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약속했던 보상을 주는 날이야!"

한적한 오후

코핀컴퍼니의 탕비실에는 아슬아슬한 복장을 입고 다니면서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는 사원 루나와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관리자가 있었다

"벌써 이 날이 올줄이야. 시간이 참 빠르긴 빨라."

탕비실 한켠에 비치되어있는 벽걸이 시계는 오늘이 월급날이라는걸 상기시켜주었다

"그러면 일을 열심히 해준 루나양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따라야겠지. 그런데 정말로 크레딧으로 받지 않아도 되겠나?"

루나는 여타 사원들과는 다르게 크레딧을 받는 대신 식사를 마음껏 하는 걸 원한다고 말했다

"응!"

해맑게 웃는 루나의 얼굴은 아마도 지금 지구상의 그 누구보다 밝으리라

"좋네. 그럼 나도 그에 걸맞는 보상을 주어야 마땅하겠지."

관리자가 손가락을 튀기자, 탕비실 한켠에서 벽이 갈라진 뒤 네모난 머신 갑이 나왔다

"머-신터치 기동중."

관리자가 능숙한 솜씨로 머-신터치를 조작하자, 로봇의 배쪽부분에 커다란 메뉴판이 등장했다

"이중에서 자네가 먹고 싶은걸 누르면 얼마지나지 않아 이 머-신터치의 배식구에서 원하는게 나올걸세."

"정말?! 역시 사장은 최고야!"

루나는 설명이 끝나기 무섭게 머-신터치의 메뉴판에서 고민 후 치즈버거 세트를 눌렀다

"다만, 한가지 주의할점은 여기는 회사의 공용 탕비실이라 너무 오래 사용하면 안된다네. 식사시간은 20분정도로 해주었으면 좋겠군. 괜찮나?"

"어...음 어쩔 수 없지. 난 그림자니까."

루나는 그림자인 자신이 재수없게 회사 사람들과 마주치는 날에는 핵만 뽑혀서 버려질거라는 상상을 하며 마지못해 납득했다

"좋네. 그러면 나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마음껏 즐기게나."

"고마워!"

덜컹

조금 지나지 않아 머-신터치에서 루나가 주문한 치즈버거와 콜라 그리고 따끈따끈한 감자튀김이 나왔다

"와! 이거 진짜 신기해!"

헤헤. 루나가 행복을 만끽하며 치즈버거 세트를 꺼낸 뒤 앉을 자리를 찾는데, 휴대폰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관리자가 보였다

"무슨일 있어? 되게 심각하네."

"오늘 아침에 갑자기 햄버거를 급하게 먹던 누군가가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고 있었다네."

"ㅁ..뭐? 그거 진짜야?!"

"진짜고 말고. 이거 보게나."

관리자는 루나에게 휴대폰을 내밀어 자신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했다

"세상에...그런 끔찍한일이 실제로 있을줄이야."

"루나양은 매일 아침은 잘 챙겨먹고 다닐테니 그나마 안심이군."

"어..응? 그게 무슨 상관이야?"

"굶주린 상태에서 갑자기 먹으면 이런일이 벌어지는건 당연하지 않나?"


루나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오늘을 위해 며칠동안 배도 굶었건만 이런일이 벌어지다니

"ㄱ...그럼 어떻게 하면 그런일을 예방할 수 있을까?"

루나는 그림자중에서도 살아남는것에 유난히 집착하는 경항이 심했다

그런 루나는 아무리 그래도 자신은 그림자인데 그런 일이 발생할까 싶었지만 만약이라는건 꽤나 무서운 것이었기에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데우고나서 다른 음식을 먹는게 맞겠지. 왜 그런가?"

"아..아냐! 그냥 마침 날씨가 쌀쌀해서 좀 따뜻한걸 먹고 싶어졌거든!"

루나는 관리자의 질문은 받자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내가 한가지 추천을 해주겠네.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음식이라면 역시 펄펄 끓는 삼계탕이 좋을거 같군."

"퍼..펄펄? 그렇게 끓는걸 먹어야 된다고?"

"하하. 걱정 말게나. 처음에야 좀 뜨겁고 좀 지나면 먹을만해질걸세."

"그래? 그러면 한번 먹어볼게!"

머-신터치를 조작하여 삼계탕을 꺼낸 루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삼계탕의 국물을 거침없이 숟가락으로 떠먹었고

"앗뜨뜨!!"

그 대가는 너무나 컸다

"으으...목이 아파."

"그러게 조심히 먹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조금 식으면 그때 먹게나."

"그래...어쩔 수 없지 뭐."

저 삼계탕이라는 쓴맛이 나는 국물이 식는데에 10분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을터

10분정도면 햄버거를 먹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변수가 없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지만.



똑똑

약 10분이 지난 뒤 이제 햄버거 포장지에 손을 올리던 셰나는 온몸의 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안에 누굽니까? 누가 탕비실 문을 잠궈놓고 써요?"

문 너머로 루나가 제일 마주치기 두려운 순위 탑 랭크에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부사장의 목소리가 루나의 귓가를 때렸다

"아 미안하네. 내가 닫을때 실수로 잠궜나보군."

관리자는 다급한 제스처로 비품이 들어있는 캐비넷을 가리켰고 루나는 그것이 뜻하는 바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장님이십니까?"

루나가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를 안내면서 최대한 빠르게 캐비넷에 몸을 숨기자, 관리자는 그제서야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었다

벌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루나는 숨을 죽였다

들리는 바로는, 마트에서 장을 보러가던 셰나가 부사장과 마주친적이 있었는데 그 날밤 부사장은 셰나의 핵으로 혼자서 캐치볼을 3시간쯤 한 뒤 셰나의 핵을 원상복구 시켜놨지만 셰나는 2주넘게 컨디션 불량으로 쉬었다는 소문이었다

"근데 저 음식들은 다 어디서 난겁니까? 탕비실 비품에 저런것들을 넣어둔 기억은 없습니다만."

부사장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는 치

"아 저것들 말인가? 마침 잘 되었군. 나가 자네에게 보여줄게 있다네."

관리자가 손가락으로 방 한켠에 서 있었던 머-신터치를 가리키자, 이수연의 표정이 매우 싸늘해졌다

"저 머-신터치로 말하자면-"

"얼마입니까?"

"흠흠...."

"하아...됐습니다. 이 건은 차후 정기보고때 상세하게 듣도록 하죠."

"음? 왠일인가."

대신, 저 햄버거 세트좀 주시죠. 아침부터 일이 생겨서 오늘은 아침을 못먹습니다."

루나는 캐비넷 안에서 버거 얘기가 들리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흠..그건 안되겠는데."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햄버거 세트는 뜯지도 않고 삼계탕부터 드시던거 같은데 진짜 그러실겁니까?"

"아니 이건 그..."

"그? 혹시...여기 다른분이 계시기라도 한가요?"

딸꾹

루나는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이 나왔다

"무슨소리 안들렸습니까?"

"흠. 나는 아무소리도 내지 않았다만."

"후..그런가요."

"요즘 많이 피곤한가보군.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는게 좋겠군
 
"아뇨.사장님이야말로 욕심 그만 부리시고 햄버거나 내놓으세요."

"그보다도 다른 안건이 있지 않나?"

"어차피 정기보고때 보고해 드릴 사항이었습니다만...



둘의 대화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상입니다."


"음..잘 알았네."


"그런데 햄버거, 진짜 안드실겁니까? 이러다가 진짜 식을텐데요."

부사장의 눈초리가 점점 가늘어졌다

"혹시...여기에 다른 여자가..."

"어흠! 그럴리가 있나. 그냥 자네와 대화를 하느라 먹지를 못한것일세."

그 순간 루나는 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손놀림에도 계속 반항하듯 벗겨지지 않았던 치즈버거의 포장지는 관리자의 능숙한 손길이 닿자, 치즈버거 본연의 모습을 관리자에게 완전히 보여주었다

"오 꽤 맛있어 보이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네."

'읍읍읍!!!'

케비넷으로 그 상황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루나는 다물고 있었던 입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그럼, 잘 먹겠네."

분명 자신을 보고 한 말이 분명한 저 말을 시작으로 관리자의 잘 정돈된 치아는 아직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던 번을 겉을 찢고, 무참하게 집어넣어졌다

연이어 양상추, 패티, 치즈, 토마토까지 아우르는 한입을 베어물자, 마치 피와 닮은 붉은색의 토마토에서 과즙이 빵을 적시고도 넘쳤고, 이내 탕비실의 바닥에는 조그마한 얼룩이 졌다


'흑흑..내...내 버거가아...눈앞에서...'

"맛있습니까?"

"괜찮군. 특히 소스가 절묘해."

하지만 관리자의 만행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길쭉한 플라스틱 빨대를 꺼낸 관리자는 콜라의 플라스틱 뚜껑에 있는 X자에 과감하게 집어넣었고

'아...안돼...'

빨대가 너무 두꺼웠는지, 음료수 용기 사이로 미처 막지 못한 콜라가 밖으로 튀었다

"사장님. 콜라가 아니라 사이다 드시지 않았습니까?"

"나라도 가끔씩 콜라가 마시고 싶을때가 있다네. 그게 마침 오늘이었고."

"그렇군요."

쪼오오옵

루나는 음료수 용기 안에 있는 콜라의 내용물이 빠진 뒤 공기가 다시 그 자리를 채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무력하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이것도 먹어볼까."

관리자는 루나가 사이드로 가져온 감자튀김에 있는 1회용 케첩을 뜯은 뒤, 감자튀김 곳곳에 진득하게 뿌렸다

'아...'

그 광경을 본 루나는 다리에 힘이 풀릴뻔 했지만 가까스로 캐비넷에서 쓰러지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저도 한입 주시죠. 진짜 혼자 다 드실겁니까?"

'어...어??'

"어쩔 수 없지. 딱 한입일세."

햄버거가 반쯤 남아있던 그때 이수연이 다가와 관리자가 먹던 부분을 그대로 베어물었다

"음...괜찮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한번쯤 먹어볼만 하겠네요."

"입에 맞았다니 다행이군."

자신의 햄버거를 사장만이 아닌 부사장까지 먹어버리자, 루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양 괜찮나?"

흐릿한 시야속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사..장님?"

흐릿했던 시점이 서서히 돌아오고 이내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사장이 있었다

"갑자기 캐비넷에서 쿵 소리가 나서 큰일이 일어난줄 알고 걱정했다네."

"..그 부사장은..?"

"부사장이라면 한입을 먹고는 약간의 잔소리를 하고서 그대로 떠났다네. 캐비넷에서 소리가 난건 그 이후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다..다행이네...하하..."

루나의 입은 웃고 있지만 전혀 행복해서 웃고 있는듯한 표정이 아닌 해탈 혹은 체념에 더 가까웠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건데 루나양은 폐쇄공포증이 있나?"

"...아니. 그런거 없어."

"이상하군. 캐비넷을 연 직후 내가 본 자네의 모습은 그렇지...'축축'했다고 할까."

"추...축축했다고?!"

"아니, 실금을 한건 아니야. 침을 너무 많이 흘려서 속옷까지 젖었을도였을뿐."


"아...그래..."


다시 되돌아보니, 자신이 먹고 있는게 아님에도 욕구를 주체하지 못하고 침을 흘렸던 자신이 떠올랐다


"이렇게 되어 미안하군. 내가 다시 똑같은 버거를 가져다줄테니 기다려주겠나?"

분명 자신을 배려해주는 말이었지만 루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치즈버거는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맞긴한데...그냥 나는 다른걸로 먹을게..."

루나는 분명 맛본적이 없을텐데도 마치 맛을 본듯한 이 기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