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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 구출되거나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건 뭐지?

책?

아까 그 여학생이 떨어뜨리고 간 건가?

근데 책 제목이 조금 기묘하네.

요새는 이런 책들 읽는 게 유행인가?

나야 책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서 잘 모르겠지만.


기록 : 리플레이서 나이트


여학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돌아간 것 같다.

야구공 전해줘야 하는데...


 "왜 그렇게 서 있어?"


뒤에서 레이가 물었다.


 "아... 뭘 떨어뜨리고 간 것 같아서..."


 "떨어뜨리고 가? 뭘?"


 "야구공하고 책 한 권."


레이에게 여학생이 남기고 간 걸 보여주었다.

레이는 잠시 확인하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응, 그렇네. 그 애는 야구공을 남기고 갔구나."


 "...응?"


 "굉장하네. 처음인데도 완벽하게 구원을 행하다니."


내가 뭘 했다고...

...내가 뭘 했다고?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루크레시아 네가 그 애를 구원한 거지."


 "......?"


 "아직 무슨 소리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네. 그렇다면 그 책을 봐."


책?

책은 왜...

책을 펼쳐 읽어 보았다.

이건... 자서전? 그런 비슷한 건가?

한 사람의 일대기를 그대로 써놓은 것 같았다.

그러다가 한 지점에서 멈칫했다.


 "...교전 중 사망...?"


사망? 사망이라고?

그것도 교전 중 사망...?

싸우다 죽었단 소리잖아.

그런데... 어......?

분명 아까 전에......


 "아까 전에 우리가 봤던 여학생은 리플레이서 나이트라고 하는 실험체야. 그리고 거기 써있는 대로..."


레이는 내가 읽던 부분을 다가와서 읽기 시작한다.

저기요. 너무 가까워요...


 "응, 교전 중 사망했구나. 이 아이는."


 "저기... 이게 다 무슨...?"


 "아, 너에게는 아직 설명을 하지 않았구나. 그래, 너도 이제 구원부의 일원이고 한 명의 학생을 멋지게 구원해냈으면 진실을 알 자격도 충분하겠지."


 "진...실?"


 "눈치가 있으면 알겠지만... 여기는 산 자들의 세계가 아니야. 그렇다고 저승도 아니지. 쉽게 말하자면... 이 학교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이라고나 할까?"


 "이승과 저승의... 경계면?"


 "방금 들어온 학생의 본명은 리플레이서 나이트. 아니, 본명은 나도 알 수 없어. 여기 그녀가 살아있을 때 기록이 리플레이서 나이트라고 칭하는 거니까. 실험체니까 본명은 따로 있었겠지."


자리에 앉으며 레이가 말을 이어간다.

해는 슬슬 지고 있었다.

황혼이 부실에 비춰온다.


 "살아있을 때 기록이라는 건... 이 책?"


 "응, 네가 들고 있는 그 책이 살아있을 때 기록이야. 난 그걸 '메모리' 라고 불러."


 "...메모리."


 "이 부실에는 그 책 말고도 다른 책들도 많았지? 대부분은 메모리야."


그 말에 책장으로 뛰어갔다.

......

전부 다는 아니지만 거의 다 기록 : XXX라고 제목에 적혀있었다.


 "그 책을 여기 빈 공간에 꽂아 줄래?"


 "아, 응..."


빈 공간에 책을 꽂는다.

당연하게도 딱히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저 책을 꽂았을 뿐이다.


 "궁금한 게 많을텐데. 뭐든 물어봐도 좋아."


 "아니, 물어보라고 해도..."


뭐부터 물어봐야 할 지 모르겠다.

머리 속이 너무 혼란스러운 지라.


 "음, 그렇네. 그 학생... 나이트가 왜 구원 받았는지부터 설명하는 게 나으려나?"


 "응, 그것도 궁금하네."


 "솔직히 말해서 그건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해. 그저 난 추측하는 것 뿐이야."


 "메모리에는 안 나와있어?"


 "응, 메모리는 살아있을 때의 기록만 있을 뿐, 이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기록되지 않아."


 "그렇다면..."


 "응, 말 그대로 그 뒤에는 추리의 영역이지."


그러더니 레이는 나이트의 메모리를 훑어보기 시작한다.


 "메모리에는 나와있지 않다면서?"


 "응, 하지만 메모리에는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 바랬던 점이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이 기록되어 있거든. 일종의 프로필이지."


 "...뭐라고 적혀있어?"


 "믿을만한 사람과의 여행. 아직은 한번도 가본 적 없다... 라고 적혀있네."


그 말...

교실에서 나가기 전에 그 여학생이 했던 말 같은데...?


 "이 말을 해석해보자면 그녀에게는 믿을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거지."


 "그건 좀 불쌍하네."


 "그리고 아마 이건 내 추측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믿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 거야?"


 "...왜? 이야기를 들어 주었잖아."


 "이야기를 듣는 것 만으로는 구원이 될 수 없어. 나는 그저 어울려 준다고만 했을 뿐.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못했으니까."


그런가... 어렵네.

내용을 따라가기 어려워. 수업보다 힘들다.


 "하지만 왜 구원 받았는지는 추측이 가능해."


 "어째서 인데?"


 "바로 너야. 루크레시아. 아까도 말했듯이."


 "......나?"


내가 뭘 했다고.

내가 한 거라고는 고작 

외롭지 않냐고 물은 것 밖에는 없는데.


 "사람은 생각보다 심오하지만 단순하기도 해서, 말 한마디에 구원을 받을 수도 있어."


 "...내가 한 말이... 구원이 되었다고? 어떻게?"


 "글쎄? 그건 본인만이 알 시안이지."


다시 책을 꽂는 레이.


 "확실한 건 네 덕분에 나이트는 구원 받았다는 거야. 잘 해냈어."


잘 해냈다... 그런 건 게임에서 캐리했을 때 빼고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난 진짜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 한 것 말고는...

그것으로 사람에게 구원이 된다니...

이건... 기분이 좋다기 보다는 조금 묘했다.


 "그럼 그 여학생은... 나이트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더는 현생에... 삶에 미련이 없다는 거야. 미련이 없는 상태로 이 부실을 떠나게 되면, 저승으로 가게 되지. 흔히 말하는 성불이라고 하려나?"


성불...이라...


 "하지만 그녀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기에 천국에 다다르지는 못할 거야. 오히려 지옥에 쳐박혀 심판을 받겠지."


 "...어? 그럼 구원해주는 게 더 안 좋은 거 아니야? 적어도 이 학교에서 좋아하는 야구를 하면서 지내게 해 줄 수 있잖아."


 "네 말이 맞아. 하지만 구원해주는 게 우리 일이야. 그게 결국 상대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 뒤에 일까지는 생각할 필요 없어."


 "......"


 "이야기를 계속 이어갈까? 성불한 나이트는 모두에게서 잊히게 될 거야. 정확히 말하면 나이트란 인물은 이 세상에 없던 존재가 되는 거지. 너와 나, 구원부의 일원들을 제외하면은 말이야."


 "모두에게... 잊힌다고? 그런... 그렇다면 야구부원들에게도?"

 

 "응, 당연하지. 그들은 구원부가 아니니까."


 "그거...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하는데..."


 "아까도 말했잖아. 구원 뒤에 벌어질 일은 우리가 생각할 필요 없다고."


......

표정 변화도 없이 웃으며 레이가 말한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우리는 방금 사람 한 명의 존재를 아예 지워버린 셈인데.


 "음... 루크레시아. 신나진이라는 학생을 알아?"


 "신나진? 모르겠는데."


 "응, 그러겠지. 그때 루크레시아는 구원부가 아니었으니까. 아마 이 학교의 모든 사람이 그 학생의 존재를 모를 거야."


그리고 레이는 책장에서 메모리 하나를 꺼낸다.


 "나이트 이전에 나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학생이야. 네가 그 학생의 존재를 모른다면... 구원은 성공적이었다고 봐야겠지."


 "...그 학생은 어떤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기밀이야. 뭐, 알고 싶다면 너에게는 말해줄 수 있지만."


 "아냐, 됐어. 굳이 그렇게 해서 까지 기밀을 파해치고 싶지는 않아."


문득, 떠오른 궁금증을 레이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레이 넌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학생을 구원한 거야?"


책을 도로 꽂는 레이.

그리고 멀리 떨어져서 책장을 바라본다.


 "여기에 꽂혀있는 메모리 전부... 라고 하면 이해할까?"


바람이 분다.

이내, 책내음이 바람을 타고 내게로 퍼진다.

사람들의 생전의 기록이......


 "가장 궁금한 게 남아있지 않아?"


 "......"


 "진실을 알기 두려운 거야?"


 "......"


사실 아까부터 묻고 싶은 게 있었다.

가장 궁금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진실.






 "......나는...... 죽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