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감사의정권] 우리 개는 잘물어요

*** 데드엔드로드 스포일러 있음!!!!!










1편



[감사의정권] 우리 개는 잘 물어요. (2) 

짐승에겐 입마개를, 인간에겐⋯













“오늘도 좋은 하루입니다. 대령님. 햇빛은 안 들지만요.”




어두침침한 패닉룸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나긋하고 다정한 미소녀의 목소리가 허공에 맴돌았다.

햇빛에 대한 반응도 확인해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라며 전등을 켜자, 카린을 응시하는 하얀 생명체가 있었다.




“음, 침식 강도⋯”




저 생명체의 침식파는 4종은 고사하고 3종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글라우코피스가 냉정한 결괏값을 도출했다.

카린은 이를 변수 없는 성공이라며 일지에 기록한다.

어차피 침식 병기로 쓸 목적도 아니었고, 부르고 싶은 것으로 부르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기에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이 정도면⋯


이 정도면 좀 더 가봐도 돼.




“이름은 기억나시나요?”




그들의 거리 사이엔 세걸음 정도의 거리.

타르타로스에 묶인 하얀 생명체게 카린이 할 수 있는 만큼 가식을 끌어모아 다정하게 물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하얀 생명체는 여전히 그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고 날카로운 눈알을 굴려 카린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으시군요. 당신의 이름은 제이크 워커입니다.”




또각.


바라는 이름을 분명히 부르며 앞으로 걷자, 생명체는 입가가 떨리는 게 보일 정도로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당신의 과거는 기억이 나시나요?”

“크르륵⋯”




또각.


두 발자국 걸어 나가니 하얀 갑피가 바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고작 그런 전조로 멈출 생각은 카린에게 없었다. 아무것도 확신하지 않은 투명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은 과거 델타 세븐의 대원이었습니다.”




또각.


묻고, 답하지 못하면 정답을 말한다. 어쩌면 교육에 가까운 듯한 형태로.

카린의 바람과 이상이 담긴 정답 위에 한 줄기 희망이 담긴 가능성이라는 색을 덧칠한다.


그러나⋯




“크아악―!! 크륵⋯!”

“⋯!”




타르타로스를 부술 기세로 몸을 앞으로 당기려 발버둥을 치자, 카린이 두발짝 물러났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굉음을 낼 정도로 온몸을 비트는 모습, 사람과 동물 사이 어딘가에 가까운 울음과 비명, 가래가 끓는 목소리.


존경하던 이의 얼굴과 목소리의 형상이 난동을 부리는 모습은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카아악⋯!”






[ SYSTEM : TARTAROS.. ]

 

[ 이상 없음 ]

 

[ 재검토 요청.. ]


[ 이상 없음 ]





꾹 다문 입술엔 여전히 아무런 색깔이 없었다.


덧칠한 색은 아직 아니라며, 그 무엇도 아니라고.

저 생명체에 의해 거부당했기에 카린은 말없이 두 눈을 깜빡였다.


또다시 보랏빛의 글라우코피스가 점멸한다.




“언어능력 상실. 침식파강도와 위력은 예상 범위 안으로 타르타로스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

“―――!!”




패닉룸에 고정된 타르타로스 시스템 자체를 뽑아버릴 기세로 뒤흔드는 몸뚱이. 그대로 가다간 시스템의 탈을 쓴 고문 의자가 통째로 뽑힐 거란 생각에 카린의 두 눈동자가 놀란 토끼 눈처럼 커졌다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쉴 새 없이 온몸을 비트는 흰 생명체를 보며, 카린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음, 지능이 떨어질 수는 있다고 했지만⋯ 너무 추상적이어서 참고만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건 조금 예상 밖의 상황이네요. 생각보다 물리적인 힘이⋯”




짐승.

인간을 형태를 한 ‘하얀 개’.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대령님, 나중엔 절 용서해주시길 바라요.”






[ SYSTEM : TARTAROS ― 구속 강도 상승 요청 ]



“크으으윽⋯! 카아아아악!!”




카린은 살벌하게 덜컹거리는 하얀 짐승과 타르타로스를 등지고 패닉룸 한쪽에 준비한 보급품 상자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비록 지금은 이렇지만, 카린에게 있어서 저 짐승은 여전히 그의 얼굴과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장갑을 낀 손으로 꺼내든 노란색의 기다란 희망을 정성스럽게 펼친다.




“죄송합니다. 긴 ‘훈련’시간이 될 겁니다.”




여전히, 아직도, 그들은 출발점에 있었다.

도착점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빚어내고 싶은 유의미한 가능성을 바란다.














***












짐승에게, 개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카린은 아주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했다.




“존경하는 대령님의 모습으로⋯”




개만도 못한 지능이라니.

비참하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나, 역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순 없었다.

카린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노란색 희망의 끈을 잡아당겼다.




“카아악⋯! 크아아악――!!!”





짐승의 목을 옭아맨 목줄.

희망이라고 부르기에는, 사람에겐 수치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새하얀 짐승.

원하는 색으로 칠하는 데 필요하다면, 카린은 무엇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의지를 투영하듯, 깨끗한 노란색 목줄을 잡아당겼다.




“안 돼요, 대령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그의 옆에서 더 강하게 목줄을 잡아당긴다.


침식체는 먹지도 않고, 산소도 필요하지 않다. 기도, 식도 따위가 존재할 순 있어도 기능을 하진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세게 잡아당겨도 숨통을 조르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통제’였다.




“크으윽⋯ 크르르⋯!”


“이제 그만.”




맹견의 옆에 겁 없이 서서, 훈련 시키는 듯한 단호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인다.

그 공기의 울림엔 따뜻한 노을빛이 녹아있었으나, 노란색 목줄을 잡아당기는 카린의 오른손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짐승을 통제하고 있었다.




“⋯⋯.”




한참 발버둥을 치던 짐승도, 그 힘이 무한하진 않았는지 꼬리를 서서히 내렸다.

연신 침만 뚝뚝 흘리는 채로, 짐승은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여전히 목줄에 의해 고개가 살짝 꺾인 채.


그게 정말 지쳤다는 사인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침식체에게 있어서 ‘유한함’이란 존재하지 않은 생물이라고 여겨왔으니.


그렇기에 카린은 차마 올라가는 입꼬리를 절제할 수 없었다.

훈련을 잘 따른 짐승에겐 포상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꽉 쥐고 있던 오른손의 힘을 서서히 푼다. 고정된 채 억지로 당겨진 고개가 정상으로 돌아온다.

카린은 느슨해진 목줄을 여전히 쥔 채로 짐승의 앞에 섰다.




“잘했어요, 대령님. 훌륭―”


“카아아악―!!!”




목을 찢어가며 울부짖는 비명과 카드득 거리는 기괴한 소리 함께 카린은 재빨리 목줄을 오른편으로 잡아당겼다.

긴장을 완전히 풀어 목줄을 놔버렸다면 물렸을까? 그래, 방금 저 새하얀 짐승은 물려고 했다.


물린다고 고등급의 카운터가 바로 침식체가 되진 않는다. 어쩌면 물려도 딱히 상관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이 행동들은 개와 유사하니까.

그저 조금 쓰다듬으려는 것뿐이었다.





“그냥 칭찬의 의미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개물림’은 다른 문제였다.

방어나 재생에 특화된 카운터는 아니었기에 상처를 입기는 충분했고, 다른 대원들이 이를 알았다간 저 짐승은 폐기처분을 하려 들것이 뻔했다.


물론 아이기스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사전 예방은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이건 알량한 희망이 안일함을 부른 거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무언가 결심한 듯, 카린은 그 목줄을 내팽개치듯 놔버리곤 사나운 짐승에게서 세걸음 물러났다.




“⋯그래요. 우리 조급해지지 않기로 하죠.”












***










어릴 적 겁 없이 화이트 셰퍼드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물린 적이 있었다.

혓바닥을 내밀고 해맑게 웃고 있는 것 같았던 그 개는 한순간에 꼬마 소녀의 오른손을 물었고, 아직은 카운터가 아니었던 소녀는 피를 보고 말았다.


그 화이트 셰퍼드의 주인은 소녀가 손을 내밀기 전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우리 개는 안 물어요.’


카린은 이 말속에 담긴 무책임함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린은 끝내 무거운 책임을 손에 들었다.




“이건 ‘우리’를 위한 거예요, 대령님.”




무책임이 아닌, 서로를 위한 일이었다.

그 입마개를 씌우는 데에 있어, 짐승의 크기와 성격 등은 중요하지 않았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을 뿐.




“그대로 기다리세요. 기다려.”




오른손은 목줄을 잡아당기고,

왼손은 책임이라는 가식을 덧칠한 검은 입마개를 씌웠다.

하얀 짐승을 위한 입마개가 혹시라도 풀릴까, 카린의 표정은 냉정해 보였지만, 신중히 처리하는 두 손에는 잘 나지 않던 땀이 고였다.




“얌전히 잘 받아주시니 얼마나 기특해요.”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함께 왼손을 놓고, 스르르 풀리는 오른쪽 손아귀의 힘에 짐승은 그르륵 거리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숙였다.




“크륵⋯”




이것은 성과인가, 그저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가기 위한 과정일까.

카린은 감히 가능성이라며 전보단 묘하게 들뜬 표정으로 목줄을 잡지 않은 왼손을 뻗었다.




“잘했어요. 대령님.”




조심스레 뻗은 손은 하얀 짐승의 머리카락에 안착한다.

재생체라는 단점 때문일까, 실제 머리카락과는 괴리감이 있는 푸석한 감촉에도 카린은 쓰다듬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 무미건조한 머릿결을 따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니, 더 이상의 입질은 없었다.




아, 다행이다.

그 해맑은 화이트 셰퍼드가 아니다.


설령 물려서 피를 보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은⋯

흰 구름 위에 딴 고양감에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흥⋯”




그리고, 다시 냉정한 이성을 찾은 카린은 나지막이 글라우코피스에 일지를 기록한다.







―입마개를 차면 물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는가?




현재의 인지능력과 지능으로는 어려운 추측이다. 어쩌면 통제에 따르는 법을 몸이 익힌 것인가.


썩 기분 좋은 표정은 아니나, 얌전히 손길을 받는다.

숨을 쉬는 생명체는 아니나 목이 졸려 괴로웠다는 반응인지 투명한 액체를 연신 흘려대고 있었다.




“그래요. 저는,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어요.”




노란색 희망을 잡아당기며, 엉망으로 엉킨 머리카락에 이마를 맞댄다.


강제로 씌운 검은 책임의 틈으로, 흘러내리는 투명한 진실을 외면한 채.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