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아멜리아는 열차 밖으로 뛰어내렸다.
   
 
문제는, 뛰어내린 그곳이 가파른 절벽이었고.
동시에 그녀는 안전 보호구 없이 사실상 맨몸으로 절벽에서 떨어졌다.
 
 
“아흑, 아! 컥...-”
 
몇 번이고 시야가 뒤틀리고, 온 몸에 타박상에 의한 퍼런 멍이 들었다.
 
얼마나 떨어지고, 부딪치길 반복했을까. 풀숲에 쓰레기처럼 떨어진 아멜리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떨리는 손을 허공에 갖다댔다.

지금 그녀의 몸 상태가 어떤 지는 감도 잡히지 않는다.
 
갈비뼈는 성한 곳이 없고, 다른 뼈들도 마찬가지였다. 입에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왈칵. 피가 흘러나왔으며 오장육부가 뒤틀린 것도 모자라 온갖 근육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절벽에서 맨몸으로 마력 강화도 없이 굴러 떨어졌음에도, 이정도로 끝난 것은. 기적에 가까운 기우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아멜리아는 이내 제 처지에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하, 이게. 기적...이라고?”
 
 
쏴아아아아아-

지면을 적시며 얼굴 위로 떨어지는 빗고리에 귀가 먹먹하다.
 
서서히 먹구름들이 몰려와 울기 시작하는 것이. 마치 처량한 그녀의 몰골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젠 허전해진 허리춤의 검집을 느끼며 삐이이 거리는 이명 속에서 그녀는 억지로 엎드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철푸덕.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은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에 눌러붙은 핏물과 코끝을 찌를 정도로 넘실거리는 혈향.
 
”...읏.“
 
 
팔과 다리에, 감각이 없다.
 
마나 회로가 전부 타버린 탓에. 제대로 일어설 힘조차 남지 않았다.
 
이대로면 들짐승에게 먹히거나, 그냥 죽거나. 둘 중 하나겠지.
 
심장이 쿵쾅거린다. 온 몸이 불덩이 같다.
 
허나 타오를 듯이 뜨거워지는 열기 사이에서도, 피가 점점 더 빠져나가고 있다는 걸 증명하듯이 이미 그녀의 복부와 팔 주위엔 이미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핏물이 고여 있었다.
 
 
”...“
 
손이, 떨린다.
 
검을 들게 된 이후부터 공포라는 감정을 잊고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 순간 만큼은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공포심에게서 도망칠 수가 없었다.
 
서서히 죽어가는 감각.
시야가 흐릿해지고, 이미 고통이 거의 안 느껴질 지경에 이른 격통.
 
 
”...“
 
살아남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지만.
 
지감까지 그녀가 한 모든 노력이 무색하게, 기어가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여력조차 남지 않았다.

 
“...윽,”
 
 
그 사실을 깨닫자. 그녀의 안 그래도 망가진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몸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듯 하였다.
 
어떻게 일구어낸 자리 아니었던가.
그 명예롭다고 생각한 자리에 오르자마자-
 
배신당하고, 한 몸 바친 나라에서조차 버림받다니.
 
그저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 정 중앙에 큰 구멍이 뚫린 것만 같았다.
 
코끝이 매워지고, 흐른 눈물이 상처의 피와 섞였다.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것만 같은 감각.
 
나라에게 한 몸을 바친 용사는 명예로운 곳에 묻히지도,
 
하다못해 따스한 난로 앞에서 제대로 쉬어보지도 못한채.
 
이젠 닳아버린 칼날을 버리고 새 것을 갈아 끼우는 것처럼.
 
마물이 출몰하는 깊은 숲속에서.
 
그녀는 버려졌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해도.
 
이곳은 마물이 나오는 숲 속의 깊은 곳이다.
 
사람은커녕 들짐승 조차 이곳엔 오지 않는다.
 
설령 기적적으로 모험가가 이곳을 지나더라 해도, 그때쯤이면 피냄새를 맡고 모인 마물들의 뱃속에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져 소화가 된 후겠지.
 
이대로면 마수에게 잡아먹히거나. 흔적을 찾고 쫓아온 이들에게 납치당하여 죽겠지. 최악의 경우엔, 정말로 클레아의 말 대로 오크 같은 지성마물들에게 질질 끌려가 죽기 직전까지 강간당하다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엔,
가슴으로 어느새 냉기가 찾아들었다.
 
곧, 죽는다는 걸 암시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점차 무너져 갔다.
모두가 승리에 만끽했을 때, 검을 쥐고 훈련장에 박혀있었다.
차기 용사 후보 안에 드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어야 했다.
 
그토록 되고 싶어 했던 용사가 되었는데.
 
이런 꼴이라니.
 
”...“
 
무어라ㅡ말이 나오지 않는다.
 
시야가 어지럽다.
 
 
‘...너무, 아파.’
 
몸도, 마음도.
 
이때까지 자신이 한 것들이 전부 부정 당한 느낌이라서.

‘…힘들어.’

바닥에 쓰러져 드러누운 그녀가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될 수 없다.
지금까지 계속 외면했지만. 천출고아 출신인 그녀에게 그게 명백한 사실이었다.

그게 현실이었으니까.

아니,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노력 여하에 관계 없이 결국 이렇게 될 거란 걸.

그녀에게 있어서 평민과 고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타고난 재능의 벽과 그들의 눈까지 넘기엔, 너무나 높은 벽이었다.

‘…어차피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다, 이건가.’

만약. 뛰어난 기연, 고귀한 혈통. 재능 중에 단 하나라도 그녀에게 주어졌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러던 도중.
 
-처벅.
 
 
수풀에서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오며 말했다.
 
 
“...용사 인가? 살아있다만... 이건 심하군.”
 
 
“뭐,... 크흑!”
 
 
그것을 듣자마자 용사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들어올렸으나.
 
동시에 왈칵, 입에서부터 피가 솟아나오며 동시에 다시금 쓰러졌다.
 
핑핑 머리가 도는 와중에서도 아멜리아는 오로지 이곳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저 남자의 눈은 붉고, 이런 마물이 넘쳐나는 숲에 버려진 자신을 발견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거기다 이곳은 모험가들조차 발을 들이지 않는 깊은 숲 속.
 
다시말해, 지금 저 남자는 인간이 아니란 뜻이다.
만에하나 인간이라도. 저 열차 안에 있던 누군가라면, 그녀는 지금 죽을 상황인거고.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한다는 사고가 머리에 경종을 울렸으나, 팔과 다리는 말을 듣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도망칠 수 없다.
 
 
그녀는 떨리는 주먹으로 흙을 모아쥐며 처량한 눈빛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안...돼, 제발... 하지...마.”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애원 뿐이었다.
 
그녀는 몹시 두려웠다.
 
방금까지 포기한 삶인데, 그들에게 끌려가 온갖 잔혹한 방식으로 유린 당하며 죽지도 못하는 노리개 삶을 사는 건. 죽음보다도 더 큰 공포를 선사했으니까.
 
마치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도망치는 그녀를 본 남성은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더니 그녀의 젖가슴을 쥐었다.
 
 
-주물주물.
 
“흐극...! 윽...”
 
수치심에 몸을 비틀면서도, 저항할 수 없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감상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아무도 손대지 못한 처녀의 젖가슴을 주무르는 남성.
 
 
“...이거, 심각하군. 할 수 없지.”
 
 
이내.
 
서걱-
 

 
짧은 절삭음과 함께.
 
여인의 시야가 암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