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지금 더블 프로마쥬 케이크를 30% 세일 행사 중입니다~"

 "엄마! 아빠! 저 케이크는 뭐야??"

 벌써 연말이다. 연말의 도시 풍경은 매번 모습이 비슷하지만 항상 마음을 설레게한다. 평범한 가로수였던 나무들은 색깔전구 몇 개를 메달아놓으면 행사용 트리가 되어 거리를 밝혀준다. 빛에 온도라도 있는 것마냥  사람들은 그 빛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무엇때문인지 모르지만, 새로운 해가 시작될 때가 아니라, 해가 끝나갈 때에 사람들은 더욱 더 활발하게 움직인다.

 "....."

 한 소년이 걸음을 멈춘다. 실눈을 뜨고있는 소년이었다. 소년의 복장은 특이할 것도 없었다. 거리에서 보게된다면 그저 얼굴 한번을 슥 보고 지나칠 정도의 복장. 검은색 코트로 적당히 몸을 가렸고. 속에 입은 하얀색 맨투맨 후드로 적당히 얼굴을 숨켰으며 청바지와 신발도 적당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있다. 눈에 띄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그런 상태. 오히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할 때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치를 잘 아는듯, 소년은 자신을 그렇게 숨겨왔다. 걸음 걸이도 눈에 띄지않도록. 계절에 따라 보폭을 조절해가며 걸었다. 그런 소년이 걸음을 멈추고 보고 있는 것은.

 한 소녀와 소녀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가게의 유리창 너머로 치즈케이크를 고르는 모습이었다. 소녀는 유리창 너머의 세계가 동화 속 세계라도 되는 것처럼 유리에 얼굴을 맞대고선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부모는 그걸 푸근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소녀의 가족들이 케이크를 사서 포장을 했음에도, 소년은 계속 케이크 가게를 보고 있었다. 소년이 계속 멍하니 서 있으려니 아르바이트생이 묘한 눈빛으로 소년을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아르바이트생이 소년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뭔가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사이 소년은 원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아르바이트생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다시 장사를 시작했다.

 그녀의 뒤, 가게의 안쪽에선 TV가 틀어져 있다. 세계의 미스테리에 대해 순위를 매기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남극에서 오로라가 관측될 때 기이한 전설이나 괴담이 떠돈다고 하였다. 그 중에 하나가, 오로라 속에 하늘을 나는 기차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행자들은 그 다음에 나올 실체가 확인되지 않는 불족발을 탐하는 형제들의 사연에 집중하였고 다른 이야기들은 금방 잊혀졌다.


 "꺄아아아~ 아빠! 엄마! 이것 봐바! 오늘이 크리스마스래! 크리스마스는 산타 할아버지가 착한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날이지?"

 지휘통제실이 유난히 소란스럽다. 여자 아이가 목소리가 온 방에 울려퍼진다. 목소리를 따라가니 청록 빛깔의 머리칼을 가진 여자아이가 꺄르르대고 있었다. 여아용 산타복장을 입은 소녀는 자신의 머리에 빨간 바탕색의 고깔 모자에, 끝에는 하얀 털방울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자 아이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하얀색 털방울이 소녀의 뺨을 간지럽혔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즐겁다는듯 온 몸을 배배꼬며 즐거워했다. 소리나 행동이나 영락없이 어린 아이였다.

 "그래 그래 우리 딸. 우리 딸은 선물을 많이 받을 수 있을거야."

 소녀의 옆에서 은발의 여인이 말했다.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듯, 잔머리 하나 없이 포니테일로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정리한 여인이었다. 여인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미소를 지었다. 여인의 복장도 소녀와 비슷한 산타 복장이었는데, 어른이 보기엔 조금 민망한 노출이 있는 산타 복장이었다. 

 "그렇다는데 아빠?!"

 여인과 소녀의 시선이 한 곳에 닿는다. 그곳엔 검은색 깡통이 있다. 조잡해보이는 기계 팔과 트랙터가 결합되어있는 철의 결합체였다. 디자인으로만 보면 구시대의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상상할 때 만들던 디자인이었다. 깡통의 매끄러운 단면에 이모티콘과 같은 표정이 빛으로 출력된다. 눈과 입을 표현한 점들로 얼굴을 표현한듯 했다. 이것이 아빠였다.

 "음! 그래. 딸아. 하지만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시간이...."

 "잠깐 눈을 감고 기다리거라 딸아~"

 "아, 알렉스양?"

 알렉스. 은발의 여인이 끼어들자 아빠가 말을 다 잇지 못한다. 알렉스가 소녀가 안보이는 곳까지 깡통을 강제로 밀어낸다. 알렉스가 밀어낸대로 끌려간 깡통은, 알렉스양의 말을 들었다.

 "당신, 저번에 약속하지 않았어? 나를 위해 일을 할 시간이라고. 그럼 우리 딸을 위해서도 잘 해야겠지?"

 "그건 나를 위한게 아니라 소림양을 위해서 그런 것..."

 알렉스가 깡통의 머리를 한대 쥐어박는다. 철이 땡강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휘통제실의 문이 열린다.

 "들어가겠다. 사장."

 소녀, 알렉스와 깡통. 세 명의 시선이 문을 향해 쏠린다. 얼굴에 맞지 않게 체구가 작은 여성이었다. 머리카락 색이 은색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반짝거리며 빛나는 알렉스와는 다르게 아마색에 가깝다. 털털해 보이는 태도와 어울린다면 어울리는 색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보처럼 보이는 더듬이 머리털이었다.

 "힐데양이로군! 무슨 일인가?"

 깡통이 기다렸다는듯 반갑게 맞이한다. 알렉스는 뒤에서 입술을 깨물고 깡통을 째려보고선, 다시 자신의 딸을 향해 돌아갔다.

 "일 할 시간이다."

 "응? 무슨 일을 말인가. 그러고보니 주시윤군은 어디에 있지? 항상 같이 다니던게 아니었나?"

 "밖에서 기다린다고 하더군. 사장을 방해할 수는 없다면서."

 힐데가 말했다. 고개는 자신이 들어온 쪽을 향해 슬쩍 돌렸다. 실눈을 한 소년이 슬쩍 모습을 비추어 자신이 있는걸 알리기라도 하는듯 손짓했다.

 "아니야. 정말 잘 와주었네. 무슨 일인가??"

 "주시윤과 프론트 베이에 좀 다녀오겠다. 글레입니르를 출항해도 될까?"

 "프론트 베이? 거긴 호주이지 않나.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건가?"

 "가공할만한 상상력이로군."

 힐데는 눈살을 찡그렸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컨트롤 룸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나? 남극에서 이상현상이 관측되었다고 하는군."

 "흠... 잘 모르겠군."

 사장이 말했다. 힐데는 사장 뒤의 소녀와 알렉스에게 눈길을 쓱 주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일 이후로 침식률이 많이 높아졌다. 예전처럼 자주 농땡이를 부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흠. 알고있네. 그럼 함선을 준비하도록 희린양에게 연락해놓겠네. 무장을 뭘로 해놓는게 편한가?"

 "포드 타입이 좋겠군. 날이 추울테니 말이야."

 얘기가 끝나자마자 힐데는 등을 돌렸다.

 "그러고보니 시윤군만 가도 충분하겠는가? 자네도 알겠지만.."

 힐데가 고개를 돌렸다.  

 "충분하다."

 다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그 녀석도 모처럼의 휴가를 즐겨야지."





 겨울 밤, 그것도 도시의 겨울은 특유의 향이 있다. 콘크리트와 유리와 철에서부터 나오는 비릿한 향내음. 실눈의 소년, 주시윤은 뺨에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힐데의 가슴팍을 쳐다봤다. 옷깃에 걸어놓은 강철의 휘장이었다. 늑대의 형상이다. 자신도 단검을 끼워놓는 파우치에 꽂아놓은 휘장이다. 휘장을 따라 시선을 올린다. 힐데의 아마빛 머리칼이 바람을 맞아 흔들린다. 힐데의 시선은 옥상 아래의 건물들을 향해 있다. 빌딩같은 고층 건물에는 헬기가 내려앉을 수 있도록 빨간 불빛들이 점등하기를 반복한다. 빛무리들을 펼쳐놓고 보면 마치 도시가 살아있어서, 그 심장이 뛰는 것처럼 보인다. 아주 잔잔하게. 이 밤을 넘기길 기다리며. 도시의 밤을 수놓는다. 건물의 빛은 별이고, 도시는 또 다른 밤하늘이다. 힐데는 그 밤하늘을 바라 보며, 담배를 피고 있었다.

 "춥지는 않으신가요? 스승님?"

 힐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곁눈질로 주시윤을 보았다. 힐데는 담배 연기를 한번 뱉고선 대답했다.

 "상관없다."

 "후후. 남극은 처음가는 거니까 걱정이 되서요. 게다가. 오랜만의 작전이잖아요?"

 주시윤이 말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선웃음을 치는건 여전하군. 매번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쁜 웃음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스승님도. 상대방을 난처하게 만드는 표정을 하고 계시니까요."

 힐데는 대답없이 다시 담배를 피웠다. 담배끝이 붉게 타오르며 재가 되어 떨어진다. 힐데는 소리나게 연기를 뱉고나서야 말했다.

 "그러는 너도 복장은 똑같군."

 팔뚝에 늑대의 문장이 그려진 검은색 코트.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넥타이. 검은색 계열의 바지. 이것이 펜릴 소대의 제식 복장이었다. 

 "저야 이 옷을 워낙에 좋아해서요. 하하."

 "쓸데 없는 이야기는 생략하지."

 힐데는 다시 말없이 흡연을 이어갔다. 주시윤도 그 이상은 입을 열지 않고서 그저,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입을 먼저 연건 주시윤이었다.

 "그러고보니 스승님. 스승님은 케이크같은건 싫어하십니까?"

 주시윤이 묻자 힐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힐데가 주시윤을 보았지만, 주시윤은 먼 야경만 바라볼 뿐이었다.

 "왠일로 번거로운 질문을 하는군. 천하의 주시윤이 가을이라도 탔나?"

 힐데가 능글맞게 말하자 주시윤은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아니요. 싫어한다고 하시면 이번 미나양의 진급 회식때 준비하려고 했거든요." 

 "그럼 그렇지."

 힐데가 혀를 차며 담배를 빨아들였다.

 "하긴 나이가 있으시니까 역시 케이크는 싫어하시겠군요."

 "응?"

 힐데는 코웃음을 쳤다.

 "글쎄. 잘 모르겠군."

 힐데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미소와 함께, 힐데는 담배를 털어버렸다.

 "자. 가자."


 "이거. 생각보다 놀랍네요. 이런 시설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주시윤이 말했다. 

 "대정화전쟁 이후로 만들어진 시설이다. 오랜만이군. 너도 가끔 다이브를 가면서 보지 않았나?"

 함선 지휘실의 디스플레이에는 한 항구를 보여주는 영상을 송출하고 있었다. 배가 들어올 자리가 있고, 등대가 있고. 부교와 크레인까지 있는걸 보니 항구가 틀림 없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항구라고 하기엔. 무기가 너무나도 많았다. 지상과 바다 사이엔 거대한 장벽들이 이어져 있고, 장벽 사이사이엔 고정식 포탑들이 무수히 바다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걸 같이 보던 힐데가 깨달았다는듯 이어 말했다.

 "그러고보니 주시윤. 넌 항상 멀리 있는 지부의 다이브는 꾀를 써서 빠졌군."

 "처세술이라고 해주시죠."

 힐데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으며, 지휘실의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관제실. 여기는 힐데. 등장하길 바란다."

 힐데가 말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

 "과, 관제실 등장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힐데 소대장님"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디스플레이에 은색 머리칼을 양갈래로 묶은 소녀가 등장했다. 관제사 특유의 복장인 붉은 정장과 모자가 눈에 띄는 소녀였다. 소녀는 눈동자를 크게 뜨고서 화면을 보고 있다. 

 "어라. 뒤에 저건 뭘까요? 어 저건?"

 주시윤이 이상함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으어어어, 이.. 이건!"

 소녀의 뒤로, 책상이 슬쩍 비춰지고 책상 위에는 묘하게 생긴 인형이 늘어져있다. 소녀와 닮은 디자인의 인형이었다. 목각인형처럼 보였다. 소녀의 뺨 위로 홍조가 점점 번져간다. 소녀는 꺄악 소리치며 인형들을 책상 밑으로 쏟아버렸다. 

 "클로에. 또 너로군. 저 이상한 인형은 뭐지?"

 힐데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표정은 없었지만, 한심하다는 눈빛이었다.

 "카트료시카로군요. 모르시나요 스승님?"

 "마트료시카같은건가?"

 "네 똑같아요. 일종의 뽑기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장님이 요즘 저거에 푹 빠지셨다고 하는군요."

 "크음음!"

 클로에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어서오십시오 힐데 소대장. 무슨 일로 호출하셨습니까?"

 클로에는 애초에 없었던 일로 하길 원하는듯 했다.

 "지부에서 발견한 좌표는 어디지?"

 힐데가 말했다.

 "프론트 베이에서 관측한 마지막 좌표는 지자기위도상으로 65~70도 정도의 범위입니다. 자료를 띄우겠습니다."

 클로에가 허공에 손짓하자, 디스플레이의 화면이 바뀌었다. 

 디스플레이 화면엔 오로라가 보였다. 하늘의 커튼이라고 부르는 천문현상이다. 비단과도 같은 엷은 광막이 남극 하늘에 일렁이며 춤을 춘다. 하지만 힐데와 주시윤이 보고자 하는 대상은 자연 현상이 아니다.

 "대상은 미확인비행물체(Unidentified Flying Object)입니다. 형상은 공중에 부상 중인 열차입니다. 프론트 베이에선 다른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로라가 펼쳐진 뒤에 얼마 안있어, 차원이 일그러지는 특유의 충돌 소용돌이가 일어났다. 그 후 빛의 장막 속에서 열차가 나타난다. 분명. 바퀴가 달리고 연결되어 있는 열차의 형태였다. 클로에는 그걸 확대하면서 설명하고 있다.

 "오래살고 볼 일이군."

 "스승님도 그런 말을 할줄 아시는군요."

 "진심이다. 안에 타고 있는게 무엇인지 알 수 있나?"

 힐데가 말했다.

 "안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클로에가 말했다.

 "하하. 이면 세계의 산타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던져줬나 보네요."

 "선물이래도 안에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니까 문제인거다. 위치 추적은?"

 "그게.."

 클로에가 낮은 목소리로 이어 말한다.

 "레이더상에서 갑자기 위상변화라도 한것처럼 사라졌습니다. 현재는 추적이 불가능 합니다."

 "그런가.."

 "저 기차... 어디서 많이 본 물건인데요."

 "...."

 힐데는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선 유심히 디스플레이를 보았다.

 "항로를 변경해야겠군. 관제실. 접속 종료."

 "접속 종료. 행운을 기원하죠."

 디스플레이가 꺼지고 다시 글레입니르의 시야로 영상이 바뀌었다.

 "대충 어디로 가실지 알 것 같군요. 스승님도 눈치채신거죠?"

 "그래. 저건."

 힐데는 디스플레이의 사진을 열차 사진으로 바꾸고 말했다. 힐데의 시선은 제어실로 보이는 맨 앞줄 칸에 멈춰있다.

 "뉴 오하이오다."

 힐데는 미간을 찡그렸다.

 "네. 스텔스함이죠."


 [글레입니르, 기동을 중단합니다.]

 "아니. 계속 켜두어라. 엔진 가동이 느려질거다. 언제든 지원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힐데가 쌍검을 등에 파지하며 말했다. 

 [승인 완료. 개방합니다.]

 글레입니르의 문이 열리자마자, 백색의 바람이 휘몰아친다. 힐데와 주시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것처럼 몸을 숙이고 폭풍에 대비했다. 

 "너무 쎈... 것 같네요"

 "카운터 출력을 좀 더 올려."

 힐데가 말했다. 태연하게 말하는 그녀도, 머리칼이 미친 사람처럼 휘날리며 앞을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큭!"

 힐데와 주시윤의 카운터 워치가 빛을 뿜어낸다. 잠시 후 두 사람을 뒤흔들던 눈폭풍에도 둘은 끄덕없이 상체를 일으켰다. 어느정도 자세가 안정이 되자 주시윤이 코웃음을 쳤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네요."

 주시윤은 지평선 너머의 수평선을 널리 보았다. 이곳은 아무 것도 없는, 백색 서리의 땅이었다.  빛도 닿지 않는 땅에 오직 눈과 바람과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있군."

 이런 땅에 있을 수 없는 것이 떨어져 있다. 백색 서리 위에 흑색의 강철이 일자로 길게 놓여져 있다. 거대한 강철덩어리를 거인이 조각하여, 기차로 만든 것처럼 느껴졌다. 일반적인 기차보다 크기가 훨씬 컸다.

 "용이 잠든 것 같군요."

 힐데가 주시윤을 흘깃 쳐다보고선 강철 덩어리를 향해 다가갔다. 그냥 일반적인 기차가 아니다. 하늘 위에서 떨어졌고. 기관실로 보이는 맨 앞 줄의 열차는 분명. 주시윤도 일찍이 보았던 뉴오하이오였다.

 ".... 엔진이 켜져있군요. 혹시 침식체도 엔진을 킬 줄 아나요?"

 가까이 다가서니, 기관실의 옆면이 위 아래로 개방되어 있었다. 개방된 틈 사이엔 푸른 빛이 원을 그리면서 열을 내고 있었다. 눈발이 함선에 닿자마자 전부 녹아내려 사라졌다.

 "그건 봐야 알겠지."

 힐데가 말했다. 

 "그런데, 입구는 어디에 있을까요?"

 "주시윤."

 힐데가 말하자, 주시윤은 말없이 허리춤에 있던 칼을 잡았다. 평소에는 붕대를 감아놓는 환도다. 일반인이라면 휘두르기조차 버거워보이는 환도. 그리고, 공간을 베었던 환도. 함선을 베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리라.

 "갑니다아."

 주시윤이 눈을 감는다. 칼자루부터 칼끝까지의 감각을 느낀다. 가면 갈수록 시간이 느려진다.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조차 멈춘다. 기차의 엔진 소리 주기가 점점 더 느려진다. 눈보라의 눈 한 알갱이가 뺨에 닿아 녹는 감각이다. 길게 호흡한다. 주시윤이 손목에 찬 염주가 점점 떨린다.

 [형성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vayadhamm sankhr appamdena samp deth]

 호흡을 멈추고. 벤...

 "잠깐! 멈추세요!"

 환도의 붕대가 풀리기 직전에, 기차 옆면의 토크가 개방된다. 토크가 개방됨과 누군가가 소리쳤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너는.."

 힐데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말했다.

 "다시 보는 건 오랜만이군."

 주시윤과 힐데가 여성을 향해 시선을 옮긴다.

 "카린 웡."

 미니스커트 형태의 제식복장. 허리를 꽉 졸라매어 두드러진 가슴. 골반까지 닿는 검은 코트의 옷깃엔 은색 휘장이 빛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건 검은 생머리 뒤로 묶은 노란 포승줄이었다. 흩날리는 포승줄은 델타세븐 부대 특유의 상징이다. 

 "또, 만나는군요."

 카린 웡이라 불린 여성은 힐데의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똥을 잘못 싼 강아지같군."

 힐데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카린 웡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소총을 잡고 있는 손은 떠는걸 감추기 위해서인지 소총을 꽉 붙잡고 있었다.

 "자신감이 많이 사라졌는데."

 "....."

 카린 웡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어깨는 한층 좁아보였다. 

 "무슨 행동을 하고있는지는 스스로도 알고있나보지?"

 힐데의 무표정은 차가웠다. 이 곳. 남극의 온도와 비슷했다. 

 "스승님. 그래도. 들어가서 얘기나 들어보는 게 어떨까요."

 주시윤이 슬그머니 힐데 옆에 다가섰다. 카린 웡이 주시윤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여길. 들어오시겠다고요?"

 "안될 게 있나?"

 "이 곳은 1급 비밀 구역입니다."

 "오호. 무엇을 숨겨놨을까요?"

 주시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숨겨놓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난번 도움을 준 당신들이라고 해서 저희의 중요 시설을 마음대로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서는 사생활 존중을 요구하는 격이군."

 힐데가 말했다. 카린 웡이 소총을 힐데에게 겨누었다. 

 "뻔뻔함은 여전하군 그래."

 "이 세계에 온 건 저희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소총을 겨누었음에도 힐데와 주시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건 저번에도 마찬가지였지. 의도같은 이야기를 할 여유 따위는 없다."

 "거기에다가.. 뭔가 도움이 필요한 상황처럼 보이는데요?"

 카린 웡은 힐데와 주시윤의 안광이 붉게 빛나는 것을 보았다. 열이 나지않을 극한의 추위에도 불구하고. 카린 웡은 이마에 흐르는 땀이 거짓이 아니란걸 알았다.

 ".... 따라오세요."

 카린 웡은 등을 돌렸다. 그 등 뒤를 힐데와 주시윤이 따랐다.


 "왔어? 오! 내 동생도 왔구나~?"

 카린 웡의 안내를 받고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또 다른 여성이 팔을 활짝 벌리며 힐데와 주시윤에게 다가왔다.

 "주시영 씨. 체통을 지키세요. 이들은 놀러온 게 아닙니다."

 이 여성의 이름은 주시영인듯 했다. 정리되지 않은 검은 단발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성이었다. 주시영은 활짝 벌린 팔을 주시윤에게 다가와 안기려고 했다.

 "으으.... "

 주시윤은 급히 뒤로 빠져 거리를 벌렸다. 

 "혹시나 했지만 너도 있었나."

 "호호호. 할머니도 오랜만이네요~"

 힐데가 미간을 찡그렸다. 

 "언제봐도 적응이 안되는 외모군요. 그런데 저번과는 옷이 좀 다른데요?"

 "아 이거~"

 주시영이 보란듯 등을 돌렸다. 옷은 카린 웡과 비슷한 복장이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색 미니 스커트. 상체를 둘러싼 코트. 하지만 카린 웡과 다른 게 있다면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코트는 자신의 팔에 걸치도록 벗어놨으며 포승줄은 자신의 검집에다가 묶어놨다는 것이다. 

 "어때. 멋져보여?"

 "아니요. 하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디서 구한건지 제 옷이랑 비슷한 타입이었으니까요."

 "호호. 그 옷도 있는데 한번 입고올까?"

 주시영이 주시윤에게 상체를 숙인채 슬그머니 다가온다. 뱀같은 모습이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 또 불량한 복장이군요. 당신은 정말.. 이젠 당신은 용병이 아니라 델타 세븐의 일원이라는 걸 알아주세요."

 "알았어요 알았어 대장니임~"

 카린 웡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이 분들이 여기에 무슨 일로..? 잠깐. 그럼 혹시.....?"

 힐데가 머리에 손을 집으며 이어서 말했다.

 "여기에 있으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군."

 "일반 함선이라고 보기엔 조금 복잡해보이는데요."

 주시윤이 내부를 스윽 둘러보았다. 어디에 시선을 놔야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했다. 승무원이 적어도 오십 명은 넘어보였고 다들 델타 세븐의 복장을 입고있었다. 승무원들은 주시윤과 힐데가 온 것을 멍하니 쳐다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떤 승무원들은 정신없이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거나 공중에 뜬 디스플레이를 손을 대고 있었다. 함선 중앙에 크게 펼쳐진 디스플레이엔 검은 구체를 볼 수 있었다. 검은 구체만 보이는게 아니라, 구체를 해부한 것처럼 구체 내부의 다양한 기계 부품들을 해부도처럼 펼쳐놓았다. 

 "저 구체는 뭐지?"

 힐데가 물었다.

 "저희 세계에서 새로이 개발한 블랙홀 엔진입니다."

 "너희 세계의 기술이라고?"

 "회사에서 많이 본 디자인이군요. 예를 들면 코핀-6라던가."

 주시윤의 말을 듣고서 카린 웡이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사장님으로부터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장? 그 깡통을 말하는건가?"

 "네. 흔쾌히 협조해주셨습니다."

 힐데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아. 이 구체로 뭘 하려는거지?"

 "... 군사 기밀입니다."

 "대장니임~? 이미 다 들킨 것 같은데요? 애초에 이 세계에 온 게 저희 계획이 아니었잖아요."

 주시영이 카린 웡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스윽 올리며 귀에 속삭였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는 게 어때요?"

 "그, 그만하세요!"

 카린 웡이 화들짝 놀라며 주시영을 뿌리쳤다. 카린 웡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힐데는 그걸 유심히 바라보았다.

 "힐데씨가 저 무표정한 얼굴로 한심하게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마음에 들지않아요? 우리 동생은 맨날 저런 분이랑 있어서 좋겠다."

 "으흠흠..."

 주시윤이 목을 다듬고서 시선을 피했다. 힐데가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알겠으니 이제 얘기해봐라."

 카린 웡도 한숨을 내쉬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디스플레이에 손을 가져가니, 검은 구체의 설계도를 보여주었던 화면이 이제는 힐데과 주시윤이 보았던 열차로 전환되었다. 

 "저희 세계에서는 델타 세븐과 세계 정부가 협업하여 계획을 진행 중입니다. 계획의 이름은 열차의 이름을 딴, 프로젝트COW-아우로라입니다."

 "무슨 계획이지?"

 "세계 이주 계획입니다. 세계가 멸망할 것을 대비해서, 함선을 타고 남은 생존자들은 워프를 통해 다른 세계로 이주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아루로라 열차는 첫번째 이주를 시도할 계획이었습니다."

 "무슨 다른 세계를 말하는거지?"

 ".... 저희가 확보한 평행 세계가 있습니다. 원래라면 그 곳으로 가는 게 맞지만. 이 세계에 의도치않게 와버렸습니다. 저번과 조건은 분명 같았는데.."

 카린 웡이 말했다. 

 "저번처럼 쓰레기 무단 투기를 할 생각은 없었나보군."

 "의외로 잘 납득 하시는군요."

 주시윤이 말했다.

 "그러면, 다시 이 곳을 떠날건가?"

 "네. 워프를 위해 엔진을 다시 충전해야합니다."

 카린이 디스플레이를 다시 건드려서, 화면을 전환했다. 아까의 구체로 화면이 돌아왔다.

 "저희랑 헤어지는게 아쉬우신가봐요?"

 주시영이 빙그레 웃었다. 

 "웃는 눈매를 보니 주시윤이랑 판박이군."

 힐데가 말하자 주시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끔찍한 비유로군요. 그나저나, 왜 하필 열차인거죠?"

 "열차의 기능도 수행하는 함선이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군요. 저희 세계에선 연료가 희귀하니까 최대한 동력을 아껴야 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생존자들을 태워야 했으니까요."

 "흠... 그쪽 세계는 사정이 많이 다르나보군요."

 "그러면 왜 출발을 안하고 있는거지? 30분이었으면 우리가 오기 전부터 출발이 가능했을텐데."

 "그게 사실은.."

 카린 웡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엔진을 가열할 동력이 살짝 부족해요. 아침까지 기다리면 되긴 하지만."

 "함선을 녹이기도 바쁘다 이거군. 게다가 엑자일러인 이상. 시간은 부족하고 말야. 여기에 온지 얼마나 되었지?"

 "19시간 23분 10초입니다. 남은 시간은.. 3시간...."

 카린이 시계를 보며 말했다. 갈라진 목소리로 말끝을 흐렸다. 

 "3시간인가.. 연말이니 해가 뜨기엔 부족하군. 잠깐. 19시간이라면 아침이 있지않았나?"

 "어떤 침식체의 습격을 받아서 지체되었어요."

 머뭇거리는 카린 대신에 시영이 말했다.

 "침식체라.."

 힐데는 입으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손에 무엇이라도 있는 것처럼.

 "네. 크기가 꽤 큰 침식체였어요. 어떻게 쫓아내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함선의 포격까지 지원을 받아야 해서 동력을 많이 잃었죠."

 "이런 곳에도 침식체가 있었나요? 스승님?"

 "왜 항구에 중무장을 했는 지 감이 오나?"

 힐데가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던거군."

 카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수척해진 뺨. 푹 들어가서 명암이 짙어진 눈동자. 시영이 말없이 카린의 어깨에 손을 올려주었다.

 "좀 앉아 계실레요? 차 한잔 갔다드릴게요."

 시영이 말하자 힐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치 다 끝난 사람들처럼 처져있군. 저번과는 많이 다른데."

 카린 웡의 턱이 부들부들 떨린다.

 "....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이었나요!"

 고개를 숙이고있던 카린 웡이 고개를 퍼뜩 들고서 힐데를 향해 소리쳤다. 한뜻 치켜뜬 눈동자는 갈 곳 없었던 분노를 힐데를 향해 쏟아낸다. 

 "최선.. 최선..! 최선...!! 저는 어떤 상황에서 최선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항상 추락만 하고!"

 카린 웡이 주시영의 손을 뿌리치고 힐데에게 덤벼드려고 다가갔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는게 좋았겠어요? 아무런 의미도 없고 부질없는 희망 따위를 믿을 게 아니라 제가 다 포기했으면 됐나요?"

 힐데는 무표정이었던 얼굴에서, 무표정을 거두었다. 카린 웡은 그 얼굴을 보더니, 입술을 깨물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나한테 달린 생명이 몇 명인데...!"

 카린 웡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 그거면 됐어."

 힐데가 한쪽 무릎을 꿇고서, 카린 웡의 어깨를 잡았다. 

 "살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라. 너희의 희망이 이 세상에 닿은거다."

 카린 웡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함선간 연결을 준비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힐데가 미소를 지었다. 


 "카린씨도 눈물을 흘리는군요. 수분과 염분이 아깝다고 안 흘릴 사람일줄 알았는데."

 주시윤이 말했다. 

 "오호오. 역시 내 동생이라 그런지 보는 눈이 있구나."

 "어쩌다보니 제가 완전히 동생이 되어버렸네요."

 "자. 마셔."

 승무원 의자에 앉아있던 주시윤에게 시영이 핫초코를 건네었다. 

 "저는 단 걸 참 싫어해요."

 시윤이 말했다.

 "난 단 걸 너무우우우 좋아해."

 주시영이 말했다. 주시윤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어쩌다가 델타 세븐에 들어가게된거죠?"

 "아. 이거? 이번에 아우로라 열차에 델타 세븐의 가족들을 젤 먼저 타게 해준다는 조건이 있어거든."

 주시영이 말했다. 칼자루에 묶어둔 노란색 포승줄을 자랑이라도 하듯 흔들었다.

 "그래서 여기에도 가족들이 타고있어. 나랑 같이 한번 보러갈래? 내 남동생이 생겼다고 하면 엄청 놀라실텐데."

 주시영이 통제실의 뒷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주시윤은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말없이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 일은 할만 한가요?"

 "음? 우리 카린 지휘관께서 행정 업무도 좀 배우라는 것만 빼면 할만 하지."

 주시영이 핫초코를 마시고나서 몸이 풀어진듯 말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또 만날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참 신기하다 그치?"

 주시영이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쪽 세계의 사정도 좀 괜찮아진 것 같군요."

 "환경은 똑같지만 이쪽에서 기술을 많이 배워왔으니까. 적어도 방주의 희망은 생겼지." 

 "주시영씨! 또 거기서 농땡이 피우고 있던건가요? 벌써 엔진 충전량이 95%에요! 이륙할 준비 해야죠! 빨리 오세요!"

 "어라. 여기도 이제 자주 들키네. 장소를 자주 옮기던가 해야겠다."

 주시영의 말대로, 이 승무원 의자는 중앙 통제에서 시야가 묘하게 가려진 곳이었다. 하지만 카린의 호출에 주시영이 일어섰다.

 "그럼. 좀 있다 또 봐~ 출격하기 전에 우리 부모님한테 인사좀 하구 가자. 정말 재미있어 하실거야."

 주시영은 그렇게 말하고선 의자를 뛰어 넘어갔다. 

 "....."

 주시윤은 고개를 돌려 카린 웡 옆에 서 있는 사람을 응시했다. 회색 머리에. 바보털이 더듬이처럼 올라와 있는, 조그만 체구의 여성이었다. 주시윤은 고개를 다시 돌리고 눈을 감았다.

 "지휘관님! 함선 측면에 침식체의 파동이 식별되었습니다!"

 전자음만 반복하며 조용했던 통제실에 누군가가 소리쳤다. 무전기를 쓴 것을 보니, 관제사로 보였다. 그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주시윤은 눈을 떴다.

 "주시윤!"

 힐데가 소리쳤다.

 "네에~ 갑니다아"

 "데이터를 전송하세요!"

 카린이 소리치자 함선 중앙의 디스플레이에 함선 바깥의 모습이 전송되었다. 바깥은 아직 한참 어두웠다. 대신 커다란 달이 남극을 비춰주고 있을 뿐이었다. 달빛 아래에 얼음들이 은색으로 반짝였다. 폭풍이 휘몰아치던 눈발 속에서도 그 빛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주시윤은 영상으로 보기도 전에. 함선 내부로 전해지는 진동으로 상대를 알아차렸다. 영상 속에는 침식체가 함선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어릴 땐 코끼리가 가장 큰 줄 알고 카운터가 되고선 저번에 본 4종이 가장 큰 줄 알았는데..."

 주시영이 말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영상 속에 나온 침식체는 규격 외의 크기였다. 50층짜리 고층 빌딩을 가로로 눕혀서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면 저 정도의 크기에 맘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형태는 고래에 가까운 모양이지만 휘날리는 눈발에 자세히 볼 수 없었다.

 다들 입을 벌리며 쳐다보고 있는 사이, 카린이 묻는다.

 "엔진 충전률이 몇이죠?"

 "96%입니다! 얼마 안남았습니다!"

 "어, 어떡하죠 지휘관님?"

 카린이 미간을 찌푸리며 엔진 충전률과 화면 사이를 번갈아보며 고민했다. 

 "우리가 맡겠다. 계속 엔진을 충전해서, 완료되면 즉각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고민하는 사이, 힐데가 말했다. 힐데와 주시윤은 이미 함선 밖을 향해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저희도 같이 싸우겠습니다."

 "쉽진 않을 거다."

 카린이 말하자 힐데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항상 최선을 선택할 뿐이에요."

 카린이 소총을 장전했다.






 함선 밖을 나오니 현장감이 느껴진다. 침식체가 거대한 몸뚱이를 끌고 점점 다가온다. 배를 끌고 땅을 긁을 때마다 진동이 신발에서부터 심장, 그리고 머리까지 닿았다. 멀리서도 이 정도다.

 "4종일까요?"

 "모르겠다. 바다 속에서 잠들어있던 녀석이었나보군."

 힐데는 등에서 검을 꺼내었다. 레긴과 파프닐. 힐데가 애용하는 장검이었다. 

 "브리트라보다는 작군요."

 "그런 녀석이 헤엄이라도 쳤으면 해일이 일어났을 거다."

 힐데는 입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었다. 손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빈 손을 보고 힐데는 혀를 찼다.

 "카린. 주시영 너희들은 여기서 화력지원만 할 수 있도록. 엔진이 충전되면 바로 뒤도 돌아보지말고 이곳을 떠나라."

 "그럼 힐데씨와 주시윤씨는..?"

 "신경 쓸 것 없다. 이게 우리의 일상이었으니."

 힐데가 주시윤을 슥 쳐다보았다.

 "알겠습니다. 장거리 요격용으로 바꿔놓겠습니다."

 카린이 들고있던 검은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특수 제작된 레일건 총열이 준비되어있다. 카린은 소총에 총열을 결합했다.

 "저는 원거리 싸움을 못하는데요?"

 "땡땡이를 잘 치지 않나?"

 주시영이 너털 웃음을 지었다.

 "잘 아시네요."

 "그럼, 출발하지."

 힐데가 달리자마자 주시윤도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힐데를 따라 전방을 향해 달렸다. 바람을  등지고서 빠르게 침식체를 향해 접근한다.

 "스승님 엑자일러도 다른 세계에 정착할 수 있을까요?" 

 "쓸데없는 질문은 사양하지. 주시윤. 평소답지않은 질문이군. 자신을 닮은 누나가 마음에라도 들었나"

 "후후후. 아니요. 저런 놈을 상대하려니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주시윤은 정면의 침식체를 보았다. 덩치가 너무나도 커서, 눈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가 약점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 사이, 주시윤의 뺨을 거대한 빛덩어리가 스쳐 지나간다. 빛 덩어리는 빠른 속도로 침식체를 향해 가 폭풍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카린의 화력 지원이었다.

 폭발과 함께 침식체를 둘러싸고 있던 얼음이 깨지며 침식체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침식체에겐 타격이 없어 보였다.

 "레비아탄이였군. 얼음에 둘러 쌓여 있었나.."

 "아시나요?"

 "바다 속에 사는 침식체다. 하지만. 저렇게 큰 건 처음보는군."

 얼음이 깨지자, 침식체의 눈으로 보이는 8쌍의 빨간 눈이 드러난다. 힐데가 레비아탄의 정면 얼굴을 향해 뛰어올랐다. 

 "앞장 서겠다!"

 힐데가 눈을 노리고 쌍검을 높이 들려, 눈을 향해 찍어내린다. 눈을 가장 먼저 노린다. 그것이 사냥하는 자의 신조였다. 번개와 함께 카운터 에너지를 휘감은 쌍검이 레비아탄의 눈을 뚫고 들어간다.  

 [───────!!]

 찢어진 눈에서부터 푸른 피가 쏟아져 나오며 힐데를 덮는다. 힐데의 몸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레비아탄이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힐데가 능숙하게 검을 빼내어, 또 다른 눈을 노리려고 하는 순간, 레비아탄이 입을 열어 공기를 빨아들였다. 레비아탄의 입안에 붉은 빛덩어리가 모인다. 침식파다. 점점 커진 빛무리는 그 크기가 금방 전차만큼 거대해졌다. 크기가 어느 정도 거대해지자 레비아탄이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토해내듯 붉은 파장을 사방에 뿜어낸다. 파장의 에너지가 닿은 곳은 얼음이 갈라지고, 산산조각이 나버려 그 위로 바닷물이 넘쳐 올라왔다. 레비아탄이 점점 고개를 돌려 파장을 함선을 향해 간다. 광선이 거의 닿기 직전,

 주시윤이 붕대를 감아놓던 환도를 들어내어 파장에 맞섰다. 곧 주시윤이 저 얼음들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사라질 운명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주시윤의 환도는 충격을 빨아내듯 뒤로 물러섰다. 주시윤의 환도가 덜덜 떨며, 주시윤의 몸도 함께 떨린다. 그 충격을 받아내고, 간신히 파장을 위로 쳐내듯, 환도를 하늘을 향해 쳐낸다. 

 "어이쿠우!"

 시뻘건 광선이 오히려 역으로 방향을 바꾸어 레비아탄을 향해 달려들자. 레비아탄의 입안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살덩어리가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힐데는 그 사이 한 쪽의 눈을 전부 쌍검을 찍어내며 부숴버렸다. 반대 쪽 눈을 노리려고 점프해가는 사이, 푸른 빛덩어리가 힐데 앞을 스친다. 섬광이 터져나가며 레비아탄의 반대쪽 눈도 터져나간다. 

 "꽤 하는군."

 눈은 모두 무력화시켰다. 다음은 심장을 노려야 한다. 무차별로 공격할 필요는 없다. 오직 치명적인 곳만 찌르면 나머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

 레비아탄이 저항해보려고 거대한 몸을 급히 틀어 그 우람한 꼬리로 주변을 휩쓸었다. 맞으면 몸이 날라가는 게 아니라, 몸이 두동강이 났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주시윤!"

 힐데가 말하기도 전에 주시윤은 이미 뛰어 올라 레비아탄의 꼬리를 피했다. 두 명이 자신의 몸에 올라타자 레비아탄이 발버둥을 치며 둘을 떨어뜨리려고 했지만 주시윤은 단검을 박아넣고, 힐데도 쌍검을 박아넣어 몸을 고정시켰다.

 [───────────────────!!]

 레비아탄이 괴성을 지르며 갑자기 공중을 향해 뛰어올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공중에 뜬 레비아탄은 자신의 몸을 뒤집어 자신의 등에 타오른 두 명을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흣!"

 힐데와 주시윤 둘다 검을 급히 빼내어 이번엔 레비아탄의 몸을 타고 뛰어올라 배를 향해 검을 박아넣었다. 

 레비아탄이 둘이 그러든 말든 그대로 지상을 향해 낙하한다. 땅을 지탱하고 있던 얼음들이 일제히 부숴지면서 순식간에 밑 바다로 잠긴다. 레비아탄의 피가 바닷물에 퍼져나가고, 바닷물의 소용돌이가 힐데와 주시윤을 그대로 감싼다. 바깥보다도 오히려 온도는 따뜻하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바다 속에서 영원히 빠져있을 수 없다. 힐데, 주시윤 모두 검을 뽑고서 바다 위로 올라가려고 했지만. 

 힐데와 주시윤이 지상에서 레비아탄을 가지고 놀았듯, 레비아탄은 바닷 속에서 주시윤과 힐데를 가지고 놀았다. 순식간에 헤엄쳐 다가온 레비아탄이 몸으로 힐데를 밑으로 쳐내어 심해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힐데의 검들도 힐데와 함깨 심해로 떨어져 내려간다.

 '.....!'

 주시윤이 정신을 잃고 떨어지는 힐데를 쫓아 헤엄친다. 그 순간, 주시윤은 레비아탄과 눈을 마주친 것 같았다. 힐데에 의해 전부 찢어져 피만 남은 핏덩어리가 주시윤을 놀리듯 눈꼬리가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주시윤은 이를 깨물고, 환도를 뽑으려고 했지만.

 레비아탄의 꼬리가 그대로 주시윤을 밑으로 내려친다. 빠른 속도로 심해에 쳐박힌다. 수압차에 의해 바닷물이 주시윤을 순식간에 감싸 압박한다. 빛도 들지 않는 바다에, 두 카운터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레비아탄이 헤엄쳐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다. 

 "주, 죽은걸까요?"

 카린이 주시영의 팔소매를 붙잡았다.

 "...."

 주시영은 입을 다물고 레비아탄을 노려보았다. 

 "충전 다 되면. 출발해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주시영이 얼음 위를 질주한다. 은색 달빛으로 반짝이는 얼음 위에, 카운터 한 명과 거대한 형체의 고래가 맞붙는다. 

 주시영은 다짜고짜 환도 꺼내어든다. 주시윤과 비슷한 모양의 환도다. 레비아탄의 정면을 향해 뛰어든다. 레비아탄이 거대한 입을 벌린다. 칼날같은 이빨들이 드러난다. 이대로라면 레비아탄의 저 이빨에 주시영의 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이다. 하지만, 레비아탄의 벌린 입에서 빛 폭발이 일어난다. 

 '지휘관님! 아우로라 엔진 충전까지 1분 남았습니다!'

 카린의 무전기에 관제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평소였으면 함선의 화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몇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다. 카린은 떨리는 손으로 소총의 방아쇠를 당긴다. 레비아탄이 벌린 입을 향해 쏜다.

 폭발이 일어나자, 레비아탄은 비명을 내며, 고개를 치켜 들어올렸다. 입을 그대로 벌린채 노출되자 주시영이 환도에 힘을 모은다.

 "힘 빼세요."

 주시영이 이를 꽉 깨물고, 일점을 향해 찌르고 돌진한다. 빨간 섬광이 레비아탄의 입천장을 관통한다.

 [──────────────────────────────!!!!!]

 레비아탄의 입 위로 푸른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살점이 폭발하여 쏟아져나와 얼음 위에서 얼어붙었다.

 레비아탄이 꼬리를 들어 주시영을 향해 내려친다. 주시영이 피하자, 꼬리를 더욱 미친듯이 계속 주시영을 쫓아 내려친다. 쿵. 쿵. 쿵. 내려칠 때 마다 주시영이 날렵하게 회피한다. 

 '지휘관님! 아우로라 엔진 충전 완료했습니다!'

 '당장 시작하세요!'

 '시동!'

 카린 웡의 등 뒤로 쿠쿠쿠궁하며 땅을 울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러자 잠들어 있던 용같았던 검은 강철이 생기를 되찾고, 지상으로부터 솟아오른다.

 "주시영씨!"

 꼬리를 피하던 주시영이 카린웡의 외침을 듣고 고개를 돌린다. 그 순간, 꼬리가 주시영을 멀리 쳐낸다.

 "크으윽!"

 충격을 받았지만, 주시영은 바로 일어서서 함선을 향해 뛰어갔다. 카린 웡은 주시영의 등 뒤로 레비아탄이 입을 벌리고 공기를 빨아들이는 걸 보았다. 피가 철철 흐르는 와중에도 빛알갱이들이 이루모여 한 개의 붉은 빛덩어리를 이룬다. 카린 웡의 눈동자가 커진다. 몸이 덜덜 떨린다. 심장 박동이 빨라져 주변이 느리게 보이기 시작한다. 카린 웡은 주시영의 뒤로 공중에서 떨어지는 철조각들을 보았다. 철조각들은 바다로 빠졌다. 지원군인가 싶어서 하늘을 보았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주시영씨!! 더 빨리!!!"

 주시영이 배를 감싼채 달려온다. 하지만. 너무 늦는다. 레비아탄의 입에 모아지는 빛 덩어리가 거의 다 완성되어간다.

 '아우로라! 기동하세요!'

 '지휘관님은 어떡합니까?!'

 '말 들으세요! 어서!!'

 '알겠습니다! 아우로라! 기동!'

 아루로라가 하부에서 불꽃을 뿜어내며 점점 지상에서 멀어진다. 자신을 충전시켜준 글레이프니르와 점점 멀어진다. 

 거의 다 도착한 주시영이 허탈한듯 미소짓는다. 카린 웡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다. 눈가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주시영의 뒤로 빛이 번쩍인다. 레비아탄이 아까 전에 했던 것처럼 광선을 뿜어낸다. 밑에서부터 얼음을 부숴가며 점점 주시영과 카린 웡을 향해 다가온다.

 "최선을 선택했어..."

 광선이 닿기 전에 카린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함선을 보고서 눈물을 흘렸다. 

 "맞아요. 잘했어요."

 주시영과 카린이 서로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광선이 닿기 전에. 눈을 감았다.

 [여기는 힐데.]

 카린 웡이 눈을 떴다. 바다 속에 잠겨있어야 할 사람이. 어느 순간 공중에 떠 있었다. 

 [강하한다.]

 광선이 주시영과 카린의 눈 앞에서 멈춘다. 오직, 멈춰진 세상에서 힐데만이 움직였다. 힐데가 점점 땅으로 강하한다. 주변의 공기가 불타오른다. 힐데가 땅에 낙하하자, 그 충격으로 얼음이 사방으로 부셔져 튀었다.

 "굳이 저까지 필요하시다면야"

 카린은 시간이 멈춘 와중에, 등 뒤에서 주시윤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와 동시였다. 시간이 다시 흐르고

 광선이 카린과 시영의 몸을 산산조각 냈어야 할 터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카린과 시영은 베리어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붉은 광선은 푸른 베리어에 막혔다. 베리어가 카린과 시영을 보호해주었다. 그러나 베리어가 점점 한계에 다달았는지, 베리어의 광채가 희미해질 무렵.

 "어이쿠~"

 주시윤의 환도가 빛을 번쩍이며 광선을 역으로 튕겨냈다.

 [크어어어어어어!!!]

 레비아탄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튼다. 몸을 비트는 단순한 행동마저 이 땅에 진동이 일어난다.

 이것이 모두. 1초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자. 얼른 타세요."

 주시윤이 말했다. 그의 머리칼은 바다에 빠져 엉망이 되었다. 그 모습을 카린과 시영은 멍하니 지켜보다가

 "가족분들한테 가셔야죠."

 시윤이 그런 말을 남기고, 떠나고나서야 현실을 깨닫고 움직였다.

 '지휘관님! 돌아가겠습니다!'

 아우로라가 돌아와서 카린 웡과 주시영이 함선에 탑승하였다. 카린 웡은 떠나기 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힐데와 시윤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일단락이군요 스승님"

 "그래. 일단은... 그렇지!"

 힐데가 레비아탄의 꼬리를 맞고서 뒤로 물러섰다. 일반 장비였으면 그냥 튕겨나갈 충격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은 평소와 달랐다. 푸른 빛을 뿜어내는 강철 두 개가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를 보좌해주었다. 그녀의 팔뚝 옆에는 천사들이 쓰는 광륜 두 개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크어어어어어!!]

 레비아탄이 분한듯 온 몸을 흔들며 지속적으로 방해하는 주시윤과 힐데를 떨쳐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레비아탄은 지금껏 들은 적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입을 다시 벌렸다.

 이번에 레비아탄의 입에 모아진 빛덩어리는 이전과도 같던 붉은 광선이 아니었다. 이번엔 얼음과 같은 하얀 빛줄기들이 레비아탄의 입에 모이기 시작했다. 

 "스승님!"

 "화력이 부족해! 주시윤!"

 "알겠습니다."

 주시윤이 환도를 붙잡고서 눈을 감았다.

 힐데와 주시윤이 아무리 때리건 말건 레비아탄은 비명을 삼키며 계속 빛줄기를 모았다. 레비아탄은 지금껏 받았던 분노를 분출이라도 하듯, 하얀 빛줄기를 빠르게 모아갔다. 빛줄기가 모여 구체가 되었고. 구체는 곧, 하얀 광선이 되어 

 공중에 있는 아우로라를 향해 쏘아졌다. 광선은 마치 얼음을 그대로 쏜 것과도 같았다. 레비아탄의 입에서 쏘여진 광선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형태를 유지한 채 공중에서 얼어붙었다. 광선은 그대로 함선까지 닿았다. 광선이 닿자 함선은 그대로 얼음에 둘러쌓여 얼어붙었다. 너는 못간다. 그것이 레비아탄의 마지막 의지였다. 하지만.

 [글레입니르. 특전형 인프레임을 발사해라.]

 [승인 완료.]

 지상에서 묵묵히 잠들어있던 글레이프니르-포드무장 함선에서 네이팜 탄이 발사되었다. 발사된 네이팜 탄이 공중에서 터져나가며 일대가 화염 폭풍에 휩쌓였다. 그러자 레비아탄이 얼게만들었던 아우로라가 화염 폭풍 속에 녹아서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아우로라가 올라가기 전. 옆면이 위 아래로 열리더니 포문이 보였다. 포문에서부터 폭발이 여러번 일어난다.

 "크어어어어어어!!"

 아우로라의 포문에서부터 발사된 광선은 그대로 레비아탄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그리고나서야 아우로라가 하늘 위로 사라졌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제대로 주고 가는군."

 힐데가 말했다.

 "주시윤. 네 차례다."

 주시윤은 눈을 감고서 환도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 주시윤이 팔목에 찬 염주가 미세하게 떨린다. 레비아탄이 꼬리를 주시윤의 머리 위로 올린다. 주시윤이 눈을 뜬다. 주시윤의 눈이 붉게 빛난다.

 [형성된 것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vayadhamma sankhara appamadena sampadetha]

 주시윤이 환도를 크게 휘둘렀다.

 빨간 선이 한차례 레비아탄의 머리를 스쳐지나간다. 아주 잠깐. 찰나의 시간이 지나간다.

 그 후, 레비아탄의 몸이 선을 따라 반으로 갈린다.

[────────────────────────────────────────]


 "후우.."

 힐데는 담배를 빨아들였다. 거칠었던 눈폭풍이 사그라들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었다.

 "고생했다. 주시윤."

 "후후후 아니에요. 스승님이 더 고생하셨죠, 스승님이 아니었으면 전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힐데가 허탈하게 웃었다

 "가식적인 말을 잘도 말하는군. 날 구한건 너였잖나."

 "잘 알고 계시네요."

 주시윤도 짧게 웃었다.

 "스승님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는 딱이군요."

 주시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일전에 말했던 하늘의 커튼. 오로라였다. 에메랄드 빛이 하늘거리며 춤을 추었다. 비단을 흔드는 것 같았다.

 "저건 너가 준비한게 아니잖아."

 "제가 스승님을 여기에 데려오지 않았으면 볼 일도 없었을걸요."

 힐데가 고개를 숙이고서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말이야. 너가 일을 물어온 일은 드문 일이긴 하지."

 힐데가 담배를 한번 더 빨더니 말했다.

 "그러고보니 주시윤."

 "네?"

 "나는 케이크를 싫어한다."

 주시윤은 힐데와 눈을 마주쳤다. 힐데는 미소 짓고 있었다. 

 "그거 희소식이군요."




 조그만 방. 혹자는 원룸이라고도 한다. 원룸이라고는 하지만 다소 넓은 편이다. 조명때문에 넓게 느껴지는걸까. 방 안은 전구들과 트리, 사탕, 산타 장식으로 빛이 나고 있었다. 게다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익숙한 노래가 들려고오고 있었다.

 "으응? 와아. 왠 일이야 소대장. 날 위해 이런 파티를 준비해주고."

 검은 머리칼의 여성이 방 안에 들어오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미나. 너도 펜릴 소대에 들어온지 꽤 되었으니까."

 "소대장님이 직접 한거야?"

 유미나라 불린 여성은 두손으로 입을 감싼채 커다란 눈동자로 방 안을 둘러볼 뿐이었다.

 "아니. 이벤트 업체를 불렀다. 내가 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아서."

 "푸훗. 소대장답네. 그래도 고마워. 근데 왠 아이스크림 케이크야? 게다가 그거 엄청 비싼 거 아니야??"

 유미나가 한차례 웃더니 힐데가 들고있던 케이크를 보며 물었다.

 "글쎄. 싫어하나?"

 "아니. 엄청 좋아하지. 비싼건 다 맛있는 거라고 했어."

 "다행이군."

 유미나가 케이크를 까서 방 중앙에 책상을 깔고 앉았다. 

 "그.. 그럼 축하 노래라도 불러야하나?"

 유미나의 볼이 빨개졌다. 힐데가 미소지었다.

 "아니. 아직 오지 않은 녀석이 있다."

 "선배를 말하는거야?"

 "그래. 마침 오는 것 같군."

 원룸의 문이 열리고, 한 청년이 나타난다. 주시윤이었다. 실눈을 뜨고 있는 청년은 손에는 케이크로 보이는 걸 들고있다.

 "또 케이크야아? 와아아아."

 유미나가 빛나는 눈으로 케이크를 바라보았다.

 "후후후. 우리 미나씨가 좋아할 것 같아서 사왔어요."

 "와 대박. 너무 고마워. 그런데 선배. 대장님도 케이크를 사오셨어."

 주시윤이 힐데를 보며 고개를 까딱인다.

 "케이크는 싫어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음. 글쎄다."

 "근데 선배. 아이스크림은 싫어한다고 하지 않았어? 대장님이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오셨는데."

 유미나의 말에 주시윤이 힐데를 쳐다보았다.  주시윤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힐데도 따라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다. 주시윤."



후일담

https://arca.live/b/counterside/9751940


TMI

크로스로드 이후, 카린 웡과 주시영의 삶은? 그리고 그들이 맞이할 운명은 뭘까?

크리스마스 이벤트 스토리가 나온다면 어떻게 나올까?

주시윤과 힐데는 어떤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볼까?

내가 느꼈던 카운터사이드는?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사실 연말 분위기도 낼겸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생각하면서 메이드 소대에 대해 생각을 했었는데, 아직 나오지도 않은 캐릭터로 쓰기엔 부담이 커서 친숙한 주시윤과 힐데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주로 나오는 지부인 프론트 베이에 대한 설정은 게임을 참고하였습니다.

주시윤이 공간 베기를 쓸 때 나온 vayadhamma sankhara appamadena sampadetha란 문구는 붓다가 죽기 전 남긴 마지막 유훈으로서, 주시윤의 카운터 케이스와 염주를 참고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부족한 글솜씨에, 퇴고를 거치지 않은 글이라 읽기 불편하셨을 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부 설정 오류가 많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