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이름은 프루엔 아카데미 5학년생, 아이라고 한답니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이 아카데미의 최강자라 할 수 있었어요.


그 녀석이 들어오기 전까지는요.


"아, 안녕, 아이! 오늘도 좋은 아침이네!"


그래요, 저 밉상이랍니다. 어린 아이처럼 구는 주제에, 어릴 때부터 착실히 공부해온 저보다도 강하다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는 저 녀석 때문에 요즈음 행복하게 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숙을 지키시죠, 파이 씨. 복도에서 뛰어 다니다니, 타의 모범이 되지 못한답니다."


"아, 응... 미안해.”


“알면 되었습니다, 다음 수업이라도 준비하는걸 추천드리죠.”

정작 지적하면 너무나 평범하게 반성하는 모습이 더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답니다.


이번 시험에서야말로, 조금 더 확실히 제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이 답답한 속이 조금 풀리겠네요.






“또 졌어…”


어째서일까요.


이번 실기는 분명히 화염계 마물과 싸우는 일이었는데 말이죠.


저는 얼음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지라, 이번에야말로 이길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저 녀석은 불 마법을 쓰니, 이번에는 쉽지 않을터였는데.


“당신! 화염계 마물을 상대로 저런 기록을 내다니, 이번에야말로 비겁한 수라도 쓰신 거겠죠! 지금 당장이라도 자수하신다면 큰 처벌은 면하게 해주겠어요!”

“응? 아니, 뭐… 마물의 불을 빼앗아서 쓰면 되니까. 오히려 나한테 유리한 과목이었는걸?”


“네?”


“봐봐, 이걸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하면… 짠! 이렇게 제어를 빼앗아올 수 있다구.”

순식간에 손에서 작은 불씨를 꺼내어 보여주는 그 녀석.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지식을 제게 말하는 그가.


역시 맘에 들지 않습니다.


“갈 겁니다, 길을 막지 말아주시죠.”


무언가 보여주는 그를 무시하고, 급히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아쉬운 마음은, 단지 내가 집에 가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요.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이면 다야? 아이, 우리가 너를 어떻게 키워왔는데. 너를 위해 쓴 돈이 얼마인지는 아는거니?”

할 말 따위는 없었습니다. 저는 성적을 내야하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이미 두 번이나 그 녀석에게 제쳐지고 말았습니다. 매 학년마다 그 학년의 제일을 길러낸다는 목적을 가진 그들에게 저는 이미 반쯤 실패작으로 보일겁니다.


“마지막 기회란다, 아이.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너를 더 도와주기 힘들어져. 알잖니.”


“알겠습니다.”


“가보렴.”


문을 조용히 열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정말로 쫓겨나 버리겠네, 어쩌지…”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네요. 제 방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는 있지만서도, 지금 제가 제 방으로 가는지 지옥을 향해 가는지조차 잘 모르겠어요. 그 녀석을 어떻게 이겨야 할지… 


“괜찮아?”


“히익!”


등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깜짝 놀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녀석이, 여기는 어떻게 들어온거죠?


“뭐에요, 아니, 여긴 어떻게 들어온거에요?!”


“놓고 간 가방 전해준다고 하니까 들여보내주던데?”


“아, 그, 가방은 감사해요. 파이 씨.”


급히 그의 손에 들려있던 가방을 다시 채갔습니다. 


“저기, 괜찮아?”

“저는 괜찮답니다. 그것보다도, 어서 돌아가셔야 하지 않겠어요?”


“아니, 하지만… 나 때문에 혹시 집에서 쫒겨나는 상황인거야?”


설마지만, 그 소리를 몰래 엿들은걸까요. 


“...하, 참새도 아니고 언제 들으셨는지, 맞아요. 그래서요?”

“만약 문제가 안 된다면, 다음 시험에는 내가 힘을 좀 빼고…”


이래서 이 녀석이 싫은겁니다. 저는 고작 학년의 최고, 그 하나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고 있는데, 적당히 하며 자신의 1등을 채가고, 이제는 멋대로 제 노력을 무시한 채 그 1등을 포기해버리고 있으니까.


“당신의 동정 따위는, 필요없어요. 학년에서 당신이 제일이니까,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아시나요? 이건 제 집안의 문제랍니다. 당신 따위가 멋대로 들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들어도 되는 문제도 아니고, 간섭해도 되는 문제는 더더욱 아니에요. 제가, 제 실력으로. 당신을 이기면 그만인겁니다.”


제 말에, 그 녀석은 벙찐 얼굴이 되었습니다.

“하, 제 걱정이라도 하시는건가요?”


“당연하지. 더 이상 못보게 되잖아.”


잠시만요, 지금 뭐라고-


“멋대로 듣고, 말해서 미안해. 그래도 난 이 반 그대로 졸업하고 싶은걸. 알았어, 시험을 대충 보거나 하지는 않을게. 그래도, 다른 도움을 주는 정도는 허락해주지 않을래?”


순간 당황했습니다. 뭐, 저도 반 친구들과 헤어지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당신도 똑같나 보네요.


“제 프라이드를 건드는 정도만 아니라면, 그정도는 허락해드리죠.”


“고마워! 다음 시험 때까지, 최대한 도와줄게.”


그는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크게 웃었습니다.


“저, 이제 빨리 돌아가시죠.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야 안전하지 않겠어요?”


“알았어, 내일 보자!”





아카데미의 시험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돌아오는 느낌이랍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매번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고는 하죠.


“던전 탐험…?”


놀랍게도, 이번 시험은 던전에 들어가는 거라고 하네요.


“우리, 그러면 케스트라로 가는건가?”


“꽁짜로 해외여행이야!”


반 아이들이 시끌시끌하네요. 가는 비용은 아카데미에서 지원한다고 하니, 확실히 좋은 기회인건 맞지만요.


“어떻게 저랑 이 녀석이 한 팀이 된 건가요…”


아예 생각나는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교수님들이 안전을 보장한다고 해도 위험한 구역에 갈 때 실력이 맞지 않는 친구들이 한 팀이 되어버린다면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가 어려울테니까요.


하지만 한 팀이 되어버리면 저 녀석과 점수 차이를 벌리기 어려워지는데, 복잡하네요.


“우리, 한 팀이네.”


“그러게요.”


“힘내자.”


필요한 짐을 준비해서, 우리는 던전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말은 이렇게 해도 각국에 순간이동 장치가 있으니 하루면 갈 수 있었지만요. 이 장치를 고작 시험을 위해 쓰는 사람은 이 아카데미의 교장밖에 없을거라는 교수님의 한탄이 작게 들렸습니다. 확실히 그러네요. 이런 장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이 대륙에 몇 명 없을테니까요.


“전원, 비상시에는 손목에 준비된 팔찌를 사용하도록 한다. 물론 생명 신호가 끊어지거나, 미약한 경우에도 우리가 바로 찾으러 가겠지만 말이다. 첫 번째 조부터, 진입하도록!”


던전 안은, 매우 평범했습니다. 사실 수업만 집중해 들었더라도 충분히 학생들끼리 헤쳐나갈 수 있는 정도였네요. 아마 교수님들이 미리 와 어느정도 정리해두었겠지만요.


“이 페이스라면, 우리 조가 1등인 건 확실하겠네요.”


“이번 시험, 개별 채점도 있었으니까 집중은 놓으면 안되지만, 말이야.”


눈 앞에 보이는 슬라임을 태우며 그가 말했습니다. 


“확실히 그러네요. 뭐, 이정도 적들이라면 한 번에 완전히 얼릴 수 있으니 큰 문제는 없겠지만요.”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걸어나갑니다. 왠만한 적은 다 같이 잡았으니, 이대로 끝나면 공동 1등으로라도 끝낼 수 있겠네요.


-라는 희망사항은, 곧 망가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우리 조는 모두 뒤로 돌아보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걸까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괴물에게 쫓기는 다른 조의 모습이 보였으니까요.


“이런, 저 쪽부터 우선 해결해야겠는데.”


“가산점은 있겠네요, 그래도.”


다행히 다른 조라면 몰라도 우리 조라면 충분히 잡을 만한 괴물이었습니다. 특이상황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말이죠.


찰칵.


찰칵?


“함정이-”


한순간에 밟고 있던 바닥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꺄악!”


몸의 중심을 잃고, 그대로 깊은 지하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속도를 줄일 수가…!


“아이!”


그가 저를 붙잡은 채, 우리는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파이, 괜찮아요?!”

깊은 지하까지 떨어졌지만, 다행히 저는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으윽, 괜찮아. 아마도.”


“괜찮기는, 다리가 완전히…”


그의 다리는 못 쓸 정도로 시퍼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나가면 치유 마법으로 고칠 수 있는 수준이기는 했지만, 지금 우리가 있는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신호는 보냈으니까, 곧 교수님이 이 곳으로 올 거에요. 조금만 버텨요.”


“안 보내도 괜찮은데. 교수님을 부르면 시험 1위는 물 건너 가잖아.”


“이미 신호 보냈어요. 우리 잘못은 아니니, 잘 설명하면 1위로 끝날 수도 있죠.”


“미안해, 나 때문에.”


“저 혼자 떨어지는거였는데, 당신 덕분에 저는 무사히 착지했잖아요. 내가 미안해해야죠. 왜 잡은거에요?”


“친구가 위험한 상황이면 도와주는게 맞지.”


“고마워요.”


우리는 잠시 앉아, 조용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단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에는 지루했기에,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조용하네요.”


“그러게. 근데, 원래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야?”


“뭐가 말이죠?”


“고귀하게 말한다 해야하나… 무슨 말투라고 해야하는지 설명이 잘 안 되네.”


“배웠어요. 저는 완벽해야 하니까요. 완벽을 추구하는 집안에 주워져서, 최고여야만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어요. 지금도 계속해서 이렇게 말하려 노력하고 있네요.”


“힘들었겠네. 혹시 지금이라면 힘 빼고 말할 수 있을까?”


“힘 빼고… 그래, 지금이라면 편하게 말해도 위험하지는 않겠네.”


“혹시 말도, 막하면 혼나고 그랬어?”


“그렇지. 이것저것, 완벽하지 않은 부분마다 지적당하고는 했으니까.”


“혹시 나 때문에, 많이 혼났어?”


“너 때문은 아니야. 내 실력이 부족한 거니까.”


“...너는 분명히, 나보다 더 강해질거야.”


“말이라도 고맙네.”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옵니다. 교수님이 도착할 때가 되었을텐데…


“이런.”


아쉽게도 이 곳에 먼저 도착한 것은 괴물이었습니다.


“도망은… 네 다리를 생각하면 힘들고, 버티는 수밖에 없겠네.”


“미안해, 아이.”


“흥이야, 미안하면 나가서 갚으라구. [파이리스]!”


“응, 꼭 그럴게. [아이그나트].”


나도, 파이도 아직 마력이 남아있었기에 꽤 많은 수의 괴물을 막아냈지만, 조금씩 밀리는 것은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아이, 이대로면 우리 둘 다 죽겠는데, 너라도 도망가.”


“조용히 해, 파이. 조금만 더 버티면 되겠지.”


“나 혼자여도, 몇 분 정도는 버틸 수 있어.”


“내가 더 잘 싸우니까, 둘이 있으면 몇 십분은 버틸 수 있겠네! [파이리스-렌트]!”


마법을 너무 많이 쓴 탓일까요, 머리가 많이 어지럽습니다. 


“[아이그나트]... 조금만 더… [아이…]”


눈 앞에서, 파이가 먼저 탈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야, 정신 차려! 여기서 죽으면 안 돼!”


괴물들이, 계속해서 다가옵니다. 그래도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습니다.


“괴물 놈들아, 니들 다, 얼어 죽는거야. [파이리스-아에일-렌트]!”


남은 마력을 전부 끌어내, 마지막으로 주위의 모든 적을 얼립니다. 이거라면…


“파이, 아이! 살아있니?!”


괜찮겠네요…


저는 그대로, 파이 옆에 쓰러졌습니다.




다시 눈을 뜬 건, 던전 바깥에서였습니다.


옆에 누워있는 파이를 보자, 어쩐지 안심이 들었습니다.


분명 둘 다 안전히 살아나왔으니까, 겠지요.


“있잖아, 아이.”


“왜, 파이.”


“졸업하고 나면, 같이 다니지 않을래?”


“하하, 다른 사람이 들으면 고백이라고 생각하겠네.”


“고백 맞아.”


“뭐?”


“고백, 맞다고.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던 것 같아. 다시 물을게. 졸업하고 나면, 같이 여행하지 않을래?”


“...그래.”


“-어, 정말로?”


“그래, 정말로.”



그 뒤에는,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네요.


시험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교수님께 설명하고, 파이와 아카데미를 돌아다니고, 시험 결과에 대해 분노한 집에서 가출해 파이한테 도망가고, 집안과 절연하고…

음, 몇 달동안 겪은 일이 너무 파란만장하네요.


“내일이면 졸업인데, 굳이 한 번만 더 물어봐도 될까?”


“또?”


“또.”


“마음대로 해.”


“아이, 졸업하고 나면, 같이 여행을 떠나지 않을래?”


“그래, 파이. 이 몸은 최강이니까, 내 힘이 필요하겠지?”


“당연하지.”



안녕하세요, S_Polaris입니다.
짧게 쓰려 했는데, 왜 5500자짜리가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본편도 이렇게 잘 쓰이면 얼마나 좋으련지...

이번 이야기는 아이와 파이의 이야기입니다. (하이엔드의 인연 탭에 있습니다). 본편 시점과 성격이 살짝 다르지만, 어릴 때의 성격이라 생각해주세요. 시간대를 세세히 적을 생각은 없지만 굳이 정하자면 본편으로부터 5년~15년 전의 언젠가입니다.

아카데미는 10살에 입학해 6학년제로 생각하고 적당히 썼습니다.

재밌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