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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카데미에 다니겠다고?"


"응."


"미친놈이지? 아니, 미친놈 맞지. 네가 정상이었던 적이 없지."


거 참 신랄하시기도 한 평가 감사합니다. 나를 그렇게나 고평가해주다니 너무 고마워서 익스플로전이 근질거리네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눈 앞의 척 봐도 앳된 얼굴의 남성- 일명 총탑주는 머리를 싸매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렇게 진지하게 내가 아카데미 가겠다는 말을 싫어하면 내가 무슨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당장 하겠다는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한 4~5년쯤 뒤에 입학하겠다는 소리야."


"다행이다. 당장 내일 입학하겠다고 떼썼으면 메테오를 날리려고 했는데. 19살... 정도면 뭐. 나이도 괜찮고, 준비해둘 시간은 충분하겠네."


총탑주는 안심한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흠, 그정돈가?


"당연하지! 너 정도 되는 마법사가 '신입생'으로 온다고???? 널 가르칠 교수들이 불쌍하지도 않냐????"


"으음,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지. 혹시 도미네이션 마법이라도-"


"뒤진다 진짜."


슬슬 총탑주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온다. 으음, 놀리는건 이정도로 해야겠구만. 총탑주는 아일란 님과 달리 상당히 반응이 좋아서 계속 놀려먹게 된다.


"그대로 입학하겠다는 것도 아니니까 걱정마. 폴리모프로 종족도 인간으로 숨길거고, 힘도 나름의 방법으로 숨겨서 갈거니까. 소란피울 만한 일은 없지 않을까?"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하고선 아카데미에 입학하겠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지만..."


총탑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머리통을 까보고 싶다는 듯이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으음. 그렇게 쳐다보면 좀 무서운데. 시선좀 치워주지 않을래?


그치만 이데아에 환생하기 전에 '미션' 탭에서 아카데미를 선택해서 어쩔 수 없다. 창의력 30을 받아먹었으면 입 닦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해야지. 애초에 아카데미에 흥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네가 들어온다고 하면... 마법을 배울건 아니지? 나한테 이미 마법은 배우고 있잖아? 솔직히 말해서, 너보다 마법을 잘 아는 사람은 이데아에 나랑 흑마탑주 둘뿐인거 알지? 그런데 걔네한테 배우겠다고?"


"당연히 마법 말고 다른거 배울거야. 지금 생각하는건 오러긴 한데..."


"하루아침에 상위급 초월자를 신입생이랍시고 받아야 하다니, 하. 내가 미쳤지. 어쩌다 이런 놈이랑 엮여서는."


"그치만 이미 결계술 받아먹었죠? 그러면 받아먹은 만큼은 값을 해야지, 내가 잔금도 입금해드릴 마음이 들지 않을까?"


"야! 나도 마법 가르쳐주잖아! 원소마법 전반을 통틀어서 다 가르쳐주고 있구만!"


"그건 내가 팔아먹은 스크롤 값이지. 원래 그런 계약이었잖아? 대금의 반은 현금으로, 반은 마법책으로. 책이 아니라 과외를 해주겠다던건 결계술 받아먹고 기분 좋아진 과거의 네가 먼저 꺼낸 이야기였고."


"이런 미친놈인줄 알았으면 상종도 안했다, 진짜..."


거 참. 아까부터 미친놈 미친놈 하는데 듣는 미친놈은 좀 억울하거든요?


이전에 제국에 아디마 교단의 추기경이 찾아왔길래, 인사 좀 하고 미소 좀 지어줬을 뿐이다. 


근데 더러운 종교쟁이 놈이 갑자기 내 웃는 모습을 보며 기함을 하는게 아닌가! 이런 시대에 외모 차별이라니! 역시 종교쟁이들은 믿을게 못된다!


"네 미소가 일반적인 웃음이 아니니까 그렇지!! 웃자마자 그 표정 일그러지면서 사기까지 뿜어져 나오는데, 성기사들도 놀라서 성법부터 갈겼잖아!!!!"


"아니 그게 내 잘못이야? 못생기게 태어난게 잘못도 아니고-"


"적어 본인 미소에 하자가 있다는걸 알았다면 높으신 분 앞에서는 자제했어야지!"


으음. 그치만, 어쩔 수 없는걸?


아무리 추기경님이라 한들 초면부터 "항상 죄악을 경계하고, 욕망을 멀리하십시오." 라고 들으면 좀 꼴받지 않겠나? 


아무리 흑마법을 익힌게 사실이고 몸에서 사기가 좀 뿜어져 나오고 흑막처럼 생겼다 한들 초면에 대놓고 "나쁜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사세요" 라고 하길래 순간 욱해서 급발진을 박았... 아니, 미소를 좀 지어줬을 뿐이다. 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 없는 법이니까.


그러니까 아무튼 내 탓 아님.


"하여튼, 추기경님께서 중재를 해주셨으니 망정이지,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심장이 벌렁거려서..."


"아, 나 이제 가볼 시간이네. 오늘은 선약이 있어서 미안."


"야! 야! 어디가! 결계술 마저 알려주고 가야지!"


"수업은 나중에 마저 하고, 아카데미 입학 건 잘 부탁한다."


"이 개자식아!!!!"


뭐라고 뒤에서 외치는 총탑주를 무시하고 나는 블링크를 써서 마탑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에베벱. 안들려 안보여. 쵸붕이는 자유의 몸이에요. 


적당히 한적한 곳에서 텔레포트 마법을 캐스팅하며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간, 수인, 간혹 가다 엘프나 뱀파이어들. 그리고 기타 종족 등등. 전생에서는 보지 못했던 종족들이, 전생에서나 보던 방식으로 서로 삶을 영위해가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들.


아무 생각 없다가도, 이런 평범한 풍경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각.


나는 정말로, 다른 세계에 온 거구나.


소설로만 보던 이세계 전생은, 걱정했던 것보다 의외로 스무스하게 이루어졌다.


귀여운 독자 여자애라던가, 야한걸 좋아하는 무표정계 쿨데레 서술자라던가,


종족이라거나, 장단점이라거나, 이능이라거나, 그 외의 가지각색의 것들이 내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는 것이었고.


나는 상당한 시간을 머릿속에서 고민한 끝에 이렇게 전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전생한 삶이 마음에 드냐고 하면, 당연히.


"존나 마음에 드는구만, 씨팔거."


텔레포트한 곳은 길가의 한 햄버거집.


적당히 자리를 잡고 미리 시켜둔 맥주를 한입, 햄버거를 한입 하자 나는 인생 별거 있냐, 이게 인생이지. 라는 생각과 함께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인생 마음에 든다. 전생이랑 다르게 강함, 돈, 인맥, 그야말로 삼위일체를 갖추었으니까. 


소소한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긴 하지만 햄버거에 맥주 한잔 하고 식후땡으로 담배 한대 피우면 금방 기분 좋아지는 몸인데 뭐가 문제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햄버거 네 개를 순식간에 비우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슬슬 시간이 되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저 멀리서 위태롭게 길을 걷고 있던 한 소녀가 보인다. 


그리고 그런 소녀를 향해 멀리에서 돌진하는 차량 한 대도.


"찾았다."


[ 블링크 ]


***


평범한 날이었다.


그리 특별한 행운도 없고, 불행도 없이, 그저 아프고 배고플 뿐인 정말 평범한 하루.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밥도 뺏기고, 온 몸에 멍이 든 채로 도망쳐 나와 길거리를 떠도는 하루.


평범하다. 그녀 자신이 생각할 때, 이런 하루는 무척이나 평범한 하루였다.


오늘은 존이 자신의 옷 안에 벌레를 넣지도 않았고, 제이콥이 걸레 빤 물을 끼얹은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몇 대 얻어맞고 밥을 빼앗긴 정도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일상을 정말 평범이라 부를 수 있을까.


부모님도 없고,


친구도 없고,


아니, 그저 자신을 조금이라도 아껴주는 사람조차 없는,


이러한 인생을 평범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문득 그녀는, 본인이 살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럼 자신이 없어져도 아무도 모르는게 아닐까 싶었을 무렵-


- 부우우우우우웅!!!


"어..?"


저 멀리서 자신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차.


신호도, 중앙선도 무시하고, 인도를 향해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순간 얼어붙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 자신도 깨달았다. 


이대로 자동차가 달려오면, 자신은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아...!"


피할 수 없는 죽음. 압도적인 무력감.


그걸 느낀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든 감정은 자신이 아까까지 품은 감정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살려, 주세요.


작은 입에서 무심결에 새어나온 미약한 단말마.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못했을 그녀의 유언이었다.


[ 홀드 서클 ]


- 끼이이이익!!!!!


허공에서 날아든 고리가 자동차를 멈춰세우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녀는 코 앞에서 멈춘 자동차에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살았다는 생각이 들자, 안도감과 함께 몸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지려던 찰나.


한 남성이 자신의 등을 받쳐주었다.


"안녕 아벨?"


강렬한 진홍색의 눈동자와 짙은 검은색의 머리카락.


날카로운 인상,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잘생겼다, 라고 외칠만한 외모.


아벨과 다니엘, 두 사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구, 구해주셔서 감사합..."


"후후, 만나서 반갑구나."


히죽.


"아."


잘생긴 무표정했던 얼굴이 일그러지며 기괴한 표정이 되자, 안 그래도 연약했으나 조금 더 연약해진 그녀의 심장과 머리는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필름을 끊어버리고 말았다.


"...씨발. 깜빡했다."


소녀를 받치고 있던 남자는 소녀의 다리 사이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첫 만남부터 엉망진창이다.


빌어쳐먹을 이세계 같으니.





힘숨찐 아카데미 비현현 장편 연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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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일단 찍 싸고 보는 장편 연재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