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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취기가 적잖이 묻어나는 성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반가움에 젖는다.


은빛 새틴처럼 찰랑이며 반짝이는 머릿결을 길다랗게 늘어뜨리고, 풍만한 몸매를 쫙 달라붙는 드레스로 감싼 장신의 미녀가 양 볼에 불그스름한 홍조를 띈 채 관리자에게 미소를 흘렸다. 


“그레모리 특제 데몬 레이디가 그리워지시기라도 한걸까? 후훗.”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게 귓가를 간질였다. 


“하하, 그건 사양하지. 내일도 일이 밀려있어서 독주가 만들어주는  숙취를 음미할 여유가 없거든.”


“어머? 약한 척은.. 데몬 레이디를 물처럼 마셔버리는 손님은 여태 그쪽 뿐이었는걸.”


관리자는 헤롱거리며 실실 웃는 그레모리의 얼굴에서부터 농익은 가슴골, 탐스러운 허벅지와 당장이라도 찢어버리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검정색 스타킹을 찬찬히 훑은 뒤, 최종적으로는 그녀의 발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대롱거리는 구두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그건 그렇고, 꽤나 신난 것처럼 보이는데,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그러엄. 모처럼 달콤상큼한 순애 분위기를 한껏 포식했거든. 역시 순애가 최고란 말이지... 아아, 달다. 그럼 뭐 마실래, 손님?“


“콜드 스프링으로 부탁하겠네. 순애라면, 방금 나간 젊은 남녀 커플을 말하는 건가?”


술에 취한건지, 순애에 취한건지 그레모리는 더듬더듬 칵테일을 만들었고, 이내 평소에 직원이 만들어 주던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콜드 스프링을 관리자에게 내어주고 그의 맞은편에 털썩 앉았다. 


관리자는 훅끼쳐오는 성숙한 여인의 향내와 독한 술 냄새를 동시에 느끼며 그녀가 내민 칵테일로 입술을 적셨다. 


“그렇다니까? 참 맛있는 이야기를 들었지 뭐야.. 사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대. 데이트 하는 내내 서로 티격태격하는데 어찌나 깨가 쏟아지는지.“


그레모리는 떠올리기만 해도 즐겁다는 듯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지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관리자도 덩달아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그레모리가 짓는 흐뭇한 표정과는 몇광년정도 거리가 있는 표정이었다. 


연인 있는 여쟈라는 금단의 과실.


그 과실을 따먹고 난 직후에 느낄 달콤함을 떠올리면 금새 군침이 돌기 시작하는 바람에 관리자는 표정관리에 애를 써야만 했다. 


“좀 더 들어보고 싶군, 자네를 그렇게 들뜨게 만든 순애 이야기를.”


“손님도 순애가 좋구나? 기분이다, 한 잔은 내가 쏠게. 후후후.. 자, 그럼 둘이 처음 만난 이야기부터 해볼까?“


그레모리가 살짝 꼬이기 시작한 혓바닥으로 신이 난 채 늘어 놓는 이야기를 술안주 삼아 칵테일을 다시 한모금 입에 머금은 관리자는 어떻게 과실, 아니. 엘리자베스를 따먹을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퀸사이즈 침대위에 나란히 앉은 남녀.


갓 씻고 나와 몸에서 따스한 김이 피어오르는 서로의 반라를 보며 애만 태우고, 손은 닿을듯 말듯한 거리를 사이에 두고 쭈뼛거릴뿐, 눈치를 보느라 섣불리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경험 부족한 커플의 첫번째 섹스를 앞둔 풍경이었다. 


로이도, 엘리자베스도 섹스를 하는 방법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그 섹스를 위해 어떤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지 않아서 시계가 틱, 틱 거리는 소리만이 공허한 방안을 메워갔다. 


엘리자베스는 시시각각 몸이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그녀 옆에 앉은로이를 흘낏 올려다보았지만, 쓸데없이 세심한 면이 있는 물벼룩은 딱딱하게 굳어서 행여 그의 연인의 기분이 상하기라도 할까봐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표정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났다. 


딱딱하게 굳은 것이 얼굴 표정만이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일텐데.


엘리자베스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늘 그랫듯이, 먼저 한 발 다가서는 건 그녀의 몫이었다.


그에게 접근한 것도, 고백한 것도.. 그리고 이번 첫 경험도.


엘리자베스는 로이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쥐고 그녀에게 당황스런 시선을 보내는 사랑스러운 남자친구의 입술에 입술을 포갰다. 


처음엔 주도권을 뺏겨 당황한 것 처럼 보였던 로이도, 막상 물꼬를 트자 다음 단계로 향하는 동작들을 착실하게 이행해 나갔다. 


엘리자베스의 몸을 감싸던 샤워 가운을 풀어 헤치고, 드러난 젖가슴을 기세좋게 주무르며 그녀를 침대 위에 부드럽게 밀어 눕힌 로이는 자신을 향한 엘리자베스의 기대감 섞인 촉촉한 눈빛에 그대로 사정해버릴 것만 같아서 애를 먹었다. 


만족시켜주고 싶다는 욕심과 잘 해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거기서 오는 긴장감때문에 로이는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지금 연인의 알몸을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올 줄은 상상조차 한 적 없었다. 


막연하게 그 때가 오면 본능적으로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근거 없는 자신감과 낙관은 새하얗게 비워진 그의 머릿속에서 휘발된지 오래였다. 


더구나 상대는 연인이라지만 그의 상사고, 최근에도 엘리자베스와 눈을 마주치면 지옥훈련의 나날이 떠올라 움찔거리기도 했던 그다. 


뼈와 살이 분리되는 것만 같던 지독한 훈련의 끝에,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수 있을 정도로 회복하고 난 후엔 복수로 엘리자베스를 딸감삼아 자위를 하기도 했었지만, 막상 실전을 앞두고 그의 가슴팍을 짓누르는 무게감은 로이의 상상이상이었다. 


‘내가 과연, 이 여자를 만족시킬수 있을까..?’


긴장감에 흘러내린 땀이 로이의 턱을 타고 흐른 뒤 이내 그의 밑에 누워있던 엘리자베스의 얼굴위로 떨어졌다. 


”..로이?“


엘리자베스는 잘 해나가나 싶더니 자신을 밑에 깔아둔채 아플 만큼 젖가슴만 잡아 뜯는 로이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자가 가슴을 좋아한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지만, 그럴거면 양쪽 다 골고루 만질 것이지, 집요하게 왼쪽만 주물럭대는건 대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일까.


“으, 으응?”


“뭐 해요?”


로이는 자신의 하반신에서 급격히 혈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꿈에나 나올법한 매력적인 이성의 나체를 앞에 두고 발기가 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 그는 전에 없던 무력감과 자괴감에 휩싸였다.


“그..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좀 긴장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까 자신을 향하던 연인의 기대어린 눈빛을 떠올리니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죄스러워서 로이는 시선을 피할수 밖에 없었다. 


“괜찮아요. 제가 너무 매력적인 탓이죠. 긴장하는 것도 당연해요.“


예상과는 다르게 부드러운 어조로 위로의 말을 건넨 엘리자베스는 장난꾸러기 천사처럼 웃으며 로이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춰주었고, 

그 보드라운 감촉과 따스함에 로이는 감동하고 말았다. 


”천천히 하죠. 우리의 밤은 기니까.“


피아니스트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길고 우아한 엘리자베스의 손이 말랑해진 로이의 성기를 휘감았다. 


로이는 민감한 부분에 느껴지는 서늘함과 부드러움에 발기도 하지 않고 그대로 사정할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아내었다. 


엘리자베스의 손이 찬찬히 로이의 물건을 훑어내기 시작했다.


로이는 그녀의 서툰 손놀림을 귀엽게 느끼고, 오히려 더 마음이 놓였다. 


”..어머.“


다시 빳빳하게 고개를 쳐든 귀두를 보고 엘리자베스는 나지막이 놀라움과 탄성을 표했다. 


아까 얼핏 봤던 것보다 더 크고, 더 징그럽게 생겼지만 나름 귀엽게 생긴 남성기가 그녀의 손 안에서 맥박뛰고 있었다. 


”고마워, 엘리자베스. 나도 이제 준비 된것 같다.“


어느정도 심적 여유를 되찾은 로이가 씨익 웃으며 엘리자베스를 다시 밀어 눕힌뒤 딱딱해진 그녀의 유두를 빙글 돌렸다. 


엘리자베스는 가볍게 신음을 흘리곤 로이를 흘겨보았다. 


그 얼굴이 귀여워서 미칠 것 같은 로이는 전에 없이 딱딱해진 자지를 엘리자베스의 가랑이사이에 겨누었다. 


“그럼 간다.”


”..언제든지 와주세요.“


로이는 최대한 신사답게 엘리자베스의 처음을 가져갔다.


엘리자베스는 난생 처음 느끼는 감각에 움찔움찔 놀라면서도, 그녀 생각보다 아프지 않음에 안도했다. 


처녀를 잃은 고통보다도 벌써부터 뭉근한 쾌감이 느껴지는 것이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한 그녀였다. 


여기 저기서 들었던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오싹한 느낌이나 구름위를 거니는 듯한 쾌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연인의 신체의 일부가 자신의 뱃속을  충실하게 채워준다는 만족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성실하게 허리를 흔드는 로이를 품에 가득 안았다.


이토록 사랑받는 느낌을 받는 것은 처음인듯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나가 됐다는 감각이 그녀를 충만하게 만들었고,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연인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엘리자베스는 그의 얼굴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오늘 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