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마법학교] 동아리를 둘러보는 이야기


언제나 아침은 찾아온다.

업무를 시작하기 위해선 옷장을 열고, 세수를 하고.


마지막으로 넥타이의 리본을 묶어주면 끝난다.


커피를 타고, 설탕은 넣지 않는다.

이럴 땐 쓴맛이 좋다.


의자에 앉으면 오늘 내가 할 일들이 떠오른다.

옆에 나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한 인형을 둔 채 어제 온 메세지에 답한다.


컴퓨터를 절전 모드로 돌려놓는다.

내가 와서 암호를 풀기 전까지 컴퓨터에겐 다시 쉴 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할 일을 시작해야 한다.

인형에 달린 키링을 허리의 벨트 고리에 걸고.


*와장창!*




이번에 들릴 부는 체육부.

핵심 동아리는 아니지만 수많은 부들이 함께하는 곳으로,

핵심 동아리에 버금가는 사람 수를 가진 동아리이다.


다만, 체육부의 부실은 우리들이 소유한 건물이 아닌, 누군가 빌린 부실을 사용한다.

거대한 체육관... 학생이 빌렸다고 하면 아무도 못 믿을 것이다.


문을 열면 복잡한 길이 펼쳐져 있다.

그래도, 깨끗한 표지판을 따라 걷다 보면 물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이 소리를 좋아한다.




펼쳐진 것은 수영장. 

레인이 있는 경주용도 있고,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는 풀도 있다.


수면이 잔잔할 일은 없다.

내 눈에는 자유롭게 물 속을 누비는 한 엘프가 들어왔다.


*슈와아아악*


엘프는 나의 시선을 의식한 듯 바로 방향을 튼 뒤 높게 뛰어올라 내 쪽으로 착지했다.


"안녕. 루펠."



"교장님!"

루펠은 나에게 와 물에 젖은 머리를 털며 말했다.


"오늘은 작살을 안 들고 왔구나."

"체육부장한테 쓴소리를 들어서요..."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무기인 걸 수영장에 가져오면 안 되지."


"힝..."
"그래서 작살은 바다에서만 쓴다고요."

루펠은 돌연 생각이 바뀌었다는 듯이 귀를 쫑긋거렸다.


"어? 좋은 생각이 났어요!"
"지금 당장 공학부로 가봐야겠네요!"

"그래 잘가~"

루펠은 미끄러운 바닥을 능숙하게 누비며 수영장을 나갔다.




초등부 아이들이 풀장에서 노는 것을 보다보면 참 재밌다.

가끔 마법을 써 파도를 일으키는 것에 휩쓸려 옷이 다 젖어버리기도 한다.


그럴 땐 마법을 차단해버리는 것도 방법이지만...


"무슨 맞는 옷이 이거밖에 없대..."
오히려 같이 물을 적시는 것도 좋다.


수영장의 뒤편에는 수영복을 빌려주는 곳이 있다.

부장의 취향에 맞춰 심플한 레시가드부터 비키니까지 구비되어 있다.


여행의 주간 때에는 이곳이 텅 비어버린다.

사람 이야기만이 아닌 옷도 마찬가지다.


수영복을 빌려왔다.

당장 몸에 맞는 게 없어서 초등부 수영복으로.


남청색의 한벌 수영복, 그것도 가슴 부분에는 하얀 네모칸이 있다.

대개 이곳에는 이름표를 붙여둔다. 아마 신입생이 들어오면 주려고 했던 물건 같다.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으니 입게 되었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다 보면 느끼는 것이 있다면...

놀 때만큼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이성을 놓아서는 안 된다.

기분에 휩쓸려 꼬리를 꺼내어 물장난을 쳤다간 풀장 바닥과 벽이 조각날 것이다.




*(헤어드라이기 소리)*


물을 말리던 중 만난 사람이 있었다.


"거기 있지 말고 나와."

"에헤헤... 들켰네."

역시나 리아였다.


"수영복은 이미 벗은 거야?"


나는 말 없이 벗어놓은 수영복을 보여주며 대답을 대신했다.


"젠장... 늦었네."

"..."
"이쯤되니 궁금한 게 있는데..."

"넌 내 몸을 좋아하는 거야? 아니면 다른 걸 좋아하는 거야?"
"전자면 너를 경계해야 할 ㄷ..."

"아냐!"
"난 그냥 네가 좋은 거라고!"


리아는 다급하게 말했다.


"..."
"다른 애들한테 이러지 마."



수영장을 나와 다른 곳으로 향하며 농구 코트에 들렸다.

키가 매우 큰 남학생들이 땀을 흘리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기 패스!"

*공이 튀기는 소리*


"나이스!"


벤치에 잠시 앉아 덜 마른 머리가 마를 때까지 있기로 결정했다.


'결투'가 매우 인기 있어서 다른 스포츠들이 밀리긴 했지만

그래도 즐기는 사람들은 좋아하던 것 같다.


나도 좋아한다.

적어도 '결투'보단 맘놓고 볼 수 있어서 좋다.


그러던 중 옆에서 누군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방금 자판기에서 뽑아 차가운 '체리닥터'였다.



"교장 선생님!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반 골드버그

외모는 매체의 영향으로 '양아치'라는 인식이 만들어진 태닝 금발이지만

겉으로만 판단하면 실수를 부른다는 말의 좋은 표본이다.


반은 매너있고 정중한 사람이다.

남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남과 함께하는 시간을 아끼지 않는 외향인.

목에 맨 로사리오에서 알 수 있듯이 신실한 종교인.

아마 예배를 다녀온 것 같다.


거기에 온몸을 둘러싼 풀 플레이트 아머같은 근육과 선글라스가 멋들어지게 어울리는 얼굴까지.

과연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것이 '죄'인가는 의문이 들지만 다들 '죄 많은 남자'라고 하는.


많은 이들의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가워. 반."


"나도 반가워!"
"예배 다녀왔어?"


"예! 이사장님! 아침 예배를 끝내고 먹는 체리닥터가 그렇게 맛있는데... 이사장님도 드셔보시겠어요?"


"난 별로..."

"그럼 내가 마실게."


호불호의 상징같은 이 음료수는 체리맛 콜라라고 요약하기에는 좀 복잡한 맛이다.

나는 주면 마시고 아니면 안 마시지만... 리아는 이걸 엄청 싫어한다.


반은 음료수를 건내주고는 코트로 들어가 경기에 합류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불리하게 굴러가던 게임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반... 솔직히 멋지지 않아?"

"멋지긴 하지."



다음으로 들린 곳은...


*슈우우우웅*

*삐빅!*


*슈와아아악!*

*착!*


*슈우우우웅*

*삐빅!*


'레일라이딩' 룸이다.


마법 공학이 발전하고 난 뒤에 생겨났었던 걸로 기억한다.

유래는 폰투스의 수인들이 가끔씩 항구에서 갈고리를 돗대의 밧줄에 걸고 레이싱을 벌이던 것이다. 


헬멧과 보호구,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바톤 형태의 앵커를 든 채로, 경기장을 달리다 레일을 빠르게 갈아 타며, 겨루는 게임이다.


나는... 지금 치마를 입고 있어서 이 상태로는 힘들다.

분명 가속도에 의해 치마가 들릴 것이다.


아이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필드를 질주하다 레일에 앵커를 걸고, 공중에서 속도를 겨루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이 체육관에는 여러 경기장이 있다.

외부 경기장도 물론 있지만, 비가 오면 어지간해선 자리를 비운다.


다만,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잘 보이지 않는 이도 존재한다.

그 아이는 나와 약속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