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그렇게 먹으면 배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프다는 것이다! 아우로라 팀장님도 드시라는 것이다!"

"아니야, 난 많이 먹었어. 많이 구워줄테니까 구미호 많이 먹어."

아우로라는 끊임 없이 고기를 흡입하는 구미호를 신기하다는듯이 바라보며 열심히 고기를 뒤집었다.

"어? 아까 시켰는데 벌써 다 없어졌어. 이브! ...이브?"

"이브 대리님 금방 도착한다고 하신지 한 시간 지났는데 아직도 안 오고 계세요."

"정말? 어디서 길 잃고 울고 있는 거 아냐?"

울먹거리는 아우로라의 모습에도 상아는 익숙하다는 듯이 쌈을 싸먹으며 대답했다.

"어디서 혼자 잘 드시고 들어가실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울지도 않으실 거고요."

"상아는 너무 냉정해! 그치, 구미호?"

"으느르 그스드! 스으으 츠으 으으응으그스드!"

"과장님, 입에 음식 넣은채로 말씀하시면 안 돼요."

상아의 핀잔에 구미호는 입에 잔뜩 넣은 고기를 간신히 삼키고선 다시 말했다.

"아니란 것이다! 상아는 착한 아이란 것이다!"

"나,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인 거 알지, 상아?"

"그럼요. 팀장님도 고기 그만 구우시고 좀 드시지 그래요?"

아우로라는 상아가 내민 작은 쌈을 그대로 받아먹었다.

작은 쌈인데도 양 볼을 가득 부풀리고 먹는 다람쥐 같은 모습에 구미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런 행동에 익숙한지 아우로라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구석에 앉아있는 카카를 보고 소리쳤다.

"카카! 거기 벨 좀 눌러줄래?"

팀장님의 부름에 카카는 화들짝 놀라며 호출벨을 눌렀다.

"목살이랑 삼겹살 3인분... 아니 5인분씩 더 시켜줘."

"네. 근데 다 드실 수 있으시겠어요?"

"응. 구미호가 다 먹을 거야."

이윽고 도착한 점원에게 주문을 하려던 카카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점원이라는 사람이 큼지막한 마스크에 선글라스를 쓴 모습 때문에 그런 것이었지만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금방 표정을 푼 카카는 아우로라의 말대로 주문을 하고서 다시 구석에서 혼자 열심히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아이씨. 하필 알바하는데 언니가 올 게 뭐야?"

주방에 주문을 전달한 카쿠스는 신경질적으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내팽겨치며 소리쳤다.

"사장님이 좀 갔다 와달라니까요!"

"야임마.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여? 안 그래도 오늘 회식 여러 팀이라 힘들어 죽겠는데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일리가 있는 사장님의 말에 카쿠스는 입을 삐쭉거리면서도 더 토를 달지는 않았다.

"아, 또 호출 들어왔다. 빨리 움직여, 카쿠스."

"네, 네."

혹여라도 언니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카쿠스는 호출한 테이블로 걸음을 옮겼다.



구석에서 조용히 있는 후배와 고기만 먹고 있는 구미호, 그리고 그 고기를 열심히 굽고있는 아우로라를 슥 둘러본 상아는

맥주잔에 소주를 콸콸 부어담아 단숨에 들이마시고서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팀장님!"

"깜짝이야! 상아, 왜 그래? 먹고 싶은 거 있어?"

불을 잠시 끄고 쪼르르 달려온 아우로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상아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저희 야자타임 해요. 이브 대리님 모셔와서."

그 말에 구미호의 얼굴이 급속도로 굳어갔다.

"그,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냔 것이다. 나는 고기 먹는 것만도 바쁘단 것이다."

"그게 문제라고! 회식 와서 고기만 내내 집어먹고 있는 게 말이 돼?"

움찔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은 구미호는 상아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그러고 보면 저번에도 회식 자리에서 먹지만 말고 같이 놀면 안 되냐는 말을 들었는데, 고기가 눈 앞에 있으니 그만 그걸 잊어버렸던 것이다.

"상아, 화났어?"

자신의 옆에 무릎을 안으며 앉는 아우로라의 모습에 상아는 발그래진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으, 술냄새!"

"팀장님도 나빴어요. 어떻게 구 과장님이랑만 그렇게 놀 수 있어요?"

볼을 잔뜩 부풀린 상아의 모습에 아우로라는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미안. 그럼 우리 뭐 하고 놀까? 술 게임?"

"...왕 게임 해요. 돌아가면서 왕 하는 걸로."

"그래! 그럼 상아부터 왕 할래?"

"우리 신입부터 하는 걸로 해요. 카카 씨?"

상아의 부름에 구석에서 조용히 고기를 먹고 있던 카카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네?"

"우리 하는 얘기 다 들었지?"

"네...그런데 정말 해도 되는 거예요?"

"응! 아무거나 시켜도 되니까 눈치 안 봐도 돼."

"너무 이상한 것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그럼... 상아 선배랑 구 과장님."

가소롭다는 표정의 상아와 싱글벙글 웃고 있는 구미호를 본 카카는 침을 꿀떡 삼키며 말했다.

"서로 쌈 먹여주기... 해주세요."

"......"
"......"

"카카 너무 착하다! 자, 빨리 해!"

구미호와 상아는 멋쩍은 얼굴로 각자 쌈을 싸기 시작했다.

상아의 쌈은 적당한 크기의 상추 위에 깻잎을 얹고 마늘과 쌈장 고추, 고기에 밥까지 들어간 것이었고

구미호의 쌈은 커다란 상추 위에 고기가 잔뜩 들어간 것이었다.

"과장님. 이걸 어떻게 먹으라고 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구미호가 건넨 쌈을 볼이 미어터지도록 욱여넣은 상아는 이런 걸 시킨 카카를 곱게 째려보았다.

"상아 쌈은 너무 작다는 것이다."

게눈 감추듯이 상아의 쌈을 먹은 구미호는 헤헤 웃으며 상아를 바라보았다.

"고기만 계속 먹어서 미안하다는 것이다. 화 풀란 것이다."

"화 낸 거 아니예요."

훈훈한 분위기에 흐뭇하게 웃던 아우로라는 상아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이제 상아 차례야."

"그렇네요. 저는... 아우로라 팀장님이랑 카카 씨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대하는 아우로라와 걱정하는 눈빛의 카카를 바라보던 상아는 물을 한 잔 마시고서 입을 열었다.





저녁시간이 어느정도 지나고 주문을 하는 손님들이 줄어들자 자연스레 카쿠스의 일도 줄어들었다.

나중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설거지에 골치가 아파오긴 했지만 그건 그 때 일이니까. 하고 생각하던 때,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왔다.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이고 한 손에 마이를 든 손님은 천천히 가게로 걸어들어왔다.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감기 안 걸리나?'

생각하던 카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어서오세요.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이제 곧 영업이 마무리라서요."

"여기 여자 4명이 회식하고 있는 방 있지 않나요?"

카쿠스의 말에도 여성은 댱황하지 않고 물었다.

"아, 일행이시구나.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여성을 방으로 안내해준 카쿠스는 혹시나 언니한테 들킬까봐 빠른 걸음으로 가 다시 의자에 앉았다.





"팀장님, 저 왔..."

문을 열고 들어간 이브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상아의 어깨를 주물러주는 팀장님과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카카의 모습이었다.

"이브! 왜 이제야 온 거야? 너무 늦었잖아."

투정을 부리듯이 말하는 아우로라에게 고개를 숙인 이브는 상아를 째려보았다.

"상아. 지금 뭐 하는 거니?"

"왕 게임 하고 있었어요. 다음이 대리님 차롄데 딱 맞춰 오셨네요."

그제서야 아 하며 표정을 푼 이브는 마이를 내려놓으며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브, 어디갔다 왔냐는 것이다."

"사무실 정리하고 바로 여기로 온 거예요."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많이 나아지셨네요? 저반엔 늦어서 아예 못 오셨잖아요."

열심히 다리를 주무르는 카카의 말에 이브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오는 길에 큰 가방을 매고 있는 남자아이가 데려다줬단다."

"요즘 애들 다 예의가 없던데, 엄청 착한 애네요? 용돈 좀 쥐어주셨어요?"

"...용돈을 줘야 되는 거니?"

"시간이 늦었잖아요. 택시라도 불러주지 그러셨어요."

"애초에 택시를 타고 왔으면 되지 않았냐는 것이다."

"나는 이브가 찾아오려고 도전했다는 게 장하다고 생각해. 그치?"

점점 산으로 가는 대화에 이브는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팀장님, 한 잔 따라 주세요."

"알았어. 상아, 이제 그만 해도 되지?"

"네, 감사해요. 카카 씨도 이제 그만해."

뒤늦게 와서 첫 건배를 한 이브는 몸을 돌려 잔을 비웠다.

"그렇게 불편하게 안 마셔도 되는데."

"어떻게 팀장님한테 그래요."

자신의 말에 불편한 듯 헛기침을 하는 상아를 보고 웃은 이브는

어느새 아우로라가 싸둔 쌈을 조심스레 받아먹었다.

"맞다. 이제 이브 차례야."

"왕 게임이요?"

"응. 직급 반대순으로 하고있었어."

"제 차례는 넘길게요."

"대리님, 그런 게 어딨어요? 다 같이 해야 재밌지."

"그래? 그럼 상아랑 카카 씨 손 잡고 노래 불러줄래?"

또다시 호출되는 자신의 이름에 카카는 집게를 내려놓았다.

"다 좋은데 왜 노래예요?"

"그냥."

간단한 이브의 대답에 상아는 으 하고 신음을 내며 잔을 비웠다.

"그럼 카카 씨, 그 노래로 할까?"

"네."

마이크 대신 숟가락들 집어든 둘은 손을 잡고 그 노래를 불렀다.





'저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이거 언니 목소린데?"

카운터를 비우고 설거지를 하던 카쿠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손을 멈추었다.

자신과 노래방에 갈 때도 세 소절 이상 부르는 일이 없는 언니인 걸 아는 카쿠스는 노래를 부르는 언니가 서운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언니, 힘들게 사는구나."

집에 들어갈 때 케이크나 하나 사가야지

생각한 카쿠스는 다시 손을 움직였다.





"그래서, 누구 왕 게임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아?"

"저는 구 과장님이요."

"정말? 내가 아니라?"

"팀장님은 웃으라고만 하셨잖아요."

"그게 재밌는 거 아냐?"

"웃는게 뭐가 재밌냐는 것이다."

"이브는 재밌었지?"

"네? 네. 저는 좋았어요."

취기가 돌아서인지 치근덕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아우로라와 즐겁게 얘기하는 이브를 보던 상아는 문득 후배가 생각나 그 쪽을 돌아보았다.

"카카 씨, 아까부터 뭐가 그리 바빠?"

"맞아. 카카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상아와 아우로라의 질문에 목이 막혔는지 가슴을 두들기다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는동안 옆으로 다가온 아우로라를 보고 카카는 우물쭈물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카, 배가 이만큼 빵빵해! 배고팠어?"

"네..."

"근데 왜 같이 안 먹고 혼자 먹었어?"

순수한 의도로 묻는 것임을 아는데도 카카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게요. 카카, 무슨 일 있었니?"

걱정스레 묻는 이브의 물음에 카카는 볼을 붉히며 대답했다.

"...많이 먹는 게 눈치 보여서요..."

"응? 그게 왜 눈치가 보이냐는 것이다."

구미호의 무신경한 말에 상아가 옆에서 카카를 거들었다.

"원래 신입은 그런 거예요, 과장님. 구 과장님이랑 카카 씨랑 같아요?"

"그래도 카카, 같이 식사하는 자린데 그러면 안 되지. 그리고 많이 먹는다고 눈치를 줄 만큼 속 좁은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맞죠?"

"맞아. 내가 더 시켜줄 테니까 더 먹어 카카."

카카의 배를 통통 두드리며 말하던 아우로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카카, 원래 이렇게 많이 먹었어?"

"아니요. 저, 그..."

"카카.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 해도 된단다."

"...고기를 이렇게 맘껏 먹을 만큼 여유가 없어서요."

그 말을 한 게 부끄러운지 눈을 내리까는 카카의 모습에 상아가 이브에게 살짝 눈치를 줬다.

'왜 좋은 날에 애를 잡고 그러세요?'

'그,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궁금해서...'

'이번엔 이브가 잘못했다는 것이다.'

울적해진 카카의 눈치를 살피며 소근소근거리는 셋 앞에서 아우로라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브, 내 앞으로 온 새해 선물 중에 고기세트 있지 않아?"

"그, 그건...!"

'나 주기로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라고 말하려던 구미호는 싸늘한 아우로라의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네. 탕비실 냉장고에 넣어뒀어요."

"그거 나중에 카카 줘. 말고도 먹을 거 있으면 카카가 가져가. 알았지?"

"아, 아니에요. 저는..."

"카카 씨, 지금 팀장님한테 말대꾸 하는 거야?"

"그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

"팀장님이 그렇다면 그런 줄 알라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안경을 벗으며 눈물을 닦는 카카의 모습에 아우로라는 허겁지겁 휴지를 찾아 대신 눈물을 닦아주었다.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분위기가..."

"으응, 내가 잘 챙겼어야 됐는데 신경을 못 써서 그런 거야. 자, 이제 마지막으로 건배할까?"

아우로라의 건배 제의에 구미호는 조금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토를 달지 않고 잔을 들었다.

"건배사는 카카가 해 줘."

"제가요?"

"그래, 카카 씨가 한 번 해 봐."

잠시 말을 고르던 카카는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내년도 행복한 데스티니 오피스를 위하여!"

서투르지만 귀여운 카카의 모습에 다른 직원들도 모두 일어나 잔을 부딪혔다.

"위하여!"









"으... 배 아파. 너무 많이 먹었나?"

카카는 더부룩한 배를 부여잡고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길이었지만 곳곳에 설치된 가로등 덕에 헤매지 않고 집으로 가던 그녀의 뒤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 발소리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반가움의 표현을 하기도 전에 카카의 입에서는 잔소리가 먼저 나왔다.

"카쿠스! 지금이 몇 신데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오늘 공부는 다 했어? 저녁은 먹었고? 양치질은?"

"언니, 술 냄새 나."

"술을 마셨으니까 술 냄새가 나지. ... 근데 그 손에 든 건 뭐야?"

"케이랑 샴페인. 올해 마지막 날인데 언니랑 집에서 근사하게 파티라도 하고 싶어서."

"카쿠스..."

카카의 목소리에 머쓱한 미소를 지으려던 카쿠스는 쏟아지는 잔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밤에 케이크 먹으면 얼마나 살 찌는 지 알아? 그리고 샴페인은 또 어디서 산 거야? 너 또 나 몰래 아르바이트 하는 건 아니지? 추운데 옷도 이렇게 얇게 입..."

"언니, 그냥 고맙다고 해."

카쿠스의 짧은 한 마디에 텁하고 입을 다문 카카는 괜히 돌을 걷어차며 걷다가 입을 열었다.

"고마워, 내 동생."





"그런데 케이크는 무슨 맛이야?"

"생크림. 위에 딸기 올려진 걸로."

"참, 나 오늘 회식하는데 팀장님이..."

즐겁게 말하는 카카의 옆모습을 보며 건성건성 대답하던 카쿠스는

아까 낯부끄러워 하지 못 한 말을 속으로 전했다.

'고마워,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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