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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믿을 만한 사람과의 여행, 단 한번도 가본 적 없다.






교실은 여전히 책 내음으로 가득하다.

무슨 향인지는 잘 표현 못 하겠지만 그 뭐냐 도서관 가면 나는 꿉꿉한 책 내음 있잖아.

솔직히 말해서 도서관보다 심한 것 같다.

그리고 난 어느새 그 교실에 들어와 있었다.


 "잘 왔어. 거기 의자에 앉아도 돼."


 "응? 뭔가 하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저절로 존댓말이 나온다.

아까 샬롯에게 선배라는 말을 들어서 그런 걸까?

아무리 나라도 선배는 존칭하는 법이다.

그것도 졸업 못하고 유급 당하는 선배라면 더더욱.


 "자기를 낮추는 건 최소한 이 곳에서는 하지 않아도 돼, 루크레시아. 자신을 낮추면 본능적으로 방어적 태세를 취하게 되거든."


"아, 예... 아니, 응..."


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존대하지 말라는 의미는 알겠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 드려야지.

선배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레이가 말한 대로 의자에 앉았다.

나에게 어울리는 구석 자리로.

보라색 머리의 여학생은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

아, 여기 한 명 더 있었지?

들어올 때 봐놓고서는 까먹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노려보고 그러세요... 무섭게...

보아하니 기가 아주 세 보이는 여학생이다. 눈매도 무섭고.

안 그래도 구석인데 더 구석으로 들어가게 생겼다.


 "...너 말이야."


 "네, 넷!"


왜 왜 그러지?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객관적으로 판단해라, 루크레시아. 네가 저 분에게 잘못한 거라고 하면......

......

아무리 생각해도 이 교실에 들어와서 의자에 앉은 것 뿐이다.

그것 만으로도 찍힐 이유가 되냐고?

사실 그냥 아무렇게나 짜낸 거다.

강자에게 찍히는 데는 이유 같은 게 없거든.

그리고 이 편이 이 교실에서 도망갈 수 있는 핑계를 주니까.


 "시, 실례했습니다. 저는 이만......"


 "아니, 왜 들어오자마자 나가겠다는 건데?"


나가지도 못하게 하네.

의자에 조심스럽게 다시 앉는다.

질질 끄는 소리도 거슬릴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어, 어... 그게..."


 "됐고, 거기 가만히 있어봐."


히, 히익!!!!

오지 마요, 무서워...


 "흠... 꽤나 이쁘장하게 생겼는데? 우리 남자애들이 보면 좋다고 쫓아다닐 정도야. 조금만 더 꾸미면 될 것 같은데?"


 "아, 네... 감사... 합니다."


 "이렇게 좋은 본판을 가지고 왜 안 꾸미고 다녀? 내가 다 아깝다."


그건 집 밖을 나갈 일이 없으니까......


 "됐고, 왜 그렇게 위축돼 있어? 그냥 편하게 대해. 나는 야구부의......"






지직... 지지직......






...음? 뭐지?

방금 뭔가......


 "어? 이거......"


뭔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레이의 놀란 반응에 어그로가 끌려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입부 신청서네? 그것도 루크레시아 네 입부 신청서."


 "......응?"


입부... 신청서...?

난 그런 걸 넣은 기억이 없는데...?

설령 넣는다 해도 이런 사이비 동아리는 절대 사절이다.

.....아.

...알렌 그 미친 교사가...!!!


 "놀랐어. 솔직히 다시 돌아올 줄은 알고 있었는데 말이야. 이런 식으로 다시 마주할 줄은 몰랐네."


레이는 특유의 미소를 띄며 내게 말을 한다.

젠장 너무 밝아. 부정을 할 수가 없어.


 "앞으로 잘 부탁해, 루크레시아!"


저렇게 나오면 거절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야말로."






 "그래서 얘도 이제부터 이 요상한 동아리의 부원이다, 이 말이냐?"


 "그래, 루크레시아라고 해. 분명 네게 도움이 될 거야."


 "뭐, 상관 없어. 오히려 도움을 줄 수 있는 녀석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에에에, 그러니까 무슨 상황?

난데없이 이 요상한 동아리의 부원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이 무서운 사람의 건너편에 앉아 있네?

싫다... 구석에 들어가고 싶어라...

이런 식의 급전개는 사람들이 싫어한다고.


 "이 곳이 뭐하는 곳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어, 루크레시아?"


머리를 싸매고 혼란스러워 하던 와중, 레이가 질문을 했다.


 "...잘 모르겠는데."


 "구원부라고 하지만 이름만 거창하지 사실 별거 없어. 학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일종의 상담의 역할을 하거든."


이름이 거창한 건 인지하고 있었구나.

그것보다 상담? 내가?

사람을 마주 보고 대화도 못하는 내가 누구를 상담한다고...

중요한 일은 레이가 다 할 것 같으니 나는 구석에서 눈치나 보고 있으면 되겠지.


 "그럼 자기소개는 아까 했으니 넘어가고.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


 "응, 말해 봐.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면 보통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그래. 아까도 말했듯이 난 야구부다. 그것도 팀 내의 에이스라고."


자랑하러 온 건가...?

그런데 여자 부원과 남자 부원이 한 팀에 섞여있는 구조인가?

우리 학교 야구부 특이하네.


 "뭐,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별거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아까 꺼내 두었던 책을 펼친다.

학생들 고민 상담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심적으로 힘들다거나 진로 상담이라던가.

그런 거면은 상담사를 찾아가던가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그 말에 책을 읽던 걸 멈췄다.

여행? 느닷없이?


 "여행이라면 지금이라도 떠나도 되지 않아?"


레이가 물었다.

나도 레이와 같은 생각이다.

여행이라면 그냥 떠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 그 말이 맞긴 하지. 하지만 내가 말하는 여행의 의미는 좀 달라."


여학생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내가 말하는 여행은... 너희들이 말하는 평범한 여행이 아니야. 먼 곳으로... 아주 먼 곳으로... 거슬리는 녀석은 아무도 없는 아주 먼 곳으로의 여행."


들으면 들을 수록 좀처럼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다.

나와는 다르게 레이는 이 학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파악한 것 같았다.


 "그렇구나. 요컨대 네가 말하는 여행은 보통 우리가 가는 여행이 아니라... 아주 길고 긴 여정을 떠나고 싶다는 거지?"


 "그래, 너 순진하게 생겨 먹어서는 말은 잘 알아 먹는구나?"


 "이게 내 일이니까, 하하."


 "그래서 너희에게 부탁할 일은 별거 없어. 날 공항까지 바래다주면 돼."


진짜 별거 없네. 이럴 거면 왜 찾아온 거지?


 "야구부 감독님과는 얘기가 끝난 거예요?"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아, 감독님? 몰라, 내가 떠난다고 해도 허락 해줄리도 없고. 뭐, 내가 나가면 다른 잘하는 녀석이 내 뒤를 이어 받겠지."


대책 없는 사람이었네.

내 알바는 아니지만.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 친구들."


언제 봤다고 친구들이래...


 "날짜는 언제인데?"


 "이번 주말. 시간은 11시 반 비행기야."


 "그래, 그럼. 그때 보는 걸로 하자고."


 "좋아, 고마워. 친구들."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 되려고 할 때


 "저... 혼자 가시는 건가요?"


 "응, 그건 왜?"


 "......외롭지는 않으세요?"


......

나도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어째서일까?

잠시나마 엿보였던 쓸쓸해 보이는 표정 때문이었을까?

나답지 않은 행동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뭐, 외로워도 별 수 없지. 내가 선택한 길인 걸. 길고 긴 여정에 동반자를 바란 적은 딱히 없어."


 "그, 그렇군요."


 "그래도 고맙네."


 "......네?"


 "그 누구도 나에게 외롭지 않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


 "......"


 "...너와는 조금 더 일찍 만나볼 걸 그랬다."


 "...예?"


 "아니면 같이 갈래? 좀 기나긴 여정이 되겠지만."


 "아, 아뇨. 전 별로 관심이..."


 "그래, 그럴 것 같았어! 딱 보아하니 집안에 눌러 사는 히키코모리지?"


윽... 티가 많이 나나?

옆에서 레이가 쿡쿡 웃는 소리가 들린다.


 "뭐, 어쨌거나 고마워. 믿을만한 사람과의 여행은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너희를 조금이라도 더 일찍 만났다면 가능했을 수도?"


 "배웅까지는 해 줄게."


 "그래, 보기와 다르게 성격이 칼 같구나?"


 "그런가, 하하."


"그럼 주말에 공항에서 보자고!"


그 말을 남기고 여학생은 교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기분이 한 층 좋아 보였다.

그런데......






 '툭......'






뭐지, 저건?

...야구공?

아, 야구부라고 했지.

떨어뜨린 것 같으니 돌려 줘야겠다.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


나간 자리에 여학생은 없었고,

어디서 왔을지 모를 책 한 권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었다.






 '기록 : 리플레이서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