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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한 나라 - 한반도 탈출 2


우리는 최소한의 물자만 가지고 지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길이는 대략 2km 내외라고 했다. 뛰면은 그리 오래 걸릴 길이가 아니지만 상태나, 조명 등 때문에 30분에서 40분 정도로 생각한다고 했다. 때문에 물은 가지고 가지 않기로 했다. 중간에 탈수가 올 리가 없으니까 다음 구역에서 구해보는 것으로 정했다.


 "식량은 왜 챙겨가는 거에요?"


 "식수가 얼마나 귀할지 모르지만 어짜피 우리는 계속 올라갈거다. 식수 자체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지만 식량은 정말로 운이 없으면 위험해질거다."


 "그러고 보니 겨울이 어떻다고 했는데... 기후가 많이 달라지나요?"


 "우리가 넘는 위도는 홋카이도보다 낮겠지만... 이미 비교대상이 거기인 부분에서 이해할 거라 생각한다."


 "..."


거기보단 덜하겠지만 그런 곳을 도보로 건너가야 한다고...?

 

 "민우 아저씨... 어디로 들어갈 생각이에요...? 분단선 근처에는..."


 "그래. 거긴 아니다. 8할이라고 생각하지만... 판문점 쪽으로 뚫고 가 봐야겠지."


 "... 거기도 물가..."


 "지뢰밭보단 나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까지 가보는 것도 힘들 수 있어."


 "만약... 군사력은 유지 되고 있다고 하면..."


 "그래. 우리가 하는 짓은 월북이지. 물론 북한도 정부라는 개념이 남아있진 않을 것 같지만."


 "... 그러네요.... 저기도 난리겠죠..."


 "남북 통일이 이딴 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을 거다."


 "... 두 사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언니?"


 "국가가 사라지니까 통일이랑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 같은데... 그게 맞는 관점인지 잘 모르겠다..."


 "헛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챙길 건 다 챙긴 것 같군. 우선 역내를 살핀다. 사람이 있는 지부터 살펴봐라. 없으면 문제가 없지만, 있더라도 저기가 쏘기 전까지는 좀 참아라. 무슨 시비를 걸어오더라도 사격이나 접촉을 하는 것 아니면 좀 넘어가란 소리다. 이유리."


 "알아. 아무리 그래도 내가 화난다고 쏴 재끼는 미친년인줄 알아?"


 "대답 한 번 불안하군. 일단 넷이서 몰려다닌다."


 "수색이라며."


 "네 대답 덕분에 눈을 떼지 않기로 정한거다."


강민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샷건을 장전했다.


 "... 쏘는 일이 없는 것이 최고다만"


우리는 그렇게 불안을 품으며 내려갔다. 언니와 내가 뒤에 민서가 가운데, 앞에는 아저씨가 섰다.


뚜벅 뚜벅 뚜벅


전등 하나 들어오지 않는 역 내에 발걸음을 들이밀자, 발소리가 울렸다. 

손전등으로 주위를 살펴봐도,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개찰구, 계단, 화장실. 그리고 유리와 문이 박살난 편의점과 상점들.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어둠 때문인지 더 없이 신중해졌다.


 "이유리, 개찰구 쪽 주시하고 있어라."


아저씨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천장을 바라봤다.


 "...."


"..."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아저씨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져가는 것을 눈치챘다.


 "... 이유리. 준비해라. 적어도 멀쩡한 새끼들은 아닐거다. 민병대의 일이 될 지도 모른다."


언니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노리쇠를 튕기듯이 움직여 장전을 마쳤다.


 "... 민서. 화장실과 계단 쪽으로 먼저 공격해라. 그 후 대처는 우리가 한다. 아키. 너는 민서가 우리를 따라올 수 있게 도와라."


우리는 조용히 아저씨의 등을 두 번 두드렸다. 한숨을 내뱉으며 아저씨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갔다.

개찰구와 화장실에 전격이 내리 꽂혔다. 그리고 그 공간이 터져나갔다.


 "... 부비트랩."


 "시발! 어떻게 안 거지!"


곧곧의 벽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곧바로 그 자리에 총알들이 박혀들었다. 언니와 아저씨는 어디 있는지까지 눈치챘었던 걸까.

소총 한 탄창과 샷건 여섯발이 꽂히고 나서야 둘은 앞서 달려나갔다. 그대로 나는 민서의 뒤를 마킹하며 따라달렸다.


 "... 대장. 뭐야. 어떻게 안 거야?"


 "cctv는 멀쩡히 작동하더군. 전기가 들어오고 있는 데 왜 불이 안 켜져있겠냐. 화장실이 너무 깔끔했고, 개찰구는 혹시 몰라서다."


 "그래. 거의 인신매매단 인거지?"


 "그래. 아마 철로 자체를 장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거 운 나쁘면 목적지에 도착하더라도 싸움은 안 끝나겠군."


개찰구를 넘어 계단으로. 들어가기 전에 양쪽 계단에 핀을 뽑지 않은 섬광탄을 던졌다.

양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왼쪽?"


 "그래. 거기가 낫겠군."


언니는 주저 없이 난간에 몸을 넘겨 연사했다. 한탄창이 비자마자 몸을 빼며 장전하고 다른 쪽 계단을 봤다.


 "씨발! 아무것도 아니야! 올라가!"


 "수만 많은건가... 아니면 우리가 목적인 건가?"


아저씨는 그대로 왼쪽 계단에 폭탄을 던졌다.

그리고 언니는 오른쪽 계단으로 내달렸다.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구조가 가물가물 했는데. 아마 둘은 막혀있을거다."


민서가 언니의 뒤를 따르며 나와 아저씨가 마지막에 섰다.

곧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안에 빛이 가득해졌다.

이미 먼저 내려간 이유리는 빠르게 다섯을 사살했다. 점차 정확성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 힘으로 반동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나 더 있냐?"


 "몰라. 어두운 것도 어두운 건데..."


완전히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난간에 엄폐하고 있는 언니는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른은 넘어. 반대쪽에서 넘어오고 있는 녀석도 있을까?"


 "아마 있긴 하겠지. 얼마나 올지는 모르지만."


 "탄창이 모자를 수도 있는 거 아냐?"


 "아무래도 그럴 것 같군. 저기도 총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진 않고."


 "쓰읍... 미친놈들..."


즉 맨몸으로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일반인이.

카운터도 뭣도 아니다. 그런데 무기를 든 우리에게 이렇게까지 적의를 보이면서 달려들고 있었다.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죽어라 달려라. 나도 어떻게든 따라가보지. 우리가 지나는 곳은 철도니까 발 아래를 조심해서 달려야 하는 것을 잊지 마라."


언니는 손전등을 어깨에 달았다. 키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총기가 있거나 카운터가 있다면 쉽게 노출되는 것을 염두한 것이다.


 "셋. 둘. 하나!"


언니의 신호에 맞춰 우리는 달려나갔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해봐야 빈약한 비상등 하나.


 "저깄다! 어서 잡아!"


 "어떻게 아는 거야?"


 "야간 투시경 정도는 구했나 보지."


 너무 어둡다. 선로가 보이지 않는다.


 "이유리, 선로 아래에는 공간이 있다."

 

언니는 듣자 바닥에 굴리듯이 수류탄을 던졌다.


 "둘... 하나..."


곧바로 견착과 함께 앞을 조준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잠시 생겼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연사했다. 대략 보인 수는 오십.


 "... 시발. 언제 이렇게."


 "민서. 철로가 어디쯤 있었는지 기억하나?"


 "감으로는요..."


 "전류를 흘려라. 서있는 새끼들부터 조지고 들어간다. 셋."


유리 언니는 숨을 힘껏 들이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총구에서 빛이 생기자 마자 전에 맞았던 사람의 피가 보였다.


 "둘."


아저씨는 유리벽 쪽에 붙어서 다음 신호를 보냈다.


 "하나."


곧바로 다시 한번 번개가 떨어졌다.

다섯명 정도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언니는 그대로 승강장의 끝자락에서 철로로 뛰어들었다. 아저씨는 미끄러지듯이 착지했다. 나는 민서의 손을 잡고 그대로 언니가 달렸던 경로를 따라 달렸다.


 "지금이야! 쏴!"


우리가 갈 방향에서 번쩍임과 함께 붉은 점들이 날라왔다.

아저씨는 곧바로 몸을 엎드렸고, 언니는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유리! 무모한 짓 하지 마라!!"


한 순간에 보인 시야. 내가 봤을 때는 열댓명이었다.

무모한 선택이긴 하다. 해내지 못할까라는 것과 비교하면 아니긴 했지만


 "아악!! 저, 저 미친년이!!"


과연 보이는 녀석들은 몇 명이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부 보여서 사격하는 것은 아닐꺼다.


 "말은 더럽게 안 들어 먹는군."


그나마 우리 눈은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지만 아저씨는 아닌 것 같았다. 대열을 잡을 수 없다.

유리 언니가 어떻게든 주의를 끌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셋이서 뭉쳐 나아가는 것이 나았다.

엄호와 함께 천천히 나아가는 우리는 어느새 언니가 보일 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 대장?"


 "그래. 뒤에 있는 거 맞아. 총부터 안 쏴서 너무나도 고맙군"


 "아 그.. 미안. 뭔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너무 나갔었어"


 "... 그보다 멈춘 이유는?"


강민우는 여기서 한 소리 하는 것 보다 나가는 것을 우선으로 삼았다.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면 더 날뛰지 않을거라는 판단이었고


 "... 없어. 어느 순간 다 앞에 있던 녀석들이 없어졌어"


 "그 후로 얼마나 지났지?"


 "대충... 3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불길함이 뭐가 더 우선인지 확실하게 해줬다.


 "녀석들이 우위인 상황을 포기할 리 없지. 다들 앞으로 계속 달린다. 혹시 발 아래에 트랩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경계는 계속해라"


강민우는 무겁던 장갑판들을 전부 해체했다. 


 "... 내가 먼저?"


 "그래. 이번에는 마음껏 앞으로 달려라"


 "내가 무슨 야생마도 아니고"


 "야생마도 앞뒤 분간은 한다."


철컥- 재장전까지 끝맞친 아저씨는 숨을 길게 들이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유리는 그걸 신호로 다시 앞으로 뛰었다. 철도에 발이 걸리지 않도록 뛰는 게 어렵긴 했지만, 어쩌면 걸렸어도 우그러뜨리며 나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 소리"


 "소리? 아무것도 안 들리는 데?"


 "네.. 왜 안 들리죠...?"


 "... 아키. 준비해라"


 "뭐... 뭐가 일어나는 건데요?!"


 "발소리. 우리 발소리를 포함해서 아무것도 안 들린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무언가 눈치챈 듯한 우리를 향해 위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당연하게도 예상치 못한 공격에 우리는 선수를 내줄 수 밖에 없었고


 대장! 오지마!!


멀찍이서 터널을 타고 전해져오는 이유리의 목소리만이 덫에 빠진지 오래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녀석(어쩌면 녀석들)은 낙하함으로서 우리를 산개시켰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졌다고 하나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분간할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런 걸 인식하자 더 시야가 나빠졌다.


 "아저씨... 쏴요...!!"


 "알아서 엎드려라!"


눈이 아팠다. 맞아서 그런 게 아니라 지근거리에서 급작스런 불빛에 의해 적응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자연스럽게 곧바로 쌓였던 눈의 피로가 체감되기 시작한거다.


 "아키 씨... 달려요."


 "하지만 아저씨가!"


 "그러니까 달려요. 뭔가... 뭔가 이상해요.."


민서는 엎드려서 가만히 있었다. 얼굴은 잘 안보였지만 무언가 생각에 빠져버린 듯한 목소리였다.

일단 달렸다. 총구의 불빛을 기점으로 거리를 두고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그러자 무언가 내 목을 향해 번뜩이는 것이 보였고 반사적으로 그걸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무거운 금속들이 충돌한 소리가 울렸다. 팔이 살짝 저릿했고 미끄러질 바닥이었으면 밀려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엔 세 개가 번뜩였다. 뭔지 잘 모르지만 맞으면 곤죽이 될 거라는 걸 알게 된 이상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움직임을 멈춘 채 계속해서 대검으로 몸을 가려 막아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간격은 점차 빨라졌고, 속도가 올라갔다는 것은 더 묵직한 공격들로 변해간다는 비극이다.


 "대체 뭐가"


있을 법한 거리에 총을 쏘는 것 같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않고, 맞은건지 튕겨낸건지도 모를 무언가를 상대한다는 정보가 생겨났다.


 "아키 씨. 받아치지 말고 엎드리세요."


 "하지만! 그럴 틈이!"


 "충분해요. 노리는 건 목이니까. 충분히 가능해요."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그대로 있으면 곧 당한다고요! 뒤로 빼고 엎드려요!"


이 속도면 뒤로 뺀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가? 잘 모르겠다.

2초 정도 더 고민했다. 2초인 이유는 2초 후에 결국 유효타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몰아치는 공세는 균형을 무너뜨리기에 효과적이었고 아슬아슬하게 목 대신 팔을 베어버렸다.

비명을 지를 틈이 없었다. 지금 번뜩이고 날아오는 것만 해도 다섯이 넘을 것이다.

검을 품 듯이 감싸안고 공격을 받아쳐냄과 동시에 밀려났다. 다친 팔로 그대로 받아내는 것은 무리였으니 당연하게도 힘에 밀려, 그러나 발을 따라가지 못해 뒤로 넘어졌다.


 "... 하아 하아"


그리고 공격이 멈췄다.


 "괜찮아요.. 아키씨...?"


 "팔이 베인 것 빼고는.. 다 괜찮은데.."


 "나는 왜... 공격 받지 않았던 거지?"


 "그 정도 움직임으론 반응하지 않는 것 같아요..."


 "... 총알은?"


 "아마 반응했었는데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거겠죠..."


 "... 왜 엎드리면 안전한 거야?"


 "사정거리 안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인지 범위 바깥에 걸쳐 있는 것 같아요... 아저씨도 엎드리세요... 최대한 느리게..."


무언가 바닥에 닿는 소리들이 들렸다.


 "제가 예상하는 게 맞다면 적은 아마 천장에 있을거에요..."


 "위에서 공격한 거란 말이군. 그런데 그게 왜 갑자기 공격한거지?"


 "... 동체시력만 극대화 된 녀석이 아닐까요...?"


 "우리가 큰 변화를 보이는 순간에 공격한 것이다?"


 "네... 그런 녀석, 혹은 녀석들이 천장에서 공격을 가하는 거죠... 빠르게 움직일 수록, 그리고 아예 멈춰버리면 사냥감이라고 인지하는 게 아닐까요...?"


 "세상 참 살기 각박해지는군..."


 "최대한 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어요... 청력에 의존하는 생물...은 아닌 것 같으니까요..."


 "격발음에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틀린 말은 아니겠군."


 "... 왜 내가 달리라고 했던거야?"


 "그대로 뒀으면 아저씨 목이 날아가는 데 3초 이상 남지도 않았겠죠..."


 "...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잖아"


 "그러다가 틀리면 아키씨가 더 위험해질테니까요... 실제로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랐었고요..."


 "... 소리가 안들린 이유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이유... 위에 있는 녀석들과 관계 있는 게 아닐까요..."


 "알아도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는 거군... 참 이럴때는 큰 도움인데 말이지..."


 "뭔가 평소에는 짐짝이라고 말하는 것 같네요... 부정은 안하겠지만..."


 "이유리는"


 "아마... 꽤 버티실 테지만 서두르는게 좋겠죠... 팔은 괜찮아요...?"


 "아니... 생각보다 아파..."


 "우선 상처 부위를 눌러라. 나간 후에나 제대로 처치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기어가거나... 저녀석들의 공격보다 빨리 뛰는 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 힘내라 아키"


 "다른 방법은 없는 거에요...?"


 "안전한 방법은 저게 최선이다. 나도 방법이 없군"


 "힘내세요. 아키씨..."

 

그렇게 우리는 기어서... 엎드려서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 있을 유리 언니가 걱정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아직까지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멀쩡한 것 같았다.


 "... 아키 씨. 이유리 씨는... 어느 정도 일 것 같아요?"


 "... 우리보다 높지 않을까? ... 좀 많이"


 "나는 문외한이니 잘 모르겠군. 다만... 어중간한 녀석은 아닐거라고 짐작한다. 어중간했으면... 저렇게 살아남지는 못했을테니까"


 "듣는 어중간한 사람은 상처입는다고요. 아저씨..."


 "... 미안하군. 팔불출이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아뇨... 사실은 사실인걸요..."


강민우는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보았다.


 "이민서. 만약 여기를 나간다면, 입구에 진을 치고 있을 것 같나?"


 "아뇨...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지금 중간 이상은 지난 것 같은데, 따로 조치가 없는 걸 보면... 이 아래엔 이런 것들이 잔뜩 깔려있는 거겠죠....

 역 안 정도는 안전할지 몰라도... 입구에서 진을 칠 정도면 오히려 우리가 이미 안으로 더 못 나아갈 거에요..."


 "지리적 이점이라는 하에 판단한 것이겠지?"


 "카운터라도 눈은 두 개니까요..."


 "카운터 아카데미에서는 그런 걸 가르치나?"


 "이런 괴물들이 있는 걸 알았으면 배우기라도 했겠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정해졌을테고요..."


 "우리가 아무도 모르는 재앙을 만난 건 맞나 보군."


꿋꿋이 우리는 기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정보를 조합, 혹은 짜맞춰봄으로서 최대한 건설적으로 시간을 써보려했다.

계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나오진 않았지만 침착해지는 데에 있어 좋은 방향으로 적응하고 있었다.


 "... 저. 그래서, 이제 소리가 안 들리는데 어떡하죠?"


 "하아. 머리가 비상한 녀석이 아니라는 게 마음에 가장 걸리는 군"


모두가 그렇게 이유리의 생사에 대해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분위기를 바꾼 것은 이민서였다.


 "아저씨.... 생물에 대해 많이 알아요...?"


 "아니. 공시 합격할 정도만 배운 것 뿐이다. 그건 왜 묻지?"


 "아까 사냥이라고 했었는데... 만약 성공한다고 치면, 이 녀석들이 어떻게 식사하는 걸까요...?"


 "제발 그런 무서운 이야기는 안 하면 안될까...?"

 

 "... 개구리처럼 끌고 가는 거가 떠오르는 데"


자신도 그랬다. 그거 말고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저 지금... 등이 축축해졌어요..."


침묵이 찾아왔다. 무서워서 식은 땀에 젖었다는 의미가 아닐것이다.

말 꺼낸 장본인이니까, 오히려 무서워서 그런 이야기를 꺼낸 걸 수도 있지만...

앞뒤를 유추해보자면 이건...


 "... 제 위에... 있는 걸까요...?"


 " "..." "


 "그럼 이건..."


 "내 거야... 좀 베이다 보니까... 많이 흘렀어..."


 "... 순간 스퀘어점프식 호러 장면을 보는 줄 알았어요..."


 "미안. 여러 군데 얻어맞다 보니까 힘이 빠져서"


 "목소리가 위에서 들리지 않아서 다행이군. 적어도 산채로 잡아먹히는지 알지 못해서 다행이야"


 "걱정이야. 욕이야?"


 "안 뒤져서 다행이란 소리다. 다음에는 우리 목소리가 들리면 먼저 대답이라도 해주면 좋겠군"


 "천장에 뭔가 돌아다니는데 바닥이라고 뭐가 안돌아다니겠어?"


 "제발 그런 소리 그만해줘요...! 덕분에 지금 움직이는 거 자체가 무서워졌어요..."


 "... 이민서. 가능성은?"


 "왜 쥐나 벌레가 없을까 생각하지 않고 싶었는데... 참 고맙습니다... 아저씨..."


 "....으아악...!!!"


순간적으로 몸이 자동으로 뛰쳐오르려는 것을 참았다.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싶지 않았는데!!


 "고마워 대장... 나도 참 불쾌해졌어..."


 "저희랑 비슷한 움직임을 취하는 녀석들이 있거나... 아니면 저런 거도 잡아먹을 수 있는 녀석이겠네요..."


 "언제부터 대한민국의 지하가 지옥문이 된건지 모르겠군"


 "몇십일 안에 이런 게 튀어나왔다는 게... 제일 무섭죠..."


 "대장? 우리 얼마나 더 가야 해?"


 "아마 거의 다 왔을거다. 한 1.7km정도는 지났겠지"


 "아키. 팔에 감각이 있나?"


 "물론... 좀 저릿하네요...?"


 "... 우는 소리를 안하는 이유가 있었군. 이유리 300 아니 400m 정도다. 그 정도 생각으로 뛰어라. 이번에는 네가 민서를 데리고 뛰어라. 한 녀석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지 아닌지 모르니까"


 "알았어. 400m. 좀 있다가 보자고!"


 "저, 저도 같이 뛰어야 하는 건가요오?!"


이유리는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일어나볼 순 있나?"


 "설마 그것도 못할리가요"


다행히 팔이 저리기 시작한 것 뿐이지 별 다른 문제는 없었다. 저림이 통증으로 대체된 것일까


 "먼저 뛰어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미끼는 못 된다."


 "예 예 알겠습니다. 제가 안 뛰면 안 되겠죠."


그리고 천장에 발포했다.


 "빨리 뛰어라. 총알에는 반응하는 것 같으니까 이게 미끼다"


 "이게 그 한국의 씨발데레라는 건가요"


 "개소리 말고 뛰어라. 못 뛰게 되면 내가 업고 달려야 하는데 아무래도 네가 나 대신 맞아서 끝나는 장면 말고 떠오르는 게 없으니까"


그리고 세 발자국을 떼고 난 뒤에 우리는 말이 없었다.

나는 휘청거리기 일 수 였고, 아저씨는 최선을 다해 어그로를 딴 곳으로 돌리고 있었다.

어지럽다고 느껴지진 않는데 땅이 계속해서 위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그래. 제발 넘어지지만 마라"


 "우! 으아아! 아아아!!"


정말로 소리에 반응을 안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랬으면 이미 꽤 전에 끝나버렸겠지.


계속 달렸다. 넘어지지만 않으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실은 누군가 켜 놓은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대장! 여기야!!"


 "다시... 다시는 못 달려요..."


결국 우리는 살아남았다. 정말로 여기에 사람이 없는 걸까. 왜 없을까 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 그래서 저 어떻게 되는 거죠?"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겠죠... 문제는 뭐에 당한 건지도 모르고... 치료할 방법이 남아있는가 부터가 문제에요..."


 "나는 멀쩡한데... 나도 문제 있는거야?"


 "그러니까 조바심을 안내고 있는 건데... 아마 대게 쉴 곳만 찾아서 시간을 보내면 나을 거 같아요... 체내에서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는 것 같으니까요..."


 "감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는거군"


 "질병이냐 아니냐로 보자면... 독극물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요..."


 "지금 제 앞에서 태연하게 다들 말하시네요..."


 "실제로 챙기면 될 건... 영양제류인가?"


 "그거면 충분할거에요. 식품과 대량의 물... 수혈은 우리가 하다가 반드시 사고칠테니까..."


 "그냥 해독작용이 좋길 바래야겠군"


 "카운터니까요..."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카운터가 어떻게 죽는지 잘 아는 사람들 아냐?'


 "... 그래 그거길 바래야겠군"


 "위에는 아직 안 살펴봤어"


 "다음 역으로 이동한 흔적은?"


 "그게... 있긴 한데. 사람은 아닌 것 같아"


 "..."


 "제가 무슨 나무위키도 아니고... 왜 저를 보시는 거에요..."


 "땅을 기어다니는 종류의 괴물일 가능성은... 너무 비약적인가"


 "가능성 자체를 두고 보면... 우리가 만난 게 말이 안 되죠... 마음대로 생각해도 될 거에요..."

 

 "뭔가 묻기만 해서 미안하군"


 "어짜피 이런 거 말고 하는 게 없는 걸요..."


 "아니. 이런 게 가장 큰 도움이지. 위험 부담이 줄어드니까. 그리고 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 어? 어. 어! 그럼 뒤에서 지원해줄 때 안심이 된다고!"


이유리는 왜 자신을 쳐다보는지 모르는 표정으로 있다가 세 박자 늦게서야 반응했다.


 "... 아키 씨야 안 들어도 알 수 있고..." 


 "지금 뭔가 엄청난 취급을 당한 것 같은데"


 "필요 이상의 대화력은 서로 없잖아요..."


 "..."


 "이렇게 떠들어도 반응이 없는 걸 보면 역 안에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준비하고 올라가지. 날이 저물기 전에 쉴 곳을 찾는다. 그게 우선 목표다. 식량은 나중이야"


한숨을 돌리니 그제서야 시야가 트이고 팔이 움직였다. 뻣뻣하긴 한데 괜찮은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가 지상에 올라가서 느낀 감상은 단 하나.


"이런 미친" "... 사람이 없던 이유가 있었군"

"세기말 디스토피아... 역시 강 근처가 문제일까요..."

"... 죄송한데 한국의 수도는 전부 개방적인가요? 천장이 없는 게 좀 많아보이네요"


안쪽의 건물들은 가로로 반토막이 나있으며 

연기와 깃발들, 현수막이 너저분하게 날라다니고 있었다.

도로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했으나 가로수들은 전부 쓰러져있고

저 멀리 희미하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강을 지나기 전의 상황이 괴물들의 습격을 받은 거라고, 사람들의 혼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면


이곳은 그보다 앞선-

괴물들의 시체로 산을 쌓고 진지를 지으며 누군가를 약탈해나가는 것이 당연한 곳 같았다.

곳곳의 유리는 전부 깨져있었고, 시체들 또한 여기저기 존재했다.

차량들은 부서지거나 뭉개져 움직일 수 없었으며 바퀴란 바퀴는 더 이상 동그랗지 않았다.

건물들은 무언가에 맞아 부서진 것보다 불에 타거나 폭발한 흔적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 아저씨. 여기 설마..."


 "이미 한바탕 서로 싸웠군. 승자는 누군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만나서 좋을 건 없다는 걸 알겠다."


사람이 많다. 그건 특정 비율의 사람들의 수가 다른 곳 보다 높다는 뜻이기도 했다.

밀집된 인구 속에 카운터 숫자의 비율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테니 이곳이야 말로 화약고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이 미친새끼들이...!"


 "진정해라 이유리. 지금은 누가 위험했던 건지 알 수가 없다."


 "딱 봐도 그 새끼들이잖아!!"


 "아니. 고등급의 카운터도 질식사는 할 수 있고, 또 달리 죽일 방법도 있다. 누군가를 위해 싸우는 이들도 있었을 수 있다."


 "그런 새끼들이 있었으면 이 꼴은 안 났겠지!"


 "저, 저기 조금 진정..."


 "대장! 이런 개판을 내는 게 일반인한테 가능할거라고 생각하는거야?"


 "충돌이 없었다고 한 적이 있나? 나는 누가 더 미친 놈인지 모른다고 했을 뿐이다."


 "그야 전부 카운터 새끼들! ... 아 아냐. 얘들아 너희들이 그렇다는 의미는 아니고... 그게 아니라"


 "이유리. 우리가 악감정이 있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걸 마음대로 휘두르면 별 차이가 없는 게 되어버릴거다. 그만하고 쉴 곳이나 찾아"


 "... 네. 아마 근처 상점가나 다른 생존자 지역들을 피하는 게 우선이겠네요..."


 "그래. 최대한 강에서 멀어지면서 쉴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찾아야겠지"


 "... 지하는 피하도록 하죠.."


 "이제 움직이지"


딱히 아무도 이유리를 질책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보다 이유리를 질책하는 사람은 있었다.

우리 셋은 단 하나만을 걱정했다. 언제서야... 아니 어떻게 해야 이유리가 자기가 카운터라는 사실을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남게 된 숙제는 좀 많았다. 물품과 함께 은신처 찾기. 이동수단 마련. 겨울이 오기 전에 이동할 방법 찾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존하기.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지만, 어떻게든 해야 했다.






 "경위님... 뭐 보여요?"


 "내가 무슨 전망대인줄 알아?"


 "전망대보다 더 좋은 시력?"


 "... 하아"


 "뭐, 이제 어떡할까요?"


 "... 다른 사람들 데리고 위로 올라가는 수 말고는 없지?"


 "아무래도요. 무정부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민들을 인도하는 거 말고 없죠."


 "준비해. 오늘 파주까지 가야할 것 같으니까"


 "... 너무 멀 것 같은데요"


 "미친녀석들이 따라붙기 전에 움직이는 게 낫지. 괴물도 괴물인데... 이젠 사람도 문제니까"


 "예. 바로 준비할게요"


여경은 무전기를 들어서 전달을 시작했다.


 [현 시간부로 이동하겠습니다. 목적지는 파주 시내입니다. 후방 인원은 뒤에서 뒤쳐지는 인원들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상]


 [확인했습니다. 현 시간부로 이동하겠습니다. 이상]


 "하아... 이럴 때 경위님 있어서 다행이네요. 높으신 분들이 때 없는 현명한 판단이 이렇게 빛나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그런 말 하면 좀 나아져?"


 "아뇨. 이런 일 벌어지자 마자 튀어버린 높으신 분에게 욕이나 좀 더 하고 싶네요."


 "그래..."


 "아... 최대한 올 겨울은 덜 춥거나... 늦게 오면 좋겠네요. 노점상도 없어서 순찰 돌기 싫은데..."


 "헛소리 말고 운전대 잡아."


 "그럼 안전벨트도 매세요"


 "그냥 좀 가... 어짜피 얼마 안 가서 내려야 할 것 같은데"


 "어허... 민중의 지팡이가 법은 지켜야죠"


 "그냥 놀고 싶은거지?"


 "들켰어요? 그럼 손잡이라도 잡으세요. 출발할게요"



두 여성은 아무 일 없기를 바랬다. 무사히 계속 올라가다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무책임한 일이지만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최전방에 있을... 군인 있으면 좋겠지만, 없으면 그 물자라도 써야 했다. 겨울이 닥치기 전에 최대한 넘어가야 하니까


 "... 멀쩡한 곳이 있을까?"


 "도망친 사람들이 있으면 도망갈 곳이 있는 거겠죠. 그게 어딘지 모르겠지만..."


 "호주는 아니겠네"


 "하하하. 베네치아면 그것대로 웃기겠네요"


둘은 실 없는 소리로 최대한 공포심을 멀어뜨리기 위해서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대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아, 전방에 괴생명체 포착. 잠시 정지합니다. 정리되면 다시 무전합니다. 이상]


 [확인했습니다. 후방 경계 확실히 하겠습니다. 이상]

 

 "경정님?"


 "알아. 기다려"


경정이라 불린 여자는 내렸다.


 "... 아시겠지만 무리하시진 마시고요"


 "알아. 지금 나 말고 방법이 없다는 거"


 "총알도 무한하지 않아서요"


 "진짜 마지막 말만 아니었으면 좋았는데..."


 "하하. 사망복선은 미리미리 끊어놔야죠"


 "무슨 소리인지"


괴생명체. 원인도 모르고 언제 나타난건지도 모르는 것들.

유일하게 아는 방법은 죽을 때 까지 죽여보는 것.

그러니 그저 이유미는 칼을 휘둘렀다. 그것들이 죽을 때까지

필요 이상의 움직임을 없앴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

맞을 건 맞았다. 누군가가 죽기 전까지 가능한 한


그런 이유미를 걱정하는 강소영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 것 외에 없다는 게 무척이나 한탄스러웠다.

언젠가 우리에게 희망이 있을까. 그럼 그 희망은 누구한테서 쥐어짜내야 하는 것인가. 

적어도... 우리가 단 한 사람에게 기대는 것은 아니란 것은 분명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한 사람 말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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