건가요?"

"죄송합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곤란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답을 회피한다. 남자는 딱히 개의치 않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연다.




"괜찮습니다. 돌아가려면 조금 힘들 것 같은데 좀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곤란한 상황에 처한 손님을 돕는 것도 메이드의 소양입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메이드의 안내를 따라온 곳에는 나무의자 두 개와 정체 모를 금빛 동상이 서있는 오아시스 앞이었다.

남자는 상식적이지 못한 풍경에 의문을 가질 법도 한데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 처음 사막에 떨어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유가 넘치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두 남녀는 마주 보고 있는 두 의자에 앉는다. 서로의 말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는 너무 멀지 않은 거리. 메이드의 뒤에는 금빛 동상이 사막의 태양을 받아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그 동상은 베로니카 씨가 만든 건가요?"

"안타깝게도, 메이드인 저에게 그런 재능은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곳에 존재한 동상입니다."




메이드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려 반짝이는 동상을 본다. 단순한 사각형. 그 한가운데에 웃는 듯한 이모티콘.

메이드는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미소를 짓는다. 남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는다.




"어떤 존재였나요?"



뜻을 알 수 없는 질문.


메이드가 놀란 표정으로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처럼, 치부를 들킨 것처럼 뜨거워진 얼굴 위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이 섞인 듯한 웃음이 번진다.

아주 천천히 눈을 뜨고, 메이드의 금안이 사막의 모래보다도 더 빛이 난다.




"저의 주인님이십니다."




메이드가 있으면, 그가 따르는 주인이 있는 법.

하지만, 그 동상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메이드가 사람이 아닌 것을 섬긴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남자는 그것도 자신의 '상식'안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메이드도 남자의 태도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사막의 열기 아래, 금빛 모래만이 가득한 이곳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그래, 처음부터 불시착이 아니었던 거겠지.




"하지만 지금은 쓸쓸해 보이시네요."

"그건 제가 후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하, 후회하는 메이드라..."




재미있네요―라며 말끝을 살짝 흐렸다.

남자가 턱을 만진다. 그러다 끼고 있던 장갑을 고쳐끼고, 여전한 미소로 또 묻는다.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걸까요?"



뜸을 들인다.

거부가 아닌, 복잡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겨우 차갑게 식혔을 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저는 주인님을 위협하는 수많은 악인을 보아왔습니다. 주인님의 앞길을 막는 모든 위험요소를 제거하고, 저에게 마음 한쪽 안식을 주셨던... 그런 주인님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죠."




금빛 사막의 지평선 뒤로 태양이 진다.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동상도 점점 그 빛을 잃는다.




"하지만 주인님은 그게 아니셨던 모양입니다. 저의 충성심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셨던 것 같습니다."

"흠, 속상하셨겠네요. 메이드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 곧 본분을 다했다는 뜻인데."




드넓은 금빛 사막은 어느새 어둡고 푸른 밤으로 가득 찬다.

메이드의 분홍빛 머리카락이 쓸쓸하고 차디찬 사막의 바람을 타고 흩날린다.




"저는 주인님의 부탁을 들어 드릴 수 없었습니다. 메이드에게 있어 사랑은 사치이자 메이드의 소양을 지키는 데 있어 장애물이 될 테니까요."

"사랑?"

"주인님은 저에게 사랑을 원하셨습니다."

"호오..."




어느샌가 당연한 듯이 두 남녀의 옆엔 작은 모닥불이 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의자에서 일어난 적이 없음에도, 그 온기가 당연하단 듯 받아들인다.


태양이 진 사막은 뜨거운 열기에 지지 않을 만큼 차가우니까.




"전 그 부탁을 들어드릴 수 없었습니다."

"글쎄요. 사랑에 빠진 주인과 메이드도 낭만적이지 않나요?"

"저의 맹목적인 충성심은 메이드의 소양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인님이 메이드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닌 신뢰, 안식..."




메이드는 두 손을 모아 자신의 심장으로 가져다 댄다.

합장, 기도 따위가 아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마음이 투영된 그런 두 손.




"충성심과 믿음에 다른 것이 녹아든다면... 주인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그르치게 만들 원인과 주인님을 가로막을 장애물이 될지 모릅니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듣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인다. 긍정이 아닌, 알았다는 듯이.




"그럼 베로니카 씨가 후회하고 있다는 것은 그런 주인을 두고 왔다는 후회인가요?"

"......"




메이드는 조용히 미소 지은 채로 남자를 쳐다본다. 어느샌가 미소를 거둔 푸른 눈을 빛내며 보고 있는 남자의 눈을 본다.




"후회하고 있다면, 돌아가서 바로잡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없나요?"

"저는 주인님을 위해 잡초를 솎아내는 부서지지 않는 꽃이 되기로 맹세했습니다."




모닥불이 한번 세게 타오른다.




"하지만 주인님이 갈구하는 맹목적인 사랑을 내치고, 도망쳐 나온 저는 부서진 꽃입니다. 그 맹세를 부순 제가 돌아갈 자리는, 이제 그곳에 없습니다."

"뭐,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어려운 일이죠."




남자가 타오르는 모닥불을 본다. 메이드도 따라서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본다.




"베로니카 씨가 충성을 다하는 주인님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나요?"

"그렇습니다. 비록 주인님에게서 떠나있지만,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저는 계속 주인님만을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남자의 눈에 붉은빛이 감돈다. 메이드가 듣지 못하도록 아주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베로니카 씨도 맹목적이시군요."

"...충성심은 메이드의 소양입니다."

"그런 건 후회가 아닌 솔직하지 못하다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혹은..."




모순.



남자가 뒷말을 잇지 않는다. 두 남녀가 다시 조용히 눈을 맞춘다. 

메이드의 씁쓸한 미소와 새벽 달빛을 머금은 금안이 슬픔을 띈다.




"그렇군요. 여전히 그리워하고 계시는군요. 두고 온 소중한 한 송이의 장미꽃을."

"안타깝게도, 저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는 법을 모릅니다."

"아니요. 알고 있습니다."




남자가 확신한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의 눈은 여전히 붉은빛이 돈다.




"돌아가면, 주인님은 저를 받아주실까요?"

"......여전히 꿈을 꾸고 계시는군요."




메이드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미소 지으며 남자의 붉은 눈을 바라본다.

푸른 사막에 바람이 불고, 모닥불이 꺼진다. 새벽 달빛을 삼킨 모래들은 검게 변한다.

두 남녀는 당연하다는 듯, 급변한 환경 변화에도 담담하다. 




"이제 깨어나실 시간입니다."

"......"




메이드가 눈을 감는다.

남자는 자신의 허리춤에 있던 장검을 빼들어 높게 든다. 그 서늘한 칼날이 서서히 메이드로 향한다.


메이드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닥쳐올 바로 다음 장면을.


남자는 날을 세워 빠르게 휘두른다, 메이드를 향해서,


가까이, 더 가까이.



그리고 마침내 칼날이 벤 것은―











모든 걸 지켜보며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던

당신이었다.





































암전 된 듯 아무것도 보이는 시야에 점점 빛이 들어온다.

힘겹게 눈을 뜨니, 자신을 내려다보는 몇 사람이 보인다.


펜릴의 주시윤. 플로라 메이드 서비스의 릴리. 그리고...




"평안하셨는지요. 주인님. 릴리의 이야기를 듣고 빠르게 복귀 했습니다."




병상에 누워있는 자신의 옆에 몸을 낮추어 앉아 말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천천히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다.

뻗은 손에는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닿는다. 그리고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 머리카락을 꾸욱 잡는다.




"...자네 인가."

"네,. 주인님."

"그럼... 주시윤 군이 나를 깨운 겐가?" 

"네. 언령 때문에 머리가 조금 아프실 수도 있어요."




침묵한다.

그의 침묵을 따라 모두가 침묵한다.


긴 분홍빛 머리카락을 잡은 손이 떨린다.




"왜, 날 깨웠지?"

"릴리의 수면제를 다량 투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플로라 메이드 서비스의 메이드 장으로서 주인님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제 불찰입니다."





베로니카의 얼굴엔 늘 띄던 미소가 없다. 그저 침묵하며, 대답하지 못하고 슬픈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단순히 안위 때문이었어.


슬프게 웃는다. 그 모습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쥐고 있던 분홍빛 머리카락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긴다.

그녀를 힘으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의 절박한 힘은 멈추지 않는다.




"주인님은 앞으로 닥칠 일들을 해쳐나가야 하시는 분입니다. 맹목적이고, 부하를 모두 둘러보지 못하게 시야를 흐리는 감정은 주인님에게 걸림돌이 될 겁니다."




그녀의 말에 다른 손도 뻗어 그녀의 옷깃을 잡는다. 아주 절박하게 잡아당긴다. 




"그리고 그걸, 저에게 그걸 가르쳐준 사람은 주인님이십니다."




그녀는 여전히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그 표정으로 점점 더 밑바닥으로 천천히 가라앉아간다.




"주인님, 결국 사랑은 잠시뿐인 것입니다."

"그렇지. 꿈처럼 말일세, 한낱 꿈처럼."




자조한다.

실망스러워서, 자기혐오에 빠져 쥐었던 손을 놓는다.




"여전히, 자네는... 자네 다운 말만 하는군."

"...잠깐!"




힘 싸움에 지친 손이 완전히 떨어지고, 다급한 목소리들이 귓바퀴를 수도 없이 맴돈다.


다 알고 있다.


결국은 잠시 뿐, 사랑은 잠시뿐.

결국 스쳐갈 꿈일 뿐 이란 걸.



그러나 아무래도 좋다.


나에게 웃음 짓던 분홍꽃은 이미 돌이킬 수도 없이 시들었고,


난 그저 아직 깨기 싫을 뿐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