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아파요


음, 우리 미르 많이 아프지? 조금만 참아줘, 꼭 병원에 데려다줄테니까


그래도 너무 아픈걸요


울지말고 뚝! 사내아이라면 아픔 정도는 참아내야지


그거 성차별적 발언이에요


.........꼬맹이가 못하는 말이 없어


저 꼬맹이 아니라니까요


헷, 괜찮아, 이렇게 힘들고 불합리한 일만 일어나진 않을거거든


정말요?


물론! 이렇게 도움이 필요한 아이한테는 말이야, 히어로가 나타난단다.....








반드시, 나타날거야












한적한 밤이다.


고요하고 누구 한명 떠들지 않는 조용한 밤.


그런 아름답기까지 한 적막을 깨부수는 투덜거림이 있었으니.

 

"하아.... '막'에 대해서 도대체 뭘, 어떻게 알아내란건지 원."


바로 나다.


막.


세계의 의지란 영문 모를 무언가가 이 세상에 들이닥치고 생겨난 수많은 이변 중 하나.


전 지구를 뒤덮은 그 장막은 누군가가 말하길 오로라, 누군가가 일컫길 무지개, 누군가가 회상하길 휘황찬란한 천막... 

정말 다양하게 묘사되어진다.


물론 마냥 아름다운 무언가인게 아닌건 확실한 사실.


그 막이 지구를 뒤덮고 나서 우리에게 익숙했던 모든게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인터넷에 관련된 그 전부가 날아가버렸다.


그 동안 전 인류가 쌓아온 다양한 기록, 자산, 정보가 한순간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거니...


"이렇게 정상적으로 문명이 다시 돌아가는게 정말 기적이라니까."


지금, 현재를 위해 흘린 과거의 피는 결코 적지 않았지만 말이지.


그리고 말했듯이 세계의 의지가 지구에게 마수를 뻗은 후 나타난 이변은 지구를 뒤덮은 장막 하나뿐만이 아니다.


탑.


막을 뚫고 나가 우주 저 너머까지 뻗어 있는 높디 높은 탑.


왠만한 동화책이나 옛날 이야기의 탑들은 엄두도 못 내밀 만큼 크고 웅장하고.........


 그리고 이질적이다.


"그리고 막을 통과해 그 밖으로 나갈 유일한 수단은 탑을 오르는 것이란 것, 내가 지금 그 탑을 오르기 위해 똥꼬 빠지게 고생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으면 안되겠지 에휴."


그렇다 나는 지금 그 불길하고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탑에 스스로 발을 들이밀려 하고 있다.


나처럼 모종의 이유로 탑을 오르려 하는 존재, 그것을 횡단.......


"응?"


아니 어떤 놈들이 편의점에서 군것질 거리 사러 갔다온 사이에 집 앞에 대형 쓰레기를 내팽게쳐 놓고 갔네?


이래서 집값 싸다고 무턱대고 계약해버리면 안되는거다.


편의점을 비롯한 온갖 편의시설은 걸어서 한참은 가야하는데다 최근에는 게이트 오버플로우까지 일어나서 아주 개판이 되어버렸다.


뭐 그 싸디 싼 월세도 제대로 못 내서 집주인 아저씨한테 빛까지 진 입장에서 할말은 아니긴 하다만.


아, 게이트 오버플로우가 뭐냐면........


"자아아암깐만?, 저거 쓰레기가 아닌 것 같은...... 이런 씹!"


몇 년 전만 해도 TV 화면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실루엣,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것보다도 익숙해진 그 형체.


난 눈치채지 못한 나 스스로에게 욕지거리를 하는 동시에 내 집 문 앞에 쓰려져 있던 '사람'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봐! 괜찮아!? 윽!"


온 몸이 피투성이다.


진한 쇠 비린내가 내 코끝을 찌르며 경각심을 종마냥 울려댄다.


"제기랄.... 이정도 출혈량이면 분명히 굉장히 큰 상처를.... 조금만 기다려, 곧 구급차를 부를테니!"


그리고 난 방금 산 음식이 담긴 봉지를 내팽개치고는 곧장 휴대전화로 119를 부르려......


응? 


굉장히 큰 상처..........


굉장히 큰....... 상처가...... 없네?


구급차를 부르려던 손을 멈추고 난 다시 눈 앞에 쓰러진 사람에게 시선을 맞춘다.


확실히 이 사람의 옷은 진홍색으로 물들어져 있다.


누가봐도 틀림없는 피, 혈액.


하지만 무례를 무릅쓰고 그 옷을 벗기니 그 진홍색이 세어나왔어야 할 상처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라라, 이러면 상황이 굉장히 이상해지는데......"


일단 이 대량의 혈액이 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자세히 관찰하니 호흡도 안정되어 있고 맥박도 제대로 짚혀진다.


하지만 이 사람의 것이 아니라면? 과연 이건 누구의 피일까.


단순히 다친 사람 옆에 있었다는 것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진한 붉은색으로 물들여진 옷.


내가 폰에 입력했던 119의 9를 지우고 2를 입력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자, 잠시만요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피투성이로 누워있던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단건 알지만 여기에 사정이 있어요, 수상한 사람이 절대로 아니라고요!"


내 귀로 청아한 미음이 들렸다.


"............ 그 대사가 더욱더 수상하게 보이게 만드는건 아시죠?"


정말로 아니에요!


곧바로 일어나 땀을 뻘뻘 흘리며 손사래치는 그녀를 두고 난 생각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내가 기억을 되짚어보며 눈 앞의 사람과 어디선가 만난적이 있는지 생각에 잠겨있을때


"그, 그러니까 손에 들고 있는건 내려놓고 이야기하죠....!"


........들켰다.


분명 그녀의 시선에서는 내 몸에 가려져 있었을텐데.


난 내 몸 뒤에서 몰래 손으로 '꺼낸' 드라이브를 다시 '집어넣었다'


매우 수상쩍지만 저 쪽에서 적의를 보이지 않는데 이쪽에서 계속 경계하는것도 실례겠지.


"그래서.... 이렇게 젊은 아가씨가 한밤중에 이렇게 길바닥에 쓰러져, 아니 누워있던 이유는요?"


"죄송하지만 자세한 설명은 드릴 수 없어요, 여기에는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온거랍니다......... 구석진 곳이기도 하고요, 죄송합니다 금밤 이동할게요."


그렇게 그녀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 했다.


도망가려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보고 이야기하니 기시감은 더욱 더 심해진다.


한쪽 눈은 붕대로 가리고 있지만 이 어둠속에서도 뚜렷히 빛나는, 맑디 맑은 호수를 연상시키는 밝은 파란색의 눈.


길게 기른 후 뒤로 한데 묶어올린 포니테일은 윤기있게 찰랑거려 밤하늘이 펼쳐진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입고 있는 하얀색 탱크탑은 흉부에서 탄력있게 튀어나온 가슴에 의해 크게 당겨져 있었고


활동의 편의성만을 중시한듯한 매우 짧은 청바지는 군데 군데 찢어져 있어 우유빛의 탄탄한 허벅지를 매우 강조해버린다.


걸치고 있는 갈색의 코트는 얼핏 촌스럽게 보일만도 했건만 입고 있는 사람의 빼어난 미모 덕분일까, 중후한 멋만이 남아 있었다.


보면 볼수록 어디선가 본 얼굴.


하지만 지금 신경쓰이는건 그게 아니다.


저 눈.


왠지 지쳐보이는 듯한 저 방황하는 눈.


그 밝지만 어딘가 고독해보이는 파란색 눈동자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럼 안되는데 또 내 고질병이 발동하려 든다


"저기, 잠시만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지쳐보이시는데 우선 휴식부터 취하시는게....."


"신경써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제게는 그럴 장소가 없어요..... 그럴 여유도 없고요"


아니 아니 어딜 가려고.


그녀의 옷을 물들이고 있는 피에 대해 아직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기우라면 좋겠지만 내 불길한 예측이 맞는다면 이대로 방치했을때 무슨 사건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를 붙잡고, 권해버렸다.


"음, 저..... 쉬실 장소가 없다면 저희 집에서라도 쉬고 가시는게 어떠세요?"


"ㄴ,네?"


물론 내 권유에는 필시 의심뿐만이 아니라 걱정도 들어있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도움이 필요해보이던 그녀에 대한.








쏴아아.......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지?


난 확실히 그녀에게 내 집에서 휴식을 취하란 권유를 했다.


"음..... 하지만 언제 그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이 남자를 믿어도 될지도 의문이고... 하지만 확실히 몸을 숨길 장소는 필요해......."


그리고 예상과는 달리 뭐라 중얼거리던 그녀는 그런 제안을 미안해하면서도 손쉽게 받아들였고,


그리고 지금 내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있다.


???


"저, 혹시 샤워를...... 조금 해도 될까요? 피를 씼어내고 싶기도하고. 아, 아니, 죄송합니다 집 앞에 들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런 요구까지 하는건 너무 민폐겠죠...... 하하."


내 집에서 휴식을 하라고 먼저 제안한 입장에서 그렇게 부탁하면 어떻게 거절을 하겠나.


그녀가 입을 만한 옷이 있을지 찾아보며 난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보통 처음 보는 남정네랑 단 둘이 있는데 샤워를 하고 싶단 생각이 드냐고....."


대충 이 정도 사이즈면 그녀한테도 얼추 불편함 없이 맞겠지


난 찾은 상의와 하의를 접어서 그녀가 씼고 나오면 건내줄 생각으로 내 옆에 놓은후 TV를 켰다.


"아이고 이게 대체 왠 날벼락이야...... 오늘 받은 막대한 스트레스를 어서 빨리 <오메가맨 U> 정주행으로 씼어내야........응?"


한 시사 프로그램이 방영하고 있다.


지금 내 집에서 샤워를 하고 있는 그녀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S+급 횡단자 김희연


아 이 사람이었구나.


횡단자인 동시에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부대의 경호팀장


수많은 게이트를 단신으로 해제하고

수많은 범죄자와 무법자들을 단신으로 때려눕힌 자.


탑을 27층까지 돌파한 현 인류 최대, 최고의 정점.


강함만을 따진다면 지구상에서 한손에는 가볍게 뽑힐 그녀의 별명은 


만생의 주관자


그 강함을 경외스럽게 여기는 이들이 부르는 그녀의 호칭.


단어 그대로 만물의 생명을 자유롭게 다스린다는 뜻이고 그녀에게는 실제로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이 머저리야.... 이렇게 유명한 사람을 못 알아봐?"


난 중얼거리며 나 스스로에게 욕을 내뱉었다.


횡단자 관련 뉴스나 프로그램도 평소에 더 챙겨봤어야 했는데.


아니 그나저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왜 그런 꼴로 내 집 앞에?


내게 돈이 없다보니 내가 사는 이곳은 자연스럽게 값싸고 별 볼일 없는 외진 동네가 될수밖에 없었다.


그녀만한 횡단자가 돌아다닐 만한 장소가 아닌텔데.


"저, 저기.... 혹시 괜찮으시다면 수건 하나만 가져다 주실 수 있을까요? 여기 수건이 없어서......"


"아, 네 지금 갖다드리......?"


식은땀이 흐른다.


발걸음이 멈추고 막 손으로 집었던 수건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진다.


순간적으로 내 이해력을 넘어서버린 정보는 내 몸에도 영향을 끼치기 충분했다.


"........의 주관자라는 이명으로 유명한 S+급 횡단자 김희연 씨는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만약 방송을 보고계신 여러분들 중 그녀를 목격하신 분이 있다면 신속하게 신고......"


 요즘 유행하는 횡단자를 다루는 시사 프로그램이라 그녀가 나오는것에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프로그램의 자막과 내 귀로 생생하게 꽂히는 음성은 그런 내 안일함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현재 S+급 횡단자 김희연은 대통령을 살해하고 도주중에 있습니다. 만약 이 방송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 중 그녀를 목격하신 분이 있다면 아래 주소로 신속하게 신고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희연은 현재 대통령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는 혐의를 받고 있으며 조사를 거부하고 현재 도주중........"



아무래도


초대형 범죄자를 집에 숨겨줘 버린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