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감사의정권] 우리 개는 잘물어요

*** 데드엔드로드 스포일러 있음!!!!!

 

 

 

 

 

 

 

 

 

 

 

 

 


 

[감사의정권] 우리 개는 잘 물어요. (1) 

털어내지 못한 미련이 이어지고, 결국 유품을 돌려주지 못한 세계선의 이야기.










“재차 말하는데⋯ 나는 원래 반대했어. 그러니까―”




꽤나 곤란하단 듯 연신 더벅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지난 전투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폐허를 거침없이 걸어가는 카린을 힘겹게 따라가는 로널드리의 맥 없는 목소리가 거침없이 폐허 위를 걸어 나가는 카린의 귓가에 스쳤다.




“알고 있어요, 박사님. 하지만 이건 단순한 사후 조사나 확인 사살이 아닙니다.”




카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하며, 크레이터처럼 움푹 팬 지면 한가운데에 멈추어 섰다.

제3차 아포리아 공략 작전이 이루어진 전장. 세계의 최고 전력을 한데 모아 성공시킨 그 찰나를 그대로 담고 있는 폐허는 고요했고, 카린의 두 눈은 아포리아를 쓰러뜨렸던 이 자리를 맴돌며 빠른 속도로 훑었다.




“아포리아는 3차 공략전으로 토벌되어 시체조차 남지 않았죠. 박사님 말대로 부검은 필요 없습니다만⋯”




글라우코피스가 반짝이기 무섭게 카린은 상체를 숙여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잡아들었다.

그 집게손가락 멀리 로널드 리는 팔짱을 낀 채 탐탁지 않다는 듯 서서 오른손 검지를 까딱거리며 카린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마치 빨간 보석처럼 보이는 파편을 조용히 응시하는 카린. 그 붉은빛 바로 앞 글라우코피스가 빠르게 점멸한다.




“파괴 후 남은 잔존량 1.09%.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이봐, 소령. 나는 너랑 그 엑자일러가 남겼다는 유산을 믿는 거야.”

“네, 남겨진 고유 무장과 시스템으로 저희는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유사 문제들의 대비책들을 만들어둘 필요가 있어요.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의도는 그렇습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카린은 결심한 듯 핵을 조심스럽게 쥐고, 로널드 리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박사는 말은 그렇게 해도 안심이 되지 않은 듯 오른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그래, 알겠는데. 결국 네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단 이야기라고. 이젠 다들 소령만 보고 있는 건 알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그 말도 안 되는 침식파와 위력까지 재생시킬 생각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렇게까지 성공한 사례는 아이기스에 내장된 기록물에 존재하지 않아요.”

“하⋯⋯. 알겠어.”



병기를 만들려는 건 아니었으니 위험부담을 크게 지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개조시스템이 아닌, 그저 정보의 추출과 연구를 위한 재생 시스템이니까. 계획서를 미리 받아본 로널드 리도 더 이상 맘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카린에게 듣기 싫은 소리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자. 적어도 날 곤란하게 만들진 마.”

“⋯그러죠.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로널드 리가 내민 빈 샘플 상자에 1.09%만이 남은 아포리아의 흔적을 담았다.

붉은 보석은 더 이상 불길하게 빛나지 않고 혼탁한 돌조각처럼 어둡기만 한데, 카린의 얼굴엔 묘한 화색이 돌았다. 






 

[ 분석 결과 : 재생 가능 ]

[ 침식파 차단을 위한 패닉룸을 사전 활성화합니다. ]









***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그게 무엇이든 좋다.










“야, 소령. 내가 도와줄 거 없어?”

“괜찮아요. 레베카 씨는 제가 필요할 때 따로 호출하겠습니다.”



온몸이 근질거리는지, 레베카는 온종일 아이기스 내부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함교에 도착해 카린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카린의 뒤로 야구 배트를 휘적거리며 정신 사납게 함교를 쏘다니는 레베카의 호의를 카린은 정중하게 거절했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라며, 카린은 글라우코피스가 만들어 낸 홀로그램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였다. 이 독단적인 프로젝트엔 방해꾼이 없어야 했다. 그게 침식생물학에 능한 로널드 박사라 할지라도.




“음, 뻐근한데⋯ 칼잡이도 잠깐 고향에 다녀온다 하고 말이야. 소령 좀 잘 챙기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레베카 씨, 부탁이 있어요.”

“오! 말만 해! 난 어차피 길에 나돌아다니는 시궁쥐 같은 신세였다 보니까 그 녀석처럼 따로 갈 데도 없어!”




카린은 무표정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레베카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카린이 오른손으로 허공을 한번 쓸자 홀로그램 화면이 레베카의 앞으로 날아간다.


뭐가 그리 좋은지 한껏 상기된 얼굴의 레베카가 홀로그램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아마 작전 브리핑처럼 무언가를 보여주고, 설명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실험개요, 침식생물 사육일지, 특수 개체 관찰 보고서 등의 살벌한 내용들이 글자 빼곡히 적힌 홀로그램 화면을 레베카가 당혹감 가득한 얼굴로 보며 카린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어⋯ 저기 소령⋯”

“레베카 씨가 일지 정리해주실 수 있나요?”




카린의 무미건조한 부탁에, 레베카는 흠칫 놀란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살짝 움츠러들더니, 머쓱한 미소와 함께 홀로그램 화면에서 뒷걸음질 쳤다. 




“미안⋯⋯. 나 글자 읽을 줄 몰라⋯”

“괜찮아요. 난처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레베카가 까막눈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본의 아니게 난처하게 만든 것이 미안했는지 카린은 홀로그램 화면을 조용히 당겨오며 사과의 말을 건넸다.




“그래도 레베카 씨가 필요한 일이면 반드시 부를게요. 감사합니다.”

“⋯그래! 언제든지 말해!”




싱긋 웃으며 레베카를 안심시키곤, 다시 고개를 홀로그램 화면으로 돌리자 순식간에 차갑게 식는다.

처음부터 정리되어있던 자료들이었다. 지금 하던 일련의 행동들은 그저 재검토하는 것뿐.


조용히 샘플 상자를 꺼내 들어, 도끼눈으로 내려다본다. 무언가를 생각한 듯, 글라우코피스가 점멸했다.



모든 건 가능성을 확인하고,

유의미결과를 낼 수 있는지다.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레베카.”




그리고, 그 끝에서 당신을 다시 대령이라고 주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인정받기 힘들지라도.












***











정신없이 아이기스의 패닉룸으로 물건을 들여놓는 카린의 글라우코피스가 쉼 없이 반짝였다. 오랫동안 멈추었던 실험의 일지가 다시 쓰이는 순간이라고, 묘하게 들뜬 듯한 빛의 점멸이었다.


침식체를 재생하는 것이기에 만일을 대비한 정제 이터니움과 각종 보급품을 옮기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는 듯, 카린의 손발과 함께 글라우코피스는 멈추지 않았다.




“박사님은 바쁘다고 했으니⋯⋯. 좋아, 이거면 충분해.”




신경 꺼주는 게 더 도움 되는 거야.





[ SYSTEM: 테라(TERRA) ― 침식생물체의 재생 완료. ]

 

[ 해당 샘플의 재생 시간을 표기합니다. ]





“⋯⋯오차범위 3초. 변수까진 아냐.”



카린은 할 일을 마친 재생 시스템 테라의 정보를 글라우코피스로 빠르게 받아냈다.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단 1.09%의 핵만으로 다시 탄생한 침식생명체를 향해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새삼스럽게 놀라운 기술들 뿐이라며 머리는 감탄하면서도 손과 발은 만일을 대비한 수단을 준비하기 바빴다. 그 눈에는 세상을 끝장내버릴 뻔한 원수를 다시 봐야 한다는 부정적인 감정도, 혹은 그리운 얼굴을 다시 본다는 기대감도 아니었다.




“1.09%의 핵만으로는 전부를 똑같이 재생시킬 수 없어.”




⋯그리고 처음부터 그럴 생각도 없었다.



아이기스 시스템에 저장된 실험보고서들의 결괏값은 모두 달랐다.

밤을 새워 분류하고 통계를 내보려 해도 실험주도자의 역량에 좌우되는 것인지 공통점도 차이점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기에, 지금 막 카린이 얻어낸 재생체가 어떠할 것이라는 가설은 당장에 세울 수 없었다.


그러니 중요한 건 완벽한 복원이 아닌,

얼마나 ‘유사’한가, ‘기억’은 하고 있는가였다.


그것에 따라 카린의 감정은 실패를 맛본 분노의 색인지, 한 줄기 희망을 잡은 성공이란 달콤한 색인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저 지금은 언제든 무슨 색으로 물들 수 있는, 차갑고 투명한 색. 그런 눈이었다.



마지막 장치를 점검하며 장치를 확인하기 바쁜 장갑을 낀 두 손에는 최고 악력으로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일지를 토대로 큰 변수 없이 결괏값이 도출된다면, 이 장치는 카린을 보호해 줄 유일한 바리게이트였기에 더욱 신중했다.




“⋯⋯이제 눈을 떠야 할 시간입니다.”




이제 이 구속 장치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일지가 아닌 실제를 보게 될 순서. 

막상 입에 담으려니, 억누르던 기대와 불안이 한데 섞여 목소리에 젖어 흘러나온다.




“대령님.”






[ 침식생물체 구속 시스템 ― TARTAROS ]


[ 기동 확인 : 이상 없음 ]







“⋯⋯.”





알아들은 듯, 인간 형상을 한 하얀 갑피의 침식체가 서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외형은 거의 동일하게 재생되어 ‘아포리아’ 그 자체로 보이는 붉은 눈동자와 검은색의 역안.

무언가를 찾는 것인지 두 눈을 정신없이 굴려 패닉룸 안을 살피다 시선이 고정된다.




“⋯대령님.”




카린은 아포리아라고 부르지 않았다.

1.09%의 일부로 재생시켜봤자 새롭게 만들어낸 유사품일 뿐.

그것이 미련인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았기에 외면한다.


그러니 바라는 모습으로,

빚어내고 싶은 얼굴과 목소리, 부르고 싶은 호칭으로 불렀다.




“대ㄹ⋯”

“⋯⋯!! 크르륵⋯”




고문 의자.


말 그대로 고문 의자에 가까운 타르타로스(TARTAROS) 시스템, 그곳에 앉아있는 인간의 형상을 띈 짐승은 침까지 흘려대며 으르렁대고, 구속된 팔다리를 풀어보려 저항했다.


머리는 비교적 자유로웠기에 위아래 옆 뒤로 미친 듯이 흔들며 괴성을 지르는데도, 카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홀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우뚝 서 있는 카린이 비추어야 하는 색은 무슨 색일까.


실패를 맛본 분노의 색?

희망을 잡은 성공이란 달콤한 색?


카린은 오른쪽 눈을 감고 검지와 중지를 올렸다. 그 표정에는―




“언어 및 커뮤니케이션 기능 상실. 구속구 타르타로스를 벗어나려는 시도. 외형은 인간이나 행동은 짐승과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아무것도 없었다.





당연하게도, 이건 결론이 아니었다.

일지의 시작이다.


당장 결정하기엔 유의미한 결과가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바로 결정지을 생각도 없었다.

카린의 감성도, 잘난 글라우코피스의 연산도 지금 두 눈에 담긴 것은 결괏값이 아니라며 부정한다.


한참을 발악하다 지친 듯 구속구에 갇힌 채 고개를 푹 숙인 짐승.

배가 고파 참을 수 없는 걸까, 뚝뚝 떨어지는 투명한 액체. 카린은 그제야 눈두덩이에 올려둔 손가락을 떼고 두 눈을 바로 떴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미동 하나 없이 침만 흘리고 있는 하얀 짐승을 보며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끝은 당신을 대령님이라고 제대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입니다.









2편










+)

태그는 침식순?애

분량은 5편정도

참여분야는 기타입미다

골자는 오래전에 짜놨는데 요근래 현생챙길일이 너무 많아서 뒤늦게 투고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