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야, 나 산책 다녀올게~" 


"그래, 차 조심하고 점심시간 전에는 들어와." 


"알았어~ 뭐 사올 건 없어?" 


"김밥이 먹고싶긴한데 하하... 돈이 없어서" 


"저번에 에르제베트님한테 받은 용돈 있는데. 이걸로 사줄까?" 


"그거 내 돈이잖아.. 아니 괜찮아. 아우로라 쓰고 싶은 데 써." 


"응! 그럼 진짜 다녀올게!" 





"참 사랑스러운 아이란 것이다." 


"맞아. 조금 부담스럽다는 것만 빼면" 


"도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런 사랑을 받냐는 것이다. 수상한 것이다." 


"그런 거 아니거든." 


"아이들은 참 사랑스럽다는 것이다. 고기도 좋지만, 아이들을 보는 건 더 즐겁다는 것이다." 


"나도 그래. 우산을 모으는 것도 좋지만..." 


"말은 끝까지 하라는 것이다." 


"아니 뭐... 그냥 대충 알아들어." 


"싱거운 악마라는 것이다." 



그런 따분하고도 평화로운 날이었다. 




"리자. 오늘 컨디션은 좀 어때?" 


"좋습니다. 주인님이 조금만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더 좋겠지만, 그걸 기대하긴 힘들겠죠." 


"소극적인 악마라 미안하게 됐네요~~" 


"모나가 곧 올겁니다. 오후에는 모나와 함께 활동하시죠." 


"모, 모나가 온다고..." 




"또 멍청한 짓이나 하고있다는 것이다." 


그런 따분하고 멍청한 일상이었지만 


요물 구미호에게 그 일상은 소중한 보물같은 것이었다. 


자신을 거둬준 주인에게도 


자신을 받아준 주인의 차일드들에게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깊은 감사를 품고있는 그녀였다. 



"악마야 나 왔어~" 


"어서 와...아우로라..." 


"김밥 식탁 위에 올려둘게. 맛있게 먹어야돼?" 


"안 사와도 된다니까. 맛있게 먹을게." 



그 차일드들 중에서도 그녀가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차일드 중 하나가 바로 아우로라였다. 


원래부터 어린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같은 기운을 가진데다가 행동 하나하나가 

워낙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저렇게 악마를 챙기는 모습도 그녀에게는 너무 따스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우로라의 모습에서 


구미호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저렇게 기운 빠진 주인을 보면 


호들갑을 떨어야 할 아우로라가 


방으로 그냥 들어가버리는 모습은 


무언가 이상했다. 



지저분해진 옷, 떨리는 다리, 약해진 불의 기운. 



'......' 



하지만 비록 어려보인다 하더라도 


아우로라는 주인이 가진 강한 차일드 중 하나이다. 


뿐만 아니라 평소 생각이 깊은 그녀를 무작정 도와주려고 하는 건 오히려 폐가 될 수도 있다. 


장고 뒤에 두는 수는 악수라고들 하지만


긴 생각 끝에 구미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인. 외출하고 온다는 것이다." 


"그래... 다른 악마 만나서 눈 맞지 말고." 


"또 멍청한 소리나 한다는 것이다." 



주인의 근처를 배회하는 조무래기 악마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무리 자취를 감추려해도 그 특유의 악취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주인의 차일드를 빼앗거나 주인을 죽이는 게 목적인 놈들이겠지. 


평소에는 주인이 알아서 대처할 거라 생각하고 최소한의 신경만 쓰고 있었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과거만큼 큰 힘도 없고 


마땅한 해결방법도 없었지만 


아우로라가 그런 꼴을 당한 걸 보고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분노를 터뜨리는 건 나중의 일이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조무래기 악마들을 찾는 일이다. 


그 악마들의 자취가 여기저기서 보이긴 했지만 


장소를 특정하기에는 불충분한 흔적들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 


비록 원래의 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강한 축에 속한 그녀는 악마들이 탐낼만한 차일드이니 


흔적을 남기고다니면 악마들이 접근해올 것이다. 





그렇게 오후 내내 외진 곳을 돌아다니던 그녀에게 


몇 악마들이 접근해왔다. 


"너. 그 허약한 악마의 차일드인가?" 


"잘 모르겠지만, 내 주인이 허약한건 맞다는 것이다." 


"그런 자식이랑 붙어있지 말고, 내 밑으로 들어오는 건 어때?"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 오늘 하루종일 혼자 있었잖아? 지금 주인이랑 사이가 좋은 것 같진 않은데." 


"흥. 그런 약한 건 내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구미호의 가벼운 도발에 악마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아마 주인에게 덤벼들었다가 차일드들에게 몇 번 얻어맞은 기억 때문이겠지. 


주인은 그럭저럭 괜찮은 악마지만 완력만큼은 정말 형편없으니까 주인한테 당한 건 아닐테고.



"그런 재미없는 소리나 하려고 부른거면 돌아가보겠다는 것이다." 


"이 년이 우릴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해놓고 멀쩡히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어려울 것 같진 않다는 것이다." 


"그래? 근데 이거 어쩌나. 네년 생각대로는 안 될 것 같은데?" 


그러면서 악마는 뒷주머니에서 푸른 빛을 머금은 돌을 꺼냈다. 


"그 작은 돌로 뭐, 돌팔매질이라도 해보겠다는 것이냐?" 


"마정석이라고 하는 거다." 


그리고 그 돌이 순간 빛난다 싶더니, 


구미호의 기운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구미호는 놀라서 기운을 수습하려 했으나 저항하기에는 그 돌의 힘이 너무 강력했다. 


"악마추종자라는 것들에게 산 건데, 꽤 괜찮지? 사기만 치는 것들인 줄 알았는데, 아까 써보니까 쓸만하더라고." 


"아까 그 년도 한참 저항하더니 이 돌 하나에 꼼짝을 못하더라니까? 아가씨. 느낌이 어때?" 


"아까....그 년이라니......그게 누구냐는 것이다.." 


"응? 아아.. 그 차일드도 너희 주인 차일드였던가?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우리가 좀 괴롭혀줬지. 반항하는 게 꽤 귀엽더라고?" 




아우로라다. 



"그렇게 째려보면 어쩔건데?" 



저 악마의 말이 맞다. 


양기를 흡수한지도 오래. 


주인의 마력은 시원치않고 


밤이 되기 전인 시간도


저 돌이 지배중인 공간도 자신에게 불리하다. 


계속해서 주인을 부르고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되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휩쓸려 계획없이 움직인 자신의 잘못이다. 



"이건 뺏으면 여러모로 재미 좀 많이 볼 수 있겠는데? 이렇게 차일드를 흘리고 다니는 놈은 뭐 하는 자식이야?"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 있었다. 


그리고 주인과의 약속도. 



'주인, 미안하다는 것이다.' 




구미호. 


산생활에서 지혜를 얻은 여우가 


900년동안 정기를 모았을 때 태어나는 요물. 


그 지혜는 별의 움직임을 읽고 


그 힘은 산의 범마저 떨게 한다고 알려져있다. 




그 정기를 담아둔 그릇이 그녀의 목 아래있는 여우구슬이었다. 


스스로의 힘을 저주해 봉인해둔 힘이었지만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참고 싶지 않았다. 


악마라고는 하지만 


자신에 비하면 한낱 미물에 불과한 것들이 




"감히.. 나를 화나게 해?" 




여우구슬의 힘을 해방하면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어릴 적 기억도


사랑했던 남자와의 추억도 


어린 차일드들의 호의도


그리고


주인과의 인연까지도..



하지만 자신이 저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주인과 친구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아니. 강한 친구들도 많았으니 


모두가 죽진 않겠지. 


하지만 자신을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한다. 


이성을 잃고 폭주하게 되면 위험하겠지만 


그런 자신을 구하러 올 정도로 주인이 멍청하진 않겠지.. 

















"리자. 오늘 모나가 나온다 하지 않았어?" 


"모나는 마에스트로님의 갑작스러운 호출로 불려갔습니다. 제가 와서 불만이신가요?" 


"아니아니~ 그럴 리가 있나~" 


"모나가 없다고 해서 일을 대충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서 움직이시죠." 


"예이 예이~~" 






"으...지쳤다...." 


"정말 지치는 건. 오후 내내 애만 쓰고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다는 거죠." 


"꼭 말을 그렇게 해야겠냐...리자..." 


"그저 저의 기분을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에휴.. 이래서야 누가 주인이고 누가 서포터인지." 


"그러고보니, 저녁 때가 되었군요." 


"어 정말이잖아? 오늘은 또 뭘 먹는담." 


"아까 보니 새로 오픈한 쌀국수 집이 있더군요. 한 그릇을 시키면 한 그릇은 보너스로 준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해서 장사가 되나?" 


"...그렇군요. 그 가게의 이익을 생각하면 가서는 안 되겠군요." 


"참. 그거 그냥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게 힘들어?" 


"먹고싶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근데 난 먹고싶은데? 너 때문에 먹고싶어진 거니까 같이 가자." 


"......" 


"뭐야. 마음에 안 들어? 설마... 내 돈으로 사라고? 리자. 그래도 내가 주인인데 안 사줄거 같아?"


"주인님. 조용히 하세요."


"ㅇ,왜? 내가 뭐 또 잘못했어?"


"구미호의 기운입니다. 그것도... 엄청난..."


"이게 무슨 소리래. 헉. 먹을 거 얘기하는거 구미호가 들었나?"


"아닙니다. 아무래도 구미호가 난처한 상황... 아니 정말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것 같습니다."


"어, 어떡하지? 리자. 준비는 돼있어?"


"네. 마침 모나도 없는 날이어서 준비해두었습니다."






"데빌사이더 리자, 가동. 명령을 기다립니다."


"구미호한테 가자."


"고속비행 실시. 꽉 잡으십시오."





그 곳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이미 싸늘하게 변해버린 악마들의 시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지도 못 할 정도로 부숴져버린 지형들. 


깍아져내린 산.


그리고 그 중심에 아홉꼬리여우가 있었다.


"구미호!!! 정신차려!!!!"


"완전한 폭주. 이성을 잃고 분노로만 움직이는 상태입니다."


"아니 왜... 무슨 일이 있었던거야 도대체?"


"파악 불가. 현재로서는 퇴각을 추천합니다. 저희 둘로는 감당할 수 없는 힘입니다."


"그렇지만.. 저거 봐. 기운이 점점 줄어들고 있어."


"분석 중...... 분석 완료. 그녀의 마력이 담긴 구슬에서 힘이 새어나가고 있습니다. 본래는 온전히 그녀에게 담겨야 할 힘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그 힘이 흩어지고있습니다."


"그러면 힘이 다 떨어질때까지 기다리라는거야?"


"힘이 다 떨어지면, 그녀는 소멸합니다."


"......"


"힘이 소진될때까지의 시간 계산중. 약 34분 후 그녀의 힘이 모두 소진될 예정입니다."


"......"


"방책이 없습니다. 후퇴할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


"힘이 소진될때까지 33..."


"리자. 저번에 내가 슈트에 달아준 거 있지."


"클리포트를 말씀하시는겁니까?"


"그래. 그걸 사용하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클리포트를 전개한다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지금 상태의 구미호와도 전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녀를 구해낼 수는 없습니다."


"리자. 말해줘. 내가 뭘 해야 하는지."


"......"


"어서."


"..... 제가 구미호의 육체와 전투를 하는동안, 구미호의 던전에 들어가 그녀를 설득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구미호의 폭주가 멈출 것이고, 구슬의 힘을 제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럼 당장 시작하자."


"거부.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주인님이 구미호의 던전에 단신으로 진입했을 때 생존율은 1.792%입니다. 100000번 중 98208번 사망하게 됩니다."


"리자."


"말씁하십시오."


"100000번 중 100000번 죽게 될거라 해도. 내가 뒷걸음질 치지않을 거란 거. 알고 있지?"


"정말이지 당신은, 제 뜻대로 되지 않는 분이시군요."


"이런 주인이라서 미안하게 됐네."


".................."


"우리를 본 거 같은데? 엄청 째려보고있어."


"제가 시선을 끄는 동안 구미호의 던전으로 진입하십시오. 그리고 만약.. 만약 주인님이 위험해지신다면..."


"그 때는 도망쳐. 도망쳐서 모나를 불러오면 어떻게든 되겠지."


"명령 입력. 전투를 개시합니다. 무운을."


"이따 구미호랑 같이 쌀국수나 먹으러 가자."


"....알겠습니다."


그녀답지 않은 희미한 미소를 보여주며 리자는 곧장 구미호에게 달려들었다.


클리포트의 힘을 이용한 데빌사이더 리자의 출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허약한 주인이 구미호의 던전에 들어갈 틈을 충분히 만들어주었다.




"후아.. 이 던전은 이번이 두 번째인가?"



처음 왔을때는


서포터들도, 차일드들도 있었지만


이번은 혈혈단신으로 입장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구미호가 이렇게나 폭주한 상태에서


멀쩡한 꼴로 살아나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와중


쭈그려 앉아있는 구미호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저기, 구미호?"


"......."


그 구미호의 모습은 악마가 알고있는 구미호의 모습이 아니었다.


앳된 얼굴과 아담한 신체로 보건데


아마도 구미호의 어릴적 모습이겠지.


"구미호. 왜 이러고 있는거야? 어서 돌아가자."


"....."


그렇게 길지 않은 침묵이 흐른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구미호였다.


"주인. 잠시 여기 와서 앉아볼래?"


그다지 위협하는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지금 상태의 구미호에게 다가가는 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뭘 망설이는 거야? 내가 부르는 거 안들려?"


달콤한 목소리.


요염한 눈빛.


떨쳐내기 힘든 유혹이다.


정신은 다가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만


육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이미지가 그려졌지먼


어느새 몸은 구미호쪽으로 움직여


무릎을 탁탁 치는 구미호의 무릎에 머리를 벤 뒤였다.



"나 참. 주인이라는 게 이렇게 쉬워도 되는거야?"


"인마.. 주인이니까 쉽게 넘어가주는거야."




사실 쉬운 게 맞다.


자신은 정말 더럽게 약한 악마니까...




"밖에서 나 화난거 보고 들어온거지?"



구미호는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면서 물어왔다.



"응. 솔직히 너 화난거 너무 무섭더라. 근처가 완전 박살이 나버렸다고."


"그릇은 망가져있는데 거기에 물을 들이부으니까 그렇게 되지. 나도 참 바보같다니까?"


"나라니..밖의 구미호랑 너랑 다른거야?"


"정확히는 지금 날뛰는건 내 몸이야. 지금 내 정신은 힘을 잃은 상태라서. 나는 원래 나와선 안 되지만 긴급상황이라서 이렇게 잠시 나와있는거고."


"너는.. 너는 뭔데?"


"나는 기억이야. 몸도 정신도 아닌 기억. 원래는 이렇게 형체를 갖추진 못하지만 주인 덕에 이렇게 던전에서나마 나올 수 있게 됐다는 거. 고맙다고 해야하려나?"


그렇게 말하면서 구미호는 볼에 볼을 비벼오기 시작했다.


"옛날엔 엄마한테 자주 이러곤 했어. 지금까지 살아온 기간에 비하면 아주 찰나의 기억이지만 잊을 수 없는 시간이야."


구미호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언니오빠 동생들도 오래 살진 못 했어.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서지만. 가족을 잃은 나는 인간이 사는 곳으로 흘러들어갔어. 그 전에도 지켜봤지만 인간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럽더라고. 나를 보고도 무서워하긴커녕 방실방실 웃는 거 있지? 참.."


"그럼 어린 차일드들한테 유독 잘해준것도..."


"응. 그런 기억 때문이겠지. 주인의 차일드들이 유독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네."


"주인은 차일드들이 정말 애들 같은가봐?"


"애들이라기보다는... 가족 같아. 그냥 함께 사는 가족."



구미호는 시시하다는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꼬리가 부풀어올라서 살랑살랑거리는데..


기분이 좋은건가?



"정말이지 이런 약하고 순해빠진 악마 뭐가 좋다고 붙어있는지 모르겠다니까?"


"웃으면서 그런 말 하면 헷갈리거든.. 하나만 해 하나만."


"부끄러워 하기는. 조금만 더 솔직해져도 될텐데."


"내, 내가 뭘 부끄러워 한다고..."


"좋다고 하니까 부끄러워서 죽으려하는데? 솔직하지 못한 거야 나도 마찬가지지만 주인은 정말 티 많이 난다."


"구미호가, 아니 네가 솔직하지 못하다고?"


"여기야 던전이고 나는 일종의 무의식 같은 거니까 솔직하지. 하지만 평소의 나는 정말 부끄럼쟁이에 솔직하지 못 해. 주인 눈치가 그렇게 빠르진 않구나?"


"...응. 전혀 몰랐어. 그냥 매일 고기만 찾고 즐거운줄로만 알았는데.."


"바보. 주인이 자꾸 걱정을 하니까 티를 못 내는 거잖아."


"내가 잘못한건가?"


"흐으음....그건 아닐걸? 신경 안 써줬으면 안 써주는대로 또 마음이 상했을테니까."


"귀찮구만..."


"고마워. 그렇게 신경써주고 걱정해줘서."


"난 이런 심리 공격에는 약한데..."


"심리 공격은 무슨. 아까도 말했지? 지금 나는 정말 솔직해. 주인의 그런 모습 정말 좋아해. 나를 발견한 게 주인이라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어. 다른 좋은 주인들도 많겠지만 주인이 아니었다면 지금만큼 행복하진 못했을거야."


이건 좀 낯부끄럽네.



"얼굴 빨개진것 봐. 귀엽긴."


"돼, 됐거든?"


"하아.. 즐거웠다. 지금 밖에 신경쓰여 죽겠지? 그러면서도 나 신경써준다고 아무 말 안 하고. 정말 착해 빠졌다니까."


"큼.. 오늘 너한테 평생 들을 칭찬 다 듣는 거 같은데."


"맞어. 밖의 내가 이런 말은 못 하지. 자, 그럼 이제 슬슬 나가야지?"


"그래. 그럼... 네 소원은 뭐야?"


"하나는 이뤘어. 이렇게 솔직한 마음으로 주인과 대화해보는 것. 또 하나는..."








"리자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주인님!"


공중 한가운데서 떨어지며 악마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처참했다.


더욱 처참한건 자유낙하 후의 자신의 모습이겠지만


다행히 리자의 빠른 반응 덕에 그런 꼴은 면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돌연 구미호가 사라지더니 주인님이 허공에서 나타나시더군요."


"으.. 그냥 얌전히 땅으로 놓아주지. 이게 뭐... 리자! 너 꼴이 왜 그래?"


리자의 상태는 심각했다.


얼굴의 반이 날아가고 


왼쪽 다리 아래와 오른쪽 상체 전부를 잃은 상태였다.


"폭주한 구미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그녀를 이 공간에 묶어둬야 했기에 피해가 막심했습니다. 수복은 리버스랩에 의뢰할 수 있지만 큰 금전적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왜 이렇게까지..."


리자의 말대로 슈트는 수리하면 그만이지만


구미호의 공격을 받아낸 고통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슈트의 손상은 심각하지만 영혼에 타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주인님?"


그런 리자의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흐르는 걸 막을 길이 없었다.


자신의 무모함으로, 성급함으로 그런 꼴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자책감이 몰려왔다.


리자를 볼 면목이 없었다.


"정말이지, 당신이라는 악마는..."


그렇게 말하며


리자는 머리칼로 악마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울지 마십시오. 저는 저의 책무를 다했을 뿐입니다. 주인님께선 주인님이 하셔야 할 일을 한 것이고요."


"흑....흐윽...."


"오늘따라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군요. 부디 다른 악마나 서큐버스, 차일드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마시길 바랍니다."


"흡... 알았어. 당분간은 리자 말 잘 들을게."


"그러고보니, 구미호는 어떻게 된 거죠?"


"어..어? 맞다. 구미호!!"


악마는 그렇게 소리지르며 구미호를 찾아다녔다.


리자는 악마에게는 미처 하지 못 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모습은 저 혼자만 보고싶으니까요.'





"고기... 고기를 달란 것이다!"


구미호는


움푹 파인 땅 아래에서 잠꼬대까지하며 잠을 자고있었다.


"......"


"......"


"주인님. 제안 하나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응, 말해봐."


"구미호를 여기 두고 가는 건 어떠십니까?


"찬성."


"그럼 출발하죠. 귀가시간이 늦어 모두 걱정할겁니다."


"구미호! 일어나!"


"고기... 고기를 더 가져오란 것이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것이다! 음냠냠..."


"이렇게 된 이상 주인님이.."


"그래, 내가 업고갈 수 밖에 없겠네. 나 참..."


"주인님, 죄송하지만 슈트의 기동이 곧 종료될 예정입니다."


"뭐? 그거 태양열로 움직이는 거 아니었어?"


"한계 이상의 출력유지와 메인파트의 손상으로 기능이 정상작동하지 않습니다. 기동 종료까지 8초 7초..."


"잠깐만 잠깐만!!"


"데빌사이더 리자, 기동을 종료합니다."


"...리자. 리자? 장난치는거지?"


애타게 리자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꼼짝없이 서큐버스 하나와 차일드 하나를 업고 가야 할 신세가 돼버리다니..


"어쩔 수 없지. 고생 좀 해볼까."



리자에게 안겨서 날아올 때는 몰랐지만 정말 먼 거리였다.


다행히 아껴둔 마력이 있어 둘을 업고가는 데 무리는 없었지만 리자와 구미호 둘 다 제대로 휴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져왔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을 달래가며 한 걸음 두 걸음 걷는 와중


등 뒤에서 구미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힘들지 않냐는 것이다."


"허억...허억...힘들어 죽겠어."


"이제 내려주어도 된다는 것이다."


"허억....그건 안 돼...."


"고집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몸이 축축해져서는.."


"그냥..허억... 내 말 듣고...가만히 업혀있기나 해..허억..."


"......"


구미호는 잠시 말이 없는가싶더니


팔로 목을 감아왔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말은 좀 해도 될 것 같은데...허억..."


"고마워, 주인."


"......"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구미호는 나의 등에 얼굴을 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악마야!!"


집 밑의 오르막길에 오르자


집 앞에서 서성이는 모나와 차일드 몇 명이 보였다.


그 중 한 명이 이쪽을 쳐다보더니


울음을 터뜨리며 나에게 달려왔다.


"악마야! 악마야!! 후에에에애엥..."


아우로라는 그대로 달려와 품에 안겨왔다.


"크어억!"


"훌쩍.. 악마야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그렇게 말하는 아우로라의 얼굴에는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늦어서 미안. 많이 걱정했지?"


"응.. 훌쩍. 근데 이 둘은.. 꺄아악!"


아우로라는 리자의 몰골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에 모나와 차일드들이 단체로 뛰어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비명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안심이 돼서인지


나의 의식도 점점 멀어져갔다.





"악마야~ 나 산책 다녀올게~~"


"그래, 큰 길로 다니는 거 잊지 말고. 차 조심하고."


"알았어~~"


아우로라는 해맑게 대답하며 집을 나섰다.


저번과 다른 게 있다면,


검고 붉은 개가 함께 나간다는 점이었다.


지난번 아우로라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들은 이후로


에르제베트가 자신의 사역마를 일종의 호위로 붙여준 것이다.


처음에는 아우로라가 해코지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 주변 일대의 악마를 모조리 쓸어버리겠다면서 분노를 여지없이 보여주었지만


아우로라가 울먹거리면서 붙들어 맨 결과


간신히 개 한마리와 동행하는 걸로 타협이 된 것이다.


그러고서도 안심이 되지 않아


아우로라가 외출만하면 집에서 서성거리는 에르제베트가 최근 차일드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됐다.


언제나 여유넘치던 그녀여서일까.


그 덕분이라 해야할지 리자와 구미호의 일은 금방 잊혀졌다.


리자의 슈트 수복 값은 어마어마했지만


웬일로 그 짠돌이 악마가


다음 마경현상이 일어날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다짐받으면서 보수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리자는 슈트를 당분간 사용하지 못 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는 것 같지만


짧은 휴가를 받아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이다.


문제는 구미호였다.


그 일의 원인이 자신이라는 죄책감에


기운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다.


몇 번 말을 걸어봤지만 대화를 피하는걸 보면


시간이 해결해줘야 할 문제인듯 하다.




"그래도, 어떻게 다시 평화로워져서 다행이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메티스?"


"구미호. 주인의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하고있어."


"..."


"주인의 생각을 읽은 건 아니야. 그러지 않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저런 구미호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정말 평화라고 생각해?"


그 말에 왜 화가 난 걸까.


"말싸움이라면 나중에 하자."


"...미안. 그런 의도는 아니었어. 나는 그냥.."


감정이 얼굴에 보인 모양이다.


메티스는 주눅든 얼굴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내가 미안. 나도 지금 마음이 어지러워서. 무슨 말 하려는건지는 알겠어. 내가 나중에 말할테니까 그 때 도와줄래?"


끄덕끄덕


메티스는 한층 풀린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왜 화가 났던걸까.


지금은 리자도 아우로라도 구미호도 그리고 이젠 메티스까지도


신경이 쓰여 더 이상 생각을 하기가 힘들다.


일단 한숨 자자.


한숨 자고 생각해보자. 







싶갤 있는거 날려서 여기살림...




피드백해주면 감사히받겟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