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가 짓뭉개지고 코뼈가 내려앉은 여자가 바닥에 걸레짝처럼 쓰러진 채 가쁜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아름다웠던 금발은 피로 엉겨 붙었고 한쪽 무릎은 망치로 내려친 것처럼 기이한 모양새였다. 그녀를 독사처럼 내려다보는 남자의 주먹에서 핏방울이 뚜둑뚜둑 떨어지고 있었다.


"이제 좀 알겠어?"


 유노가 티와즈에게 말했다.


"네가 아무리 버텨봐야 결국 머큐리는 내가 가져갈 거야. 그냥 내가 좀 편하고 싶어서 말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게 다 네 탓이라고."


"으, 으윽..."


"겨우 말할 기분이 들었어? 주인으로서 머큐리를 포기한다, 이거면 충분한데."


 입에서 피거품을 물며 티와즈가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자 유노는 쭈그려 앉아 귀를 가까이 댔다.


"그으윽...유, 노..."


"그래, 그래. 나 지금 듣고 있어."


 유노의 안경에 피가 섞인 가래가 튀었다.


"싫어..."


"아?"


"네가...좋은, 꼴은...절대, 싫어..."


 유노가 웃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비명이 방안을 가득 메웠다.


=


"Sweetie? 무슨 일 있어요?" 시트리가 말했다.


"아니, 그냥 갑자기 오한이 들어서..."


 악마와 시트리는 아르고스에 의해 다시 감금당했다. 그들도 이유는 모르지만 티와즈가 사랑의 묘약을 먹고 그에게 계속 달라붙어 있던 터라 그도 딱히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다과를 들고 있는 머큐리와 그녀의 어깨너머로 아르고스가 딱딱하게 그들을 감시하는 것이 보였다.


"계속 여기 있는 것도 힘드시죠? 제가 간식을 좀 가져왔어요."


"마침 단 게 좀 땡겼는데 잘됐네."


"저기."


 시트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걸어갔다.


"저희는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죠? 또 감금이라니 대체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모른다."


"네?"


"유노 님의 명령이다. 나도 자세한 이유는 못 들었지만 너희를 여기에 가둬두고 티와즈 님이랑 떨어뜨려 놓으라고 하셨을 뿐이다."


"티와즈 님이요?"


 시트리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 그러니까 유노 님이 다시 풀어주라고 하실 때까지 얌전히 있어라."


 아르고스가 다시 문을 닫았다.


"하하..." 머큐리가 웃었다.


"아무튼 앉자. 뭐 가져왔어?"


"아, 그랬죠. 일단 먹으면서 얘기할까요?"


 그녀는 다과를 탁자에 올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시트리도 악마의 옆에 앉았다.


"우리에게 할 얘기가 있어요?" 시트리가 물었다.


"네, 사실은..."


"뭐야? 뭔가 또 심각한 일이야? 티와즈가 무슨 일이라도 저질렀어?"


 악마는 쿠키를 내려놓고 말했다.


"아뇨...그게, 사실은 그 반대에요."


"반대?"


"네. 그...유노 님이..."


 머큐리가 문 쪽을 살짝 돌아본 뒤 작게 말했다.


"유노 님이 사랑의 묘약을 드셨어요."


"뭐?"


"네?"


"쉬잇!"


 머큐리가 검지를 입에 가져가며 잔뜩 움츠러들었다.


"아직 아르고스 님은 모르는 것 같아요."


"세상에, 정말...그래서 상대는 누구예요?"


"저...에요..."


"맙소사!"


 시트리가 소파에 기대듯 무너졌다.


"그거 좀, 아니 엄청 심각한 일 아니야?"


"네...잘못하면 두 분이 이혼, 아니 이 섬 전체가 뒤집어질지도 몰라요."


"이 사실을 따로 아는 사람은?"


"저랑 여러분, 그리고 오디세우스밖에 몰라요. 하지만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에요."


"하아,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죄송해요. 하지만 염치 불고하고 여러분이 꼭 도와주셨으면 해요."


"우리가 뭘 어떻게 해? 당장 아르고스를 뚫고 나갈 수도 없잖아."


"설마..."


 시트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네. 시트리 님이 또 한 번 사랑의 묘약을..."


"싫어요! 애초에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전부 그 약 때문이잖아요. 다시는 안 만들 거에요 그런 거."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큰일 날 거에요."


"큰 일은 이미 일어났잖아요. 또 다른 약도 분명 다른 문제를 만들고 말 거에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머큐리가 애원했다.


"Sweetie! Sweetie도 뭐라고 말 좀 해줘요."


"어, 나?"


 악마는 둘을 번갈아 보면서 끙끙거리다 겨우 말했다.


"그...머큐리,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나는 차일드가 싫어하는 짓은 하지 않는 주의라."


"그런!"


"봤죠? 사정은 딱하지만 제 대답은 No에요, No!"


"하지만 정말로...!"


 그때 갑자기 문이 거칠게 열렸다.


"유노 님?"


 아르고스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그를 부르는 것이 보였지만 유노는 들은 체하지도 않았다.


"여기 있었구나!"


 유노가 활짝 웃으며 머큐리에게 다가갔다.


"히익!"


 머큐리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큐리, 널 찾고 있었어."


"그게..."


"자, 나랑 같이 가자. 우리 둘이서 이런 지저분한..."


"유노 님." 아르고스가 끼어들었다.


"뭔데."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머큐리를 데려가시는 겁니까?"


"그래. 머큐리를 데리고 다른 섬으로 떠나겠어. 애초에 난 이런 시끌벅적한 곳은 질색이라고. 바보같이 그년을 위해서 만든 곳에 계속 머무를 생각 따윈 없다고."


"그년...? 설마 티와즈 님 말입니까?"


"그래. 걔 말고 누가 또 있어. 아, 그래. 아르고스 너도 따라올래? 머큐리와 단둘이 있는 것도 좋지만 너도 일을 잘 해줬으니까 말이지."


"...아까부터 왜 그렇게 머큐리에게 집착하시는...설마?"


"그래. 먹었어. 사랑의 묘약을."


 아르고스가 휘청거리듯 몇 걸음 물러났다.


"그래서 어쩔래? 따라올 거야? 떠나도 딱히 상관은 없어."


"그런, 설마 당신이..."


 아르고스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유노는 그냥 몸을 돌렸다.


"아무튼, 머큐리."


"네, 넷!"


"너도 좋지?"


"저, 저는 티, 티와즈 님의 차일드에요..."


 유노의 눈썹이 움찔했다.


"그런 게 중요해? 어차피 못 올테니 상관없잖아."


"그게 무슨 뜻이죠? 네? 설마 티와즈 님을 어떻게 하신 건 아니겠죠!"


 부들거리던 머큐리가 일변했다.


"정말 안 되겠구나. 제대로 계약을 끊어놔야겠어."


 유노가 방을 나서며 말했다.


"아르고스. 계속 여기를 지켜. 절대 아무도 나가지 못하게 해. 알았어?"


"유노 님, 정말로...?"


 유노는 그녀의 대답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성큼성큼 떠나갔다. 그의 등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아르고스가 머큐리를 향해 실로 움직이는 인형처럼 휙 고개를 돌렸다.


"너."


"아, 아르고스 님?"


"차일드 주제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굳어있던 악마와 시트리는 그녀의 불온한 기색에 머큐리를 지키듯 앞에 섰다.


"잠깐, 아르고스. 지금 무슨 짓 하려는 거야?" 


"진정하세요, 아르고스 님. 지금 유노 님은 약 때문에..."


"방해되니까 비켜."


 아르고스가 사슬을 들고 다가왔다. 끼릭끼릭 거리는 소리가 장내를 짓눌렀다.


"유노 님이 이러는 걸 아시면...!"


"닥쳐!"


 아르고스가 시트리에게 사슬을 휘둘렀다.


"꺄악!"


"윽!"


 악마가 가까스로 시트리를 밀치고 대신 맞았다. 사슬이 그의 뒤통수를 휘감으며 불길한 소리를 냈다.


"Sweetie!!!" 시트리가 소리 질렀다.


"너도 마찬가지야. 애초부터 네가 그 약을 만들지만 않았어도!"


 끝에 피가 묻은 사슬이 다시 아르고스의 손으로 돌아왔다. 붉은 피가 바닥의 카펫을 적시며 넓게 퍼져갔다.


"Sweetie, 정신 차려요. Sweetie!"


 시트리가 악마를 잡고 흔들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아, 아르고스 님.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


"시끄러워."


 쇠사슬이 머큐리의 가는 목에 휘감겼다.


"꺼억...!"


"감히 차일드 따위가...!"


"수, 숨...!"


"아, 안돼!"


 시트리가 아르고스에게 몸을 던졌지만 아르고스가 한쪽 팔을 휘두르자 그녀도 바닥에 처박혔다.


"차일드라는 건 이런 거야. 이렇게 열등하고 약한 것들이야. 그런데 그런 차일드 따위가 그분에게..."


 아르고스는 사슬을 감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 제발...!"


 머큐리가 게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었다. 


"분수에 맞게 죽어라."


 우득.


=


 유노는 티와즈가 있던 방으로 돌아왔지만 바닥에 뿌려진 피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망쳤나. 팔다리를 모두 부러뜨려놨는데. 오디세우스인가?"


"아닙니다."


 오디세우스가 뒤에서 슬며시 나타나며 말했다.


"그럼 누구지?"


"제피로스입니다. 그녀가 티와즈 님을 모시고 차고로 향하는 걸 봤습니다."


"...넌 티와즈의 차일드지."


"계약은 티와즈 님과 했습니다만, 제 충성은 이 섬을 위한 것입니다. 그건 유노 님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티와즈를 배신했다?"


"차일드가 주인을 잃는 건 드문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뭐 그런 대단한 소망까지는 없습니다. 애초에 지금 유노 님은, 아니 원래 유노 님은 조용한 편을 선호하셨지요."


"잘 아는군. 그럼 뭘 원하지? 아니, 뻔하군."


"네. 저는 단지 이 섬을 계속 아름답게 관리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좋아. 그럼 서둘러야겠군. 만약 거짓말이면 너를..."


"제가 이미 손을 써놨습니다."


"뭐라고?"


"티와즈 님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니 제피로스라면 틀림없이 출구까지 그분을 차로 모시겠지요.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방이 흔들렸다. 창문을 돌아보니 차고 쪽에서 거무칙칙한 연기와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좋아. 이제 이 섬은 네 거다. 오디세우스."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디세우스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유노가 떠나자 잠시 후 클로토가 찾아왔다.


"저기, 오디세우스. 정말로...이거면 되는 거야?"


"네. 그분들의 반응은 어땠죠?"


"딱 악마다운 반응이었지. 유노 님을 죽이겠다느니, 차라리 잘됐다느니 하면서 이리로 오고 있어."


"예상한 대로군요. 악마란 다들 그런 것이겠지요."


"정말 괜찮을까?"


 카지노를 관리하는 그녀는 평소에도 많은 악마, 특히 유노에게 빚을 진 악마들과 여러 의미로 가까웠다. 게다가 최근 찾아온 그 약물 제조자와 그녀의 주인을 제외하면 섬의 다른 악마들은 모두 티와즈의 친구로서 초대받았기 때문에 그들을 선동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원망은 모두 유노 님이 받을 겁니다. 애초부터 유노 님과 티와즈 님 사이의 들러리 같은 분들이었으니 두 분 다 사라지신다면 그분들도 여기에 계속 머무를 필요는 없어지겠지요."


"...저기 오디세우스. 넌 정말로 그걸로 만족해?"


"이미 상황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지경까지 도달했습니다. 유노 님이 티와즈 님을 때린 그 순간부터 모든 게 잘못된 겁니다."


"그런가...카지노에서 일하는 거, 그렇게 나쁘진 않았는데."


"클로토 님이야말로 괜찮으십니까?"


"응?"


"클로토 님은 유노 님의 차일드였지요."


"아아, 그렇긴 한데. 상황이 별 수 없잖아? 나는 딱히 강한 것도 아니고 싸우는 것보다는 이쪽 일이 더 좋거든."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글쎄, 그러고보니 한국에 실력 있는 승부사가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한번 겨뤄보고 싶네."


"그럼 저희도 여기까지군요."


"그래...뭐, 그동안 썩 재밌었어.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아, 혹시 괜찮으면 금고 비밀번호 좀 알려줄래? 빈손으로 떠나서는 재밌는 승부를 하긴 어렵거든."


"...딱히 상관없겠지요. 제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니까요."


=


 성난 악마들, 혹은 화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히죽거리고 있을 악마의 무리가 저택에서 본 것은 엉망진창으로 쓰러져 있는 아르고스와 유노였다.


"뭐야? 이미 끝난어?"


"쳇. 재미없게..."


"아냐! 아직 유노는 살아있는 거 같은데?"


 유노는 아직 희미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야, 유노. 아직 살아있냐?"


 경박해 보이는 악마가 유노의 뺨을 툭툭 쳤다.


"티와즈를 위한답시고 우리를 바보 취급했던 주제에 이제와서 티와즈가 싫증 났냐?"


 쓰러져 있는 유노의 옆구리에 발길질하자 그가 쿨럭거리며 피를 토했다.


"아르고스는 또 왜 죽였데."


"알 게 뭐야. 수고를 덜었으면 된 거지. 유노가 좀 쎄긴 했잖아."


"....줘..."


 유노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응?"


"죽여...줘..."


"애 뭐래냐."


"죽여줘...그녀 없이는...살아갈 의미가...없어..."


"뭐야. 이제 와서 후회돼?"


"이 새끼가!"


 화난 얼굴의 악마가 그를 짖밟았다.


"아주 그냥 다 지 마음대로야! 평소엔 티와즈를 독점했다가 버리고, 또 이제와선 없으니까 죽고 싶어? 오냐, 죽어라. 네가 원하는 대로 죽여줄게!"


 그는 계속 유노의 머리를 밟고, 또 밟았다.


"후우, 후우..."


 그 악마가 숨을 헐떡이게 됐을 무렵 유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단지 눈물만이 땅으로 흘러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야, 야. 이제 죽었으니 그쯤하고. 너도 빨리 금고나 찾아봐. 유노도 없고 티와즈도 없는데 계속 여기 있어봤자 뭐해. 가는 길에 기념품이나 챙기자고."


 저택 안에서 다른 악마가 나왔다. 엉망진창이 된 오디세우스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다.


"틀렸어. 이미 털렸는데?"


"뭐어? 누가? 오디세우스가?"


"나도 그런 줄 알고 일단 패고 봤는데, 클로토가 들고 튀었데."


"젠장! 그년 항상 맘에 안 들었는데! 그년 때문에 내가 빚을 얼마나 졌는지 알아!"


"아 걱정마. 발이 빠른 녀석이 쫒아갔으니 곧 잡아 올 거야."


"괜찮아? 이미 도망친 거 아니야?"


"그래봤자 차일드지 뭐. 걔가 빨라봤자 얼마나 빨라. 사기 칠 때 손은 빠르겠지만."


"그럼 됐고. 근데 이제 어쩌지?"


"나 왔다!"


 큰 자루를 짊어진 악마가 멀리서 날아왔다.


"오, 벌써 왔네?"


"그게 다 돈이야?"


"아니."


 그가 자루를 풀자 사지가 부러진 클로토가 쓰레기처럼 땅으로 나뒹굴었다.


"으, 으으..."


"살아있네?"


"그럼 당연하지. 이년에게 당한 게 얼마인데 쉽게 죽으면 곤란하다고."


"죄...죄송합니다.." 클로토가 애원했다.


"앙?"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 꺄악!"


 클로토에게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알긴 잘 아네. 네 잘못이 아주 큰 거."


"느, 네, 그러니 부디..."


"잘못했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


 악마들이 클로토를 짓밞았다.


"제, 제발, 그마, 그만...살려..."


 그녀의 애원과 비명이 수그러들 때까지 악마들의 행위는 끝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차고에서 일던 불이 저택까지 옮겨붙었다. 한때 아름다웠던 섬은 불길에 휩싸여 재로 변해갔다.


 오디세우스가 소중히 가꾸던 정원의 꽃들이 불꽃의 춤을 추며 스러졌다.


 제피로스가 환호를 받으며 달렸던 경주장이 무너져내렸다.


 머큐리의 밀짚모자가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갔다.


 아르고스가 좋아하던 찻잎이 타오르고 반짝이던 찻잔은 녹아내렸다.


 티와즈의 파티복으로 가득 찬 드레스룸은 사람 없는 화장터로 변했다.


 유노가 먹은 사랑의 묘약으로 만든 사탕이 불타 사라졌다.


 남겨진 오디세우스는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가 가진 유일한 계약자의 기억이 스며올라왔다. 그의 최후, 마지막 숨을 내쉰 그 순간이.


 악마들이 불타는 저택을 떠나고 남녀 한 쌍이 불타는 저택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Sweetie...이제 괜찮아요, sweetie..."


 시트리가 악마를 부축하며 불길을 피해 바닷가로 나왔다.


"시트리..."


"미안해요, sweetie...이게 다 저 때문이에요..."


"아니, 네 탓이..."


"제 탓이에요. 제가 그런 약만 만들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시트리가 메마른 눈으로 실낙원을 돌아보았다.


"다시는 그 약을 만들지 않을 거예요. 약속할게요."